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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넨베르크 전투에 대한 각국의 기록

작성자the Prince of New South Wales|작성시간09.02.27|조회수1,324 목록 댓글 18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 사이에 벌어졌던 타넨베르크 전투는 아직까지 여러모로 논란이 되고있습니다. 전투에 참여했던 각국들의 기록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투에 참여했던 세 교전국의 기록을 간략하게 줄여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튜튼 기사단측 기록 - 적들은 압도적인 숫적우세를 자랑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용감히 싸워 거의 승리하기 직전까지 왔지만 기사단내 폴란드출신 기사들의 사조직인 리저드 동맹이 갑자기 뒷통수를 쳤다. 우리들이 진것은 순전히 배신 때문이다.

 

폴란드측 기록 - 우리는 용감히 싸웠다. 그러던중 동맹이었던 애초부터 미덥지않던 리투아니아군이 겁쟁이처럼 패주하면서 전열에 틈이 생겨버렸다. 이 위기의 순간 야기에오 왕이 기지를 발휘하여 오히려 리투아니아군을 추격하느라 생긴 기사단의 틈을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동맹군이 이긴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공이다.

 

리투아니아측 기록 - 전투가 벌어졌지만 주공을 담당했던 폴란드군이 영 지지부진했다. 그래서 비타우타스 대공은 유인전술을 쓰기로 하고 일부러 후퇴하는 척 했다. 예상대로 기사단이 추격해오면서 전열에 틈이 생겼고 폴란드군은 그 틈을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동맹군이 이긴 것은 순전히 폴란드군에 기회를 만들어준 우리들의 공이다.

 

 

 

 

 

 

 

 

 

 

 

 

 

 

 

 

 

 

 

 

여러분들은 어느측의 기록이 더 믿을만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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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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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여왕의창기병 | 작성시간 09.02.27 솔직히 저 시대에 대규모 접전에서 일단 붙고나면 지휘고 뭐고, 걍 싸우다가 어쩌다보니 저렇게 결판 난거 같네요 ㅋㅋ
  • 작성자TimeLord | 작성시간 09.02.28 아무래도... 타메를랑님의 말이 가장 정확할듯 ; 세 국가 모두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써놓은거같다는 ㅋ 아마두... 리투아니아군은 실제 패주햇을 가능성이 높구, 폴란드군도 다소 공격이 미기적댔겠죠. 그러다 튜튼이 쫓아오자 그 틈을 폴란드군이 파고들지않았을까요. 수는 아무래도 압도적은 아니어두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좀더 유리했겟죠. (폴란드기사단은 전세가 불리해지니 폴란드쪽에 붙은것이겠지용)
  • 작성자콰지모드 | 작성시간 09.03.01 당시 튜튼 기사단의 경우 기병만 2만1천에 중 보병 5천 경 보병 6천 대포 100문 사령관과 부 사령관 병참 사령관 지휘부에 60명의 장수들로.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군은 귀족군대 1만1천에 "농민병" 3만 대포 16문. 연합군의 수장은 리투아니아 인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왕 야겔로로 누가봐도 게임이 안되죠,
  • 작성자콰지모드 | 작성시간 09.03.01 튜튼 측에서는 타타르족 용병이 1만이었다 폴란드 측에서는 1백이었다 이야기 하지만. 1천2백 정도 되었을것이라 제3자인 역사가들은 이야기 합니다, 그 숫자상으로는 전투에 결정적인 역활은 못되고 전투 후반부에 빛을 발하여 튜튼 기사단을 거의 도살했다고 합니다만, 결정적으로 승부를 가린것은 3만 농민병의 죽음을 불사한 닥돌이었읍니다. 그 와중에 2만의 농민병이 전사하였고요. 튜튼 기사단은 60명의 지휘관중 50명이 전투를 독려하다가 전사하죠. 3국의 기록이야 어땠을지 모르지만. 곤봉으로 철기를 이기기도 합니다.
  • 작성자비두우카☆ | 작성시간 09.05.09 헐..자기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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