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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과연 "조공"의 등쌀에 시달렸을까???

작성자★海東天子☆|작성시간08.09.03|조회수1,459 목록 댓글 16

 윗글 밑에 달린 "코멘트"를 보고 짧게 적으려 했지만~

 뭐가 문제인지 "코멘트"가 안적어 지네요ㅠㅠ 그래서 길게 적어봅니다~

 

 조선은 "조공(朝貢)"으로 중국을 뜯어먹은 나라입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에 "조공"하면 반드시 "회사(回賜)"가 따랐습니다!!!

 "예부(禮部)"에서 수령한 "조공품"을 중국의 화폐가치로 환산한 후 그 몇배를 "하사"하는 거죠^^~

 

 일반적인 조공국들은 "삼년일공(三年一貢)", 즉 삼년에 한번 "조공"합니다~ "안남(安南, 베트남)"이 여기에 해당하죠^^;

 일본의 경우 "십년일공(十年一貢)", 즉 십년에 한번 "조공"합니다만, 그나마도 거부당합니다^^~~

 "조선"의 경우는 "일세양공(一歲兩貢)", 즉 일년에 기본적으로 두번 "조공"합니다^^;;

 "조공"의 반대급부인 "회사"는 중국으로써도 큰 '부담'이 됩니다^^~

 게다가 "조공사절"들에게 따로 "은상(恩賞)"을 내려줘야 했습니다~ 때문에 되도록이면 횟수를 줄이려고 하죠!!!

 

 하지만 "조선"의 경우 이 두번의 기본적인 "조공" 외에 여러가지 명목을 붙여서 뻔질나게 "조공"합니다^^~~~

 황제의 생일인 "성절(聖節)"이나 황후, 황태자의 생일인 "천추절(千秋節)"은 기본이고,

"조선"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진주사(進奏使)"를, 중국에 변고가 생기면 "진위사(進慰使, 위로 사절)"를,

황제가 죽으면 "진향사(進香使, 조문 사절)"를 보냈고 이 외에도 갖은 명목으로 "사절"들을 중국에 들여보냅니다!!!

 게다가 "조선국왕"이 승하하면 중국에 "고부청시청승습사(告赴請諡請承襲使, 선왕의 시호를 요청하고

세자의 계승을 알리는 사절)"를 보내서 '장례 부조금'과 '왕위계승 축하금'을 뜯어낸 것이 조선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쑥밭이 된 와중에도 "진위사"를 들여보내 점수를 따고 "회사품"을 뜯어갔죠~

 중국으로써도 상당히 짜증나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심복"인 조선을 내칠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뒤로는 찡그리고 앞으로는 "후대"하는 모습을 보여 주죠^^~

 

 물론 "명나라" 초반에는 "조명관계"가 껄끄러워서 중국측에서 무리한 "조공"을 요구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위의 상황처럼 악착같이 "조공"해서 점수를 딴 결과, 나중에는 다른 외국사신들은 얼씬도 못하던~

"천단(天壇)"과 "국자감(國子監)", 흠천감(欽天監)" 등을 참관하고, 진귀한 서적들을 "하사"받기도 했습니다!!!  

 "청나라"의 경우도 "입관(入關)" 전에는 일년에 무려 "일만석"에 달하는 쌀을 뜯어가기도 하지만,

중국을 장악한 후에는 "조공품"을 대폭 축소하고 많은 "회사"를 행하게 됩니다!!! 

 

 "조공"이 분명히 자존심 상하는 일임은 사실이지만,

강대국인 중국 옆에서 국가의 안전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한번에 잡는

슬기로운 대처방법으로 보아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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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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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치우승천 | 작성시간 08.09.05 조공은 일부 손해 보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조선에 이익이 되는 일이었죠... 사실상 국제무역이었습니다. 다만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 작성자육군참령 | 작성시간 08.09.07 미국이 대외원조에 혈안에 되었던 것은 당시 냉전의 체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당대 중국중심의 체제하고는 좀 다르죠. -_-;;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09.12.16 새로운 사실을 알고 갑니다..ㅎㅎㅎ
  • 작성자예루살렘의고프리 | 작성시간 10.08.18 요즘과 달리 동양 서양 할것 없이 이런 체면치례가 굉장히 중요했죠...가오가 안서면 안되닌깐 요즘은 실리 무역이지만...
  • 작성자VOCARLOID 時代 | 작성시간 10.09.10 이야... 그런 거였구나..솔직히 조선 때 부터 갑자기 중국과의 전쟁을 하지 않았는데....그러지 않고도 엄청 뜯어먹을 수
    있어서 그랬군요~ 확실히 조공에 의한 이익이 당시 국민들에게는 많이 돌아가진 않았겠지만, '그냥 준 게 아니고,
    구시대 방식인 전쟁이 아니라 일종의 '교류'를 이용해서 이익을 창출했군요..!!' 정말 좋은 걸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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