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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들의 전투의 마지막, 기사다운 죽음.... <보스워스 전투>

작성자음유시인 미스트|작성시간07.05.14|조회수1,176 목록 댓글 12

그 주인공은 리처드 3세.

불구에다 추한 외모를 지닌 폭군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 처럼 말이죠.

하지만, 현대에는 일각에서는 그가 재평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추한 외모와, 16세기의 정 치 적 선전의 결과로 그가 그토록 악한자로

묘사되게 되었을 뿐, 실제로는 그는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군주였다는거죠.



장미전쟁의 막바지, 리처드의 형 에드워드 4세는 한 때 왕위에 올랐으나,

측근이던 워릭 백작에게 배신당해 도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워릭 백작에 힘입은 헨리 6세의 세상도 한 때....

에드워드 4세는 재기에 성공해 다시 왕위를 탈환했습니다.

1483년, 에드워드 4세는 12살 된 후계자를 남기고 급사합니다.

왕세자가 너무 어렸으므로, 숙부인 리처드가 섭정을 맡게 되죠.

하지만, 형수되는 우드빌 일파와 마찰이 일어났고

결국 두 세력의 권력다툼으로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에드워드 5세가 국왕에 즉위한지 겨우 2개월 후,

리처드는 반대파를 대부분 숙청해버리고는

조카 형제 - 국왕 에드워드 5세와 그 동생 요크공 리처드 - 를

(작명 센스가 뭐 이 따위야....)

런던탑에 유폐시킵니다.

명목인즉,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은 무효이고,

그러므로 적법한 상속자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었죠.

그리하여 의회의 승인을 얻어 리처드가 공식적으로, 리처드 3세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런던탑의 에드워드와 리처드 형제가 살해됩니다.

그리고 유력한 살해용의자로 떠오른 것이 바로, 리처드 3세였죠.

현재까지도 누가 살해한건지 설이 분분한 사건이긴 하나,

여론은 리처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리처드는 외모가 그다지 좋지 못했고, 게다가 성격적으로 좀 어두웠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희생자가 어린 아이들이고, 그 흉수로 지목된 것이 숙부뻘 되는 사람이다보니

소문은 그야말로 바람처럼 번져나갔죠. 그리고 이 바람이 태풍을 불러옵니다.

이 때를 틈타 리치몬드 백 헨리, 즉 헨리 튜더가 망명지였던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의 연고지였던 웨일즈에 상륙한 헨리는

삼촌인 펜브룩 백 제스퍼 튜더와, 옥스포드 백 존의 지원을 받아

금새 반 리처드파 세력을 규합하여 런던으로 진군하기 시작합니다.

웨일즈를 지나 행군하는 사이에 헨리의 병력은 5천여로 불어났죠.


리처드 3세 역시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왕의 휘하에는 약 8천여 병력이 있었습니다.

한편, 리처드는 로드 토머스 스텐리와 그 동생인 윌리엄 스텐리 경을

불신할 만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들의 충성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이리하여 리처드 휘하에는 약 1만 5천여 병력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보스워스에서 최후의 대결을 벌이죠.

병력차가 이 정도 나게 되니, 전투 전에는 리처드가 압도적으로 유리할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전장에 도착했을 때, 서 윌리엄 스탠리가 이끄는 약 2천 5백여 병력과

그의 형인 로드 토머스 스탠리의 약 4천 병력은 헨리 측에 섰습니다.

리처드는 이들의 배신을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일단 이들의 도움 없이 싸움을 해야 한다는건 확실했습니다.

이로서 압도적이던 전력이 순식간에 반토막 났습니다.


리처드는 이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죠.

리처드는 전장 한 가운데 있는 앰비온 언덕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노포크 공에게 궁수와 포병, 그리고 보병을 맡겨 언덕을 확보하게 했습니다.

이들이 우익이 되었죠.

그리고 자신 스스로 중앙을 맡고, 노섬버랜드 백 헨리 퍼시에게 좌익을 맡깁니다.

노포크 공이 이끄는 우익은 적이 오기를 기다리며 충분히 준비된 상태였고,

뒤늦게 도착한 헨리의 병사들이 진을 치기 위해 꿈지럭거리는걸 내려다보고 있었죠.

이때, 리처드는 공격을 개시하여 아직 우왕좌왕하고 있는 헨리의 군을

몰아붙여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질 않습니다.

(아마도 이 시점까지도 리처드는 맞붙어 싸워야 하나 망설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헨리의 군이 준비를 다 갖추었죠.

헨리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헨리의 후원자들은 말이죠.

헨리는 전투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전투는 거의 후원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안전한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헨리의 좌익 옥스포드 백의 부대가 리처드의 우익 노포크 공의 부대를 향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대포와 화살이 서로를 향해 쏟아졌고,

곧이어 검과 도끼와 철퇴와 창의 시간이 왔습니다.

기사들과 보병들이 뒤섞어 서로를 향해 함성을 지르고 무기를 휘둘렀죠.

옥스포드 공은 자신의 전대 좌우익에 기병을 배치해

노포크 공의 부대를 와해시킬 준비를 하는 한편,

자신의 전대의 와해를 막기 위해 '깃발로 부터 10피트 이상 떨어지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두었습니다.


* 노포크 공과 옥스퍼드 백 사이의 치열한 백병전



이런 이유로, 옥스포드 백의 전대는 노포크 공의 전대를 밀어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노포크 공의 부대에는 중장보병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옥스포드 백의 전대가 노련하게 싸웠기 때문에 전열이 여기저기 끊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리처드는 노섬버랜드 백 헨리 퍼시에게 이를 지원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리처드는 여기서 또 배신당합니다. 헨리 퍼시는 그저 꿋꿋하게

본래 있던 자리를 지키고 섰을 뿐, 부대를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죠.

헨리 퍼시에게 맡겨진 병력이 약 4천....

이제 리처드와 헨리의 병력비는 역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의 측근들은 후퇴를 간언했습니다.

이미 노포크 공이 이끄는 우익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리처드 왕의 전대 역시 옥스퍼드 백의 전대와

로드 토머스 스탠리의 전대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비록 아직까지 토머스 스탠리가 움직이진 않았으나, 패배는 명백했습니다.

하지만, 리처드는 단박에 이 건의를 거절합니다.

"살라자르, 신께서 내가 단 한 발짝도 물러서는 것을 허락치 않으신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죽거나, 혹은 승리하리라."

한편, 바로 이 때, 헨리 튜더는 안전한 자리에서 벗어나서 로드 토머스 스텐리에게

향하고 있었습니다. 스텐리의 전대가 리처드의 측면을 압박하면 그대로 승리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움직이길 요청하려는 것이었죠.

전투 개시 이후 처음으로 안전한 곳에서 벗어난 헨리 튜더의 움직임이

리처드에게 포착되었습니다.



* 플렌테저넷의 마지막 돌진


리처드는 자신의 구호 "Loyaulte me lie" 를 외치며 번개처럼 돌격했습니다.

그의 뒤를 충실한 가신들이 따랐죠.

그야말로 '중세 영국 기사도의 스완송' 이었죠.

 

아직도 계속 싸우고 있는 옥스퍼드 공의 전대와 사태를 방관하고 있던
 
로드 토머스 스탠리, 서 윌리엄 스탠리 경의 전대 사이의 좁은 틈 사이를

마치 살아있는 번개인 것처럼, 리처드는 헨리의 깃발을 겨누고 언덕위에서 아래로

치달립니다. 전투마가 최고속도로 내달리고, 적들이 순식간에 가까워집니다.

헨리의 깃발을 똑바로 노려보며 리처드는 랜스를 겨눕니다.

강렬한 격돌, 통한의 일격!

리처드는 첫 돌격에서 헨리의 기수, 윌리엄 브랜든을 쓰러트립니다.

헨리의 깃발이 땅에 떨어지자, 리처드는 헨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의 앞을 막아서는 헨리의 호위 기사들을 때려눕히면서 말이죠.

헨리를 지키려는 그의 호위기사들과 리처드의 기사들 사이에 끔찍한 격돌이 이어지고

뒤이어 검과 검, 철퇴와 철퇴, 망치와 망치가 서로의 피를 빠는 전투가 시작됩니다.

전투 경험이 부족한 헨리 튜더는 이 무시무시한 광경 앞에서 그대로 등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합니다. 도주하는 주인의 등뒤를 그의 기사들이 생명을 바쳐

막습니다. 한편, 헨리의 위험을 눈치챈 윌리엄 스탠리가 휘하 병력을 이끌고 이동합니다.

헨리는 곧 윌리엄 스탠리의 부대에 구조받습니다.

리처드의 최후의 기회도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윌리엄 스탠리의 부대는, 리처드를 헨리로부터 떼어놓기 위하여

사람의 벽으로 밀어붙입니다.

리처드와 그 가신들은 이에 의해 대규모 부대에 의해 습지대로 밀려납니다.

그곳에서 리처드는 적들에 의해 포위당한걸 알게 되죠.

연대기 작가들은 리처드의 최후에 대해, 희망이 없는 상황과 직면하고도

그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또한, 그의 기수였던 퍼시발 서월 역시

두 다리를 잃으면서도 깃발을 쓰러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최후의 최후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저항한 끝에,

리처드는 어느 웨일즈 병사의 핼버드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플렌테저넷 왕가의 마지막 왕은 사라지고,

동시에 영국의 기사도의 시대도 종막을 고합니다.... ....

다가올 시대는 능란하고 효율적인 군주의 시대이지

십자군의 낭만의 시대, 기사의 꿈의 시대,

왕이 직접 전장의 선두에 서서 돌격하는 시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대륙에서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패배와 헝가리의 루트비히 2세의 죽음으로

기사도의 시대가  종막을 고하죠.....)






* 헨리 튜더를 쫓아가는 리처드 3세를 막으려다

 리처드 3세에게 두들겨 맞고 말안장 아래로 내동댕이쳐지는
 불운의 주인공, 존 케이니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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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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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음유시인 미스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5.15 물론 그렇지 않죠. 샘플 하나만 있으면 복제 생산(이라기보다는 비슷하게 만들기...)이야 간단한 일이고, 당시에 저작권 같은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갑옷의 형태는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하나의 '유행'이었고 (물론 실용을 겸한), 그렇기 때문에 갑옷 제작 기술은 쉽게 번져나갔습니다. 때문에, 신용받는 독일/이탈리아 장인들의 갑옷을 주문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현지제작품을 사용하는 일도 많았던 듯 합니다. (심지어 대량생산되는 (=일반병사들이 한 파트씩 구입하는) 투구/흉갑/건틀릿 같은 것도 고딕 양식 샐릿이나 흉갑형태가 나타나니....)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음유시인 미스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5.15 뭐, 비싼 맞춤형도 있지만, Ready-made 로 나오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플레이트 아머라고 해도, (풀 슈트의 경우) 가격은 5파운드 선에서 500파운드 선까지 다양했죠. 물론 가격과 성능은 직결되긴 하지만 누구나 비싼 갑옷을 입을 순 없는 일이니까요. 하급기사(세르쟝;서전트)나 종자들의 경우 저런 싼 갑옷을 입었고, 고위 기사일수록 비싼 갑옷, 특히 대귀족 쯤 되면 맞춤형을 입는거죠. 현대 양복과도 비슷하군요. 일반인은 기성복을 입기도 하고 혹은 동네 양복점에서 맞추기도 하는데, 좀 더 부자는 유명 디자이너의 레디메이드를 입고, 소위 상류층이라고 하는 갑부계층이 되면 유명 디자이너 오더메이드의 맞춤복을 입는....
  • 작성자아틸라 | 작성시간 07.05.18 진정한사나이다 ㅋㅋㅋ 남자의 피가 끓어오르는구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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