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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연구실

[숨겨진 역사]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

작성자가터벨트 백작|작성시간23.12.06|조회수140 목록 댓글 0



성탄절에 빠질 수 없는 크리스마스 트리

어릴 때 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보거나,
만들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불교라서 아쉬움만 삭혔던 님들이 많으리라.

어른이가 된 다음에는 마트든 다이소든 돌아다니면서 재료사서
집에 떡하니 트리를 만들게 되었는데..
자, 근데 한번 궁금해질만한 일도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을까? ...라고


"그건 내가 처음 시작한 것일세."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숲속을 산책하던 중,
평소엔 어둡던 숲이 환하게 빛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달빛이 눈이 쌓인 전나무에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
이를 본 루터는 깊은 감명을 받는다.

"아, 인간도 저 전나무와 같구나!
어둡고 초라해도 주님의 빛을 받으면 저렇게
주변에 영롱한 빛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거구나!"

그는 이 깨달음을 설파하기 위해 이후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자신을 따르는 신교도들에게 전파했다고 한다.

...라고들 알고 있을 것이다.


저게 제일 잘 알려진 이야기긴 한데, 루터 야그는 전설일 뿐이고,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은 좀 더 오래되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 고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고부터 나무는 인류에게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다.

사실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도 그렇지만,
원시시대부터 큰 나무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령스런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소위 신화에서 말하는 세계수는 그렇게 탄생했다.

북구 신화에 나오는 이그드라실이 그런 대표적인 사례고,
켈트 신화에서도 나무는 생명의 상징이었다.
발트 신화의 뇌신 페르쿠나스의 신전에는 항상 큰 참나무가 있었는데,
아마 벼락이 나무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신이 강림한다고 보았던 모양이다.


구약에서 모세가 야훼를 처음 영접했을 때도 떨기나무 앞이었다.

이렇게 유대교에서도 나무는 신과 인간의 매개체와 같은 역할이었다.
그래서인지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동지제를 지낼 때 나뭇가지 장식을 썼다고 한다.


우리네 단군 신화에서도 환웅이 신단수 아래서 교화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나무는 세계 공통으로 신성하게 받들어졌던 것이다.


"우리도 나무를 신성시했다네."

고대 로마에서는 축제에서 촛불을 단 월계수 장식을 곧잘 사용했다.
이런 월계수 장식은 건국 이전에 성스러운 나무를 숭배하던 풍습의 잔재라고.
특히 로마인들은 연말연시에 자신의 집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하던 풍습이 있었다.
이런 풍습은 예전부터 거목 숭배를 하던 갈리아와 게르만에도 큰 꺼리김 없이 전파되었다.


"ㅅㅂ 케케묵은 이단이 왜 이리 많이 남았누"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에도 사람들에게 뿌리깊게 내린 토착 신앙을 일소하지 못했다.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교회 입장에서 괜찮다 싶은 건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너무 지나친 수준만 아니면 묵인해 주었다.

때로는 이단의 의식이나 풍습이 일부 수용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만 해도 실제 예수님 생일이 아니라 로마의 태양절 축제일이나,
미트라 신앙의 기념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이렇다보니 나무 숭배 문화도 이리저리 이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 크리스마스 트리는
우리 독일 신교도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지."

독일은 옛날부터 동지나 새해가 되면 생명의 상징인 상록수 가지를
창이나 집 천장에 장식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추운 겨울이 얼른 지나가 풍요로운 시간이 오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풍습이 16세기 와서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이시기 동판화를 보면 그 변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남부 독일에서는 성탄 전야에 성당에 열매가 맺힌 나무 모형을 세워두고
낙원극이라는 연극을 하면서 그때 세운 나무를 에덴 동산의 선악과 나무로 여겼다고.
그래서 독일 남부 지역 노인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Paradise라 부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 장식은 선악과의 레플리카라 할 수 있는 거시다.

1605년 알자스 지방에는 색종이와 과일, 과자 등으로 꾸민 나무를 겨울에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19세기가 될 때까지 이런 풍습은 독일에서만 유행하던 것이었고,
유럽 다른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걸 몰랐다.


"그럼 중세나 근세 유럽 드라마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나오면 구라라는 겐가?"

크리스마스 트리가 전파된 것은 30년 전쟁 이후 독일인들이 세계 각지로 이주하면서부터다.
미국에서는 19세기 펜실베니아에 정착한 독일계 이주민들을 통해 퍼져나갔고,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 공이 크리스마스 트리 풍습을 전파했다고 한다.
알버트 공은 독일 작센 출신이었기 때문.
이것이 유럽 전역에 유행이되면서 순식간에 오랜 풍습이었던 것 마냥 퍼져나갔다.


"양넘들은 겨울에 희안한 짓을 하는구나."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크리스마스 풍습이 정착된 건 1887년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는 선교사 언더우드가 소개했다.
당시에 명성왕후는 언더우드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의미를 물었고,
언더우드는 왕실을 위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고.


이때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려고 사용된 게 전나무였는데,
언더우드는 삼각형으로 모양새 좋게 자라는 전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딱 좋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전나무를 미국에 소개했고, 예상대로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각광을 받았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트리는 오래된 전통 신앙에서부터
동서양의 문화와 산물이 두루두루 섞인 풍습인 것이다.


펨코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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