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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비잔틴의 부활(4)

작성자見山水味|작성시간03.09.25|조회수397 목록 댓글 1
(4) 제국의 부활

황제 로마누스는 무역로 개척을 실시했다. 상황은 반전이 되었다. 여지껏 비잔틴 제국에 밀사를 파견하고 동맹을 청해오던 유럽국가들과 아랍 국가들... 이젠 부지런히 사제들의 힘을 빌러 동맹을 맺으러 떠나 보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재정으로 무역함들과 전투함 제조에 힘을 기울렀다. 요즘들어 부쩍 국가의 암묵 하에 공공연히 해적들이 날뛰었다. 그리고 그런 해적들로부터 보호할 전투함이 필요했다. 언젠가는 이태리가 자신들의 무역이 비잔틴에 뒤지자 곧바로 전쟁을 선포! 비잔틴의 함선들만이 침몰시키고 휴전을 청해왔던 것이다. 모든 걸 알고 있지만 아직 힘이 없음을 비관했다. 그리고 서서히 힘을 비축하면서 다른 국가들 몰래 군사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기존의 보병들의 훈련을 고도화 시켜 용맹성을 늘렸고, 새로운 군대를 영입했다. 비잔틴 기병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활로써 적 전력을 소모시킨 후 일제히 돌격하여 순식간에 싸울 의지를 꺽어버리는... 비록 대제국 로마의 전술과는 사뭇 다르지만 황제는 자신이 지난날 터키 토벌전에서 터키의 기마 궁수들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것에서 착안한 병종이었다. 그리고 또한 유럽과 같이 다양한 병종의 보병을 생산하기에는 앞으로 수복해야 할 영토가 넓고 방대했다. 따라서 대기마전이나 대보병전의 양쪽 방면에 뛰어난 병종의 개량에 절실한 필요성을 느꼈으니, 그것이 바로 전성기 중세에 가장 특출한 보병전력인 바랑호위대의 탄생이었다. 기병은 기존의 카타프락토이기병을 재정비했으며, 트레비존드 지역에서만 생산되던 궁수들을 개발항여 니케아에서도 생산 가능하도록 하였다. 부활을 위한 준비를 한지 언 12년, 황제의 젊음을 다 바쳐 기틀을 잡았다. 이제 재정도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옛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재탈환하여 그곳을 다시 발전시킬 만한 재정이 되었다. 이렇게 바쁘게 부활을 준비하는 중에 이미 해상권은 비잔틴이 독보하기 시작했다. 이태리는 종종 전쟁을 일으켜 함선만을 공격하는 비열한 전략을 썼지만, 이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다. 함선의 개량과 교체, 기존의 갤리에서 무역선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전투함의 역량을 갖춘 파이어 갤리와 워 갤리로 전부 교체가 완료되었으며, 이태리가 그 비열한 수법을 쓸때마다 이제는 오히려 반격으로 그들의 함선만 축나고 말았다. 또한 만약을 대비하여 시칠리아 섬 북쪽에서 함대를 배치 워갤리로만 11척, 막강한 무적함대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보였다.
업그레이드 된 기존의 병력과 새로운 병종들을 하나의 군단으로 편성했고,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그때였다. 독일로부터 첩보가 들어왔다. 독일의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는...
황제는 미루어 오던 전략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의 재빠른 반응은 바로 실천으로 이어졌다. 예비 군단을 포함한 총병력 2만5천! 정규군이었으며, 엄청난 훈련을 겪은 용맹이 뛰어난 병력이다. 선봉 군단이 출진했다. 독일의 십자군 뿐만이 아니었다. 이집트와 의 전쟁에서 안티옥을 삼켜 막강한 재정력을 확보한 터키의 군대도 옛 비잔틴의 영지인 트레비존드 지역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선봉군단이 떠난지 1년, 바로 전령이 날아왔다. "폐하 선봉군단이 무사히 콘스탄티노플에 들어섰으며, 반란군은 요새에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하옵니다." 낭보였다. 그 옛날 부황의 꿈을 접게 했던 반란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국제정세 미묘함 속에서 정리되지 못하고 12년간이나 전투 없이 보낸 반란군, 그들에게서 옛날의 매서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황제는 독백했다. "그래 숨쉴 틈도 없다. 모든 것은 시간에 달려있다." 황제는 재빨리 명령하였다. "선봉군단에게 명을 전하라! 요새 탈환은 하지 말고 곧바로 불가리아를 공격하여 반란군을 소탕하라!" 좌중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왜 수도를 탈환하지 않고?" 그러나 대답할 여유도 없이 곧 바로 진군명령이 또 떨어졌다. "3군단장은 명을 받으라, 지금 바로 함선을 통해 그리스를 회복하라!!"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는... 3군단장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옛 선황을 따라 전장을 휘져은지 어언 20년, 그 선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황제다운 로마누스 4세... 그는 곧 바로 명을 받들고 출전하였다. "2군단장은 명을 받들라" " 지금 곧 콘스탄티노플로 짐이 친히 지휘할 것이니라" 예~ 폐하. 2군단장이 나간 뒤 이제서야 좌중은 황제의 전략을 이해했다. "그랬군, 시간이군!"

독일, 동유럽의 정세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서유럽과 남유럽 진출을 꾀하는 중이었다. 황제 오토 3세, 좌중엔 황금빛 일렁이는 각 영지의 군주들로 꽉 쳐워져 있으며, 절대적 권위의 황제를 알현하고 있었다. "흠~ 요즘 영국의 동향은 어떠한가". 우리가 스코트랜드를 점령한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합니다. "하하하 그래! 그건 그렇고 프랑스는...." 폐하 황송하오나 프랑스의 국력이 날로 성장하여 지금 영국과의 전면전에서도 뒤지지 않사옵니다." 황제는 한참을 생각한 뒤 " 지금 곧 병력을 프랑스 국경으로 돌리도록 하여라~" 일순 좌중은 술렁였다. "프랑스와 전쟁을??" 그러나 황제 오토는 "하하 약간의 긴장감도 좋지!" 하면서 좀체 그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때 숨을 할딱거리며 밀사가 찾아왔다. "폐하 터키와의 동맹을 위해 떠났던 밀사가 돌아왔사옵니다." "음~ " "그래 요즘 아랍쪽은 동향이 어떻던가?" 이에 밀사는 숨겨를 틈도 없이 곧바로 직언했다. "폐하 아랍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 "으음??? 그건 무슨 소리인가?" 밀사의 말은 곧 이어졌다."폐하 지금 완전히 소멸된 것 처럼 보이던 비잔틴이 콘스탄티노플 재탈환과 함께 불가리아와 그리스 지역을 수복했다 하옵니다." " 또한 동유럽의 헝가리, 폴란드 등과 동맹을 맺고, 주 병력을 니케아로 이동하여 터키와 전면전을 시작했다 하옵니다." 일순 좌중을 조용해 졌다. 때로는 수근거리며 비잔틴의 왕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황제 오토 또한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 아니 비잔틴이 난데없이 그 병력을 어떻게 모았단 말인가" "터키 쪽의 스파이를 통해 들은 바로는 로마누스 4세는 12년 동안 무역을 통한 재정확보와 해상권 장악으로 재정이 풍부해졌으며, 그 재정으로 조금씩 병력을 모아 군단을 편성하고, 단 2년만에 불가리아 그리스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였다 하옵니다" 오토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영지 1개의 부끄러운 제국, 동맹의 사신이 찾아와도 얼굴조차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성장할 줄이야" 오토황제는 비잔틴이 이미 쇠퇴했으며, 곧 터키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사실 황제 로마누스는 아직 터키와는 전쟁을 서둘지 않고 있었다. 북쪽이 정리되는데로 다시 군사력을 모아 그때서나 터키와 전면전을 해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계획은 빗나가고, 터키의 1군단이 콘스탄티노플을 기습했던 것이다. 그러나 2천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였으며, 황제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 전령은 들으라" "예 페하!" "지금 곧 각지 군주들에게 명하여 각 영지에 해당하는 예비병력을 준비하라 이르라!" 그리고 곧 다시 명령이 하달되었다. " 지금 곧 1군단과 2군단 3군단은 해로를 통해 1군단은 트레비존드를,,, 2군단과 3군단은 소 아르메니아로 진군하라" "그리고 새로운 군단인 5군단과 6군단은 소아시아를 향해 진군하고 제4군단은 니케아를 방어하라" "그리고 안티옥을 담당하던 함대는 곧바로 터키의 함선을 공격하여 적의 수로를 막아라" 이는 터키의 멸망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황제는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끄는 전쟁은 소모 뿐이라는 것을... 완전 점령을 위해서라면 숨쉴틈 없이 들이쳐야 한다는 것을...
1년 후 소아사아에서 터키의 술탄이 직접 이끄는 주력군을 섬멸하므로써 터키는 더이상 싸울 힘을 잃고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였다. 소아시아 전투는 지금 껏 없었던 가장 대규모의 병력이 투입되었으며( 비잔틴 1만 2천 : 터키 1만3천) 사상 유래 없는 치열한 전투였다. 그만큼 이 전투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터키로써는 적의 예봉을 안방에서 꺽을 수 있는 기회였으며, 곧바로 기습에 의해 점령된 소아르메니아와 트레비존드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그 한번의 전투로 터키는 영영 사양길로 들어서고 만다. 이 전투에서 비잔틴은 예상밖으로 피해가 크지 않았다.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것은 곧 새로운 점령을 예상할 수 있다. 소아시아 전투에서 이긴 황제는 곧 5군단에게 명하여 소아르메니아 수비를 부탁하였다. 일종의 휴식이었다. 6군단에게는 이미 터키병력 소진된 그루지야 평정을 맡겼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일지도 모르는 안티옥 점령을 위해 소아르메니아에 나머지 군단를 집중시키고 또한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 불가리아 니케아에서 새로 투입된 예비병력으로 병력을 보충한 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터키에 눌러 꼼짝 못하던 이집트가 꿈틀거리더니 잃었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회복하고 있다. 그런데 몇 안되는 해군력을 동원하여 곧바로 안티옥을 기습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안티옥의 터키 잔류병력은 상당했다. 대제국 비잔틴도 지금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아마도 잘못된 정보로 인한 기습이었을 것이다. 황제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병력 1-2천이 해로를 통해 이동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이집트가 전투에 패퇴하고 퇴각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터키 진영을 보니 상당히 군세가 꺽여있었다. 그만큼 터키는 사기를 잃었던 것이다. 곧바로 비옥한 무역의 도시, 또는 제2의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리우는 안티옥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전쟁은 예상 밖으로 간단했다. 이집트와의 전투가 치열했는지, 병력도 얼마 있지 않았다. 단 1개의 군단으로 안티옥을 점령하고, 그루지야 평정을 완수한 6군단에게 명하여 아르메니아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또한 소아르메니아에 있던 나머지 군단에게도 터키의 에데사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보석의 영지라 불리우는 터키의 에데사, 터키 공격 5년만에 터키의 멸망이 눈 앞에 다가왔다. 선황과 함께한 소탕전에서는 패했지만, 이제는 성공했던 것이다. 그 때였다. 황태자가 성인식을 치룬지 몇년 안되 둘째 왕자가 성인식을 치뤘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둘째, 항상 영특했고, 전략에 대해서도 뛰어났던 그였다. 그런 그가 성인식을 치루고 보니, 그 능력이 거의 대장군의 수준에까지 들어섰던 것이다. 그러나 태자를 제치고 2왕자 3왕자가 등극했을 때 제국내에서는 항상 내란이 있어왔던 터라 지금 제국이 안정기에 접어들어야할 시점에서 그런 문제는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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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찬선 | 작성시간 03.09.25 비잔틴의 특수 기술.. --; 치열한 궁중 암투의 전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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