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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블: 토탈워

[캠페인]서유럽의 유일 이슬람 국가 '실라' -건국기

작성자쑤레빠|작성시간07.09.13|조회수384 목록 댓글 0

운명이 다하는데 까지 갈 생각이다
설령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체사레 보르자-

 

혹자는 말했다. 전쟁은 위대한 서사시와 위대한 영웅을 남기는게 아니라
전쟁은 욕심과 자만에서 탄생되며 남는건 눈물과 고통, 피만 남게
되는 비참한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한다고.

 

미국 역사가 '로버트 댈랙'은 "실라 부르고뉴의 필립이 1056년 아일랜드 갈웨이에서 켈트족을 격파,
1087년 실라 왕국을 세우므로 미디블 시대는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견해는 도나우강 문명설 만큼이나 이단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의 진정한 건국자는 떡갈나무였다 라는 식의 궤변론을 즐기는 무리들에게는 정설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

 

 실라 인들은 동양에서 거대한 선단과 함께 나타난 유랑민족이었다.

9세기 중엽, 어떤 여인을 수장으로 한 무리가 먼 바다로부터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이 '장'의 딸이라고만 밝혔다.

실라인들은 뛰어난 해상력으로 당시 활발하게 진행중이던 노르만의 프랑크 지역 점령을 도왔다.

그후 부르고뉴에 정착하여 프랑스에 봉사했다.

 이들은 서유럽으로서는 드물게 이슬람 교도들이었다.

그리고 동에서 오면서 받아들인 여러 인종과 문화, 종교들로 이질적인 존재로 주목 받고 있었다.

 

 1011년 교황 보니파치우스는 '움나움 상크타움'을 선포 "로마 교황에 대한

전 인류의 복종은 영혼구제의 필수조건"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오직 카톨릭으로만 살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부르고뉴의 영주 '쟝 에드가 실라'는 유쾌한 표정으로 "그렇다면 코란에 모든 복종을" 이라고

응답했다.

결국 1013년 서유럽으로 부터 쫓겨난 이들은 백년만에 다시 배를 타고 세상의 끝

'아일랜드'로 도망가게 된다.

아일랜드 해변에 내린 순간부터 켈트족과의 전쟁은 숙명이었다.

처음 해변에서 작은 부락으로 출발했지만 당시 유럽 곳곳에서 박해를 피해

자꾸만 유럽내 이슬람 교도들이 실라 원에 모여들어 대도시를 이루게 되었다.

 

1020년 생존의 필수조건인 떡갈나무숲을 둘러싸고 켈트족과의 충돌이 있었다.

실라 부르고뉴의 지도자인 '쟝'은 많은 수의 돼지와 매년 일정량의 재산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켈트족의 노여움을 풀었다. 이후 실라인들은 오직 해상무역으로 힘을 키워갔다.

 

 가끔 켈트족과 충돌이 벌어졌지만 그때마다 엄청난 뇌물이 제공되었다.

그러나 1025년 가을, 켈트족의 수확축제일에 쟝의 아들인 '루이'가 무리를 이끌고 습격하였다.

그가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하므로 켈트족과의 돌이킬 수 없는 전면전이 벌어졌다.

 

진위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설에 따르면, 평소 망나니로 행실이 문란했던

루이가 어떤 켈트족 여인에게 반해버렸다. 문제는 사랑을 노래하는 구애가 아니라

강제로 범하려다가 그녀의 약혼자였던 전사에게 무참하리 만큼 맞아 버린 것이다.

사실이라면 너무나 비열한 앙갚음이었다.

 

 전쟁은 매우 치열했고, 한때 실라원이 점령당할 정도로 켈트족은 압도적이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1032년 이슬람에서 응원온 굴람대, 실라왕실해병대의 전신인

 '프레토리안 보병대'의 활약이었다.

 

 특히 프레토리안 보병대는 질병, 기아, 전쟁등으로 버려진

유럽 곳곳의 아이들을 데려다 훈련시킨 부대였다.

이들은 실라에 대한 충성이 대단했고 수준높은 검술과 투창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은 실라 창기병대와 고트족 이슬람교도들로

 이루어진 창병 조합이었다.

 

 그럼에도 매복과 가공할 돌격력을 갖춘 켈트족의 갤로우글래스로 인해 완전한 승리까지는

 필립의 성장을 기다려야 했다.

 필립은 루이의 사생아들중 하나로 할아버지 쟝의 총애를 받았다.

결국 아버지 루이를 대신해서 모든 공무를 돌보는 위치에 오른다. 

 

그는 어두운 성격이나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핫포케의 전술을 신봉했던 그가 가장 즐겨 이용했던 것이 기병양익과 매복이었다.

1056년 '필립'이 갈웨이에서 켈트족 연합군을 격파하므로 대 켈트전쟁은 종지부를 찍는다.

 

이후 필립은 1082년 사망때까지 켈트족과의 융합에 힘썼다.
켈트족 여인에게서 나온 자식이란 소문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082년 아버지 필립에 이어 지도자가 된 필립2세는

1087년 서유럽 유일 이슬람 국가인 실라 왕국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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