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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서유럽의 유일 이슬람 국가 '실라' -내분기

작성자쑤레빠|작성시간07.09.14|조회수93 목록 댓글 0

 

쟝1세는 필립3세의 장자로서 왕세자 시절 맡았던 일은 무역 회계 업무였다.
실라원의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상선들과 상품들을 살피는데
오차가 전혀 없을 정도로 정확한 사람이었다.

 

프랑스 패권주의의 끝..떠오르는 비잔틴, 지는 투르크..

1142년, 프랑스의 패권정책은 위기를 맞고 있었다.
스칸다나비아에서는 덴마크 부흥군에 고전하고,
한때 바이에른까지 진격했던 북로군은 드뎌 로렌에서 반격을 개시한

신성로마제국군에 의해 전멸당해버렸다.

기세를 탄 독일의 맹렬한 진격에 프랑스는  최정예였던 스칸다나비아 파견군을

본토로 집결시켰고 덴마크는 독립을 얻었다.

 

아일랜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선대로 부터 이어온

중상주의 평화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실라에 큰 도움을 주었던 투르크가 큰 위기에 빠져음에도..

 

비잔틴은 확실히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8성급 이상의 영웅들이 나타나 투르크를 소아시아란 우리에 갇힌 카나리아 신세처럼 만들고,
이집트의 동유럽 원정대를 안티옥 공방전에서 소발굽에 밟힌 토마토마냥 철저하게 뭉개버렸다.

 

샤를의 병력 장악..

대공 샤를을 위시한 군부와 열성주의자들은
 "우리가 언제까지 은혜를 모르는 돼지란 소리를 들어야 한다 말입니까"라며 쟝1세를 맹비난하였다.
결국 쟝1세는 대규모적인 용병모집을 하는 제스처로 강경론자들의 눈을 속이려했다.

대공 샤를은 대책없어 보이는 행동을 자주 했지만 사실 명석한 재치로 소문난 자였다.

그는 이 기회를 확실히 이용했다. 모집된 용병들 전부를 자신의 군대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많은 병력을 요구했다.
군병력이 샤를에게 있는 이상 거절하기란 쉽지 않았다.

쟝1세는 샤를에 굴복하는 척하면서 엘시드와 리슬리 경에게 자문을 구했다.
엘시드와 리슬리는 왕의 병사가 되어줄 정규군 육성을 권했고,
그 어려운 임무는 엘시드가 담당하게 되었다.

 

높아져 가는 불만

용병과 정규군 모집은 당장 재정이익을 반 이상으로 줄여버렸다.
이 일은 쟝1세와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실라는 이미 폭발적인 인구증가에 따른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영국인처럼 토지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데다 삼단농법을 모르던 시절이라
오직 상업과 비단, 양모 같은 상품수출만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분야였다.

영주권과 농업적 정치권력의 취약성은 영국처럼 멕시코만류에 따른 기후로
밀재배와 포도수확에 적합하지 않은데 있었다.

 

이런 때에 실업자들을 그나마 먹여살렸던 것은 중상주의 정책에 따른 큰 이윤 획득에
따른 자선정책이었다.

재정이익이 반이나 떨어지자 더는 이들을 구제할 수 없게 되었다.
불평불만자들은 불어났고, 그들은 샤를 대공의 지지기반이 되어갔다.      
  
이런 와중에도 쟝1세는 용기를 잃지 않고 "이 모습이 나에게 가장 자연스런 것이다"라며
자신의 정치신념을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중상주의 정책은 억지로 끌어갔다.

 

1160. 1161년 쟝1세는 혈통으로 인한 큰좌절을 느끼게 된다.
후계자 앙리, 샤를의 무능력 때문이었다.
이 멍청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아들들이 왕위에 오르면

실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너무나 명약관화 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침공

이 때 샤를 대공이 다시 한번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1165년, 스코틀랜드를 침공해버린 것이다.

용병 97200 군을 동원하여 스코틀랜드의 하이랜서 독립군들을 공격해버렸다.
샤를대공은 97200 대군을 하이랜서 32000이 매복해있는 숲속으로 돌격시켰다.

작전이고 뭐고 없는 말그대로 돌격이었다.

숫자에 앞서나 용맹한 하이랜서들을 숲에서 당할 수가 없어
엄청난 희생이 이어졌다. 이것을 역전시킨 것은 한 용병장군의 결단력때문이었다.

 

로버트 라는 민병대 군관을 이끄는 용병대장이 전장에서 벗어나 우회하여

하이랜서들의 배후를 급습하므로 겨우 승리를 거둔 것이다. 물론 로버트는 해고당했지만.

 

찾아오는 위기,

53200의 희생을 된 정복이었지만 어째든 실라 국민들은 대찬사를 보냈다.
흔히 그렇듯 아무리 훌륭한 내정실적도 단 한번의 군사적 성공에 빛을 가리기 마련이다.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훌륭한 행정가와 내정가가 아닌 정복자들의 전유물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언제나 국내 경제와 복지, 안정에 최우선을 뒀던 쟝1세로선 큰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술꾼 쟝이란 별명은 이때 붙여진 것이다.
그는 곧 샤를대공이 어떤 이유를 붙여서던 영국을 침공할 것이란 것을 눈치채고

당장 영국과 동맹을 맺어버린다.

 

이번에 당황한 것은 샤를 대공이었다.

약속을 중시하는 이슬람의 특성상 동맹국을 공격한다는 것은 곧 파문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샤를대공은 암살자 "쟈크"를 비롯한 암살자집단을 스코틀랜드로 호출했다.
쟈크는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4성의 일류급 자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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