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6. 10만세 운동에서 체포되었다가 불구속 석방된 독립운동가들
출처 : 조선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1926년 6월 16일경 보도내용.
1926년 6.10만세 운동 당시 일제에 체포되었다가
혐의가 가벼워 불구속 석방된 분중에는 제가 관심있게 찾아봤던 이지택 선생이 계시고
구속되어 고문으로 사망하신 권오설 선생 등도 있다.
불구속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 복역을 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지택 선생은
1945년 광복후
언론과 각종 인터뷰를 많이 하셨는데...
이지택의 창작물로 보이는 <니항사변과 독립군>이라는 기록물은 일본 야스쿠니 기념관이나 파시스트 단체에서도 현재에는 너무 황당하고 도저히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안하는 주장을 많이 했는데
이지택의 창작물 <니항사변과 독립군>
그중에서도
맞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특히 1920년 7월경 안드레예브(=안드레예프) 일파가 일본군의 도움으로 반란을 일으킬 때
처음에는 일본군과 맞서던 방어선의 간단한 교전에서 일방적으로 패퇴하게 되었고.... 이것은 러시아 적백내전 당시 명령불복종 및 무단 후퇴에 해당되었으며...
즉 사형이 처벌규정이었고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상대방을 무정부주의 강도떼로 몰아 죽이기 위해 시베리아를 침략한 일본군과 접촉후 통행과 지원을 받았다는 부분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여집니다.
분명한 것은 일본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안드레예브, 박병길 등의 쿠데타는 성공이 불가능했습니다.
이지택의 창작물 <니항사변과 독립군> 339면
나머지는 전부 일본의 선전을 그대로 복사하여 인용한 수준으로 보여지지만 사실인 부분도 엄연히 있고
이지택 선생이 가담했던 이르쿠츠크파 독립운동가들 사이에도 많은 밀정들이 침투해
정보를 일제에게 그대로 제공하였고, 오늘날 남아 있는 것도 많습니다.
대립하던 이르쿠츠크파던 상해파던 한쪽의 자료만을 가지고
사실을 뽑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당시 일제의 선전, 밀정의 조작, 독립운동가와 사회주의 독립운동계 내부문제 분열 대립, 남북분단, 독재정치 등으로 상대를 악마로 창작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이지택 선생의 각종 진술들이 신뢰를 얻은 데에는
1926년 6.10만세 운동에 가담해 교도소 복역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속되어 고문을
장기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독립운동을 한 것은 분명하고....
1987년 박종철군 고문 사건처럼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평생 후유증을 겪었던 1926년 6.10만세 운동 참가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