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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er] 체첸항쟁사

코카서스의 늑대들 : 체첸 - 66. 최악의 해

작성자jager|작성시간18.09.21|조회수1,556 목록 댓글 14




만약 우리의 말과 호소가 당신의 양심에 닿지 못한다면우리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피로써 설명하겠다.”

도쿠 우마로프



 2007년 10월에 선포된 코카서스 에미레트는 코카서스 반군이 새롭게 전열을 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특히 체첸인이 아닌 코카서스 반군에게 이슬람 연방이라는 전략 목표를 제공함으로써 전투의 동기를 부여하였다물론 이슬람 연방의 적절성에 대한 논쟁은 있었으나 코카서스 산악지대의 반군들은 거의 대부분 이에 동참하였다.






 러시아 정부는 코카서스 에미레트라는 단어 자체를 공식적으로 2010년 2월까지 언급하지도 않고 존재 자체를 무시하였다대신에 2009년 4월 15일 체첸의 대테러 작전의 종료를 선언하여 2차 체첸전을 공식적으로 종료하였다이는 경제적 효과를 노린 람잔 카디로프의 요청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었다대신에 카디로프는 반군들이 70명에 불과하며자신이 직접 완전 제압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대테러 작전 종료를 축하하는 체첸인들



 이에 대한 응답으로 도쿠 우마로프는 2009년 4월 24일에 체첸 샤토이에서 지휘관 회의(마지르 알 슈라)를 소집하였다이 회의는 서열 2위인 수피안 압둘라예프체첸 동부전선 사령관 아슬란벡 바달로프를 비롯한 20명의 지휘관들이 집결했다이는 지금 체첸은 러시아 연방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공화국이 되었다.”는 카디로프의 말에 대한 좋은 반박도 되었다특히 코카서스 전역에서 주요 지휘관들이 안전하게 집결할 수 있는 보안 능력도 과시하였다우마로프는 이 회의에서 올해는 우리가 공격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각 지역별 전략을 점검하였다.





2009년 지휘관 회의



 실제로 카디로프의 공언과는 달리 코카서스 반군의 활동은 점차 왕성해졌다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러시아는 2008-09년 코카서스 전역에서 약 75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는데같은 기간 아프간 전쟁에서 국제연합군에게 발생한 전사자 742명을 능가하는 숫자였다아프간이 북 코카서스보다 인구가 4면적이 7배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격전이 벌어진 셈이었다.






 러시아를 더 골치 아프게 만든 것은 체첸 이외에 다른 공화국에서도 공격이 활발해진다는 점이었다잉구세티야는 2009년 175건의 전투가 발생하여 체첸의 158건보다도 많았다잉구세티아가 체첸 인구의 3분의 1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반군이 활동하고 있었다이는 바사예프의 후임으로 군 사령관(military amir)이 된 알리 타지에프(아미르 마가스)의 역할도 크게 작용했다.







알리 타지에프



 반군의 공격은 크게 3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첫 번째는 거점 공격두 번째는 요인 암살세 번째는 불특정 테러였다.



 거점 공격의 경우에는 대개 20-100명의 반군이 여러 방향에서 마을 등 목적지점에 접근하여 기습한 뒤에 주요 지휘관이나 요인을 암살하고 후퇴하는 방식이 쓰였다특히 체첸에서는 2008년에만 최소 5번의 마을 습격이 있었다특히 위 회의에 참석한 아슬란벡 바달로프는 6월 13일에25-50명의 반군으로 노자 유르트주 베노이-베데노 마을을 습격하여 최소 5채의 집을 불태우고 3명을 죽였다그 중 1채는 마을 행정 책임자의 집이었고전직 책임자를 납치했다는 점에서 볼 때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갖고 기습한 걸로 보인다.







베노이를 기습 중인 체첸반군



 두 번째인 요인 암살의 경우에는 더욱 세심한 정보 활동이 필요했다중요 인물일수록 이동 정보에 접근하기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반군들은 군경찰 지휘관들은 물론 법관정치인들도 공격하여잉구세티아 대법관과 건설부 장관카라치 공화국 의원북코카서스 러시아 내무군 소장 등을 암살할 수 있었다.





잉구세티아 대통령 유노스 예브쿠로프 



 특히 충격적인 사건은 잉구세티아 대통령 유노스 예브쿠로프를 노린 자폭 공격이었다. 2009년 6월 23잉구세티아 나즈란 시의 대통령 차량 행렬을 향해 도요타 승용차가 달려들어 폭발하였다경호 경찰 1명과 대통령 운전자조카가 죽었고예브쿠로프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2주 뒤에 간신히 의식을 찾을 수 있었다.







예브쿠로프 대통령이 탄 차량 잔해



 체첸 대통령 람잔 카디로프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잉구세티아 반군 소탕을 직접 명령을 받았다며가차 없이 복수하겠다.”고 맹세했으나카디로프가 보낸 친러시아 체첸군은 7월 4일 잉구세티아 순젠스키 지역에서 반군의 기습으로 차량 3대가 불타고 35명 중에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잉구세티야 반군




 오히려 반군들은 2009년 7월 26람잔 카디로프 방문 직전에 그로즈니 중앙극장에서 자폭하여 그로즈니 내무부 차관 등 4명의 경찰 고위직을 포함한 6명을 죽였다. 10월 23일 카디로프가 건설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200리터 폭약을 실은 차량이 자폭하려했으나 경찰의 공격으로 저지되었다언제든지 카디로프도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저지된 자살 폭탄차량



 세 번째 방식인 테러는 과거 샤밀 바사예프가 지휘하던 악명 높은 리야드 알 살리힌이 부활하면서 두드러졌다도쿠 우마로프는 2009년 전략 회의에서 이 부대의 재결성을 명령했고작전 과정에서의 일반 시민의 피해도 감수하기로 하였다초기에는 군인과 경찰을 주 표적으로 하되 부수적인 민간인 피해를 감수하는 식이었으나점차 교통수단 등 시민 자체를 표적으로 삼게 되었다.






도쿠 우마로프




 이와 관련해 급격히 주목을 받게 된 인물이 사이드 부랴스키라는 신학자였다본명은 알렉산더 티호미로프인 사이드 부랴스키는 몽골 계통의 부랴트족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이었는데불교 계통이 대부분인 부랴트족 중 특이하게도 이슬람교를 믿었다이집트쿠웨이트에서 이슬람 교육을 받고 귀국한 부랴스키는 2002년부터 러시아 내 이슬람 강연을 시작했고훌륭한 언변과 지식에 힘입어 젊은 층으로부터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사이드 부랴스키



 그러던 중 2008년에 영상 메시지를 하나 받게 되는데코카서스 에미레트의 아랍인 지휘관 무하나드로부터 온 메시지였다그는 코카서스 에미레트의 선포를 간략히 알리고 그 취지를 설명하며,함께 참여하기를 권했다몇 달 뒤부랴스키는 체첸을 방문하여 도쿠 우마로프를 직접 만나 충성을 맹세하였다.







도쿠 우마로프 오른쪽의 사이드 부랴스키

지휘관 등 정식 직책은 받지 않는 상태에서 활동하였다.




사이드 부랴스키는 두 가지 점에서 그 간의 전쟁에 없던 획기적인 요소를 불러왔다첫 번째는 코카서스 사람이 아닌 러시아 연방 소수민족인 그가 참전함으로써 에미레트의 당위성에 대한 상당한 선전 효과를 노릴 수 있었다두 번째는 이슬람교 강연으로 정평이 난특히 젊은 층에 인기가 많았던 부랴스키는 그 자체가 선전에 매우 탁월하였다.







 부랴스키는 자신의 이슬람 지식을 바탕으로 코카서스 에미레트의 당위성지하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면서 자신이 직접 전투를 경험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도 소개하면서 몇 가지 음모론에 대해서도 반박하였다예를 들어 러시아가 정치적인 목적에서 반군의 일부를 살려둔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러시아는 야간에도 적외선 탐지기로 숲을 훑으면서 사소한 흔적이라도 발견되면 막대한 포격을 퍼붓는다.”고 반박하였다.





숲 속에 이동 중인 반군들



 특히 역점을 둔 부분은 자살 테러를 순교 행위로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었다이미 에미레트 가입 전에 무한한 삶을 향한 여행’ 등을 주제로도 강연했었던 부랴스키는 리야드 알 살리힌의 자폭 작전에 참가하는 자살 공격 요원들의 훈련 및 교육을 담당했다부랴스키는 타고난 카리스마로 순교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웅변하였고실행에 옮기는데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2009년 한 해 18건의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최소 38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특히 부랴스키가 직접 활동했던 잉구세티아의 피해가 컸는데위에 언급한 예브쿠로프 대통령 암살 시도와 덧붙여서 8월 17일 나즈란 경찰 본부 폭탄 테러가 최악으로 꼽혔다. 400킬로의 폭약을 실은 가젤라 트럭이 잉구세티아 최대 도시의 경찰 본부에서 폭발하여 건물 전체가 파괴되고 최소 25명의 사망자와 164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나즈란 폭탄 테러 현장



 이 때 부랴스키의 영상이 공개되었는데부랴스키는 가젤라 트럭 안에 있는 폭탄을 배경으로 작전의 목표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의 마지막 기도가 알라를 찬양하기를하며 폭탄을 가볍게 두드린 뒤 말을 마쳤다이후 영상 말미에 차량 자폭 장면이 나오니 부랴스키가 직접 공격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3일 뒤에 부랴스키는 다른 순교자가 공격을 감행했다며 혼선을 준 점을 사과하였다그러나 위 테러와 관련된 엄청난 선전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트럭 속의 부랴스키




 위 사건도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보다 최악의 테러는 2009년 11월 27일에 발생하였다러시아 2대 도시인 모스크바와 페테르스부르그를 연결하는 네브스키 고속열차가 시속 200킬로로 달리던 중 레일 밑의 5킬로의 폭탄이 터진 것이다. 13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그 중에는 전직 페테르스 부르크 상원의원과 현 러시아 연방 준비 기구 회장도 있었다.






네브스키 열차 테러 현장




 네브스키 고속열차는 정부 관료기업인들이 많이 이용하고 특히 주말에는 이용객이 더 많았다더군다나 폭탄은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네브스키 열차와 페테르스부르그에서 출발하는 ER-200열차가 교차하는 지점을 교묘히 노려서 설치되었으나다행히 ER-200 열차가 지연되어 최악의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네브스키 테러 용의자로 추정되는 파벨 코소라포프

역설적이게도 러시아인으로서 로스토프 사관학교에서 폭발물 제조 기술을 배웠다.




  러시아에게 2009년은 근래 보기 드문 최악의 해였다도쿠 우마로프는 4월의 지휘관 회의에서 러시아 전역에서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를 열차 공격으로 실천에 옮겼다심지어 75명이 사망한 8월 16일의 사야노 수센스키 수력발전소 화재도 우마로프는 자신들의 작전이라고 주장하였다러시아 정부는 기계 결함이라고 무시했지만 무기 저장고나 가스 저장소에서도 계속 화재가 발생하여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사야노 수센스키 사고 현장. 

러시아 최대 수력발전소였다.



 코카서스 에미레트는 실체가 있는 조직으로서 점차 활동을 늘려가고 있었다러시아로서는 더 심각한 상황이 초래하기 전에 빠른 조치가 필요했다. 2010년을 맞아 러시아는 행동을 개시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uicide_attacks_in_the_North_Caucasus_conflict

https://en.wikipedia.org/wiki/Said_Buryatsky

The Caucasus Emirate Mujahedin: Global Jihadism in Russia's North Caucasus and Beyond : by Gordon M. Hahn

The Insurgency in Chechnya and the North Caucasus from Gazabat to Jihad : y Robert W. Schae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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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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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1.07 감사합니다
  • 작성자노현님 | 작성시간 18.09.22 허걱 얼마만에 업뎃인가요ㅠㅠ기다렷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1.07 조금 더 빠르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작성자찬이슬 | 작성시간 18.09.23 오랫만의 업뎃 반갑습니다
    그리고 잘봤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1.0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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