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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장기전이 되어 버린 전쟁-2차 중동전쟁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4.03.14|조회수222 목록 댓글 1
1136년에 시작된 오리엔트 대공세는 비잔틴 황제 알렉시우스2세의 생각과는 달리 효

과도 별로 없고 장기전이 되었다.이집트군은 아직까지 충분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

지고 있었던 것이다.그 예로 팔레스타인 지역에만 1500명.아라비아에 1200명.이집

트 본토에 1400명의 병력을 대기 시켜 놓고 있었던 것이다.당연히 기습공격의 결과

는 좋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쳐들어간 로마누스 군단장은 십자군의 요격은 격퇴시켰으나 곧

바로 이집트군의 공격을 받아 열약한 조건과 적은수로 이집트군을 격퇴하여 이집트

군 500여명을 사살시켰으나 곧바로 이집트의 대기병력이 2년후 2500여명의 병력으

로 공격을 하여 팔레스타인에서 퇴각하고 말았다.


한편 아리비아로 진격한 비잔틴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2세는 이집트 왕이 직접 지휘

하는 적군을 격퇴하여 600여명을 사살하고 왕을 포함하여 300여명의 포로를 얻는 대

승을 거두었다.그리고 그 다음해에 몸값으로 11700플로린이나 받을수 있었다.


그러나 아라비아 전선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비잔틴군은 병력의 부족으로 진전이 지

지부진했다.비잔틴군은 트레비존스 지역에서 대규모 용병부대를 고용하고 각 지역에

서 병력을 차출하는 한편 대규모의 해군을 조직하여 세르비아에서 부터 그루지야.트

리폴리까지 이어지는 해상루트를 만들어 군대와 무역을 편하게 하였다.


전황이 지지부진하고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신성로마제국의 깃발이 떨구어지던

1146년....비잔틴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2세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 다음의 계승자

가 18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그는 먼저 경제와 정치제도를 정비해 나가기 시작했다.부하들 중에서 정치적인 자질

(통찰력)이 뛰어난 자들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영주나 고관으로 임명시켰다.그리하

여 1142년에 연수익 8000플로린 이었던 제국의 재정은 1149년에 15000플로린으로 증

가하였다.그리고 무역도시 트리폴리.콘스탄티노플.그리스 같은 도시들은 연수익이

1000을 넘는 중요도시로 부상되었다.국고에는 무려 80000플로린이나 쌓여 있었다.


그리고 1150년.비잔틴군의 위대한 진군이 시작되었다.팔레스타인 전선에만 1500명.

아라비아 전선에 1200명의 비잔틴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다음해에는 마침

내 전선의 균형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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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혁수 | 작성시간 04.04.08 다음편도 부탁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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