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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백성들이 역대 왕조 중 가장 행복하엿다??? (질문입니다.)

작성자샤오家가주| 작성시간10.01.17| 조회수2220| 댓글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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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한교 작성시간10.01.17 예. 사실입니다. 조선의 상비군 같은 경우는 상당히 허술한 편이었습니다. 병자호란과 북벌준비를 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조선의 상비군 시스템은 정말 있으나 마나한 예비군 보다 더한 수준이었는데요.. 그럴수 밖에 없던것이 당시에 군역이란건 자신이 스스로 장비를 점검하고 해당 일이 되면 점검을 받는 식으로 일정 장소에 출두를 해야 했습니다.자기돈으로 스스로 무장하고 스스로 장비를 마련해야 되서 원성이 높았었죠.즉 오늘날 같이 차비만 가져가면 숙식부터 피복, 무기까지 다 받는게 아니라 관청에서 파는 장비를 돈을 지불하고 사야 했습니다.--;
  • 작성자 한교 작성시간10.01.17 근데 다른나라 들과는 다르게 아래에서 원성이 생겨서 일에 차질이 생기면 조정에서는 그 내용을 받아서 대체로 거의 시정해 줍니다. 이게 다른 나라들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죠. 대신에 중앙에서 정말 지방에서 무기 물류랑 집결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시행되고 있고 또 이 문제들에 대해 신속하게 간섭할수 있습니다.
  • 작성자 한교 작성시간10.01.18 임진왜란 때만 해도 전쟁준비 기간에도 성곽 건축에 있어서 항소가 들어오면 왕도 쩔쩔 매었습니다.. 근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준비를 위해 세금걷을때 보면 항상 반항하면 죽여라 라는 슬로건이 따라다니죠. 얄짤 없습니다. 옆동네는. 국가가 강해지는 것과 민중이 살만해지는 것은 전혀 다른 거거든요. 보통 현대인들은 역사게임을 통해 역사를 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상위1%의 시각에서 국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 밑에 사는 사람들이 어쩐지는 정말 모르죠.
  • 작성자 GenoBreaker 작성시간10.01.18 크윽..한교님의 말이 가슴을 찌르네요;; 내일 롬토를 하게되면 세율을 모두 낮춰줘야겠어요ㅠㅠ
  • 답댓글 작성자 한교 작성시간10.01.18 ㅋㅋㅋㅋ 그래도 로마시민들은 전쟁 한창일때 전쟁을 개인사업으로 생각했으니 빨리 세금거둬서 군제개혁 해주시면 더 좋아할거에여 ㅋㅋㅋㅋ
  •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01.18 조선은 [근세국가]입니다! '중세국가'였던 고려와도 천양지차가 나죠...^^; 우선 '인신지배'의 약화로 조세수취(군역 포함)의 권한이 국가로 돌아갔고, 전국적으로 "중앙집권적 군현지배"를 완성함으로써~ 이전의 고려 같은 중간의 착취가 상당히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산천을 경계로 했다는 고려귀족식의 장원이나~ 맘대로 군사를 동원하는 사병같은 "중세적 요소"들이 사라짐에 따라, 백성들의 부담은 상당히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성리학적 <애민론>이 자리잡음에 따라, 지배층인 양반들도 수탈에 어느 정도 '한계'를 설정하게 되고, 왕실과 지배층들도 사치를 멀리하고 각종 소모성 역사(役事, 불사나 궁궐 조영 등)를
  •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01.18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이전과는 아주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조선시대입니다...ㅎㅎ;; 고려농민들은 말이 농민이지 [농노], [노비]같이 살았고, 그 이전의 백성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했습니다...ㅡㅡ;
  •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10.01.18 일단 농민을 수탈한다는 장계라도 올라오면 어지간해서는 '농자천하지대본! 농민을 괴롭히다니, 유교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를 외치면서 상당히 치밀한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어지간한 국가처럼 정부로 들어오는 수입만 맞추면 어느정도는 넘어가는 그런 것도 아니죠. 조선시대엔 이전과는 달리 노비라 해도 재산권이나 생명권 등이 어느정도 보장되는 것 또한 사실이며, 실제로 이때문에 탄핵된 관리도 있던 걸로 압니다. 이전과는 달리 지방 호족이나 귀족들을 중앙으로 거두어 들이던가 아니면 철저히 찍어누르고 상당한 수준의 지방행정체계를 구축하면서 중간에서 착취하고 새나가는 것 또한 이전보단 확실히 줄어들게 되죠.
  •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10.01.18 군사력도, 중앙정부의 군비같은 경우 크게 줄었다 보긴 힘들지만(숫적으론 적어 보여도 대규모 상비 수군을 양성합니다. 해군 육성은 돈먹는 하마죠.) 사병 및 부병 등 그외의 부분은 철저하게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에 백성이 짊어지는 총체적인 군비는 현저히 줄어듭니다. 대규모 역사 역시 '그러면 백성들 고달프다능!' 을 입에 달고 다니는 여러 신하들과 관계 기관 등의 견제로 줄 수밖엔 없죠. 당연히 백성들에게 돌아가는 부담은 줍니다.

    생각해보면 성리학이 조선을 망첬네 유교가 조선을 망첬네 뭐네 해도 근대까지 백성을 위하는 정치 사상으로는 유교만한 게 없는 듯 싶네요.
  • 답댓글 작성자 임용관 작성시간10.01.18 정답이네요...
  • 작성자 오로쿠트 작성시간10.01.18 고려는 둘째치고 고구려나 신라에서 태어났다면....어휴 ㅡ,.ㅡ
  • 답댓글 작성자 김희동 작성시간10.01.19 ㅎㅎㅎ..넘 웃기당
  • 작성자 havoc 작성시간10.01.18 삼국시대때는 유교보다도 불교나 도교가 대부분 먹혀서, 조선시대때 보다는 좀 자유스러웠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문화수준은 조선이 가장 근대인 만큼 조선때가 가장 높았을것 같습니다. 정치 채계도 그렇고.
  • 답댓글 작성자 한교 작성시간10.01.18 삼국시대의 연평균 전쟁횟수 + 잉여작물 추산까지 하면 삼국시대가 더 살기 빡세지 않았을까욤? 오히려 일본 전국시대랑 비슷한.
  • 작성자 임용관 작성시간10.01.18 듣고 보니 조선시대가 가장 살기 좋았던 것 같네요. 다만, 여성들의 권리가 가장 억눌렸던 시기이기도 하죠... 유교는 여자의 적...
  • 답댓글 작성자 동넷사람 작성시간10.01.18 조선 초에는 여성들의 권리는 남성과 거의 동등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기러기 작성시간10.01.18 역시 성종때 경국대전의 완성으로 여자의 권리를 확실히 억눌렀던 것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01.18 동넷사람// 지금이나 예전이나 사회는 엄연히 [남성우위]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사회의 주도적 역할은 남성이 했으며~ 시회체제 자체가 [부계중심]으로 발전하는 것이 필연적이었죠...^^; 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현상이었고, 19세기 이전에는 '여권(女權)'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시피 했어요... 조선초의 여권은 엄연히 남성의 아래였고, 다만 조선후기와 같은 "극단적 상황"에 비교하면 상태가 나았다는 것이지~ <거의 동등...>을 운운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 작성자 낙양 작성시간10.01.18 하지만 조선 중기 세금제도의 폐혜로 인한 고통은 심했을거라 생각하는 1人....
    농부들의 수탈이 상대적으로 적은시기였다고 해도 직전법 폐지이후로는 지주전호제가
    일반화되었고 정액을 내었던 도조법도 극히 일부에게만 적용되었죠...
    가장 극악스러웠다던 공납의 폐단은 야반도주가 횡횡할만큼 포악했구요..
    (또 이걸 애꿎은 이웃에게 벌하는 오가작통까지...)
    이후 수정된 세금제도도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삼정의 문란으로 번져
    조선후기 민심이 흉흉했던걸 보면 그렇게 좋진 않았을거라는 생각..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시간10.01.18 물론 그런 점도 있습니다만, 일단 국가에서 상당부분의 세금을 수취했다는 점에서 이전시대 보다 '수탈'이 비교적 줄어든 겁니다...^^; 고려는 나라에 세금내는 땅보다 [장원]에 속하는 땅이 더 많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안에서의 수탈은 뭔 '삼정문란'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죠...ㄷㄷ 또 조선의 법전들을 보면, 각 지방별로 상당한 배려를 했던 점이 보여집니다... 납세 방법과 운송규정까지 '편의'를 최대한 봐줬지만, 고려시대에는 이것조차도 거의 미비한 상태였구요...ㅎㅎ;; 물론 조선시대에도 대토지를 소유한 [양반지주]들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조선말의 이유원은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양주에서 한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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