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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er] 체첸항쟁사

코카서스의 늑대들 : 체첸- 54. 검은 천사

작성자jager|작성시간10.09.04|조회수3,764 목록 댓글 23

 

 

 


  "겔라예프는 내가 존경했던 유일한 체첸인이다. 뛰어난 지휘관이며 유능한 전사였고 매우 영리했다. 돈을 위해 싸운 다른 와하비들과는 달리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웠다. 그가 우리편이 되기를 바랬다."

 

                                                                           체첸전에 참전했던 어느 러시아군


  코도리 전투 이후 함자트 겔라예프는 그루지아의 비호 속에 판키시 계곡에 머물렀다. 압하지아 군과의 교전으로 인한 병력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겔라에프는 코카서스 전역에 걸쳐 모병 활동을 하였다. 심지어 중앙 아시아와 위구르 족들도 그의 부대에 가담했다. 이 무렵에 겔라예프의 부대에 참가했던 사람 중에 무슬림 아타예프라는 카바르다 인도 있었다. 그는 훗날 '세이풀라 (알라의 칼)' 이라는 이름으로 카바르다 - 발카리아 공화국의 반군인 '야무크 자마트'의 수장이 되어 코카서스 산맥의 서쪽 전선을 지휘하게 된다.

 

 

 

 

함자트 겔라예프 

 

  이무렵 2000년 그로즈니 철수 과정에서 함자트 겔라예프를 명령 불복종으로 인해 사병으로 강등시켰던 아슬란 마스하도프 대통령으로부터 원대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러시아의 공세를 피해 체첸을 벗어난 체첸군은 본국으로 복귀하여 교전에 참가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는 2002년 6월의 마즈리스 알 슈라 (이슬람 군사 평의회)의 개최를 앞두고 전열을 정비하여 러시아에 공세를 가하기 위함이었다.

  그루지아 판키시 계곡에 피신해 있던 체첸군 수백명은 마스하도프의 명령에 따라 체첸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함자트 겔라예프는 계속해서 코도리 계곡에 머물렀다. 그는 전역을 체첸에 국한시키는 것이 비효율적이며, 전장을 코카서스의 다른 공화국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럴 경우 러시아가 담당해야 될 전선이 확대되며, 체첸측도 다른 코카서스 공화국에서 지원병을 받아서 부족한 인력을 보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겔라예프의 부하들

 

 

  함자트 겔라예프는 자신의 주장을 직접 실천에 옮겼다. 2002년 9월 23일, 겔라에프는 30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체첸 서쪽 잉구세티야 공화국으로 쳐들어갔다. 먼저 타르스코예 마을을 점령하고 그 다음 갈라스키 마을까지 20킬로를 진격하였다. 현지에 배치된 러시아군은 겔라예프의 부하들이 그루지아로 넘어갈 수 없도록 후방을 포위하려고 했고, 겔라예프는 진격하는 러시아군은 견제하면서 부대를 국경쪽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겔라예프의 부대를 포위하는 데 성공한다. 빠져나오려는 체첸군은 다시한번 필사적으로 러시아군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전투를 지휘하는 겔라예프

 

  겔라예프는 직접 러시아군 Mi-24 하인드 헬기 1대를 격추시키면서 전투를 앞장서서 지휘하였고, 전투 5일 만에 다시 그루지아 국경을 넘는데 성공했다. 러시아군은 체첸군 30-40명을 사살하고 5명을 포로로 잡았다고 발표했으나 함자트 겔라예프의 탈출을 막을 수 없었다. 러시아군은 공식적으로 17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1대의 헬기와 2대의 BTR 장갑차가 파괴됬다. 하지만 탈출 과정에서 겔라예프의 부대 일부가 와해되어 잉구세티야와 카바르다 공화국으로 흩어졌기 때문에 겔라예프가 실제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겔라예프가 격추한 러시아군 하인드 헬기

 


  잉구세티야 갈라스키 전투 이후 함자트 겔라예프는 2003년 5월 11일에 체첸 사토이 지역을 방문한다. 사토이 인근의 숲에서 겔라예프는 체첸 남서부 전선 군사회의에 참석한다. 마스하도프가 주최했던 '마즈리스 알 슈라'에 불참했던 겔라예프가 향후 자신의 전쟁을 계속해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휘관과의 협조가 필요했던 거이다. 이 자리에는 샤밀 바사예프, 도쿠 우마로프, 바하 아사노프(전직 체첸 부통령), 압둘 말리크 메지도프 등이 참가했다. 남서부 전선 사령관인 도쿠 우마로프의 주재 아래 회의가 진행되었다.

 

 

 

 

 

남서부 전선 군사 회의.

왼쪽부터 바하 아사노프. 샤밀 바사예프, 압둘 말리크 메지도프. 한사람 건너 도쿠 우마로프

 

  겔라예프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게릴라 전술 대신에 러시아군의 군사 거점을 직접 타격하는 정규전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였다. 자신이 과거 수행했던 소규모 분대의 게릴라 전으로는 기습을 가할 수 있어도 대규모 정규군의 개입으로 퇴로가 차단되고 고립되어 전멸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것이다. 그로즈니의 러시아군을 포위하여 1차 체첸전의 종전을 이끌었던 '지하드' 작전을 생각해볼 때 단순한 게릴라전으로는 러시아군에 결정적인 타격은 입힐 수가 없었다.

 

 

 

 

회의에 참석한 함자트 겔라예프. 가운데 인물

 

  그러나 도쿠 우마로프와 샤밀 바사예프의 생각은 달랐다. 전면전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8만의 러시아군에 대항할 수 있는 충분한 병력과 물자가 필요한데 그런 상황이 못되었다. 체첸인들의 거국적인 지원을 받고 전쟁을 수행했던 1차 체첸전과 달리 현재는 친러시아 세력이 만만치 않았고, 카디로프 가문과 야마다예프 가문 등의 군벌들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븐 알 하타브의 죽음은 큰 타격이었다. 능히 수백, 수천의 러시아군을 상대로 필요하다면 정규전도 벌일 수 있었던 그의 죽음은 체첸군에게 쉽게 보충할 수 없는 손실이었다.

 

  회의에서 서로의 이견을 확인한 겔라예프는 재차 판키시 계곡으로 돌아간다. 지난 전투 이후로 결코 모병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겔라예프는 다시 병력을 집결시켰다. 이번에 그의 부대에 참전했던 사람 중에 코즈 아흐마드 누카에프도 있었다. 모스크바의 체첸 마피아의 대부로 불렸던 그는 겔라예프에게 자금 지원을 함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전장에 뛰어든 것이다.

 

 

 

 

 

코즈 아흐마드 누카에프. 모스크바의 체첸 마피아의 대부였다고 한다

 

  2003년 12월 15일, 함자트 겔라예프는 5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다시 판키시 계곡을 떠났다. 이번의 목표는 체첸 동쪽 다게스탄 공화국이었다. 츠틴스키 지역이었다. 겨울의 눈이 쌓인 다게스탄 고지대를 공격한다는 것은 러시아군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러시아군이 이에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란 계산도 있었다. 그의 부대는 러시아군보다 월등히 산악전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겔라예프가 다게스탄 국경을 넘자 이를 목격한 다게스탄 인들이 러시아군 국경 수비대에 경고하였다. 9명의 러시아군은 즉시 샤우라 마을 쪽으로 이동하여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체첸군의 매복에 걸렸다. 지휘관인 라짐 칼리코프 대위를 비롯한 러시아군은 모두 전사했다. 겔라예프는 게속해서 진격하여 샤우라 마을에 들어서서 그날 밤을 보낸 뒤, 다음날 아침에 5킬로 북쪽의 고로티 마을을 점령한다.

 

 

 

 

 

다게스탄 전투 지도. 붉은 선이 겔라예프 군. 검은 선이 러시아군

 

 

  겔라예프가 50명을 이끌고 다게스탄 국경을 넘자 러시아군은 2천명이 넘는 연방군과 국경수비대를 투입하였다. 오랜 전투 경험으로 인해 러시아군의 개입 방향과 속도에 대해 짐작한 함자트 겔라예프는 부대를 3,4개로 나눠서 산악지대로 흩어져서 판키시 계곡으로 복귀하려고 하였다. 러시아군이 다게스탄의 산악지대에 제대로 수색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소규모 부대로 나눠서 이동하면 탈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다게스탄 전투에 참전한 러시아군

 

 

 하지만 이는 작전의 실수였다. 러시아군은 헬기로 이동하면서 흰눈 위를 지나가는 체첸인들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섬멸하였다. 헬기 위에는 GRU 스페츠나츠와 FSB 빔펠 부대가 타고 있었고 필요하면 직접 교전하여 체첸군을 사살했다. 러시아군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번에 겔라예프를 사살하기로 결의하고 집요하게 추적하였다.

 

  작전은 2주가 넘게 진행되었고, 러시아군은 체첸군 30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다고 발표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군의 전사자는 14명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함자트 겔라예프는 러시아군의 사살자와 포로 명단에 없었다. '검은 천사'는 또 한번 살아남은 것일까?

 

 

    
   다게스탄 츠틴스키 전투가 종료하고 2달이 넘은 2004년 2월 28일, 다게스탄과 그루지아 국경 지대에 러시아 국경수비대 2명이 전사했다. 츠틴스키의 베제타 마을에서 5킬로 떨어진 국경지대였다. 무크타르 슐레이마노프 중사와 압둘할릭 쿠바노프 하사였다. 처음에는 체첸군의 기습에 당했다고 생각했던 러시아군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들의 무기가 그대로 있었다.

 

 

 

 

 

슐레이마노프 중사와 쿠바노프 하사

 

체첸군은 기습하여 러시아군을 사살할 경우 항상 무기를 노획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러시아군은 주변 일대를 수색하였다. 2명의 러시아군이 죽은 곳에서 그루지아 국경쪽으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죽은 체첸인을 1명 발견하였다. 하루 뒤에 러시아군은 그의 신원을 밝혀낸다. 함자트 겔라예프였다.

 

 

 

 

 

 

  겔라예프는 츠틴스키 전투에서 살아남은 뒤에 그루지아 국경으로 바로 이동하지 않았다. 러시아군의 포위망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러시아군이 산악지대를 샅샅이 뒤지고 2003년 12월 30일 "다게스탄 영내에 쳐들어온 반군은 전부 전멸했다"고 러시아군이 발표할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러시아군의 경계가 느슨해 졌을 때 그는 그루지아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하였다.

  베제타 마을을 지날 때 겔라예프는 러시아군 국경수비대 2명과 맞닥뜨린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겔라예프는 러시아군 2명을 상대로 ak를 발사한다. 1명은 즉사해지만 다른 1명은 중상을 입고 죽지 않았다. 러시아군의 반격에 의해 겔라예프는  왼손에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러시아군을 마저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함자트 겔라예프

 

  함자트 겔라예프는 총상으로 너덜너덜해진 그의 왼손을 절단해야 했다. 그 상태로 응급처치를 한 뒤에 계속해서 걸아나갔다. 그러나 살아남기에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고, 그는 그루지아 국경을 향해 걸어가다가 눈 위에 쓰러졌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체첸 전통의 단검인 '킨잘'을 허리에 간직한 채로 그는 그대로 죽었다.

 

  겔라예프의 가족들은 그의 시신을 돌려받고 장례를 치르려고 하였으나, 러시아는 '테러리스트'의 시신을 돌려주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었다. 함자트 겔라예프의 시신은 현재까지도 공개가 되지 않고 있으며, 그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절망적인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로써 러시아군은 오랜 두통거리 중 하나를 해결하였다. '검은 천사'는 1992년 압하지아 전쟁을 시작하여 2003년 다게스탄 전장까지 수도 없는 사선을 넘나들은 전장의 달인이었으며, 그가 자주 애용했던 기관총처럼 러시아군의 압도적인 포위망을 숱하게 돌파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격한 와하비 들과는 거리를 뒀으며, 순수한 체첸 독립의 대의를 위해 헌신하였다. 이는 러시아군도 인정하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러시아 정부와 아흐마드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제안받았다. 그의 순수함과 전투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유혹을 모두 거절하고 결국 전장에서 숨을 거뒀다.

 

 

 

 

 

'검은 천사' 함자트 겔라에프

 

 

   '검은 천사"의 죽음은 체첸군에게 큰 타격이었으나, 체첸군은 타격을 입었을 때 한발 더 나가는 습성이 있었다. 자신들의 기세를 죽이게 되면 더 큰 위기가 초래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2004년 6월의 잉구세티야 나즈란 공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출처 : http://www.russiajournal.com/node/17350
          http://www.kavkazcenter.com/eng/photo/shamil_dokku/page2.shtml
          http://en.wikipedia.org/wiki/Ruslan_Gelayev
          http://ru.wikipedia.org/wiki/%D0%93%D0%B5%D0%BB%D0%B0%D0%B5%D0%B2,_%D0%A0%D1%83%D1%81%D0%BB%D0%B0%D0%BD_%D0%93%D0%B5%D1%80%D0%BC%D0%B0%D0%BD%D0%BE%D0%B2%D0%B8%D1%87
          http://www.rferl.org/content/article/10535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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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제국의꿈 | 작성시간 10.09.11 불과 인구가 100만명도 안대는 체첸이 러시아라는 거대한 강대국을 상대로 굴복하지않고 독립을 위해 끝없이 투쟁하면서 피를 흘리는 모습은 장엄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알카에다같은 삼류 테러리스트들 하고는 비교가 안됩니다 저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위대한 전사들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9.25 필요하면 그들도 얼마든지 테러를 벌였습니다
  • 작성자케벨로스 | 작성시간 10.09.19 조국을 위하여 자신에 목숨을 바친 겔라에프님과 체젠인과 러시아분들에 명복을 빕니다. ㅜㅜ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9.25 각자 다른 신을 믿었으나 같은 안식을 얻었겠죠
  • 작성자필호 | 작성시간 10.09.26 독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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