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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화약과 석유의 만남

작성자fdsa|작성시간12.06.22|조회수423 목록 댓글 2

 

헬라스인들은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와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 무기를 써서 우리들을 불태웠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을 정복할 수 없었다.

- 루스 족의 역사 기록

 


서유럽인들이 아르키메데스나 카이사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방법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 과학의 빛은 아주 짧은 시기 동안 동쪽으로 수십 마일 떨어진 곳에서 고대 로마 제국의 마지막 흔적을 지키고 있는 곳에 있었다. 그런 상황은 서기 330년에 성(聖) 콘스탄티누스 1세 대제가 제국의 동쪽 절반을 옛 헬라스의 식민지인 비잔티온으로 옮기고 그 곳의 이름을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곧 무력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탐욕스러운 외적의 무리들로부터 늘 침략의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러 곳의 무슬림 관할 구역이 문제였다.

 

비잔티움 제국은 탄탄한 과학자 집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과학자들 중 대부분은 헬라스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킬 수 있는 모종의 군사 기술을 개발해 냈다. 실제로 제국은 그 누구도 꿈꾸지 못했던 엄청난 성공을 일구어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그 시대의 원자 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해전용 액체 화기 '헬라스의 불(ελληνική πυρκαγιά)'의 제조 책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제국의 군함이 적함을 헬라스의 불로 공격하는 장면

 

사실 헬라스의 불이 완전히 새로운 무기는 아니었다. 기원 전 400년 경, 포위된 델리움 요새에서 농성하는 적군의 전투 의지를 꺾어 버릴 수 있는 신 무기를 고안해 달라는 델리움 측의 요청에 고대 헬라스의 과학자들은 소위 화염 무기라고 불리는 것을 발명했다. 초기 헬라스의 화학 기술 발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그 무기는 송진과 유황, 낱알 모양으로 만든 유향에다 소나무의 톱밥을 섞어서 만든 혼합물로서 천으로 된 자루에 넣어 꾸러미 형태로 제작됐다.

 

우선 그 자루에다 불을 붙인 다음 캐터펄트를 이용해 적의 요새 내부로 발사하게 되는데, 그렇게 불 붙은 자루들은 성 안의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사방으로 불을 내뿜으면서 폭발했다. 농성군에게 더욱 괴로운 일은 그 불을 끄기 위해 물을 갖다 부으면 불길이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서기 673년에 비잔티움 제국은 해상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항구 도시인 제도(帝都)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당시엔 너무나 허약했던 제국의 해군은 침략해 온 적의 함대를 격파하고 그들의 상륙을 저지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강력한 무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헬라스 출신의 과학자들은 목재로 만든 전함들에 맞서 싸우려면 화염 무기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천년 전부터 사용해 온 화염 무기를 자세히 겸토한 결과, 그들은 곧 그 무기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캐터펄트는 그다지 정확하지 않은 기계이기 때문에 그런 기계를 가지고, 더군다나 전혀 공기역학적인 비행체라고 할 수가 없는 그런 자루를 수백 야드 떨어진 곳까지 날려서 해상에서 기동하고 있는 함선을 맞힌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배에 그런 무기를 탑재하고 적함에 근접해 발사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지만 정확도의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파도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목표물을 명중시킬 것인가?

 

이 시점에서 과학자들은 예전에 중동 지역을 여행했을 때 봤었던, 땅에서 스며 나오는 별스럽고 냄새도 고약한 검은 빛의 한 물질을 기억해 냈다. 그 물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아무도 몰랐고, 다만 그것에 '석유(petroleum)'라는 이름만 붙였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 검은 점액질의 물질에 불이 아주 잘 붙는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바로 거기서 그들은 개념적인 연관성을 도출해 냈다.

 

'헬라스의 불을 액체 무기로 변환시키자!'

 

그들은 재빨리 천년도 더 지난 후에나 등장하게 될 화염 방사기와 네이팜탄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굉장한 무기를 고안해 냈다. 바로 석회와 뼈와 소변을 섞어 만든 인산칼슘에다 석유를 섞은 혼합물로, 고대의 헬라스의 화약을 훨씬 강력한 액체 물질로 변형시킨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것을 발사할 수 있는 무기를 설계했다. 석유 혼합 물질을 보관할 수 있는 큰 저장 탱크, 손으로 돌릴 수 있는 펌프, 동물의 생가죽으로 만든 호스, 그리고 불꽃을 일으키는 방아쇠가 달린 액체 분출구로 구성된 장치였다.

 

그 다음 단계는 새 무기를 장착할 수 있게끔 소형 갤리선을 건조하는 것이었다. 탱크와 펌프는 갑판 아래에 설치되었으며 호스와 분출구는 갑판 위의 이물 쪽에 장치되었다.

 

그 무기는 정말로 제 때에 등장했다. 무기를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사라센인들이 제도를 점령하기 위해 함대를 끌고 왔기 때문이다. 침략해 온 야만족의 함대는 제국이 출동시킨 크기가 착고 매우 민첩하게 기동하는 몇 척의 갤리선들과 해상에서 마주쳤다. 제국의 소형 함선들은 작은 배의 장점인 우월한 기동성을 적극 활용하면서 기세 좋게 사라센 전함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 동안 갑판 아래에 있는 해군들은 맹렬하게 펌프를 돌렸고, 액체의 분출을 담당한 해군병은 궁병들의 엄호를 받으면서 목표물을 향해 분출구를 겨냥했다. 갑판 아래 탱크에 보관되어 있던 액체가 드디어 분출구까지 도달했을 때, 분출구를 조작하던 해군병은 부싯돌을 부딪쳐서 불꽃이 일어나게 했다. 그 불꽃은 분출구를 통해 뿜어져 나오고 있는 액체를 불기둥으로 변환시켰다. 천둥 소리 같은 폭발음에 이어 불길은 발사기 바깥으로 나오면서 아치형을 그리면서 50야드나 되는 거리를 날아가 한 척의 사라센 전함에 옮겨 붙더니 그 다음엔 다른 배로 옮겨 갔고 결국은 함대 전체를 화염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었다. 적군의 병사들은 살에서 유독한 거품을 뿜으며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불이 붙지 않은 나머지 배들은 두려움에 질려 달아나 버렸다. 역사가 기번은 소변으로 소화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 와중에 누가 소변으로 헬라스의 불을 끌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 해상에서는 가공스러운 비밀 무기에 대한 소문은 곧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드는 무역상들이 그 무기의 제조 공식을 알아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업상 알고 지내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모든 연줄들을 총동원했다. 그 방법을 얻어 가려면 얼마나 지불해야 할까? 그러나 그 공식은 제국이 가장 철저하게 통제하는 1급 기밀에 속했었다. 그리고 그 공식을 구하려는 이들은 기껏해야 천사가 직접 그 공식을 가르쳐 주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나 들어야 했다. 그런 전설을 진심으로 믿은 이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 공식의 비밀을 풀어 보려던 모든 시도들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 공식을 가장 열심히 알아 내려고 했던 이들 중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원래 자신들의 세력권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도시를 점령하기로 작정했던 이슬람 세력도 있었다. 그러나 제국이 결정적인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상, 그 목적을 군사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서기 717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침공을 위해 동원된 이슬람 함대가 헬라스의 불을 뿜어 대는 제국의 전함에 의해 패배해 수장당하고 말았던 사건이 이미 그 사실을 입증한 바 있었다.

 

이슬람 세력은 헬라스의 불의 비밀을 끝내 밝혀 내지 못했고 그것은 다른 국가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다. 결코 패배할 수 없는 결정적인 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무너질 리가 없다고 확신했던 비잔티움이 그만 자만에 빠지고 만 것이다. 제국은 기존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 이상 과학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특히 자신들이 보유한 헬라스의 불 덕분에 외적의 위협 따위는 잊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던 제국인들이 이제는 국내 문제로 관심의 초점을 돌려 정치적 또는 종교적인 분열상을 야기하게 되자 제국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헬라스의 불이 제 아무리 경이로운 무기라 해도 그런 내부의 균열까지 무마시켜 줄 수는 없었고, 마침내 비잔티움 제국은 결국 재기에 성공한 이슬람 세력이 재개한 공격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함락되었고 그 이후로는 이스탄불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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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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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fds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22 본문중 오스만투르크가 헬라스의 불을 노린다는 소리가 있지만잘못된 내용으로 이슬람 세력권으로 수정해야함요
  • 작성자무갑 | 작성시간 12.06.22 결국 정확한 성분을 알아내진 못했지만, 대신 나프타를 사용해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들을 만들어 냈지요.. 이슬람뿐 아니라 십자군측에서도 비슷한 것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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