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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시리아의 역사 개괄

작성자마법의활|작성시간08.11.19|조회수1,303 목록 댓글 21

  원래 앗시리아라는 나라의 기원은 문명 국가 바빌로니아의 선조 갈대아인들과 치고받건 북방 셈족 야만족들 중 하나였습니다.

 

 일단 갈대아인들의 선조가 먼저 세운 나라가, 계속해서 3세기 로마 같은 한계 수익성 붕괴의 패턴을 반복합니다.

  로마에는 체계적인 체제 정리를 거친 끝에 그것을 집대성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나타났지만, 바빌로니아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같은 사람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해서 앗시리아 인들에게 최종적으로는 붕괴한 모양인데, 여기서 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죠.

갈대아한 앗시리아인들이, 또 후발 주자 셈족들하고 치고 받고, 그리고 그 치하에서 귀족으로 살아남았던 구 갈대아의

후손들이 또 다시 강국으로 일어서는 등....

 

 흡사 5호 16국 그리고 망한 서로마 제국 치하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또 재연됩니다. 해서 이번에는 바빌로니아가

앗시리아를 콱콱 밟고 그들을 무릎꿇립니다. (좀 이상한 비유지만, 남조가 북조를 멸한 격이고, 명이 원을 멸한 격입니다.)

한편....그랬던 바빌로니아 제국은 또 한계 수익성 붕괴 패턴을 반복하고, 또 다시 앗시리아인들에게 무너졌던 패턴을 반복합니다.

 

  바빌로니아는 한 때 주인이었고, 그 다음은 굴복시켰던 종 아시리아에게 또 다시 굴복해서 아시리아를 주인으로 섬깁니다.

 헌데 그랬던 앗시리아가 또 앞서 패턴을 반복하면서 바빌로니아에게 밟히고...

 

   벌써 그렇게 앗시리아 - 바빌로니아 간에 티격태격하며 주인과 종, 봉신과 군주의 자리를 뒤바꿈질 한게 확인된 것으로만

한 두세번인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양자는 얽히고 섥혀서 하나나 다름없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

대한 경쟁 의식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럼 한쪽을 완전히 제노사이드하면 되잖아요. 근데 그게 영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내부 갈등이란 문제도 있으니

함부로 그렇겐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사슬에 히타이트가 끼어들어서 당구공 치기 했던 적도 있었고, 그 히타이트가 서북방 야만족들한테 무너지면서

그 다음 당구공은 성서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강적 아람에게 넘어갑니다.

 아람이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상당히 괴롭혔는데....

 

 갑자기 혜성같이 나타난 다윗이란 사람이 이 아람을 완전히 박살냅니다. 아람도 다윗하곤 굳이 척을 지진 않았는데,

암몬하고 모압 도와준답시고 원군 보냈다가 그놈들이 다윗의 군대에게 다 죽자, 성질나서 괜히 필요도 없는데

다윗한테 계속 2-3라운드 뜨자고 덤볐지요. 결국 그 라운드에서 임자 만난 아람이 뜻밖에, 플리셋한테도 털리던

한 때의 약골 이스라엘에게 갑자기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쳐맞는 겁니다.

 

 이 바람에 골치아픈 아람을 털어내버린 앗시리아에...하필이면 묘하게도 때를 같이해서 조직 재개편의 명군들이 잇따라 등장해서

선진적인 군 체제, 행정 체제를 세웁니다.  앗시리아가 창끝을 돌린 대상은 현명하게도 아람이 아닌 오랜 라이벌 바빌로니아였습니다. 뭐...당연지사 바빌로니아가 앗시리아에게 얻어맞고 또 가랑이 사이를 기어간건, 늘상 반복했던 패턴이라 별로 새로울 건 없었지만, 이번에는 앗시리아가 뭔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군사적 역량을 축적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그동안에는 바빌로니아 얘들 패주는 것에만 신경쓰고 지들끼리 뜯어먹곤 했는데, 이젠 바깥을 내다보는 거죠.

 드디어 앗시리아는 용솟음치는 군사적 힘을 바깥으로 터트려서 내달립니다.  과거의 대제국 이집트를 쳐서 먹었고, 여러 차례

짜증나게 했던 아람도 쳐없애 버립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아람은 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 이스라엘하고 샅바 겨루기 하면서

멍때리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망하는 게 너무 당연했습니다. 

 

  앗시리아가 그래서 근동에 최초의 통합 제국을 세웠습니다만.....이집트를 먹어버린 위업이 무색하게 남유다 이 쬐꼬만 게 계속해서 아득바득 게기며 항복하질 않았습니다.  해서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앗시리아에도 디오클레티아누스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무려 분할 통치도 시도하며 무단 일변도 통치를 재고합니다만, 그 과실은 엉뚱한 녀석이 따먹습니다.

 

 다름아닌 바빌로니아였는데요. 바빌로니아는 참으로 아니꼽게 앗시리아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몸종 노릇 하느라

참 불쌍하였으나...바빌로니아는 역시 다른 나라들과는 달랐습니다. 바빌로니아가 앗시리아의 여러 체제적 장점을

벤치마킹하면서, 아, 쟤들은 이렇게 하니까 안 되는 구나, 나는 따라하는 반면에 쟤들이 실수한 이건 안해야겠다,

뭐 이런 마스터플랜을 짜고 있었지요.

 

 그렇게 납작 엎드려 기회를 엿보던 바빌로니아..... 앗시리아가 각지의 반란으로 약해질 때까지도 잠자코 참다가,

갑자기 일순간에 불의의 일격을 몇 대 먹여서 앗시리아를 쳐없애 버립니다.

 

 앗시리아는 설마 자신들이 이렇게 바빌로니아의 발 아래 또 다시 무릎꿇는 캐삽질을 반복하리라는 건 예상도

못했지요. 게다가 이번엔 양상이 더 안 좋았습니다. 바빌로니아가 참으로 체계적으로 앗시리아 말살 정책도

병행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 앗시리아 VS 갈대아 전의 최종 승자는 바빌로니아가 되었습니다.

 

 근 한 이삼백? 삼사백? 년도 넘는 투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는 역사가 길지만......

이 갈대아 - 앗시리아 인들은 파르티아 및 나중의 사산조 페르시아에 상당한 충성을 바쳤고 그들도 나름의

반대 급부를 많이 주었던 모양입니다.

 

  (한편,    사산조 페르시아와 원래 민족과 혈통과 언어와 풍습이 같았던 아르메니아는, 로마와 계속 놀다보니 어느새

로마화가 되어갔는데,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장악했을 때 워낙 거지같은 굴욕을 많이 강요해서,

사산조 페르시아에 정치적으로 가까워질 때마다 반 페르시아 감정이 증폭되는 기현상이 일어납니다.

 

  민족이 같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조치는 이들을 페르시아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다들 몰랐던 것 같습니다.  현대 한국도 되새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나중에 보면 얘기가 길지만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가 페르시아에 전래되면서, 일명 페르시아식 기독교가 됩니다.

가톨리코스라고 해서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에 페르시아 기독교 교황도 하나 따로 서게 되죠. 생각보다 상당한 교세를 이룩했습니다.  또한 이들 말고 다른 시리아의 단성론파 종파 하나가 들어갔고, 그 이외에 이집트산 단성론파 종파가 더 들어갔는데,

이들이 들어간 지역에 주로 포교한 데마다 종족이 약간 달라서, 이것이 일종의 종족성 마저 띄게 되죠.

 

  세월이 지나면 이들 중 일부가 또 가톨릭으로 컴백하고, 일부는 정교회로 컴백하고, 일부는 계속 독고다이로 남을 것을

고수하는 등등의 복잡한 역사가 있습니다. 갈대아 유민들은 아마도 단성론파 기독교나 네스토리우스 파를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단성론으로 단죄받았지만 원래 네스토리우스가 주장하던 건 성모 마리아 인정 못하겠다 이거였기 때문에,

가톨릭으로 복귀할 때는 다른 데보다 저항이 좀 적었던 것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거긴 원래 사실상 삼위 일체파죠.

개신교가 했던 말하고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교황과 교계 체제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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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롱기누스 | 작성시간 08.11.20 으음... 그렇군요. 어느 책에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최초로 말을 길들였는데 그게 타는 용도로도 쓰인 것 같다 해서 의문점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부조라면 무려 궁기병 부조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대영박물관에서 봤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Τιταυιζ | 작성시간 08.11.21 앗시리아의 첫 기병사용의 증거가 투쿨티-니누르타 2세때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기원전 9세기의 물건이라니 기병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군욥... 스키타이인들과 앗시리아 사이의 관계는 에사르하돈의 딸과 스키타이인들의 지도자였던 바르타투아 Bartatua 와의 혼인.. 그리고 앗시리아의 멸망등등에서 여러 갈래로 드러난다지요;;
  • 작성자크라테로스 | 작성시간 08.11.21 갈대아 인들이라는 명칭이 함무라비 시절에도 있었던가요? 전 이후 신 바빌로니아 나왔을 때 생긴 명칭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 답댓글 작성자Τιταυιζ | 작성시간 08.11.21 제가 읽은 책에는 칼데아인 Chaldeans 라는 명칭은 신앗시리아 이전부터 쓰였다고 합니다만...함부라비 시절엔 없었던 듯... 출처: http://cafe.daum.net/shogun/1Db/2620
  • 작성자Τιταυιζ | 작성시간 08.11.21 리플에서 많이 배우고 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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