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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란세베스 전투

작성자푸른 장미|작성시간10.09.11|조회수1,834 목록 댓글 17

카란세베스 전투는 1788년 9월 20일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 전쟁은 오스트리아의 요셉2세로 인하여 발생하였는데 사실 이 요셉2세는 무능력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사상도 깨어있는 그대로만 있었다면 꽤 괜찮은 계몽군주중의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농노제 폐지, 법 앞에서의 종교적 평등, 언론의 자유, 유대인 해방을 실시했고 비인을 세계적 예술도시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그에게 컴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상형인 프리드리히 대제처럼 전쟁에서의 천재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었지요.

 

아무래도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강한 사람 컴플랙스의 일종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아무튼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컴플렉스 정도는 웃으면서 넘겨 버렸을 건데 이 요셉2세는 나름대로 국가 내정도 충실히 하고 또 그럴만한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군주"의 지휘에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면 문제일까요?

이미 나이를 먹고 병약하기 까지 했던 그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비잔틴 제국의 멸망 이후 투르크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던 동부 유럽의 발칸 제국을 구원 하겠노라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이렇게 선포하고 나섰으니 다른 나라들은 황당할 수 밖에요 이미 한참전해 멸망한 고대의 나라를 구원한다는 황당스런 마음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유럽에 풍파를 던지려 하니 주변국들이 더 안절부절 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 사람이 뭔가 투르크 사람들에게 기분 나쁜것이 있었던가 해서 프로이센의 빌헬름 프리드리히는 친절하게도 투르크와 합스부르크 왕가 사이에 일어난 분쟁이 외교적으로 해결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제의까지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요셉은 그런 친절한 제의에 다음과 같이 화답합니다.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왕가가 사악한 투르크 왕조와 똑같이 불충한 수단으로 권력을 장악했음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요."

 

남의 친절에 이런식으로 화답했으니 상대방이라고 좋을리는 없겠지요 그는 곧 스웨덴과 군사조약을 맺은 다음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동맹국이었던 러시아를 향해 진군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요셉은 발칸 제국으로 군대를 이동시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사람, 오스트리아의 군대가 투르크의 영토에 들어간지 6개월이나 지난 뒤에야 잊어 버린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국방장관에게 간단한 메모를 건냅니다.

 

"나는 투르크가 나의 동맹인 러시아의 황후와 전쟁을 시작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러시아와 우리 사이에 맺은 조약에 따르면, 나는 케서린 왕후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하여 투르크 왕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바이다."

 

예. 그는 투르크에 쳐들어간지 6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전쟁 선포를 할 만큼 뭔가 나사 하나 빠진듯한 인물이었습니다, 평상시에 그렇지 않던 사람이 자신의 컴플렉스와 관련된 문제에서 얼마나 어리석어 지는지 잘 보여주는 예 중의 하나였지요. 그는 전쟁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요셉2세는 샤바즈, 베오그라드, 비딘에 있는 투르크의 요새를 점령하여 전략적 요충지인 샤베를 해방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고 니스를 해방하여 세르비아 전역을 오스트리아에 귀속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6개 군단 245,062명의 보병대와 36,725명의 기병을 확보하였지요.

 

다만 여기서도 그의 어리석은 인사 정책을 벌여 오스트리아 군대 역사상 가장 무능한 지휘관들인 바로, 코부르그, 파비우스, 바르터스레벤, 미트로프스키, 데빈스, 리히텐 슈타인 같은 인물들로 포진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유능한 지휘관으로 라우돈 원수가 있었지만 황제는 그가 너무 늙어서 힘든 전투를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후방으로 빼 버렸습니다.

 

그리고 최고 지휘관으로도 예스맨인 리치를 선택하고 말았지요. 그러나 그가 구성한 군대는 참으로 강력했습니다. 초반 군대의 힘으로만 밀어 붙였어도 상당한 성과를 봤을건데 웃기게도 그런 파워를 두고 방어적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었지요, 이유는 예카테리나의 러시아 군대가 지원하러 오지 않았다는 이유였지만 러시아의 상황을 모를리도 없고 지금 있는 군대만으로도 요새 하나는 충분히 점령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그가 이상형으로 생각했던 프리드리히 대제의 용기와 전쟁장악력과는 전혀 관련없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엉뚱하게도 방어만 하고 있는 사이 - 공격군이 쳐들어가서 방어만 한다?? - 진영에는 전염병 마져 넘쳐났죠 말라리아와 이질등으로 병사의 태반이 고생하고 무려 3만 3천의 정예가 죽어나갔습니다. 요셉이 군사 행동을 했더라면 질병으로 죽은 군사만으로도 베오그라드를 장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기다리던 러시아군은 오지도 않고 여러인종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군은 맨날 자기들끼리 싸우기만 하고 거기다 질병까지 넘쳐나고 군수물자까지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투르크군은 베오그라드에 증원군 9천을 파병하였지요 그리고 오스트리아 군의 머리 하나당 금화 10냥을 준다는 공약까지 올렸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병사만 줄여 먹던 황제는 어쩔 수 없이 후방에 있던 라우돈을 불러 들여 군대의 지휘권을 넘깁니다. 이 라우돈은 프리드리히 마저 쩔쩔매게 만든 걸출한 명장이었지요.

 

"친애하는 라우돈, 내 군대를 맡아달라고 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익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에 대한 사랑으로 이 일을 맡아줄 것을 겸손히 요청하는 바이오."

 

그가 부대를 지휘하고 7월 18일 단 하루만에 두비차 요새를 점령하고 상당한 전과를 올리나 나머지 장군들은 역시나 그 찌질함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가끔 4천의 군대로 1만의 투르크를 물리친 일등이 있었지만 전쟁의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고 뒤로 갈수록 파필리아의 지휘아래 있던 사단 병력이 1만3천의 투르크군에게 패하는 등 전세는 점점 힘들어 졌습니다.

 

결국 8월 18일에는 두보와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 마져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이 탓으로 오스트리아군은 도나우 계곡에서 베오그라드에 이르는 모든 지역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사이 7만의 투르크군이 비딘으로 3만의 투르크군이 니스를 향해 오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옵니다. 이는 오스트리아군에게는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지요.

 

그 장소가 바로 카란세베스 였습니다.

1788년 9월 19일 오스트리아 경기병들이 전위에서 카란세베스에 있던 티미스 다리를 건넜습니다 강 맞은 편에 도착한 그들은 수색을 했지만 투르크군은 찾을 수 없었고 대신 왈라키안 유랑족이 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그들은 기병대에게 시냅스주와 여자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합니다. 흥정이 이루어지고 기병들은 말에서 내려 퍼지게 마셨더랬지요.

 

몇 시간이 지난 다음 첫번째 보병 부대가 다리를 건너 왔습니다 그들역시 그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끼려고 했습니다만 기병들은 술통 주위를 막고 보병들을 쫓아 보내려고 했지요, 당연히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누군가 발사한 총성이 한발 들렸고 한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잠시 당황하던 그들은 이내 서로 총을 잡고 쏘기 시작했지요 같은 편끼리 전투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 소리에 더 많은 병사들이 휘말리기 사작했고 보병들은 정면 돌파를 시작했지요 그러나 기병또한 만만치 않아서 좀체 진세를 풀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때 보병들 가운데 한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투르크 놈들이다. 투르크군이 쳐들어 왔다"

 

원래 의도는 투르크군이 몰려 온다고 하면 술 취한 기병들이 놀라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엉뚱하게도 보병들까지 자기들이 낸 소리에 놀라 혼비백산한 것입니다. 지휘관들은 그들을 수습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멈춰, 이자식들! 정지. 멈추란 말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많은 인종들이 섞인 탓에 독일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헝가리인 롬바르디아인 슬로바키아인들은 명령을 알아 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장교들의 멈춰(Halt)라는 소리가 알라! 라는 소리로 들렸는지 소리나는 쪽으로 총질을 시작했습니다.

 

강 건너편에서 잠을 자던 후발대는 갑자기 울려대는 총성에 투르크군이 쳐들어 온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투르크군이 야습을 하여 전위부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만 생각했지요 그리고 부대 전체에 공포감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를 잘 맞춰(?) 잔용 한 가운데 있던 군마들이 울타리를 넘어 오스트리아군의 진영을 휘젖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들이 투르크 기병대의 야습으로 여긴 지휘관은 앞뒹벗이 발포 명령을 내렸고 투르크군은 없지만 바로 앞의 투르크군이라고 추정되는 것들을 향해 마구 발포가 시작되었더랬죠.

 

이런 난장판 속에 황제 또한 잠을 자고 이다가 광분한 군중에 밀리게 되었고 부관 몇이 공포에 질린 군인들을 베어내고는 황제를 카란세베스에 있던 한 외딴 주택으로 피신시켰습니다. 그는 그곳에 있다가 근위대에게 발견되어 구조를 받았죠.

 

그날 저녁 포병들은 포를 연결하던 말을 떼어 버리고 그 말을 타고 도망갔고 여기저기서 구분없이 총질이 난무했고 도망치는 병사와 그것을 막으려던 장교들간에 벌어진 싸움과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일으킨 폭동 그리고 약탈과 강간. 정신착란에 빠진 병사들과 흥분해 날뛰는 군마들이 뒤섞여 지옥도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틀 뒤.

 

투르크의 대공이 이끄는 군대가 카란세베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있던것은 누가 공격했는지 모를 오스트리아 군대 1만의 사망자들과 부상자들이었고 불타버린 마을과 혼돈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목을 신속하게 베어 내면서 말했지요.

 

"정말 무언가 엄청난 기습이 있었나 보군..."

 

후일 킨스키 백작과 그의 기병들의 용감한 행위로 사태를 수습하고 군대를 재 정비하여 후퇴한 오스트리아군은 한동안 그 어이없는 피해에 입을 다물수가 없었습니다. 황제 요셉2세는 그의 동생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는 바로 앓아 누워 버렸지요.

 

"어떻게 계속해 나갈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어두운 생각들로 밤잠을 설치며 밤을 지새우고 있다."

 

1789년 봄 투르크에도 변화가 생겨 젊은 셀림3세가 술탄의 보좌에 올라 전쟁을 계속해 나갑니다, 그리고 라우돈 장군은 다시금 그의 걸출한 능력을 발휘해 베오그라드를 수복함으로서 요셉의 체면을 살려 주었고 이 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요셉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온 유럽에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노라"

 

 

 

출처 : 아빠늑대의 음흉한 둥지 Idealist.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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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푸른숲 | 작성시간 10.10.13 오오오오오오 학생공이시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작성자yuso | 작성시간 10.09.11 이때까지는 오스만군이 할만했군요.슬슬 유럽에게 밀랄때 아니었나요?
  • 답댓글 작성자웨버 | 작성시간 10.09.11 오스만군은 한게 별로 없지 않았나요?
  • 작성자바랑기안농부 | 작성시간 10.09.12 ㅋㅋㅋㅋㅋ
  • 작성자팽이 | 작성시간 10.12.23 오스만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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