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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 왜 영국군이 이겼을까 ?

작성자기러기| 작성시간13.05.23| 조회수1038|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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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4 매관 매직은 영국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오히려 프랑스 앙시앙레짐 시기의 매관매직은 유럽 어느 나라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죠. 루이 14세 시기에 정부 재정에서 매관매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최고 10%애 달했을 정도로 말이죠.
    프랑스 대혁명까지 그 기조는 어느 정도 유지되었던것 같고 혁명으로 확 뒤집어진 이후에도 최소한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장교들 일부는 매관매직으로 장교직을 샀던 장교들이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매관매직으로 관직을 산 이들이 무능하다는 견해도 반드시 맞다고 볼수도 없습니다. 최소한 관직을 살 돈이 있다는건 고등교육을 받을수 있는 계층이라는 뜻이니까요.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4 군사의 질의 경우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며 신병들이 대량 유입되는(특히 러시아 원정 이후) 시기를 제한 초기의 프랑스군은 국내의 혁명전쟁을 거친 정예들이었습니다. 이미 전 국민이 실전을 경험하다시피 했는데 타국의 상비군과의 훈련도 격차는 상당히 무력화되죠. 실전과 같은 훈련을 거친 상비군 이상으로 일정한 실전을 거친 징병군들이 전투를 더 잘 치를수 있으니까요. 보급의 경우에는 혁명 초기의 혼란 당시나 이후의 대륙 봉쇄령으로 물자 부족을 겪은 동맹국이라면 모를까 영국의 물자 봉쇄가 펼쳐졌을때는 의미가 없을 거라 봅니다. 러시아 원정 직전의 프랑스의 공업 생산량은 압도적인 수준이었고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4 비교적 낙후되었던 농업은 공산품을 수출한 돈으로 막대한 식량을 우크라이나 평원이나 헝가리등에서 수입했으니까 상관 없었죠. 러시아 원정 이후 동맹이 대대적으로 이탈하며 무역 라인이 붕괴, 대대적인 물자 부족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오스트리아를 연달아 격퇴하고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했을 때에는 물자가 풍부한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특유의 기동전 때문에 보급 사정이 열악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 때가 나폴레옹의 전성기였죠. 이후 대규모 물자 보급망을 갖추고 움직이자 기동력이 제한되어 기존에 가졌던 전술적 우위가 흔들려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4 요는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군의 특징은 시대별로 너무나 상이하게 나타나서 딱히 이렇다고 일반화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군과 영국군중 어느 쪽이 어디에서 우월하였으므로 영국군이 이길 수 있었다라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일단 제 주장의 출처는 전쟁의 기술. 빵의 역사. 루이 14세는 없다 를 비롯한 몇몇 서적들입니다만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맞게 쓴건지 확신이 않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 데스사이즈 작성시간13.05.24 저 시대의 프랑스가 공업국이었나요? 전 반대로 알고 있었는데.
  • 답댓글 작성자 mr.snow 작성시간13.05.24 데스사이즈// 정반대죠. 프랑스는 산업발전도 늦었고, 20세기 초반까지도 전국민의 대부분이 농촌 거주인구였는걸요.
  • 답댓글 작성자 델카이저 작성시간13.05.24 1. 병사 자질은 큰 차이는 나지 않았는데 사기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혁명군이라는 대의 명분은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죠..

    2. 나폴레옹의 보급은 거의 현지조달에 의존했습니다. 머 불가피했습니다만... 말년까지도 이것은 거의 변함이 없었죠..

    3. 웰링턴의 직속부대가 좀 특이한 경우고... 대개의 경우 매관매직으로 영입되는 장교들 중에는 끔찍한 자질부족인 애들이 많았습니다. 웰링턴을 포함한 제독&원수들의 주요 업무가 머저리 장교를 걸러내는 거였죠.. 머 병사 못지않게 장교도 막 굴려대는 통에... 짬좀 먹으면 밥값은 그런대로 한 듯 합니다. 포르투갈이나 오스트리아, 러시아 장교들의
  • 답댓글 작성자 델카이저 작성시간13.05.24 레베루가 너무도 끔찍했던 탓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있는 집 자식이니 읽고 쓸줄은 알았으니까요.. 단지 장교로서 리더쉽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정말 자질이 심하게 떨어졌습니다.

    4. 사실 이건 프랑스 군도 딱히 사정이 좋지는 않아서(...) 자질 부족의 원수들도 적지 않았죠.. 제대로 된 인사평가 시스템이 없다보니까 네이나, 그루쉬처럼 절대 군단급 작전을 시키면 안되는 애들이 군단급 작전기동하다가 전역 전체를 말아먹었죠;;;;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5 ? 혁명 직후까지는 생 농촌국가였는데 혁명 이후 농업 버리고 공업만 쌩쌩하게 돌린걸로 알고 있는데요? 나폴레옹 이후에 다시 아작나고.
    http://en.wikipedia.org/wiki/Economic_history_of_France
    18세기~ 현대프랑스(나폴레옹 섹터) 보시면 도시화도 어느정도 진전되어 있고 공업에도 상당한 투자가 되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는 표현이 온건하지만.
    http://socserv.mcmaster.ca/econ/ugcm/3ll3/see/18thCentury.pdf 대충 18세기의 공업화 진행 내용 나오고요.
    나폴레옹 시대의 경제정책이 생각보다 보수적이고 통제적이긴 하지만 공업화는 18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계속 진전되고 있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5 프랑스 공업화가 늦어진 이유는 다른 이유도 있지만 나폴레옹 전쟁의 후유증-배상금을 포함해서-에 프랑스가 엄청나게 시달렸기 때문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다시말해 이미 루이 16세 시기부터 도시화는 진전되고 있었고 나폴레옹 시대에도 공업에 대한 엄청난 투자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과연 프랑스를 농업 중심의 국가만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나폴레옹 시기의 프랑스는 곡물 수입국이었는데 말이죠.
    사실상 산업혁명은 속도의 차이는 차치하고 영국과 프랑스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맞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의 승자인 영국쪽에 유럽의 자본이 몰리면서 프랑스의 공업이 몰락하고 영국이 산업혁명을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5 이뤘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요?
    감히 묻겠습니다만 18~19세기의 영국, 프랑스 양국을 비교해 보았을 때 영국이 우세를 차지하게 된건 초기 19세기 이래, 나폴레옹 전쟁 이후 아닌가요?
    어째서 영국에서 진행된 산업혁명이 해협 바로 건너에 위치한 프랑스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을거라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앙집권, 법률, 인구 어느 것도 프랑스가 뒤지지 않는데 말이죠.
    심지어 나폴레옹 프랑스는 구체제가 확실히 무너진데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폴레옹 법전이 제정되고 유럽 대부분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두었으며 심지어 수도 파리는 유럽 학문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5 오스트리아나 러시아는 내륙국에 영국과의 거리차가 존재하는 등 여러 방해 요소가 있었다고 치더라도 대체 영국과 프랑스의 결정적 차이가 뭐길래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를 공업이 낙후한 농업국가로 판단하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식민지 인도? 면직 공업?
    어차피 막대한 전쟁 특수가 발생하고 유럽 전체가 거의 준괴뢰인 마당에 시장이 부족한것도 아니고 면직 공업이 산업화에 반드시 필수적인 것도 아니지 말입니다;; 면직공업의 발달 원인인 증기기관의 경우에는 할말이 없지만 노동 집약적 산업인 몇몇 산업외에는 증기기관의 존재가 그렇게 절대적이지도 않지 말입니다. 인구 차이도 있는데 어느 정도는 상쇄 될수 있죠.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5 그래도 프랑스 공업의 수준을 과장했다는 건 인정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압도적인' 이런 표현을 썼더군요. 오밤중에 글쓰느라 실수한것 같습니다.
    그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프랑스의 공업이 많이 진전되었다.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추가로 출처한 링크는 원문 링크입니다. 간단히 정리된 내용은 아마 빵의 역사(하인리히 E. 야콥)에 어딘가에 들어있을 겁니다. 프랑스 제분기 발전사랑 곡물 수입에 관련해서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근데 이책이 더 스압이라스리ㄷㄷㄷ;;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5 델카이져님의 의견에 토를 달자면
    1. ㅇㅇ 동의합니다.
    2. 보통 현지조달에 의존했다고 말하지만 그거야 기동전이 쌩쌩하게 돌아갈 때 이야기고요. 러시아 원정 준비로 나폴레옹이 어떤 보급체계를 갖췄는지는 델카이저님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3. 딱히 매관 매직으로 관직을 얻은 장교들이 잘났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교육을 못 받을 환경은 아닌 사람들이었다는 의미었습니다. 사실 요지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매관매직했으니 쌤쌤이라는 의미었습니다만.
    4. ...?!
    다시 보니 왜 델카이저님께서 이 글을 제 글에 답글로 다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댓글 다실려다 실수하신건가?
  • 작성자 세계의적 작성시간13.05.24 Ir. Focus님이 지적하신 부분에서 나폴레옹 전쟁 말기 징집병에 조금만 더 보태자면, 1810년대에 이르면 대육군의 베테랑들이 대부분 소진되는 시기입니다. 거기에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병역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시기죠. 나폴레옹 집권 초기의 프랑스 군은 혁명전쟁에서 단련된 고참병들이며, 사상적으로도 잘 무장되고, 동일한 민족구성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우수했습니다. 그러나 말기에는 그 이전까지 프랑스 대육군이 지니던 이러한 장점들이 거진 사라지게 된거죠. 청년들은 징집관을 피해 도망가고, 탈영병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 작성자 푸른숲 작성시간13.05.24 사실 영국의 승리 원인은 딱 한글자로 요약할 수 있죠.



    좀 더 구체적으로는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해군, 국채

    해군때문에 때릴 수도 없는 상대가 영구채를 -프랑스 보기엔- 무한정 발행해가며 대륙의 동맹국들의 전비를 책임졌으니, 쇼미더머니 치트치는 상대와 싸우는 셈이죠. 그 쇼미더머니의 백업을 받는건 사실상 유럽 전역이었구요. 이래서야 아무리 혁명군이 졸라짱세고 나폴레옹이 킹왕짱이라고 해도(...) 결국 필패로 정해진 거죠.
  • 답댓글 작성자 배달민족 작성시간13.05.24 전쟁의 전개과정이 다르긴 해도. 돈과 해군이 있던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밀리지 않았나요??? 단순히 그렇게만 보기에는 쫌 ㅎㅎ;;
  • 답댓글 작성자 푸른숲 작성시간13.05.24 스파르타는 걸어서 아테네를 공격할 수 있었고(...) 프랑스는 불가능했죠. 동맹도 스파르타가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았구요. 아테네의 경제력과 해군력을 갉아먹은 역병 크리까지 떴습니다. 더군다나 차원이 다른 슈퍼파워인 페르시아의 개입까지 있었으니까요. 구도가 전혀 다르다고 봐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조차 아테네는 해군력이 지속되는 동안, 30년 동안이나 버텨낼 수 있었고, 스파르타 해군이 약화될대로 약화된 아테네 해군을 격파하고서여 스파르타가 승리했죠.
  • 답댓글 작성자 델카이저 작성시간13.05.24 스파르타는 아테나보다 훨씬 엄청난 쇼더머니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_-;; 스파르타의 함대는 페르시아의 자금 지원에 의해서 건조되었죠..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그리스 놈들이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면 앉아서 이익인지라 두둑히 밀어 주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Ir.Focus 작성시간13.05.25 덧붙이자면 대륙 봉쇄령 이전, 최소한 러시아 원정 전까지는 프랑스의 동맹이 스파르타의 동맹보다는 우월했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페르시아는 전비를 지원했지 군사적 지원은 그닥이었지만 프랑스는 적어도 외관상 서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랜드 아르미도 결국 전유럽적 군대였고. 러시아 원정이 실패하며 육군이 재건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이탈한게 컸죠.ㄷㄷㄷ 본국이 맛이간 상태에서 이건 치명적인 외교적 손실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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