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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비잔틴 이야기 1

작성자겨울달|작성시간04.02.21|조회수371 목록 댓글 5

<황제 알렉시우스 1세>

1087년, 동로마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아나톨리아 고원에 서서 자신의 영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고립무원.... 황제는 문득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그의 앞에 떠오른 것은 빛나는 거리였다. 동쪽으로는 바다를 끼고 서쪽으로는 평야가 펼쳐진 도시. 로마로 가기위한 황금색의 문과 도심에 위치한 교회,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자신의 궁전을 떠올리며 그는 미소지었다. 그곳에 서서 그는 궁전 옆에 있는 대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귀족들의 집회장소이며 대중들의 위락소, 때로 그 곳에서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장군이 흰 백마가 이끄는 수레에 올라 경기장에 모인 로마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했다. 사방으로 뻗은 거리의 시장은 온갖 나라에서 모인 상인들로 활기를 띄었다. 서방, 동방, 이슬람의 상인들이 모여선 그 곳은 부와 번영의 광채를 언제까지고 잃지 않고 있었다. <프로파이데이아>(지금의 초등학교 보통 8~9살에 입학)에서 나오는 어린 로마 시민은 천진난만함과 시민으로서의 교양을 가지고 있었고 <파이데우테리온>(중등학교 정도 대략 10~11살에 입학)에서 나오는 아이는 제법 수사법을 익혀 자신의 언어를 미려하게 장식할 줄 알았다. 이들은 장차 로마의 관료나 장군이 될 국가의 도량이었다. 그럼에도 당장은 아이의 천진함을 벗어날 수 없는지라 그들은 거리를 뛰어다니며 햇살과도 같은 웃음을 뿌리고 있었다.

“폐하, 차비가 끝났습니다.”
난데없는 방해에 황제는 눈을 떴다. 바로 앞에 있던 콘스탄티노플의 정겨운 광경은 금세 온데간데 없어지고 황량한 고원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런가?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간다.”
황제는 속주들의 순행을 마치고 수도로 귀환하는 중이었다. 이번 순행에서 황제는 속주들의 사정이 수도와는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수도를 제외한 로마에서는 일반적으로 농업이 생계유지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잔틴의 농업은 절망적으로 정체되어 있었다. 기술진보는 기껏해야 이중괭이의 발명에 그쳤고, 농업 개론서는 겨우 고대 라틴어 책을 요약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확실히 이것은 큰 문제였다. 로마황제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보편주의에 입각했다. 즉 로마의 지배자는 기본적으로 전 세계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하지만 당장 비잔틴의 영토조차도 그의 권력이 미친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된 곳이 많았다. 콘스탄티노플과 다른 곳은 그 차이가 너무도 심했다. 수도의 주 수입원은 농업이 아니라 상업에서 거둬들이는 <코메르키온>이었는데, 모든 상품에 10분의 1을 책정하는 이 세금은 수도가 무역의 도시임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수입이 아닐 수 없었다. 토지의 가치에 비례하여 얻는 세금도 있었으나 코메르키온에 비한다면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수입을 속주에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부족한 수입은 그만큼 군사력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것도 문제였다. 따라서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이번 순행에서 얻은 황제의 최대과제였다.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오자 신하들과 황후, 공주 마타선다, 그리고 이제 성인이 된 황태자 알렉시우스 2세가 맞았다.
“로마의 영광을 지니신 황제폐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하나이다.”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여 그대의 아름다움은 날이 갈수록 더하는구려. 비너스의 질투를 받을까 심히 걱정이오.”
황후의 문안을 받으며 황제는 황후를 넌지시 치켜세웠다. 자신이 순행을 할동안 국정을 도맡아야 했으니 이정도의 인사는 값싼 축에 속하리라.

돌아오자마자 그는 회의를 열어 자신이 옥좌를 비운동안 쌓여둔 보고를 받았다. 독일이 연간 최고수입을 올렸으며 왈라키아의 반군들은 헝가리의 공세로 패퇴하였다는 보고였다.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있던 황제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보고는 황제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황명의 전달과 외교를 맡은 부서 <드롬>에서 교황이 황제의 동맹제의를 거절했음을 보고한 것이다.
“우리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폐하, 우리의 사절은 그가 가진 모든 기량을 발휘하여 설득을 하였으나 교황은 공동의 적을 공격한다면 한번 고려해보겠다고 할 뿐, 그 외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나이다.”
황제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갈라졌을 지라도 선대의 황제들은 동방의 대주교보다 이탈리아의 교황을 더 높이 대우하고 있었다. 즉 동로마 황제 스스로가 교황 겸 속세의 최고군주인 황제를 겸하고 있었어도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에서 판단을 얻지 못할 때 항상 자문을 구할 정도로 옛 로마의 교황을 대우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비록 교리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로마의 교황이 황제의 제의를 거절하는 것은 기분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게다가 공동의 적이라니, 이슬람의 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비잔틴에게 있어 이슬람은 적대시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종교의 다름을 이유로 삼는 것이라면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황제를 인정치 않는 저 발칙한 서방의 이교도들도 매한가지이거늘....
“어떤 오해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밀사의 잘못도 있을 수 있으니 다른 밀사로 하여금 다시 동맹을 추진토록 하라. 기존의 밀사는 옛 로마 주변의 속주들을 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토록 할 것이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경계탑과 국경 수비탑의 건설경과는 어떠한가?”
“이미 모든 지역에 건설을 끝냈습니다. 폐하”
대답을 한 것은 국가재정 부서 <제니콘>의 수장인 케사리온이었다. 순행에 나설 무렵에 황제는 이미 국경 수비탑까지의 건설을 명해 놓은 바 있었다.
"순행을 나서보니 각 지역의 행정업무와 안보 등이 조직화되기 위해서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소. 최소한 목조성까지는 지어져야 할 것이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다만 각 지역에 동시에 건축을 시작하면 재정난이 야기될 것이 심려스럽사옵니다.”
“제니콘에 일임할 것이다. 또한 목조성 이전에 안보에 당장 위험이 없는 지역은 농업개량에 힘쓸 수 있도록 유도하시오.”
“알겠사옵니다 폐하”

황제의 시선은 <스트라티오시곤>(군 담당)을 맡고 있는 로마누스에게 옮겨졌다. 로마누스는 현재 군을 담당하기도 하거니와 황태자 알렉시우스 2세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헝가리가 왈라키아 반군을 제압하고 그 일대를 점령했다고 들었소. 이제 우리와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형편인데 어찌 생각하오?”
“저 미개한 무리들이 비록 반군의 무지렁이는 제압하였지만 위대한 로마제국에 반기를 들 생각은 못할 것이옵니다. 또한 만약을 대비하여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불가리아 지역에 군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제니콘의 도움을 받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사옵니다.”
황제는 이것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반군 지역은 세르비아와 왈라키아였는데 이들이 조직적으로 연계하지 못한 것은 비잔틴의 불가리아가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왈라키아가 점령당한 이상 헝가리는 세르비아까지 도모하려 할 것이 뻔했다. 황제는 선수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왈라키아와 달리 세르비아는 바다와 인접했을뿐더러 금광을 보유하고 있어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상당히 유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태자 알렉시우스는 어떠한가? 성인식도 치뤘으니 이제 황제를 대신하여 당당히 군을 이끌고 출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미 태자께서는 5성 장군의 기량을 갖추고 계시옵니다. 지금 당장 군을 이끌어도 손색이 없사옵니다.”
“좋다. 태자를 군의 총사령관으로 삼아 세르비아 지역을 제압하도록 명하노라. 저 미개한 무리들을 제압하여 로마의 영광을 드높히는데 앞장설 지니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폐하에게 신의 은총을! 로마에게 영광을!”
1093년, 황태자 알렉시우스는 4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세르비아 진압을 위해 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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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나베싱 | 작성시간 04.02.22 오옷... 비잔틴제국이 드디어 원정을 향한 첫 발걸음을 하는군요... 근데 그사이에 투르크나 이집트가 딴지걸면 대략 낭패일듯...
  • 작성자파란안개 | 작성시간 04.02.22 '공동의 적을 공격한다면 한번 고려...' 라는 문구는 정말 짜증난다는 -_-;; // 그 혈통좋은 비잔틴에서 5성장군이라.. ;; // 게임을 바탕으로 한 소설[?] 이라; // 다음편 기대합니다;
  • 작성자초록마르스 | 작성시간 04.02.22 잘 쓰셨습니다만.. 한가지 딴지를 걸자면.. 알렉시오스 1세의 후계자는 알렉시오스 2세가 아니라 요안네스 2세입니다..
  • 작성자겨울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2.22 아....그건...제가 멋대로 소설처럼 줄거리를 덧붙였지만 기본 뼈대는 어디까지나 싱글스토리 진행이어서요. 현재는 알렉시우스가 태자로 나와 그냥 2세라고 붙였습니다....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신격카이사르 | 작성시간 04.02.22 오호...글을 아주 잘쓰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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