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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비잔틴 이야기 5

작성자겨울달|작성시간04.02.27|조회수96 목록 댓글 0

“그런 무모한....태자는 그루지야의 병력을 몰살시킬 셈인가?”
250명의 병력으로 1000명의 적을, 그것도 술탄의 정예병력을 공격하다니 말도 안돼....놀란 것은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옵니다 폐하. 그루지야의 군사는 적을 혼란시킬 목적으로 출격하는 것이옵니다. 그 사이 우리는 소 아시아로 진격해야 합니다. 술탄의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소 아시아의 병력도 태반이 비어있는 상태이옵니다. 그러나 소 아시아는 그들에게도 중요한만큼 우리가 나아가면 그곳을 지키기위해 급히 돌아올 것입니다. 이때 그루지야에서 아르메니아로 공세를 펴면, 적군은 병력을 나눌 수 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그루지야군은 어디까지나 공격할 모양만 보일 뿐, 적이 맞서싸우려하면 바로 퇴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폐하의 군은 소 아시아를 장악할 수 있고 만약 아르메니아를 포기하면서까지 이곳으로 저들의 전병력이 달려온다면 우리는 그곳을 지나쳐 곧바로 소 아르메니아의 아군을 먼저 구해도 괜찮을 듯 싶사옵니다. 소 아르메니아의 포위군을 섬멸하면 그 뒤에 다시 소 아시아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황제는 속으로 감탄했다. 태자는 이제 전쟁의 판세를 읽고 있구나.... 그의 폭넓은 전략적 식견에 감탄하면서도 황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물었다.
“아나톨리아의 투르크군은 어찌해야 하겠느냐.”
“비록 니케아의 구원군이 패하기는 하였으나 저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은줄로 아옵니다. 현재 저들의 병력은 아나톨리아를 지킬수만 있을 뿐,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이제 동생 마뉴엘도 훌륭한 장군의 기질을 보이고 있으니 그로 하여금 아나톨리아를 탈환토록 하시옵소서. 이미 6성의 출중한 기량을 갖추고 있어 저를 능가하고도 남으리옵니다”
황제는 그리스에 있는 셋째 마뉴엘을 떠올렸다. 그래, 그녀석이라면 아나톨리아를 되찾고도 남을 것이다. 태자의 계책을 들으며 황제는 내심 기뻤다. 황통에 이만한 자식들이 있으니 앞으로도 황가의 안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장군들의 견해는 어떠한가.”
누구도 이의를 다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태자의 전략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태자의 의견을 따라 우리는 소 아시아로 진격할 것이다. 그루지야에 전령을 보내 상세한 지시를 내리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회의는 이것으로 끝났다. 황제는 썩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태자가 황가의 위엄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틀 후, 비잔틴군은 소 아시아를 향해 출발했다. 도합 1020명의 군세였다. 같은날 그루지야의 군대도 아르메니아를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이탈리아 반도 남쪽 끝의 섬, 저 유명한 포에니전쟁의 발화점이 되었던 땅 시칠리아에서도 회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비잔틴과 달리 그곳의 회의는 가냘픈 촛불들 사이로 어둡고 음습한 음모의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의 제안에 대한 교황의 반응은 어떠한가?”
“그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확답을 듣지는 못했으나 밀사의 보고로는 상당히 흔들려하는 눈치였다고 하옵니다.”
“당연히 그럴게다. 그정도의 조건이라면 넘어가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그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조차 없다. 교황은 우리의 행동을 묵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 세르비아의 진행상황은?”
“그곳에 주둔중이던 비잔틴의 태자가 투르크와의 전쟁으로 성을 비운 터라 순조롭습니다.”
“군대의 출정준비는 빈틈없으렷다?”
“이미 주군의 명령 한 마디면 나폴리는 하루도 걸리지 않아 쑥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시칠리아의 군주는 낮게 웃었다. 나폴리공략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는 나폴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진행해왔다. 비잔틴이 투르크와 전쟁에 들어간 것은 신이 주신 행운이었다. 또한 비잔틴의 관심을 돌리기위해 세르비아로 파견한 밀정은 주민들을 선동해 다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황이었다. 아직까지도 비잔틴과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지 못한 교황은 자칫하면 나폴리공략을 저지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의 군주는 교활했다. 그는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나폴리를 차지하면 수입의 40%를 바치기로 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살피는 그에게 있어 이제 교황과 비잔틴황제는 가까이 하기 힘들어보였다.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할 것이며 교황은 교황령 이탈리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는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거점으로 삼아 지중해 해상과 무역의 패권을 차지할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는 눈을감고 이탈리아의 지도를 떠올리며 자신의 영토를 황금색으로 칠했다. 이제 축복받은 부와 번영의 도시는 콘스탄티노플이 아닌 시칠리아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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