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jager] 체첸항쟁사

코카서스의 늑대들 : 체첸 - 71. 형제

작성자jager|작성시간20.08.19|조회수1,902 목록 댓글 22

 

 

 

“(체첸) 반군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으로 볼 때, 후세인과 무슬림 가카에프는 도쿠 우마로프를 훨씬 능가한다.”

- 람잔 카디로프

 

 

 

  도쿠 우마로프와 체첸 반군들의 갈등은 2011년 7월에 봉합되었지만 한번 꺾인 반군의 기세는 돌아오지 못했다. 2012년 체첸 반군의 공세는 대략 40건으로 코카서스 에미레트 선포 직후인 2008년 128건의 3분의 1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는 체첸 친러시아 대통령 람잔 카디로프의 효율적인 토벌 작전과 주요 지휘관의 전사, 도쿠 우마로프와의 갈등 기간 충분한 보급을 받지 못한 것이 각각 영향을 미쳤다.

 

 

 

수피얀 압둘라에프

코카서스 에미레트 전체 서열 2위였으나 2011년 3월 사살되었다.

 

 

  체첸을 대신하여 러시아의 새로운 두통거리로 떠오른 지역은 다게스탄이었다. 2008년에 62건이었던 다게스탄 반군의 공격은 2012년에 300건이 넘는 수준으로 활발해졌다. 체첸의 3배가 넘는 면적의 다게스탄은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 하자바트(성전)의 중심지답게 사회 전체가 이슬람 교리에 엄격했고, 자연스럽게 와하비의 영향을 받은 반군들도 많이 활동했다.

 

 

 

다게스탄 김리 마을

19세기 대러시아 항쟁의 주모자 이맘 샤밀의 고향이었다.

 

  종교적으로 열성적인 다게스탄 반군들은 험한 산악지대부터 인구 밀집지역인 하사유르트, 카스피스키, 수도 마하칼라까지 다양한 지역에 3-5명 정도의 세포 조직을 구축하고 일상적으로 경찰 검문소와 러시아 군부대를 습격하며 타격을 입혔다. 필요하면 몇 개 조직이 연합하여 자살 테러를 포함한 대규모 공격을 가했는데 2012년 5월 3일 수도 마하칼라의 교통경찰 검문소에서 반군 2명이 차량 내 150kg의 TNT를 폭파시켜 40명이 죽고 130명이 다쳤다.

 

 

 

마하칼라 폭탄 테러 현장

첫 번째 반군은 경찰 검문소, 두 번째 반군은 구급차와 소방대원 사이에서 각각 터트렸다.

 

  러시아군은 강하게 두각을 드러내는 다게스탄 반군에게 역량을 집중하여 2008년 9월 압둘 마지드부터 2012년 2월 아미르 살리(이브라김하릴 다우도프)까지 무려 6명의 다게스탄 반군 수장을 사살했지만 워낙 지역, 종족별로 분산된 다게스탄 반군 세포 조직까지 모두 파괴하지는 못하고 점차 코카서스 에미레트 내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마고메달리 바가보프

체첸 반군과 우마로프의 갈등 시 다게스탄 반군 수장이었으며 우마로프를 강력히 지지했다.

 

 

  이처럼 다게스탄 반군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체첸 반군들의 활동은 줄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러시아 내부 상황에서 체첸의 평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세세한 코카서스의 상황을 다 알 수 없었던 러시아 일반인에게 다게스탄이나 카바르다의 반군은 먼 이야기였고, 체첸 반군은 1차 전쟁의 패배와 대규모 인질극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 공포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1996년 8월, 그로즈니 전투 당시 러시아군 포로에게 총을 겨누는 체첸군

 

  따라서 체첸은 푸틴의 최대 치적이자 장기 집권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곳으로서, 러시아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이어야 했다. 체첸의 반군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람잔 카디로프가 아무리 잔인한 숙청과 암살을 자행하던, 러시아 연방 예산을 뽑아먹든(2002년에서 2012년까지 4,640억 루블, 약 78억 달러의 돈이 체첸 재건 비용으로 투입되었다.), 러시아 기자나 정치인이 암살되든 모두 용납될 수 있었다.

 

 

 

2015년 2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암살된 야당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

러시아 연방 보안국에 의하면 체첸 오몬 부대장 자우르 다다에프가 죽였다.

 

  실제로 체첸 내 러시아측 사상자는 2008년 377명에서 2011년 140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그 대부분은 친러시아 체첸인이었기 때문에 푸틴이 대중들에게 ‘체첸의 평화’를 이해시키기에 많은 어려움은 없었다. 람잔 카디로프도 큰 부담 없이 “체첸 내 반군들은 7-80명으로 1년 내에 전부 소탕하겠다.”고 매년 언급했고 상황은 잘 관리가 되는 듯 했다.

 

 

 

람잔 카디로프

훈장을 달아주는 사람이 체첸 서버(북쪽) 대대 지휘관 알리벡 데림하노프

 

  하지만 이런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던 체첸 반군들은 2012년 8월 6일, 체첸 수도 그로즈니오탸브리스키 지역으로 2명의 자폭 부대원(리야드 알 살리힌)을 보냈다. 반군들은 체첸 내에서도 가장 큰 러시아 군 주둔지인 한칼라 군사기지 입구에서 자폭하여 4명의 러시아군을 죽이고 3명을 다치게 했다.

 

 

 

2012년 8월 그로즈니 자폭 현장

 

 

  특히 이날은 1996년 체첸군이 그로즈니 포위 작전을 펼쳐 러시아를 굴복시킨 지 16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반군들은 7월 29일 잉구세티아 갈라스키에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게 사살된 체첸 동부 쿠찰로이 지휘관(아미르) 자우르벡 아브도하노프의 복수도 겸하여 이 날을 선택했다.

 

 

 

가운데가 자우르벡 아브도하노프

2010년 8월 카디로프의 고향 첸토리를 공격한 3명의 지휘관 중 한명이었다.

 

 

  이미 2009년 4월 체첸 대테러 작전 종료를 선언한 뒤에도 3년이 넘도록 계속 테러가 발생하고, 러시아군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은 푸틴과 카디로프에게도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체첸 반군은 기세가 꺾였지만 여전히 위험한 존재였고 언제든지 대담한 공격을 수행할 수 있었다. 람잔 카디로프는 자신의 위치를 계속 보존하기 위해서는 반군들이 러시아군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람잔 카디로프와 푸틴

푸틴은 2012년 5월부터 메드베데프로부터 다시 대통령직을 넘겨받았다.

 

 

  카디로프는 테러의 주동자이자 제거 대상으로 가카에프 형제들(후세인 가카에프, 무슬림 가카에프)를 지목하였다. 체첸 동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후세인 가카에프의 부대는 당시 반군 중 가장 강력하고 우수한 부대였으며, 동생인 무슬림 가카에프도 체첸 동부 샬리 지역을 담당하며 습격 작전과 27차례의 자폭 테러(람잔 카디로프 추산)를 감행할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후세인 가카에프와 무슬림 가카에프

 

 

  가카에프 형제들은 1차 체첸전이 벌어지기 전인 1994년 11월 반 두다에프 군(베슬란 관타미노프 지휘)을 격퇴한 그로즈니 전투에도 참전했을 정도로 전투 경험이 풍부했다. 6명의 가카에프 형제들 중 4명은 1, 2차 체첸전에서 전사했고, 여동생 1명은 친러시아 체첸군에게 납치되었다. 따라서 가카에프 형제들은 카디로프나 푸틴에게 복수할 이유가 충분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협상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무슬림 가카에프

약 20명의 자폭 요원을 훈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람잔 카디로프가 특히 꺼린 인물은 후세인 가카에프였다. 바사예프의 부대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후세인 가카에프는 2004년 바사에프의 잉구세티아 나즈란 공세 때부터 우수한 지휘로 인정받았고, 2006년 체첸 남동 전선 지휘관(샬리 지역)을 거쳐 2007년 샤밀 바사예프의 추천으로 체첸 공화국 내무부 장관 직책에 임명되었다. 이후 체첸 반군 핵심 지휘관으로 활동하였다.

 

 

 

가운데가 후세인 가카에프

 

 

  체첸 내 후세인의 입지는 2010년 8월 체첸 반군들이 도쿠 우마로프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나, 2011년 도쿠 우마로프가 체첸 반군들을 굴복시켰을 때나 양쪽 모두 후세인 가카에프를 ‘체첸 사령관(에미르)’으로 인정한 것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후세인 가카에프(왼쪽 2번째)와 도쿠 우마로프(왼쪽 3번째)

2007년 지휘관 회의(마지르 알 슈라) 당시

 

 

  ‘체첸의 평화’가 절실히 필요했던 람잔 카디로프는 즉각 후세인 가카에프의 소재 정보에 대해 1,000만 루블(33만 5천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고, 도쿠 우마로프보다 먼저 후세인 가카에프를 제거할 것을 명령했다. 코카서스 전체 반군과 대러시아 성전(테러)에 집중하는 도쿠 우마로프보다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체첸 반군의 정신적 지주인 후세인의 사살이 훨씬 시급한 문제였다.

 

 

 

2013년 교전 중인 러시아 보안군

 

 

  그로즈니에서 러시아군이 죽은 지 약 반년이 지난 2013년 1월 17일, 체첸 친러시아 정부군은 사토이 지역 계곡에서 잘 위장된 반군 진지를 발견하고 수색 작전을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뭔가 암시를 받았는지 체첸 정부군은 러시아군까지 지원받으며 수천명의 병력을 동원하고 헬기와 포대까지 지원받았다. 그리고 6일에 걸쳐 반군의 탈출로를 수색하며 집요하게 추적하였다.

 

 

 

2013년 반군 은신처에서 찾아낸 무기와 탄약

 

 

  1월 23일, 체첸 베데노 지역 엘리스탄지(가카에프 형제들의 고향) 마을 근처에서 체첸 정부군은 12명의 반군들과 맞닥뜨린다. 며칠에 걸쳐 포위망을 돌파하려던 반군들은 퇴로가 없음을 알고 체첸 정부군을 기습하여 2명을 죽이고 6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베데노의 산악지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포위된 반군 중에는 가카에프 형제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후세인 가카에프와 반군들

 

 

  체첸 정부군은 가카에프 형제들의 전투력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항하도록 유도하였다. 전투 후 람잔 카디로프의 말에 의하면, 가카에프는 자신은 항복하지 않겠지만 부하들은 사면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카디로프는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고, 포위 부대 중에 러시아군이 있는 것을 발견한 반군들이 사격을 시작하자 사살할 것을 명령했다.

 

 

 

전투 중의 가카에프 반군들

 

 

  반군들은 압도적인 열세에도 하루 이상을 버티면서 전투 장면을 영상으로 남긴다. 영상에는 머리에 부상을 입고 붕대를 감는 무슬림 가카에프와 반대쪽에서 대응 사격을 하고 있던 후세인 가카에프의 모습이 담겼다. 웃으면서 영상을 찍고 전투 상황을 설명한 반군은 반군 웹사이트(카프카즈 센터)로 이를 전송하였고, 오래지 않아 대부분 사살되거나 자폭하였다. 반군측 주장에 의하면 정부군측은 15명 정도가 죽거나 사살되었다고 한다.

 

 

 

교전 중에 머리에 부상을 입은 무슬림 가카에프

 

 

  체첸 정부군은 12명의 반군 중에 가카에프 형제들을 포함하여 11명이 죽고, 1명이 생포되었다고 발표한다. 생포된 반군의 이름은 체첸 베데노 출신의 22살 이슬람 테미세프였다. 테미세프는 전투 중에 항복 의사를 밝히고 포로가 되었는데, 부대원 중에 가카에프 형제들이 있다고 알려줬으며 적극적으로 매복 위치도 전달했다.

 

 

 

전투 중 포로가 되는 이슬람 테미세프

 

 

  전투가 끝난 뒤 람잔 카디로프는 생포된 테미세프를 직접 대면하고 부하들에게 전투 상황을 상세히 확인하였다. 큰 전과를 거둔 람잔 카디로프와 부하들은 서로 웃으며 여유롭게 대화했는데, 이상한 점은 생포된 반군인 이슬람 테미세프도 전혀 긴장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밝은 표정으로 람잔 카디로프와 대화하며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람잔 카디로프와 대화하는 이슬람 테미세프

 

 

  약 3주 뒤인 2013년 2월 19일, 체첸 뉴스 화면에는 잔뜩 겁에 질린 10-20명의 체첸 민간인 앞에 서 있는 람잔 카디로프의 모습이 나왔다. 그 옆에는 이슬람 테미세프가 서 있었다. 테미세프는 가카에프의 부대에 식량, 약품, 은신처 등 도움을 제공한 모든 민간인의 신원을 체첸 정부군에게 알려줬고, 카디로프는 3주 동안 색출해서 모두 잡아낸 뒤 심문 장면을 보도하도록 하였다.

 

 

 

이슬람 테미세프의 밀고로 체포된 반군 지원자들

 

 

  람잔 카디로프는 영상 속에서 자신을 가장 괴롭혔던 가카에프 부대를 도와 준 자들을 강하게 추궁했고, 이후 최소 1명이 고문으로 숨졌다. 잔뜩 겁에 질린 반군 동조자의 모습은 체첸 뉴스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었고, 반군에게 무기, 식량, 은신처를 제공하던 숨어 있던 민간인에게 충분히 강력한 경고가 되었다.

 

 

 

반군 지원자들을 추궁하는 람잔 카디로프

 

 

  게릴라전의 핵심은 주민들의 숨은 지지였기 때문에, 반군들은 설령 사살되거나 자폭하더라도 동조자의 정보는 제공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였다. 하지만 테미세프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정보를 매우 신속하게 전달하고 그 내용이 맞는지도 확인해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다시 1달 뒤인 2013년 3월 10일, 코카서스 반군 사이트(카프카즈 센터)에는 이슬람 테미세프의 정체에 대한 상세한 글이 올라왔다. 테미세프는 18세였던 2008년부터 무슬림 가카에프 부대에 합류했는데, 이미 체첸 내무군의 훈련을 받은 스파이였다는 것이다. 당시 테미세프 훈련을 담당한 바히트 우스마에프는 체첸 내무군 특임대(오몬) 2연대 지휘관로서 가카에프 형제들을 사살하는 작전에도 참여했다.

 

 

 

바히트 우스마에프

2020년 현재 람잔 카디로프의 비서실장으로 체첸 공화국 내 권력 서열 3위

 

 

  반군의 분석에 의하면 테미세프는 5년의 기간 동안 수십명의 반군의 위치를 노출시켰고, 아랍 지휘관인 무하나드와 압둘라 쿠르드도 테미세프의 정보로 사살되었다. 반군들은 스파이를 색출하려고 했으나 테미세프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테미세프는 러시아군의 공격 속에서 2번이나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그때마다 러시아 측은 ‘사살된 반군 중에는 연방법에 따라 수배된 이슬람 테미세프도 있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 스파이로 심문당하는 베슬란 알기리에프

맨 오른쪽에 이슬람 테미세프도 있었으나 반군들은 전혀 정체를 알지 못했다.

 

 

  러시아 측에서 사살된 반군 명단에 혼선을 빗는 경우는 종종 있었기 때문에, 테미세프가 그때마다 살아서 반군 진영에 합류하는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연방법에 따라 수배된’ 상태라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반군은 테미세프를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5년 동안 전투에 참여하며 무슬림 가카에프의 신임을 얻은 테미세프는 나중에는 부대 회계와 연락책을 담당할 정도로 완벽한 신임을 얻었다.

 

 

 

후세인 가카에프와 이슬람 테미세프

 

 

  가카에프 형제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테미세프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단지 포위 영상 속에는 후세인 가카에프와 다른 반군들이 테미세프에게 “왜 이렇게 총알을 낭비하냐? 정확히 조준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6일에 걸친 탈출이 테미세프의 위치 정보로 인해 번번히 좌절되었다는 것을 죽는 순간까지도 반군들은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무슬림 가카에프

 

  이슬람 테미세프는 체첸 반군이 러시아의 첩보전에 완벽하게 패배했음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이미 5년이나 반군들과 함께 거주한 테미세프를 통해 은신처, 무장 상태, 동조자, 외부 지원 세력, 사용하는 공격 루트, 위장 방식 등 엄청난 정보가 러시아측에 노출되었다. 또한 앞으로 반군들은 주민들로부터 식량과 무기를 지원받기 매우 힘들어졌다. 더 이상 반군 동조자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었다.

 

 

 

후세인 가카에프

당시 체첸 반군의 상황에서 가카에프 형제들의 전사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었다.

 

  체첸 반군의 기세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이 꺾였고, 코카서스 에미레트의 주도권은 다게스탄 반군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도쿠 우마로프는 체첸 내 상황이 심각함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손을 쓸 여력이 없었다. 대신에 다른 기회를 잡고자 했는데, 2014년에 예정된 소치 동계 올림픽이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은 코카서스 에미레트가 러시아에게 충분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최적의 현장이었으며, 아마도 마지막 기회였다.

 

 

 

도쿠 우마로프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은 코카서스 에미레트를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출처 :

https://www.rferl.org/a/caucasus-chechen-insurgency-mole-temishev-trial/25057148.html

https://en.wikipedia.org/wiki/Khuseyn_Gakayev

https://www.kavkazcenter.com/russ/content/2013/01/25/95787/podtverzhdena-shakhada-bratev-gakaevykh.shtml

https://www.grozny-inform.ru/news/politic/39340/

https://www.rferl.org/a/chechen-insurgency-commanders-killed-gakayev/24887859.html

https://www.kavkazcenter.com/russ/content/2013/03/10/96712/krot-(video).shtml

https://www.kavkazcenter.com/russ/content/2013/05/06/97822.shtml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그615 | 작성시간 20.10.30 이슬람 테미세프는 지금 살아있나요? 체첸반군이 반드시 암살했을 것 같은데...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3.14 그 뒤로 소식이 없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그615 | 작성시간 21.03.14 살아있다면 과연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런지..
  • 작성자찬이슬 | 작성시간 20.11.20 오랫만에 들어와서 봐도 역시 흥미진진합니다

    그토록 지독하게 버티던 체첸이 이제 정리가 되는 듯하군요
    완벽하게 적응한 내부의 적도 대단한 인물이군요 죽을때까지 눈치를 못챘다고 하니

    좋은 글 잘봤습니다..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3.14 대단한 사람은 맞는 것 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