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이 넘는 기병의 대군이 남부 수도 리치먼드로 진격하고 있을 때, 리치먼드 남쪽 제임스강에서 버틀러의 군이 공격하고 있었다. 리치먼드를 남북에서 협공하려는 것이었다. 수도는 공포에 질렸고 각 장군들의 당번병까지 동원하여 4천명 남짓의 방위군을 조직하였다. 남쪽의 버틀러는 뷰리가드가 상대하였지만, 세리단은 이 방위군과 스튜어트의 기병대로 상대해야 했다.
세리단은 비버댐 역에서 100여대의 보급마차와 6대의 기관차를 불태우고 전신을 절단하고 16킬로의 철도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400명의 포로를 구출하였는 데 그중에는 2명의 대령과 1명의 소령이 있었다. 이 보급역 습격만으로도 세리단이 남부에 준 타격은 막대하였다. 그리고 곧장 리치먼드를 향하여 진격하였다.
스튜어트는 위컴과 로멕스, 고든의 3개 여단으로 이를 추격하였다. 위컴과 로멕스 여단은 피츠 리의 사단 병력이었다. 비버댐까지 추격하여 세리단이 파괴한 현장을 둘러 본 스튜어트는 고든의 여단을 뒤쫓게 하고 자신은 피츠 리의 사단과 함께 다른 길을 이용하여 세리단을 앞질러 갔다. 그리고 방어선을 설치하여 세리단을 앞 뒤에서 상대하고자 하였다.
1864년 5월 11일, 고든의 여단이 먼저 세리단의 후위를 공격하였다. 불과 1000기에 불과한 고든의 부대는 세리단의 후방으로 쇄도하였다. 기병도를 이용한 처절한 백병전이 벌어졌지만 워낙 열세한 병력이기 때문에 아무리 남군이 격렬하게 싸운다고 해도 세리단에게는 ‘장난’과 같았다. 고든이 세리단의 후방부대와 싸우는 동안 세리단의 주력부대는 유유히 남쪽으로 사라졌다.
세리단의 주력부대가 향하는 곳에 스튜어트는 2개 여단으로 방어진을 편성하고 있었다. 옐로우 터번이라는 곳으로, 안쓰는 여관이 빛이 바래서 서있는 곳이었다. 세리단의 3개 사단이 스튜어트의 2개 여단의 방어선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북군 기병 1만이 남군 기병 3천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북군에게는 7연발의 스펜서 기병총을 갖고 있었고 남군보다도 무기가 월등한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어떤 예감이라도 스쳤던 듯, 스튜어트는 이 전투 전에 몇 번이고 말을 하였다.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있지 못할 거 같다. 우리가 패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그게 좋겠지.” 전투 직전에 어떤 여단장이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는 세리단을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잡기에는 너무 신속하고 병력이 월등합니다.”
“아냐! 놈들을 수도로 보내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
세리단이 쇄도한 남군의 진지는 V자로 되어 있으며, 입구 부분이 북군을 향한 형태였다. 남군 좌측 날개는 로멕스 여단이 배치되고, 우측 날개에는 위컴 여단이 배치되었다. 스튜어트는 양 여단이 만나는 한 가운데에 위치하였다.
세리단의 북군 선두는 그 동안 숱한 전공을 쌓았으며, 앞으로도 놀라운 전과를 달성할 출중한 기병지휘관인 커스터 준장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살아남은 남군이 없다고 말해지던 전설적인 북군 기병대장이었다. 북군의 공격으로 남군의 좌측 날개가 뒤로 밀려났다. 30문이 넘는 북군 포대도 남군의 대열을 파괴하고 있었다.
조지 커스터 준장
낮 12시에 시작된 커스터의 공격기세는 실로 대단해서 남군이 이를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남군 기병포대의 분투와 스튜어트의 적절한 지휘로 일단 격퇴를 하였다. 오후 4시에 북군은 재차 돌격을 하였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스튜어트가 직접 나와서 부하들을 독려하면서 전투를 하였다.
옐로우 터번 전투에서 부하들을 독려하는 스튜어트
남군 진지 중앙에 몰려왔던 북군 기병대는 다시 밀려나는 것 같았다. 스튜어트는 전방에 나와서 부하들에게 계속 밀어붙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말에서 내린 북군 기병이 1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서 스튜어트를 저격하였다. 스튜어트는 옆구리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스튜어트는 치명상을 입었다. 가까이 있던 부대장이 스튜어트를 부축하고 말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스튜어트는 자신은 이제 쓸모없으니 부하들을 돌보라고 하였다. 하지만 중대를 지휘하던 부대장은 그 말을 거부하고 계속 장군의 옆을 지켰다. 이어서 사단장인 피츠 리가 도착하자 스튜어트는 전투의 지휘를 그에게 맡겼다. 그리고 참모들이 와서 스튜어트를 마차에 태우고 후방으로 이동하였다.
스튜어트가 쓰러진 동안에 전세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었다. 남군 방어진은 돌파되고 후방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스튜어트는 호송마차에서 이를 보고 참을 수 없었다. 다친 몸을 일으키고 비통하게 소리쳤다.
“돌아가! 돌아가! 너의 전선으로 돌아가! 너희들의 의무를 다해라! 나는 우리가 패배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겠다!”
그것이 남군 기병대에 한 스튜어트의 마지막 명령이었다.
스튜어트는 앰뷸런스에 실린 채 리치먼드로 호송되었다. 의사가 4명이나 도착하여 스튜어트를 살려보려고 했지만 상태는 점차 악화되었다. 5월 12일 정오가 되자 대통령 데이비스가 스튜어트의 병실에 도착하였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장군?” “괜찮습니다만, 이제 죽기를 원합니다. 제가 제 의무를 다했다고 주님과 조국이 생각하신다면..”
5월 12일 오후가 되자, 의사는 스튜어트가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튜어트는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물러납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저녁 7시, 스튜어트는 아내를 만나보지 못한 채 37살의 천수를 마쳤다.
옐로우 터번에 있는 스튜어트의 비석
엘로우 터번 전투는 남군과 북군의 기병전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서부에서 온 세리단은 자신의 공언대로 북군의 근심이었던 스튜어트를 제거해버렸다. 이후 이 저돌적인 기병대장은 점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남군의 최대 위협으로 등장하게 된다.
남군 기병대에 있어서 스튜어트의 손실은 너무나 컸다. 그의 부상이 처음 리장군에게 보고되었을 때 리장군은 비통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는 내게 잘못된 정보를 가져다 준 적이 없어.” 그리고 다음날, 스튜어트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도착하자 리장군은 자신의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지휘천막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 스튜어트의 참모가 도착하여 마지막 순간을 전하자. 리장군은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눈물없이는 스튜어트를 생각할 수 없어...”
스튜어트의 전사와 새리단의 활약. 옐로우터번 전투는 남군 기병대의 시대가 갔음을 알리는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스튜어트는 그의 용맹함과 영민함을 따를 만한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으며, 남군 기병대는 이 때를 시작으로 점차 세리단의 북군 기병대에 압도되었으며 종전 때까지 만회하지 못하였다. '오른팔' 잭슨에 이어, 그의 눈과 귀인 스튜어트가 떠나갔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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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리카르도 작성시간 08.04.03 남군의 명장들은 하나같이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하네요..ㅜㅜ 자신의 소신에 따라 멋지게 싸우다 죽는 모습은 군인의 모범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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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무장공비 작성시간 08.04.04 귀족군인... 한계도 있지만 매력도 많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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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임용관 작성시간 09.08.13 정말 멋진 장군이었군요... 리 장군의 눈물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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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러기 작성시간 09.10.31 명장 스튜어트의 최후가 감동적입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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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자유주의자 작성시간 13.10.22 남북전쟁 연재는 이제 끝인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