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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로마. 경제력과 군사력.

작성자무장공비|작성시간04.10.27|조회수857 목록 댓글 13
안녕하십니까. 늘상 눈팅만 하다가 꼬리글에서 깽판치는 무장공비라고 합니다.

현재 네이버 무식인을 비롯한 여러 인터넷 게시판상에서는
[바보 @@ 매니아]들이 무수히 서식하고 있습니다.

@@에 심취한 결과 최고 융성기때의 단순 군사력으로 모든것을 판단,
@@을 천하무적의 자리위에 올려놓은후 신봉, 제대로 된 비판과 분석에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내뱉으며 지키려고 하려는 부류인데요.

이런 작자들은 무식의 소치라고 표현외에는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자들은 전쟁관을 다시 잡아줘야 한다고 봅니다.


전쟁이란 무력을 수반한 정치요
정치란 특정 이익집단(Ex:국가,민족,특수계급등) 원만 OR 과격한 이익추구 행위입니다.

전에도 누누히 꼬릿글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지요.


절대왕정 시대 프랑스 청동대포에 적혀있는 명문에도 단적으로 보이는 진리 아닙니까.


[왕의 최후논법]


결국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갈등하는 집단들 사이의 이해관계.
즉 [누가 더 재화를 많이 소유하느냐]를 살펴봐야 한다는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 심심한데 전쟁이나 할까?'라는 것은 절대 없다는 것이지요.
보통 전쟁이란 '오....좋은데? 저 놈들꺼 뺏어오자'로 시작하기 마련이지요.

심지어 전쟁이 기사라는 특수계급의 놀이 내지는 스포츠로 전락한 중세시대 마저
포로를 잡아 몸값을 받아 내는것은 중요하게 취급된 행동이었습니다.

역사속의 전쟁이란 제 아무리 추상적 관념으로 꾸미고 미사여구로 칭송해도
그 안쪽을 들춰보면 늘상 [밥그릇 싸움]이 들어있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관중 유물론적 사고에 기초한 [고대-중세 봉건주의-근대 자본주의]라는
딱딱한 역사 분할은 낡은것이라고 생각 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진실에 근접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점에서 바보 @@매니아들은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실수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 잡설이 길었습니다.... =ㅅ=;;


[바보 @@ 매니아]중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것은 바로 [로마]라는 존재입니다.

로마는 확실히 역사에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 획을 그은 강대국입니다.

하지만 나나미 아줌마의 책과 강력한 로마군단이라는 환상에 힘입어 그마만큼이나
몰지각한 빠돌이를 많이 만들어 내고있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숲의 서사시]라는 책을 뒤적 거리던 중로마가 어떤 경제적 동기로 정복사업을 시작했으며
어떤 원인으로 경제적 몰락, 그리고 이어지는 군사적 몰락을 경험했는지 오늘날의 석유에
비견할수 있을만한 [나무]라는 자원을 열쇠삼아 풀어보는 재미있는 대목이 있기에 한 구절
긁어 붙여 볼까합니다. 분량이 제법 되는 관계로 2~3회에 걸쳐서 타이핑을 해야할 듯 합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될시 자진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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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초기 로마의 원시림(기원전 600~300년경)>

아테네인들은 알키비아데스 통치시절,. 이탈리아의 무진장한 삼림자원에 매료되어 시칠리아
원정을 감행했다가 참담한 패배를 맛보고 말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위한 대규모 함대의
구축에 이용할 풍부한 목재산지를 찾고있던 아테네는 이탈리아를 갈망하였다. 이탈리아 반도의
일부 지역은 배를 만드는데 적합한 나무가 자라고있는, 유럽남부에서 몇 안 남은 재목 공급원
이었기 때문이었다. 전함건조용으로 가장 선호되었던 전나무와 은전나무가 로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서 자라고있었다.

로마와 그 주변은 숲으로 뒤덮여있었고 로마시의 행정구역들의 이름도 그곳에서 많이 자라던
나무와 관련이 깊었다. '라우레툼'이라는 언덕의 이름은 '월계나무숲'이라는 뜻이었고
'너도밤나무의 주피터'라고 알려진 구역은 너도밤나무로 뒤덮여 있었고 '참나무숲 관문'은
오래전에 사라진 참나무숲 자리였으며 '버드나무 언덕'은 바구니를 짜기위한 버드나무 가지를
베던 곳이었다.

로마 위쪽 테베레강 상류의 구릉과 산들도 삼림지대였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식물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라티움의 낮은 지대에는 월계수와 도금양과 멋들어진 너도밤나무가,
구릉에는 전나무와 은전나무가 자란다고 보고하였다.

로마 시대의 많은 저술들은 초기 로마 교외지대에 숲이 얼마나 울창했는지 짐작할수 있게
해준다.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해안도시 안티움 근처의 수풀은 볼키스족이 로마에 패해
도망칠때마다 은신처가 되어주었다. 숲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로마인들은 그들을 전멸시켜
버렸을 것이다. 라티움 바로 남쪽에는 그리스어로 '아르베니안 숲' 즉 '새가 없는 숲'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새들마저 들어갈수 없도록 나무가 빽빽하게 자랐다고 하여 그런이름이
붙여졌다. 로마에서 몇마일 북쪽에 자리잡은 키미니아 숲은 북유럽의 검은숲보다 뚫고
들어가기 어려워 장사꾼 조차 감히 그곳을 통과하여 지나가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사람이 그 숲을 통과하려고 하자 사람들은 수천년 전 길가메시가 삼나무숲을
공격했을때 처럼 흥분하였다. 그의 일행이 숲속에서 방향을 잃고 결국 참담한 최후를 맞이
할것이라며 로마 원로원은 출발을 막아나섰다. 하지만 그들은 키미니아 숲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한 채 모험에 나섰고 운 좋게도 무사통과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방인들이 감히 그곳에
들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숲의 원주민들이 그들을 동족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숲의 민족 로마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따르면 라틴족의 기원은 숲이었다.

"얼마 전 태어난 그대의 딸 라비니아는 왕이 되고 왕들의 아버지가 될 알바의 자랑
실비우스를 숲속에서 키우게 되리라. 그로부터 우리 민족은 힘을 가지게 되리니."

전설속에 나오는 로마 건설자의 어머니도 '실비아'라고 불렸는데,
이는 '숲속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기원후 2세기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로마의 선조들은 오래 묵은 크고 작은 숲에서 살았었다."라고 기록,
로마인의 기원이 숲이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었다.

또 기원전 4세기경 로마의 정치가인 카밀루스는
"로마인은 숲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망명자들과 목동들의 후손들"
이라고 연설했다.



<숲은 로마의 모체>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양육하듯이 숲은 성장에 꼭 필요한것들을 젊은 로마에게 주었다.
신화 속 로마의 건설자 로물루스의 어머니를 '숲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부른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애초에 로마인들은 먹을것과 잠잘곳을 참나무에 의존했다.
후세에 보존하기 위해 보존하고 있던 최초의 로마의 원로원 건물은 나무토막과 가지를 얽어
짠다음 그위에 진흙을 바른것이었다. 기원전 3세기까지 모든 집은 판자로 지붕을 이었으며
가구도 근처에서 나는 나무로 만들었다. 또한 커다란 너도밤나무와 전나무를 벌채해서 배를
만들 재목으로 수출하기도했다. 나무는 로마인들에게 좀더 발전된 세상으로부터 완제품을
들여오기 위한 가장 값나가는 교환수단 이었다.

남아돌만큼 나무가 풍족했던 로마인들은 기원전 갈리아인들이 그들의 도시를 불태웠을때도
아주 빨리 재건할수 있었다. 재건을 촉진하기위해 정부는 모든 로마인들에게 원하는 곳의
나무를 벨수 있도록 허락했다.



<주변 삼림의 상실(공화정 시대)>

로마가 성장함에 따라 온통 나무로 들어차있던 언덕들이 집과 건물로 뒤덮이기 시작하였다.
숲이 울창하던 해안가도 후에 로마의 대표적 항구가된 오스티아 같은 마을들이 들어섰다.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공간이 더 필요해졌고, 장애가 되는 나무들은 제거되어야 했다.

기원전 3세기 말 카르타고를 패배시킨 후 토지이용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숲의 훼손은
더욱 심해졌다. 전통적인 소규모의 자급 영농이 대규모 목축과 집약적 재배방식으로 바뀌었다.
농촌 전역에 걸쳐 농토가 숲을 잠식하였다. 농부들은 예전에 나무가 있던 곳에서 경작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늙은 삼림들이 벌체된 곳의 토양을 최고로 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숲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지르고 나무뿌리를 뽑아내면서 아직 농사를 지은적이 없는
평원이 쟁기질로 훤해질때까지 개간했다.

로마의 지식인들은 주변의 삼림손상과 그것이 지역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였다.
루크레티우스는 "경지 확장으로 숲은 나날이 산꼭대기로 밀려났다."라고 적었다.
베르길리우스는 숲의 벌채로 둥지잃은 새들이 자꾸만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삼림의 고갈을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야만 비로소 느꼈다
한가지 예가 연료값이 훨씬 비싸졌다는 것이었다.

희극작가 플라우투스의 작품속에는 그러한 상황이 잘 드러나있다. 한 여자가 어떤 군인을
자기 자식의 아버지라고 믿도록 속여 나무와 숯을 포함한 생활필수품을 대도록 만든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물품들의 값이 끝없이 치솟아서 여자는 군인에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쪼들린다"라고 불평한다.

그런가 하면 로마근교의 농부들은 나무품귀로 이익을 얻었다.
로마 최초의 농업기술 편람을 낸 카토는 농부들에게 포도밭 버팀목으로 쓸 나무를 키우고,
덩굴과 나뭇가지를 잘라내어 땔감으로 팔라고 가르쳤다.



<한 지도자의 관심>

공화정 말기 정치가 키케로는 원로원 토론에서 로마의 삼림 고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호민관 세르빌리우스 룰루스는 중요한 국유림 한곳을 민간인에게 팔자고 원로원에 제의했다.
키케로는 룰루스의 제안을 보존보다는 개발을 앞세우는 토지관리 정책의 탐욕스러운 예라며
"그자는 앞뒤를 가리않고 자기 포도밭 앞의 숲을 팔아버리는 사치스러운 방탕자와 같다"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키케로는 룰루스의 제안을 기각시키기 위해 국가적 이익을 내새웠다.
즉, 중요한 삼림을 잃는것은 전쟁수행 물자를 잃는것과 같다고 호소한 것이었다.



<숲의 정복>

그러나 로마 공화정의 정책은 키케로가 호소한 보존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정복을
통해 숲이 우거진 삼림지대를 로마영토에 편입시키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기원전 2세기초
라구리아를 복속시킨 것도 그런 정책의 한 예이다. 이탈리아 북부해안에 있던 리구리아는
조선에 적합한 막대한 못재들의 산지였다. 키미니아의 울창한 삼림을 벌채했고 움브리아의
숲들도 손에 넣었다. 또한 오늘날의 토스카나 지방에 해당하는 에트루리아를 정복하여 곧고
긴 재목들을 얻었다.

기원전 3세기 말 갈리아인들로 부터 빼앗은 포강 유역의 삼림에서는 도토리가 엄청나게 열려서
그것으로 모든 로마인들을 먹일수 있을만큼 많은 돼지를 키울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을
정도였다. 도토리 뿐만이 아니었다. 무수한 용도로 쓰이는 피치도 많이 생산되었다.

피치로 방수처리를 하지 않은 배는 바다에 띄울수가 없었으며 밧줄도 오래가지 못했다.
포도주 양조자들도 술통의 틈새를 막고 향을 내는 데 피치를 사용했다. 피치는 약으로도
쓰였다. 환자들은 말할것도 없이 의사들조차 그것을 거의 만병통치약쯤으로 생각했다.
피치를 그냥 혹은 다른것과 섞어서 쓰면 뾰루지, 기침,폐병, 진무른 상처,종기, 피부궤양등에
효험이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포강유역 곳곳에서는 피치를 만드는 가마들이 즐비
하였다.

그와같은 값진 수출품들로 포강 유역은 기원전 1세기에 이르자 로마에서 가장 흥청거리는
지역이 되었다. 이일대가 한때는 로마병사들이 토착 갈리아인들의 매복공격을 받아 항상
경계해야 했던 원생지대였음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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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피치란?>

나무를 숯으로 만들때 같이 생성되는 검은색 기름으로 목(木)타르라고도 합니다.
목재의 열분해로 생긴 여러가지 천연기름들의 혼합물입니다.

(한마디로 생나무를 짤라다가 태워야 나오는 물건이라는 이야기 ㅡ,.ㅡ;; )

재료 목재의 종류마다 약간씩 다른 특유의 냄새가 있으며
성분중에 알데히드,페놀등의 성분도 포함하기 때문에 방부성,살균성을 띱니다.

고대에는 본문중 묘사된것처럼 살균,방부제 내지는 방수재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한방에서 말하는 목정(木精)이 바로 이것으로
개중 참나무의 피치는 목초액으로도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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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 지치는군요-_-;; 쉬엄쉬엄 천천히 타이핑을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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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prajuna | 작성시간 04.10.29 피치는 지금은 석유에서 뽑아내어 도로를 포장하는데 쓰는 아스팔트 같은건데, 우리나라 소나무에도 있습니다. 일제가 산의 소나무를 잘라내어 뿌리를 가마솥에 삶으면 위에 기름이 뜨는데 이걸로 비행기를 날렸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제가 본 이야기에는 나무만 아니라 들판
  • 작성자prajuna | 작성시간 04.10.29 이 황폐화 됨에 따라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숲이 포도밭으로 바뀌고, 포도밭이 올리브밭으로 바뀌고, 올리브밭이 전쟁으로 불타 초원처럼 되었다가 불모지가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일례로 로마의 곡창지대중 하나가 북아프리카였는데, 지금 거긴 농사가 잘 안 되어 로마시대에 곡창지대였다는것이 믿어지질
  • 작성자prajuna | 작성시간 04.10.29 않죠. 그리고 나무 기름에 알데히드와 페놀성분등 벤젠기들이 많이 있지만, 지금도 그런걸 약재로 쓰기도 합니다. 이른바 목초유라고 해서 팔더군요. 왜 인체에 좋은지 식약청이 분석까지 해 놨던데, 알데히드와 페놀기가 있다고 다 해로운건 아니더군요.
  • 작성자작은영웅 | 작성시간 04.10.30 역사는 순환의 반복~ 돌고 돈답니다~로마가 있으면 고트족이 나오고 신성로마가 있으면 징기스칸이 나오고~ 독일이 있으면 미국이 나오고~ 미국이 있으면 테러가 나오고~역사는 자신의 보고 싶은 시점에 보고자 하는 것이 누구나 느끼는 관점이 아닐까하네요..누가 맞네 틀리기 보다는...비판적인시각은자신의능력이겠죠?ㅎ
  • 작성자princabs | 작성시간 04.11.02 음.. 소금과 철이 아닌 나무가 그렇게 중요한 자원이었군요.. 하긴 나무라고 다 같은 나무가 아니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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