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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경 동학 혹은 천도교의 간부였던 의암 손병희 선생은 승용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차량의 종류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때 당시, 미제 혹은 영국제 승용차 한대의 가격이 무려 서울 고래등 기와집 값을 능가하는 가격이었다고 하니
손병희 선생의 재력이 얼마나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도 승용차 가격이 아마 서울 집 값을 능가하거나 비슷했던 것으로 압니다.
이것은 동학교도들의 모금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를 통해 볼 때
3.1운동후 일제의 회유에 굴복해 '고가의 승용차를 받아 먹었다'는 것은 일제와 친일뽕들이 또 조작해 낸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친일파들이 부러우면 지들도 종교 하나 창시 하던가~~ ㅎㅎ 요즘도 일제 때 들어온 왜색 종교의 기본 교리가 '재산헌납', '교주께 충성'이죠. ㅋㅋ
또 1919년 3월 1일 거사전에 계획이 순사 등에 의해 사전 탄로나자 막대한 뇌물을 줘서
이에 대한 누설을 막았다고 하니
손병희 선생께서는 남다른 재주까지 있었던 모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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