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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

(자유시 참변 관련 재업로드)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 아나톨리 야코블레비치 구트만 저 '니콜라예프스크의 죽음'

작성자신룡기2|작성시간23.10.22|조회수146 목록 댓글 2

자유시 참변 관련 재업로드! 입니다. 자유시 참변의 원인, 최재형 선생 살해의 원인, 연해주 4월 참변의 원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극의 원인이라는 '니항사건의 증거'로 인용되는 구트만의 책에 대한 내용입니다.

https://youtu.be/SFO3iPZtHJ0?si=rOhBufmzqztdjsuM

아나톨리 야코블레비치 구트만

반볼셰비키 운동가, 러시아 적백내전 기간중 일본으로 도주후 자칭 친일은 안했다고 주장해서 근래 한국에서는 소설가가 아닌 역사가로 인정됨 (당시 일본은 일반적인 러시아 백파의 망명을 받아주지 않았음. 사할린섬의 거부 '페트로프스키'나 1921년 자유시 참변 당시 포병부대장이던 '안드레예브' 역시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로 최종 이주함)

이름 : Гутман, Анатолий Яковлевич (Anatoly Yakovlevich Gutman)

출생 : 1889년경 출생 ~ 1950년경 사망, 백파계 러시아인, 언론인, 소설가, 일본 도피자, 친일 파시스트

생애 : 일본, 독일에서 소련 공산주의 타도 활동

활동 : 주로 일본에서 반볼셰비키 운동 서적과 신문 발행

작품 : 일본, 미국, 러시아에서 출판됨. 한국의 각종 공식도서와 백과사전이 주로 인용하는 소설가.

 

인생사

반볼셰비키 운동가, 반 공산주의 운동가, 유대계 언론인, 경제학자, 러시아 내전시 백파 신문의 편집자, 볼셰비키 타도 단체 조직자.

모스크바 신문 "Commercial Telegraph", St. Petersburg 신문 "Birzhevoy Courier"및 "Epoch"의 출판사 편집자 .

1918년, 러시아 적백내전시 러시아 백파의 반란 신문 Votkinskiy Vestnik의 발행인이었다.

백파 콜차크 제독과 작당한 Votkinsk 백파 봉기의 참가자였다고 한다.

구트만은 1918년 10월경부터 우파(Ufa)에서 살았다

1919년 1월부터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살면서 신문 "Zarya", "Russian Army"에서 일했다.

1919년 3월부터 - 1920년 1월경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경제학자" 신문을 발행했다.

일본에 도주해 반볼셰비키 활동

1920년 1월경 시작된 사할린주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니항사건) 동안 일본 토쿄에서 반 볼셰비키 러시아어 신문인 “Delo Rossii”를 발행했다.

1920년 6월경에 러시아 내전시 극동지방 군사 대표중 한명이었던 Romanovsky Georgy Dmitrievich는 친일 백파인 시묘노프(Semyonov, 시묘노프는 1945년 일제 패망후 소련에 잡혀 처형되었다​​)의 군대 대표인 Syro-Boyarsky Alexander Vladimirovich와 논의한 후 Delo Rossii 신문을 인수했다.

(※만주, 중국에 있던 러시아 백파계 인물 일부는 파시스트 활동도 하였다.)

1920년 7월경에 Delo Rossii 신문의 일본어 번역본을 일본 관리들과 사교계에 배포하기 시작했다.

 

구트만은 자신의 책에서 자신은 친일활동을 안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러시아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일본군이 적백내전 당시 시베리아를 공격해, 자원 등을 약탈했다고 주장하며 그 양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924년경부터 소련은 만주지방 동청철도의 제정러시아 시대 권리 일부를 재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청철도에서 백파계 러시아인 해고를 요구했다.

구트만은 이 무렵 중국에 거주했다가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해 1922-1923경 거주했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서 신문 "Segodnya", "Rul" 및 "Common Deal"의 직원으로 일했다.

1927년 독일에서 공산주의 타도를 위한 서적을 출판하였다.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심심하면 인용.

 

니항사건 당시 완전 파괴된 니항(니콜라예프스크) 도심

 

※반볼셰비키 도서와 반공신문 등 발행

1924년 《니항의 죽음》 (영문도서명은 : 니콜라예프스크 항구의 파괴(The Destruction of Nikolaevsk-on-Amur))를 출판한다.

대표적인 반소련 도서이므로 세계 반공산주의 운동에서 인용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설책에 불과한 반공도서를 돈주고 사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책은 아무르강 하구의 니콜라예프스크 항구(일명 니항) 일대에서 공산주의에 적대적인 사람 등 33명의 진술을 기술하였다.

현재 러시아 역사학계에서는 구트만의 책에 나온 사람들이 니콜라예프스크 일대에서 유대인 자본가, 자본가, 광산과 유전 소유자, 귀족, 백파군대 등의 지배층으로 활동했거나 일본 천황에게 볼셰비키 타도를 청원하는 등의 친일파로 활동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실제 파르티잔에 의해 처형된 사람이 수십여명 있음이 확인된다.

오늘날 러시아의 작가 :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1967~현재)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의 공산주의 시대 살인행각을 주로 조사하여 출판하는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1967~현재)와 몇몇 백파계 사이트 제외하고는

 

1920년 2월 29일경 니콜라예프스크 항구를 평화적으로 해방시켰던 트리피츤 부대가 니콜라예프스크에서의 대규모 러시아계 민간인 학살을 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A.Y.구트만과 테플랴코프의 주장을 그냥 백파군대의 소설 쯤으로 본다.

 

니콜라예프스크 사건에서 일본군 약 680여명에서 ~ 900여명이 사망한 것은 러시아측과 한국 독립군측인 사할린의용대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러시아에서 공산당이 몰락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백파와 왕당파가 러시아 국민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이 소유했던 농장과 유전, 광산, 금괴 등이 자손들에게 상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늘날 러시아 측은 1920년 3월 12일경 일본군과 일본 거류민이 평화조약을 어기고 기습공격을 하여 볼셰비키 수백명을 학살하였고,

1920년 4월경 연해주에서 7천여명 이상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감행하고(4월 참변)

 

4월경 사할린섬 북부의 유전지대와 사할린주를 공격하여 파르티잔을 토벌하고 니콜라예프스크를 다시 공격해 오자,

그 보복으로 포로로 잡고 있던 100여명 이상의 일본계 포로를 참살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일본은 1925년까지 사할린섬 북부를 무력으로 점령하였고, 1944년에서야 사할린섬 북부의 유전에서 완전 철수하였다.

※일본에서 2020년에도 구트만의 책이 출판, 러시아에서는 2022년 '러시아판 폼페이 학살극', '니항 학살' 이라고 백파 군대 소설과 합병되어 재출판됨 (물론 잘 안팔림)

1990년대 냉전 종식이후

공산주의 시대의 숨겨진 범죄사건을 국가지원으로 조사했던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일본으로 도주했던 A.Y.구트만, 이오키 료조, 존 J 스테판이 주장하는 볼셰비키가 니콜라예프스크 등에서 민간인 대량학살을 계획하고, 평화조약을 어기고 먼저 대량학살을 가했다는 이론을

현재의 일본, 러시아, 미국, 중국 등에서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스탈린 시대인 1930년대 소련에서 대숙청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나,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당시는 스탈린과는 큰 관계가 없고, 니콜라예프스크에서의 일본군 전멸 및 일본 거류민 일부의 참살 사건은 일본군의 기습공격과 침략주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것이 당시 세계 언론과 오늘날 역사 학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1920년도 한국 신문에만 수백차례 보도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A.Y.구트만의 책은 일본에서 사할린섬과 쿠릴열도의 영유권 문제 및 천연자원, 어장 및 어업권 분쟁과 관련되면서 줄기차게 사실인양 인용되고 있으며, 그의 책도 자주 출판된다.

소설 등 글쓰는 재주가 뛰어난 구트만은 1918년경부터 시작된 러시아 내전시기 백파계 장교들의 죽음을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마치 숭고한 희생으로까지 승화시킨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공산당의 만행에 당연한 적대감을 유발케한다.

그 백파계 장교들 중 상당수는 시묘노프 등과 같이 연해주, 만주의 친일파가 되어 한국계를 대량 학살하고, 독립운동을 탄압하였다.

(구트만 책에 증인이라고 등장하는 33명)

(1) Lt. Colonel M. P. Grigriev, 백파군대 장교 영문번역본 197쪽

(2) S. D. Strod, 학생 영문번역본 204쪽

(3) Ya. G. Dobisov, 기업가 영문번역번 214쪽

(4) A. M. Avshalumov 학생 영문번역본 218쪽

(5) A. N. Bozhako, 주부 영문번역본 230쪽

(6) E. I. Vasilevsky, 세무사 영문번역본 232쪽

(7) S. I. Burnashev 영문번역본 239쪽

(8) F. T. Paturnak, 노동자 영문번역본 250쪽

(9) P. Ya. Vorobiev 영문번역본 258쪽

(10) Father S. V. Leporsky, 러시아 정교회 신부 영문번역본 267쪽

(11) N. K. Zuev 학생 영문번역본 269쪽

(12) P. S. Epov 노조간부

(13) P. P. Naletov 학생 영문번역본 271쪽

(14) G. B. Vacheishvili 어민 영문번역본 274쪽

(15) V. N. Kvasova 학생 영문번역본 277쪽

(16) I. R. Bermant 제분소 소유자 영문번역본 284쪽

(17) A. Lury 기업가의 미망인 영문번역본 289쪽

(18) R. Ya. Miller 기업가 부인 영문번역본 294쪽

(19) A. A. Melnikov 기업 간부 영문번역본 300쪽

(20) R. S. Akkerman 광산 소유주의 부인 영문번역본 305쪽

(21) M. I. Grosh 회사 간부의 부인 영문번역본 313쪽

(22) K. A. Emelianov 법률가 영문번역본 316쪽

(23) I. I. Mikhailik 회계사 영문번역본 321쪽

(24) E. F. Kotova 소작농 영문번역본 325쪽

(25) A. A. Kovalik and M. I. Neliubov 소작농 영문번역본 329쪽

(26) A. G. Voropaev 경비원 영문번역본 313쪽

(27) I. Dimchin 선원 영문번역본 334쪽

(28) D. I. Bulivar 화부 영문번역본 337쪽

(29) I. E. Kazachkov 소작농, 빨치산 영문번역본 340쪽

(30) Ya. V. Vasiliev 삼림 감독관 영문번역본 343쪽

(31) Ya. M. Kaptzan 기업 간부 영문번역본 346쪽

(32) G. I. Tugovtsov 아이누 민족 소작인 영문번역본 351쪽

(33) E. S. Bugaenko 빨치산 영문번역본 353쪽

구트만의 책은

백파군대 장교, 유태인 자본가, 러시아 정교회 신부, 학생, 주부, 어부 등 33명의 일제측으로 넘어간 사람들의 증언을 담고 있다.

오늘날 러시아 역사학계에서도 니항사건 기간중 살인, 친일 반역혐의 등으로 수십여명이 처형되었음을 인정한다.

또, 구트만은 책에서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당시 조선인 바실리 박의 행동을 기술하였고, 바실리 박이 백파와 일본인 등과 협조했다는 것이 일부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바실리 박은 구트만의 책에서 니항의 유명인사로 한국독립군 부대를 조직했다는 한인교사 박일리야와는 다른 인물이다. 박일리야 부대는 구트만의 책에 따르면 약탈, 강간, 절도를 하지 않은 부대라고 한다.)

※냉전의 시작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지 않음

러시아 내전기 대표적인 백파였던 콜차크(Колча́к 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ич, 1874 ~ 1920, 내전시기 처형되었으나 현재의 러시아에 동상도 세워짐)와 함께 볼셰비키를 공격하였고,

대표적인 만주와 시베리아의 친일파 시묘노프(Семёнов Григо́рий Миха́йлович: 1890 ~ 1946, 전범으로 처형됨)와 함께 공산주의 타도를 노렸으나,

냉전의 시작으로 전쟁범죄, 반소련활동, 친일파로 체포되어 처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1967~현재)조차 시묘노프를 높게 평가하지는 못한다.

Destruction of Nikolaevsk on Amur: An Episode in the Russian Civil War in the Far East, 1920 (Russia and Asia, No 2) Hardcover – 1 Mar. 1993

 

※ 자유시 참변과 관련되어 A. Y. 구트만의 저작을 인용하는 사람들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1967~현재)

한홍구, 로버트 스칼라피노, 이정식

반병률

윤상원

존 J 스테판

 

 

※구트만의 저서들

1. 볼셰비즘과 독일. 상하이. 1921. (Большевизм и Германия. Шанхай. 1921.)​

2. 아무르강 니콜라예프스크의 죽음 : 극동 내전의 역사 페이지. 베를린. 1924. (Гибель Николаевска на Амуре : страницы из истории гражданской войны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Берлин. 1924)

(영어 번역본은 제목이 바뀜 )

Gutman, Anatoly. Ella Lury Wiswell (trans.); Richard A. Pierce (ed.) Nikolaevsk-on-Amur의 파괴, 극동 러시아 내전의 에피소드. -Limestone Press, 1993.- ISBN 0-919642-35-7 .

(Английский перевод: Gutman, Anatoly. Ella Lury Wiswell (trans.); Richard A. Pierce (ed.) The Destruction of Nikolaevsk-on-Amur, An Episode in the Russian Civil War in the Far East. — Limestone Press, 1993. — ISBN 0-919642-35-7.)​

3. A. Ya. Gutman 이제프스크 봉기. 백파. 백파 투쟁의 연대기. 도서. 3. 베를린, 1927.

(А. Я. Гутман Ижевское восстание. Белое дело. Летопись белой борьбы. Кн. 3. Берлин, 1927.)

구트만이 친일 활동후 파시스트 활동을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여러개의 가명을 사용하였고, 1945년이후 러시아계 파시스트들은 소련에 의해서 다수 전범으로 처형되었다.​

러시아인 나치 동조자

만주국의 러시아 이민국 설립 기념 연회. 1934년 12월 만주 하르빈.

러시아계 파시스트당 당수와 백파계 러시아인들이 보인다. 나치 독일의 표식도 보인다.... 러시아 파시스트의 일부는 독일 나치당의 이념을 공유하였다.

=======구트만의 책 <니콜라예프스크의 죽음> 요약 =========

1920년 3월경 붉은 파르티잔 야코프 트리피츤 일당에 의해 아무르강 하류의 니콜라예프스크(Nikolayevsk) 시가 함락됨.

이후 일본군 수비대를 파괴함.

주민 학살 및 지역 약탈.

그리고 결국에는 완전한 파괴에 대해 이야기하는 희귀한 책.

일본의 보복 위협으로 타이가 숲으로 철수.

(1) 서문에서:

“사할린주 지역은 1920년 3월 1일부터 ~ 6월 2일까지 3개월 동안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이름으로 통치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 지역의 볼셰비키 파르티잔 대표자들은 실수로 탈출한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백파 장교들을 총살하고, 찌르고, 익사시킨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파르티잔들은 농민과 노동자, 노인, 여성과 어린이, 일본 영사관과 함께 일본인 거주지 전체를 파괴했다.

파르티잔들은 전체 니콜라예프스크 시내를 불태우고 파괴했습니다. "

이 책은 1920년 8월 16일 이 지역의 인구 밀집 지역(니콜라예프스크 시내)에서 71명의 대표로 구성된 사할린 지역 의회에서 통과된 결의안으로 시작합니다.

이 문서는 이 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2) 니콜라예프스크의 비극을 세상에 알림

짧고 독창적인 표현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재산을 잃은 니콜라예스프의 유골 위에 모인 러시아 사람들은 그들의 끔찍한 비극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볼셰비키 정권 창출자들의 잔학 행위는

인류의 암흑기 역사에서 나온 다른 유혈 에피소드에 대해 읽어야 했던 모든 것보다,

아무르 지역의 니콜라예프스크에서 일어났던 공포 앞에서는 창백해졌습니다.

3/4세기 동안 러시아 사람들의 여러 세대에 걸친 노력으로 만들어진 도시 니콜라예프스크(니항)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도시의 인구는 거의 완전히 학살되었다.

학살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수는 공식적으로 약 6,000명으로 추산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 구트만은 책 본문에서 니항 주민 1만여명 이상 학살되었다고 씀)

1920년 6월 초에 도시에 진입한 일본군은 거리에서 타버린 재와 썩어가는 사람들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러시아 트리피츤과 볼셰비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공산주의자, 소비에트 정권의 대리인은 제 3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피 묻은 슬로건은

부르주아지, 지식인, 장교의 살해와 머나먼 버려진 땅을 만들었습니다.

(3) 학살자들의 만행 (조선인의 역할은 거의 없다시피함)

슬프게도 러시아 노동자와 농민, 죄수 폭도, 반 야만적인 외국인, 조선인, 중국인도 뒤를 따랐다.

피가 개울에 쏟아졌고 번성했던 부유한 도시는 말 그대로 폐허로 변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단절된 우리의 머나먼 변두리에서 3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지옥의 모습을 제대로 그릴 수 있는 것은 펜의 힘이 아니다.

폼페이우스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조차도 니콜라예스크의 붉은 파르티잔의 만행보다 더 자비롭습니다.

로마 폼페이의 인구는 탈출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4) 구트만의 책에 등장하는 백파측 33명의 증인

나(구트만)는 이 작업에서 기적적으로 죽음에서 살아남은 유혈 범죄의 목격자와 희생자에 대한 33명의 증언을 포함하여 수많은 문서를 수집했습니다.

(※구트만의 이 자료는 오늘날 미국의 저명학자 존 J 스테판의 여러 저작물과 한국의 공식적인 도서들에서 사실로 인정받았다.)

이 냉담한 문서는 어떤 예술적 색채보다 더 멀리 사할린주의 중세 시대 공포를 서술합니다.

이 문서들을 읽으면 숨이 가빠지고 피가 차가워집니다 ...

이성은 피에 굶주린 짐승으로 변한 도덕적 기초, 양심 및 인간 의식이 없는 행동,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러시아 내전 비극의 이례적인 행위가 사할린주 지역에서 펼쳐졌다.

사탄 자신이 이 땅에 내려와 그의 피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는 인간과 그의 모든 제도, 그의 문화, 도덕 및 양심에 화를 냈다.

사탄은 보여주었다.

"분노에 찬 사람이 짐승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

-A. Y. 구트만-

 

 

 

※관련 자료 출처 (아마존과 교보문고를 통해 영문판 도서를 구매할 수 있으며 잘 팔리지는 않습니다.)

https://ru.wikipedia.org/wiki/Гутман,_Анатолий_Яковлевич

https://wikicom.ru/wiki//Гутман,_Анатолий_Яковлевич

https://www.amazon.co.uk/Destruction-Nikolaevsk-Amur-Russia-Asia/dp/0919642357

 

 

※A. Y. 구트만의 책은 왜 소설인가 ?

구트만의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한국 독립군인 사할린 의용대가 처단한 민간인은 1~2명 밖에 안됩니다.

(※그 민간인도 일본 천황과 일본군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인중에서 친일단체를 조직하고 위안부나 노예노동자를 공급하는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종 백과사전의 편집자나 한국의 소설가들이 과연 이 구트만의 책을 읽어보고 인용하는 것인지 의심이 듭니다. 아마 그냥 짜깁기했을 가능성이 100% 입니다.

 

한번쯤 읽어 보고 짜깁기하거나, 발췌해서 창작하는 것이 작가 혹은 소설가들의 자세일 것입니다.

 

A.Y.구트만은 한국 독립군은 니항사건 당시 '약탈, 강간 등을 하지 않고 엄격하게 질서를 지켰다'고 진술하기도 합니다.

 

구트만의 책을 인용하는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1967~현재)는 찾기도 힘든 한국 독립군의 비행을 찾아내어 짜깁기해 한국 독립군이 약탈, 강간, 강도질을 해서 1921. 6. 28. 일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거 러시아에서도 개소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자유시참변 당시 볼셰비키 군대가 무자비하게 한국 독립군을 처형했을 줄이야..... 러시아 기록을 보기 전에는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920년 니항사건과 1921년 자유시 참변은 1년 이상 경과되어 큰 관계도 없습니다.

 

1920년 초 니콜라예프스크의 건물수는 아주 많게 잡아야 2,200여채이고, 주택은 아무리 많게 잡아도 1,200채를 넘지 못합니다.

도심인구 7천~8천여명이 타당하며, 그 대부분이 일본군의 공격으로 피난을 간 것으로 확인됩니다.

 

알렉세이 게오르기예비치 테플랴코프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1967~현재)를 제외한

러시아 역사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해봐도 파르티잔 부대에 의해 실제 처형된 사람은 수십명밖에 못 찾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테플랴코프가 주장하는 니항주민 최소1만에서 ~ 1만 2천명 학살설은, 그냥 구글로드뷰만 봐도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당시 러시아 적백내전 피난민들이 겨울철 평균 영하 20도보다 낮은 니콜라예프스크에 1920년 초반에도 몰려와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1가구당 최소 20명에서 ~ 30명씩 거주하였고,

오늘날보다 주택수는 절반도 안되는데 인구수는 2~3배 있었다는 황당한 주장은 그냥 소설로 봐야 합니다.

이런 테플랴코프 (Тепляков, Алексей Георгиевич. 1967~현재)의 공식을 대입하면, 1920년 서울인구는 4~5천만명이고, 600년 고구려인구는 1천만명 이상이 나옵니다. ㅎㅎ

 

러시아에서 괜히 구트만의 책을 백파군대의 '소설'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과 러시아의 역사학자들중 과거 소형 러시아 주택에 1가구당 최소 20명 이상 거주하는 도시가 역사기록에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러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포유류도 가족단위로 20명 이상 생활하는 것이 상당히 드뭅니다.

 

역덕 카페에서도 그런 주장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가족이나 조상이 파르티잔에 의해 죽었다는 니콜라예프스크 주민들은 오늘날에도 없습니다.

 

조상이 일본군에게 살해되었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1918년 9월경 니항을 점령하고 행군하는 일본해군 육전대와 마차를 탄 일본해군 장교

일본인 여성과 조선인 여성들을 동원해 가라유키상 성매매 위안소를 운영했던 시마다 모토타로의 상회 인근으로 보여진다.

1919년경 니항에서 화폐까지 발행했던 니항 일본인 거류민회 회장 시마다 모토타로가 경영했던

시마다 상회와 일본군의 니항점령 이후 건립된 일본군 병영 건물

일본군의 반자이 기습공격 실패후 집단자살로 불타버린 니항 일본영사관

1920년 니항사건 당시 이시다 토라마츠 영사대리 부영사는 처자식을 먼저 죽이고 방화하였고 영사관에 머무르던 일본 거류민 상당수도 광기어린 집단자살을 감행했다고 한다.

니항의 일본인 거류민중 집단 자살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일본에 생환해서도 자살을 강요받고 사회에서 냉대 받았다고 한다.

사할린 섬 및 사할린주 일대의 일본인들. 남성의 상당수가 군사훈련을 받은 의용 자경단원 등이었다.

 

사할린섬 남부의 일본인

1920년 니항사건 무렵 사할린주 일대

1920년 니항사건 당시 파괴된 도심. 수백여명을 수용할만한 건물도 없었고

1500여명 이상을 수용할만한 감옥이 존재하지 않았다.

노예 노동자를 동원해 건설한 일본군 병영건물이 가장 큰 건물이었다.

사할린섬 일대의 일본인. 일본인 남성의 상당수는 자경단원 등으로 군사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또 무역을 빙자하여 밀정활동을 하며 일제의 시베리아, 만주, 조선 침략에 동참하였다.

사할린 섬 일대의 일본인 여성 가라유키상 추정 사진.

가라유키상 여성 상당수는 군사훈련을 받고 일제의 시베리아 침략에 동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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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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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3.10.22 잘 보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신룡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10.22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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