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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블: 토탈워

[캠페인]서유럽의 유일 이슬람 국가 '실라' -발전기

작성자쑤레빠|작성시간07.09.14|조회수205 목록 댓글 1

패권다툼으로 혼란에 빠진 유럽...

1087년에서 1165년까지의 미디블 강자는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이집트였다.
필립2세가 실라왕국을 건국했던 1087년의 최강자는 신성로마제국이었다.
이런 신성로마제국의 위치를 1105년 프랑스가 차지해버리므로 두국가 간의 신경전은 시작되었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히 맞섰던 양 국의 신경전은 1112년 대충돌로 이어졌다.

 

이 틈을 타 이집트가 최강국의 입지를 잠깐 차지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패권주의로 덴마크, 스웨덴, 아라곤이 정복당하는 동안 동쪽의 패권자는 이집트였다.
실라의 대 켈트족 전쟁에 어마어마한 지원을 했던 투르크는
그 후폭풍으로 이집트와 비잔틴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위기를 맞았다. 

 

아일랜드의 중상주의 정책은 열매를 맺어가고

그러나 실라 아일랜드 왕국은 대륙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필립2세 (재위1087-1120)는 뛰어난 무역가이자 수완가였다.
아버지 필립을 도와 켈트족을 설득하고, 지나친 켈트족 융합에 따른 자국내 불평자들을 달래기도 하여
"언제나 꿀이 발라진 혀가 준비된 자"로 불렸다.

 

그의 능력은 건축과 무역, 개간에서 두드러졌다.
수도 실라원을 서유럽 최고 도시로 탈바꿈시켰고, 선진국의 토대를 마련해갔다.

보편논쟁의 핵심이었던 로슬랭의 말을 빌자면 "유럽의 피로 커지는 돈 독 오른 모기"였다. 

그러나 필립2세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발렌시아의 군주 '엘시드'를 사위로 삼았다는 것이었다.
엘시드 즉, 로드리고 디아스 비바르는 무어인과의 싸움에서 이름을 떨쳤는데, 왕과 충돌하여 추방되어
발렌시아 군주가 되어 있었다. 필립2세가 언제부터 엘시드를 좋아했는지는 알려진바 없으나
그에 대한 감정은 사모에 가까웠다.

 

스페인 대군 앞에 풍전등화와 같은 그를 겨우 설득하여 데려온 후 큰 축제를 벌였을 정도였다.

 

교황과는 악연

이슬람교도였지만 유럽의 지도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준 덕에 많은 동맹국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교황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1117년 교황 우르바노스 2세가 '대 실라 전쟁'을 온 유럽국가에 선포할 정도였다.
교황이 실망스럽게도 어느 국가 하나 필립과 더불어 다투지 않았다.
필립도 로마에 이슬람 사제들을 대규모로 파견하는 것으로 복수를 하긴 했지만.  

 

위기에 빠진 이슬람, 고개를 드는 강경론

 필립 3세(재위1120-1142)는 필립2세의 장자다. 술을 좋아하고 창의력이 부족하긴 했으나 무능한 군주는 아니었다.
오히려 필립2세의 정치방향을 그대로 승계하여 내정과 무역에 더욱 치중해 갔다.
너무 융통성이 없을 정도여서 급진적인 샤를 왕자로부터 종종 핀잔을 듣곤 했다.

그때마다 필립3세는 궁전 한구석에 설치된 개인 사원에서 기도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첨탑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

 

유럽은 이제 총체적인 전쟁양상을 띄어갔다.
특히 스페인에게 알모하드가 격파되어 북아프리카로 쫓겨간 것은
이슬람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동생 샤를왕자는 열성신자이자 군부 급진주의의 대표주자였다.
그는 영국령 브리타니아를 정복하여 군사대국의 길을
열어야 된다고 설득했지만 필립 3세는 전혀 듣지 않았다.

샤를은 반대파로 돌아섰고 1137년에는 반란분위기를 조성하여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종장관 엘시드의 방비책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이 때 샤를이 그 대책없는 성격만큼이나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저질렀다.
당대 최고의 미녀이자 조카였던 엘레노어 공주를 강탈해버린 것이었다.
이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아일랜드 영주 리슐리와 엘시드의 노력으로 은밀하게 감춰졌다.

이 와중에도 필립2세는 세속을 초월한 마냥 술을 마시며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조용하나 성실했던 국왕은 1142년 때까지 선왕의 유업을 더욱 발전시키는데만 골몰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첨탑에서 저녁 일몰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던 중 그대로 숨을 거뒀다.

그는 후대 역사가들로부터 가장 인기가 없었던 군주중 하나였다.

그에대한 평가는 단 하나 필립1세의 연장선이란 말로 정리되버렸다.
그러나 실라왕국의 전성기는 바로 이 재미없는 국왕에 토대를 마련했다.

 

겉으로 화려하고 스케일이 큰 사람 중에 일만 벌이는 허풍쟁이가 많고,
조용하고 비 창의적인 인물에 의해 오히려 짜임새 있는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역사에 화려한 인물이 많을 때마다 비례하여 혼란이 가중되었다는 것을

자연스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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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티와즈 | 작성시간 07.09.14 와 재미있네요~ 진짜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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