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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

러시아의 영웅인가? 일본의 간첩인가? 안드레예브 이반 찌하노비치(Андреев, Иван Тихонович. 1884~1933) 2

작성자신룡기2|작성시간24.07.05|조회수129 목록 댓글 2

※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 니콜라옙스크 사건 = 니항사건) 관련자료

요약편 : 1920년 러시아 내전기 일제 침략군이 전멸한 니항 사건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Николаевский инцидент) 개요

장편) 파르티잔 대장 트리피츤 니항사건 : 아무르강 하류 비극의 발자취 (통합본 1)

장편) 파르티잔 대장 트리피츤 니항사건 : 아무르강 하류 비극의 발자취 (통합본 2)

시베리아의 가라유키상 상인 시마다 모토타로 (Петр Николаевич Симада Мототаро) 1

시베리아의 가라유키상 상인 시마다 모토타로 (Петр Николаевич Симада Мототаро) 2

사할린섬 조선인 여자 매매의 악행 (동아일보1924.09.02.자 2면)

 

1921년 자유시참변, 1920년 니항사건과 관련된

안드레예브 이반 찌하노비치(Андреев, Иван Тихонович. 1884~1933) 는 1884년 러시아 피트라그라드 지방의 두비키 마을에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러시아로 귀화한 핀란드인이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선원, 화부, 조타수로 러시아 서부인 발트해 일대의 상선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핀란드어와 덴마크어를 포함한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습니다. 
안드레예브는 15년 정도 차르군대에서 군복무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때,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장교 학교를 졸업하고 소위가 되어 전선으로 보내졌습니다. 
용감함을 대해 그는 두 개의 세인트 조지 훈장을 받았습니다. 
1917년 2월의 러시아 혁명 이후 그는 가족과 함께 니콜라예프스크-나-아무레,  일명 니항으로 돌아와 그가 만든 시부치 어장에서 어업을 시작했습니다. 
1918년 일본 시베리아 침략군이 아무르강 하류를 점령하는 동안, 안드레예브가 포병 전문가로 니항 일대의 일본군 및 백파 군대에 동원되기 전까지는 어업에 계속 종사하였습니다. 

트리피츤(Яков Иванович Тряпицын) 파르티잔 부대가 1920년 2월경 니콜라예프스크를 막았을 때,  안드레예브는 백파 군대에서 파르티잔 편으로 귀순했습니다. 
안드레예브는 파르티잔들이 1918년에 해체된 츠니르라흐 요새의 대포를 복구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1920년 4월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재공격으로 니콜라예프스크-나-아무레에서 퇴각한 안드레예브는 포병을 지휘한 후 암군 마리인스크 전선의 세르고 미하일로프스키방면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안드레예브의 부대는 주로 니콜라예프스크 나 아무레 거주자로 구성되었습니다. 

안드레예브는 트리피츤에 대한 공격 음모를 이끈 일제와 백파의 밀정입니까?  이 물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안드레예브와 리아도르스키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처음부터 일제 밀정이라는 설도 있고, 일본군과 맞서던 방어선을 지키지 못해 처형대상자가 되자 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아무르주 자유시 일대로 갔다가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일제에게 넘어갔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안드레예브는 아무르주 자유시 혹은 스바보드니  라고도 불려지는 지역에 있다가 1921년부터 1922년경 이후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사할린섬 북부로 도주하여 살았지만 그를 일본 요원 혹은 밀정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습니다. 


안드레예브는 시베리아를 침략한 일본에게는 일본에 협조한  '존경받는 러시아의 영웅'이었습니다.
1925년 소련과 일본의 국교가 수립되고 1922년부터 1925년경 일본군이 사할린섬 북부에서 철수할 무렵 그는 사할린섬 북부를 떠났습니다. 
그는 1933년경 중국 상해에서 망명중 사망했습니다. 
이 무렵, 중국 상해는 만주의 하르빈, 독일 베를린, 미국과 함께 러시아 백파와 파시스트들의 거점중 하나로 알려졌습니다.

◎ 안드레예브 ( = 안드레예프 = Андреев, Иван Тихонович. 1884~1933) 를 둘러싼 논쟁들

최근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소련시대 감춰진 비밀과 일뽕 학자들의 조작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안드레예브 혹은 안드레예프라고 불려지는 전직 자유시 포병부대장의 군복무 기간과 최종 계급, 니콜라예프스크 항구에서의 역할, 아무르주에서 경찰서장 혹은 경찰국장 여부, 일본밀정 여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안드레예브가 과거 주장하기를 제정러시아 시대 니항 인근의 츠니르라흐 요새에서 포병부대 장교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확인 결과 장교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1920년 2월 29일 니항의 평화적 해방이후 볼세비키에 가담하여 트리피츤 부대에서 간부가 됩니다.

 

트리피츤 부대의 상당수는 투항한 전직 백파군대원 이었습니다. (Николаевский инцидент)

 

일본군의 재공격으로 피난길에 올라 1920년 7월초 사할린주 께르비에 머무르던 트리피츤 등을 일본군의 협조를 받아 바라비요프(Воробьёв Пётр Яковлевич), 압친니코프(А.Овчинников), 박병길, 이지택, 김낙현 등과 합세해 기습 체포후 처형했습니다.

 

특히 안드레예브의 동료였던 독립유공자 박병길은 니항사건 이전 일제의 최고위급 밀정인 시마다(Петр Николаевич Симада Мототаро. 1870 ~ 1945)와 함께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트리피츤이 친일파의 공격으로 죽자, 트리피츤 부대가 해산되기 시작하였으며, 안드레예브가 아무르주 블라가베셴스크로 이동하여 경찰서장을 했다고 안드레예브의 가족이 주장하지만 오늘날 러시아측 학자들 연구결과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1921년 한국독립운동사에 등장하는 자유시 참변 무렵, 아무르주 자유시에서 포병부대 지휘관을 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시 일대에서 트리피츤 지지자들로부터 3차례 정도의 살해공격을 받았으며, 결국에는 일본과 백파측으로 도주하게 되었습니다.

직계후손들은 현재 미국에서 친일 파시스트인 구트만(일명 '굿맨' = Гутман, Анатолий Яковлевич (Anatoly Yakovlevich Gutman))과 같은 각종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안드레예브는 몇몇 일뽕 및 존 스테판 등의 친일학자들과는 달리 니항사건 당시, 주민 1만 5천여명이 대피하였다고 주장하였고,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은 없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부 일뽕 가운데에는 한국독립군이 1920년 니항사건을 일으켰다고 조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트만(굿맨)의 책 영어 번역본 : Gutman, Anatoly. Ella Lury Wiswell (trans.); Richard A. Pierce (ed.) Nikolaevsk-on-Amur의 파괴, 극동 러시아 내전의 에피소드. -Limestone Press, 1993.- ISBN 0-919642-35-7 .

(Английский перевод: Gutman, Anatoly. Ella Lury Wiswell (trans.); Richard A. Pierce (ed.) The Destruction of Nikolaevsk-on-Amur, An Episode in the Russian Civil War in the Far East. — Limestone Press, 1993. — ISBN 0-919642-35-7.)

(친일 파시스트)구트만 (일명 : 굿맨)의 책 영어 번역본 표지

Destruction of Nikolaevsk on Amur: An Episode in the Russian Civil War in the Far East, 1920 (Russia and Asia, No 2) Hardcover – March 1, 1993

구트만의 책 러시아판 표지 : 일명  '러시아판 폼페이 학살극'

​The tragedy of Nikolaevsk-on-Amur in 1920: the death of the "Russian Pompeii"

한국에서 구트만의 책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그들은 구트만의 책에서 한국 독립군이 처단한 친일파는 1~2명에 불과하고, 조선인 박병길이 일본인과 일했고, 안드레예브가 자유시 참변을 일으키고 일제로 도주한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사라진 도시(Исчезнувший город)> = 일본군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백파군대 소설중 하나
니항 사건을 국가의 수치라고 선전하는 책자 '국욕기'         시베리아 침략과 1920. 4월 참변, 간도토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근거로 제시한 니항사건.  1920. 3. 12. 일 반자이 기습이 실패하자 광기어린 집단자살을 한 후 '국가의 수치'라며 대대적으로 미화하였다.
1920년 니항사건 관련 도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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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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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4.07.05 일뽕학자들이 문제로군요 잘 보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신룡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06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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