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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비잔틴 이야기 9 (투르크전쟁 마지막-1)

작성자겨울달|작성시간04.03.10|조회수160 목록 댓글 2

비잔틴 이야기 9

<투르크의 멸망>

“기병은 나를 따르라!!”
혼전의 와중에 3황자 마뉴엘이 이끄는 카타프락토이 기병은 투르크군의 우익을 향해 전력으로 뛰쳐나갔다.
주로 농민병으로 구성되어 전투를 벌이던 투르크군의 우익은 완전무장의 비잔틴 기병을 보자 심하게 요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마뉴엘이 이끄는 40명의 카타프락토이 기병은 쐐기 대형을 이루어 성난 파도처럼 투르크군을 향해 나아갔다.

1118년, 투르크의 술탄 슐레이만 2세는 황태자 알렉시우스 2세의 예상대로 아르메니아를 뛰쳐나와 소 아시아에 18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도착했다. 황태자는 그루지야의 병력을 이용하여 아르메니아의 술탄을 견제하면서도 에뎃사와 시리아에 군대를 보내 유린토록 한 것이다. 이미 술탄의 병력을 지원하느라 두 지역의 저항은 미미했고 투르크의 왕자들은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어 처형당했다. 비잔틴군은 최소한의 주둔병력만을 남겨둔 채 소 아시아로 귀환했다. 아르메니아를 향해 거대한 그물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술탄이 소 아시아로 올 것이라던 황태자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소 아시아는 비잔틴 방면 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에뎃사, 시리아 등 투르크 영지와 맞닿아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적과 맞서기 전에 군대를 재편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군세는 대략 1400명, 그는 먼저 농민병을 해체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타그마타>(중앙군)와 <테메>(속주의 군대), 용병중에서도 정예만을 가린 뒤 나머지는 모두 해산시켰다. 남은 군대는 대략 1000명, 장군들의 반대가 극심한 것은 명약관화했으나 황태자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전투를 목전에 두고 군대를 줄이다니, 태자군과 합류한 황자 마뉴엘도 의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전장에서 병사들은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앞서면서 전투중의 시야는 극히 협소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전쟁터에서 개개인이 상황판단을 하는 기준은 ‘동료’와 ‘집단’에 있게 된다. 병사들은 싸우는 와중에 자신의 아군이 옆에서 같이 싸우고 있고, 자신이 속한 부대가 대형을 유지하고 있으면 힘을 내는 것이다. 이것은 개개인의 차원이지만 넓게 보면 그들이 속한 집단 전체의 사기와 전투력이 향상된다. 결과적으로 군대 전체에 영향을 준다. 즉, 군에 속한 부대들 자체도 유기적으로 서로에게 경쟁과 격려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한 군대는 결코 흐트러짐이 없다. 군대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다.
그러나 이는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전투시에 아군의 부대가 동요하거나 퇴각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악영향도 곧바로 군 전체의 사기로 직결되는 것이다. 황태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자신들보다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침착함과 용맹이었다. 농민병들은 경험이 적고 훈련도 덜 되었기 때문에 전투에서 쉽게 도망가기 쉬웠다. 그러나 그들이 쫓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른 부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알렉시우스 2세는 미리 그들을 해체한 것이다. 그의 결정은 옳았다. 최정예의 비잔틴 보병과 트레비존드 궁수, 용병들은 그들의 배가 되는 적군 앞에서도 침착했고 노련하게 대응했다.
전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바랑기안 가드였다. 얼마 전에 수도로부터 지원받은 그 부대는 비록 수는 많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도끼와 방패로 무장하고 적을 무자비하게 ‘도살’하고 있었다. 바랑가드가 밀집대형을 이루어 적을 맞으면 가장 앞줄에서는 피가 분수를 이루어 뿜어져 나왔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상대의 머리에 도끼를 박아넣는 그들의 모습은 투르크군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들 앞에서는 베두윈 낙타병도, 굴람 호위병도 힘을 쓰지 못했다. 덕분에 곁에 있던 비잔틴 보병까지 힘을 얻어 비잔틴군의 좌익은 수적으로 월등한 적을 효율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중앙군 역시 분투하고 있었다. 적의 보병을 맞아 비잔틴보병과 나프타 투척병, 트레비존드 궁수가 차례로 열을 이루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트레비존드 전투에서 보았듯이 나프타 투척병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들의 공격은 물리적, 심리적 타격을 주는 데 가장 적합했던 것이다. 그들의 뒤에서는 트레비존드 궁수들이 전열의 비잔틴 보병이 다치지 않도록 전선의 뒤쪽 투르크군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비잔틴군 우익의 상황도 중앙과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이 때 잠시 투르크군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투르크군의 중앙과 우익, 비잔틴의 입장에서는 중앙과 좌익에서 전투를 벌이다 퇴각하던 투르크의 농민병들이 나머지 한쪽, 좌익으로 몰린 것이다. 애초부터 투르크군의 좌익은 농민병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중앙과 우익의 농민병까지 가세한 것이다. 질적인 열세를 양적인 우세로 상쇄시키려 한 계획이 분명했다. 마뉴엘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원래 자신은 휘하의 카타프락토이 기병 40명을 이끌고 적의 굴람 호위병이나 베두윈 낙타병을 맞아 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적군 기병의 우회기동이 바랑가드의 놀라운 투지에 막히자 마뉴엘은 새로운 전술을 고안했다. 자신의 기병을 이끌고 농민병을 주축으로 한 투르크군의 좌익을 치고자 한 것이다. 곧바로 로마누스 장군과 세부적인 전술을 가다듬은 마뉴엘은 사령관인 황태자의 승낙을 받아 기병을 이끌고 투르크의 좌익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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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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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제국의명장 | 작성시간 04.03.10 글이 4덩어리로 뭉쳐 있는듯해서 읽기가 약간 불편하지만....
  • 작성자박영소 | 작성시간 04.03.12 게임을 바탕으로 한것이라 하셨죠?? 열심히 하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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