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좋은 글들

Re:아랍이 강해진 이유?

작성자hyhn217|작성시간10.03.19|조회수432 목록 댓글 1

 

당시 아라비아 반도가 무역을 통해 뭔가 경제적으로 대단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이슬람의 대확장 이후 일반 아랍 병사들은 금화의 가치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어 닳고 닳은 현지의 상인들이 많이 사기를 쳤다고 하더군요(;;;;) 인도양과 홍해를 통한 인도, 더 나아가 중국까지의 교역은 이슬람 이전보다는 이슬람 이후, 동아프리카의 케냐-탄자니아부터 인도와 구자라트, 아체와 말라카, 광둥의 무슬림 공동체와 그에 따라 발전한 지역왕조의 성장으로 절정에 이르게 되죠.

 

그러나 이런 열악한 경제적 상황에도 아랍인들이 시리아, 이집트, 이라크 같은 주요 지역을 정복하는데 있어 이러한 열악한 경제력이 크게 방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대정복 시기 참전한 아랍인들의 핵심 주력은 베두윈이었고, 이들이 주로 싸운 위의 지역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과 크게 다를 게 없던, 이들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지형이었죠.(이슬람 이전 시기에도 시리아 등지에는 많은 아랍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른 식량 보급 등의 문제도 훨씬 수월하게 해결되게 마련이었죠. 마치 몽골이 유라시아를 정복하고, 투르크인이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지게 되며(투르크어족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어족입니다) 유목민이 오랜 세월 유라시아의 지배자로 남게 되었던 이유와 마찬가지였죠.

 

덧붙여, 리플에도 언급된 이븐 할둔의 핵심적인 이론인 아싸비야-연대의식-의 중요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7세기 이전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은 문명의 변두리였고, 아랍인들도 그렇게 중요한 민족들은 아니었습니다(로마 황제인 필리푸스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이슬람이라는 혁신적인 이념의 출현, 그리고 무함마드 사후의 분열시기('릿다')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냄으로써 아랍인들이 하나의 힘으로 뭉치게 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몽골이 칭기즈칸 이전의 분열기에는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칭기즈칸에 의해 통일, 하나의 연대의식을 지니게 됨으로써 순식간에 세계의 정복자로 나타났듯이 말이죠. (실제로 이븐 할둔이 아싸비야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그 예로 들었던 것이 바로 이 아랍의 대정복이지요)

 

물론 비잔티움-페르시아 간의 지속된 전쟁, 비잔티움 내부의 교파 논쟁 등으로 인한 현지 주민의 피로도 역시 아랍인의 정복을 수월하게 했던 하나의 이유였지요. 게다가 동방세계에서 널리 퍼졌던 단성론이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낳지도 낳아지지도 않으셨다' 라는 이슬람의 교리에 더 잘 맞았다고 보는 주장도 있습니다.

 

정복보다는 통치가 더 어려운 법이죠. 지금까지 세계사에 숱한 정복민족이 출현했지만 그 기반을 굳건히 다진 정복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랍은 이에 성공했으며, 역으로 북아프리카부터 이라크까지의 대대적 아랍화까지 성공합니다.

 

먼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정복 이후의 통치가 꽤나 효율적이고 굳건했다는 것이겠죠. 정통 칼리프 시대-우마이야 왕조에 이르는 백여년이 조금 넘는 시간 이슬람 국가의 1인자는 '아랍 무슬림'이었고, 우마이야 시기 칼리프 압둘 말리크의 아랍어의 공용어화, 아랍식 행정제도 채택 등으로 아랍어가 급속도로 확장되기에 이르죠. 비아랍인이라도 행정적 상황, 또는 아랍인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나와 여러곳에 이주함으로써 아랍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덧붙여 아랍어는 코란의 언어였기에 원래 아랍인이 아니었던 무슬림들도 아랍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비아랍인의 아랍어 교육을 위한 고전 아랍어 문법, 교육법, 표기법 등이 연구됨에 따라 아랍어가 확실히 문어('푸스하')가 되고, 이런 과정으로 아랍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아랍인'이 늘어나게 되죠. 이처럼 아랍화의 과정은 종교적 과정보다는 정치적, 문화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아랍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피부색이 아닌 '아랍어를 모어로 쓰느냐 아니냐' 였으니까요)

 

여기에 덤으로, 11세기 경 파티마 왕조가 북아프리카의 경쟁 베르베르 국가들을 제압하기 위해 아라비아 반도의 베두윈들을 대거 북아프리카에 '살포' 하면서 북아프리카의 아랍화가 가속되었습니다.

 

 

PS : 이처럼 언어란 것은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리아나 레바논의 드루즈, 마론파 기독교도들은 종교는 다르지만 '아랍어'를 사용하기에 아랍인으로 인정받습니다(범아랍주의를 주장하는 바트당의 창시자인 미셀 아플라크는 레바논 출신의 기독교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역사의 초기에 아랍인에게 정복당해 무슬림으로 개종하고, 지금도 당당히 이슬람을 표방하는 이란은 10세기 이후 페르시아어의 대대적 부흥에 기반, 독자적인 페르시아-이슬람 문화를 보존, 발달시켰죠. 현대 아랍세계에서 가끔 존재하는 오스만 통치 시기의 부정적인 묘사 역시 아랍인이 아닌 터키어를 사용하는 투르크계 터키인에 대한 반감에 기반한 것으로도 해석하기도 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한교 | 작성시간 10.03.23 오오.. 오랜만에..보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