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좋은 글들

매맞는 소년 (whipping boy)

작성자왕마귀|작성시간09.09.19|조회수1,936 목록 댓글 12



1600년에서 1700년대 동안 매맞는 소년(whipping boy)은 왕자가 품행나쁜 짓을 저질렀거나 수업을 빼먹을 경우 어린 왕자를 대신하여 매를 맞는 역할을 담당했다.영국 왕실은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매맞는 소년 제도를 확립했다. 국왕의 왕권신수설에 대한 개념과 신이 국왕을 공식적으로 임명했다는 당시 관념때문에 어느 누구도 국왕의 아들에게 체벌을 가하지 못했다. 필요에 따라서 국왕이 몸소 자신의 아들에게 매를 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정교사가 어린 왕자에게 규율을 지키거나 학문에 열중하도록 강요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매맞는 소년은 일반적으로 상류층 출신이었으며, 출생 이후부터 왕자와 함께 교육받으며 자라났다. 왕자와 매맞는 소년은 태어난 이후부터 같이 생활했기 때문에 특히 왕자에게 다른 놀이친구가 없는 경우에 둘의 관계는 대개 감정적으로 결속력이 강했다. 왕자와 매맞는 소년의 강한 정서적 유대감은 소년이 왕자를 대신해 체벌을 당한 경우 극적으로 증가했다. 친구로 생각하던 매맞는 소년이 왕자의 잘못으로 매를 맞거나 두들겨맞을 경우를 목격하게 되면 왕자는 두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찰스 1세





매맞는 소년의 삶은 보통 비애와 고통으로 점철됬으나 때때로 그들의 고통은 자신이 섬기던 국왕에 의해 보답을 받았다. 잉글랜드의 찰스 1세는 왕 자신의 명령에 따라 1626년부터 호화로운 햄 하우스(Ham House)에 살던 매맞는 소년이었던 윌리엄 머레이(William Murray)를 최초의 다이지트 백작(Earl of Dysart)에 임명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오로쿠트 | 작성시간 09.09.21 이런걸 보면 조선의 유교식 교육은 정말 양반이지요 ㅡ,.ㅡ;
  • 답댓글 작성자북리의 음곡 | 작성시간 10.08.28 조선 시대에도 세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내관이 대신 맞았는데요, 뭘... 태종실록에는 심지어 양녕대군 대신 맞은 내시가 "이게 어찌 제 잘못입니까" 라고 하소연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
  • 작성자오로쿠트 | 작성시간 09.09.21 그런데 매좀 맞고 백작이라니, 나도 대신 맞고 싶은걸 ㅡ,.ㅡ;
  • 답댓글 작성자눈망울촉촉 | 작성시간 10.08.28 스윽 ...
  • 작성자BACCANO | 작성시간 10.09.09 으잌 그럼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프리드리히 2세 앞에서 그 친구 한스 헤어만 폰 카테를 죽인것도 저런 차원? ㅎㄷㄷ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