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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의 체제와 문화 말입니다.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네요

작성자ko343| 작성시간09.08.17| 조회수84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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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09.08.17 완전한 스파르타인 자체가 극히 수가 적습니다. 스파르타 시에서 거주하는 스파르타 완전시민은 전성기 시절에도 6,7천 정도고, 메세니아 일대에서 관리하던 시민을 끌어모아도 1만을 넘길까 말까 한 수준이죠. 반면 메세니아인들은 못해도 수십만입니다. 막대한 부를 보유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많은 잠재적인 적들 가지게 된 셈이죠.
  •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09.08.17 여기에 사회분화가 심화되면서 안그래도 숫자가 부족한 스파르타 완전시민의 숫자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게 됩니다. 가난해져서 자기 무장을 부담할 수 없는 완전시민이 2등시민으로 격하되고, 그 결과 중장보병대의 규모 자체가 줄어들죠. 또한 부가 집중되면서 사회갈등 역시 커지고요. 군대의 양이 안되면 질로 커버를 해야하고, 그 결과가 초 엘리트 전사 양성만을 위해 모든 것이 맞춰진 체제이며, 동시에 이는 부의 과시로 인한 갈등 같은 것을 억눌러 스파르타 사회를 단합시키는 효과를 가지게 하기도 합니다. 부를 과시하기 어려워진 부유한 완전시민들이 가난한 2등시민을 후원해 군대에 동원 가능한 인적자원을 보충하는 효과도 있고.
  • 작성자 백숙의왕 작성시간09.08.18 그나마 완전한 전사로 여겨지던 시민의 수가 시대가 지날수록 급감하게 되지요. 이게 몰락의요인 중 하나...
  • 작성자 Charment 작성시간09.08.19 워낙 완전시민의 수가 적다보니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에 잡혀갔던 불과 100여명의 라케다이몬 완전시민 포로들이 스파르타의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했었죠. 저런 체제는 소수 인원이 다수를 통치하기 위해서 고안되긴 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시민의 수가 계속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저러한 불균등하고 불안정한 사회체제 덕분에 스파르타인은 펠레폰네소스 반도 바깥으로의 원정은 거의 기피하다시피 했죠(전사들이 자리 비운 상태에서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큰일나니까..). 아테네가 잘 나가던 시절에 이집트나 시칠리아까지 군대를 파견해서 설치던 것 과는 대조적인 차이 -_-
  •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09.08.19 스파르타의 시스템 한계도 그거죠. 숫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엘리트 전사집단 양성을 제일 목적으로 했는데, 그러다보니 부와 권한이 이들에게 집중되고, 전사집단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체제가 되어버려서 이걸 유지하기 위해 더더욱 엘리트 위주로 가고, 그게 또 숫자를 줄이고... 이런 막장 사이클이 무한반복된 결과가 스파르타의 패망입니다. 첫단추를 잘못끼웠다고 해야 할까...
  • 작성자 rji0613 작성시간09.08.23 제가 주제넘게 참견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어쩌면 이상실현을 위한 하나의 국가적 실험들이었습니다. 아테네가 자신들의 민주주의 이상을 구현하려하였다면 스파르타인들도 검소함과 전사 정신, 엄격한 규율 준수를 하는 법치를 이상으로 하였지요. 엄청난 물질적 풍요와 자유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은 이해가 안가겠지만 이런 스파르타인들은 법치주의의 구현으로 아테네가 부상하기 전까지, 아니 그 후까지도 다른 그리스인들의 존경을 받던 하나의 이상적 국가였다고 합니다 ^^; 하지만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스파르타 또한 자신들의 체제모순과 시대변화로 몰락하게 되었던 거겠죠.
  • 작성자 여왕의창기병 작성시간09.08.25 대체 어떻게 훈련을 했는지 소수의 여성 부대가 다수의 남성 부대를 이겼는지..ㄷㄷㄷ
  • 작성자 여왕의창기병 작성시간09.08.25 그것도 육탄 냉병기 전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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