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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왕 (여명기~1211)

작성자김정수|작성시간04.05.28|조회수337 목록 댓글 1
처음 프랑스 깊숙히 들어가 있는 툴루즈 지방을 프랑스로 부터 보호 하기 위해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그 후 평화 정책을 펴 가며 경제위주의 건설을 시작 대서양과 북해, 발틱해를 잊는 대 상선을 만들고 항구를 건설하였다.
세계 각국에 밀사를 파견하여 우리는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임을 알리고 동맹을 맺어 무역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였다. 마음 같아서는 지중해까지 진출하여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이끌어내고 싶었지만 현재의 조선 기술로는 개발과 유지비가 심히 걱정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스페인, 프랑스, 독일, 덴마크, 노브고로브를 상대로 무역을 해 나갔다.
초기 국경선이라고 해봤자 수도 런던을 포함하는 워섹스 지방을 제외하고는 병력배치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였다. 연근해 건너편인 프랑스의 영토 플랑드르에는 꽤 많은 병력이 배치 되어 있었지만 본국에는 병력을 크게 배치해 두지 않았다. 군비를 최대한 감축하면서 상대국과의 동맹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적정 수준의 병력만 배치하고 무역 중심의 경제발전을 이루어갔다.
경제가 탄탄해지고 많은 자금이 유입되어 갔지만 나날이 증가하는 프랑스군의 병력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보호무역을 토대로 최대로 수익성을 내고 있는 국가 또한 프랑스였다. 결국 평화를 고수하면서도 프랑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 군대를 프랑스의 병력과 비슷한 수준으로 재편성할 수 밖에 없었다. 군대의 편성에는 많은 자본과 유지비용이 들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영토를 조금이라도 늘여서 자본을 축적해야했다.
최근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북쪽의 하이랜더 연맹과 서쪽의 아일랜드계 캘트족들을 회유하여 아군으로 편성한 후 그 장군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작위를 내려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였다. 역시 돈으로는 안되는 것이 없군. 후후후.
아일랜드에서의 편성 군대를 영국 본토로 끌어들이기 위해 항구를 건설하고 동쪽의 노르웨이 지역의 바이킹족들을 하이랜더 연맹으로 하여금 몰아내게 하여 사실상 서유럽의 북쪽지역은 영국이 완전 소유한거나 다름 없었다. 그러던 중 노브고로브에서 이교도들로 인한 농민반란이 끊이지 않게 반발했고 그틈을 이용해 핀란드 지역까지 수복하는 행운을 누렸다.
서유럽에서는 십자군 창설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그 주 타겟은 알모하드와 이집트, 터키가 되었다. 사실 알모하드와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스페인과 알모하드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서 무역으로서 이익을 얻게 해주는 스페인과 동맹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알모하드와 무역하기에는 거리상 너무 멀었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의 가톨릭 국가들은 십자군을 창설하여 타종교 세력을 제거하는데 주력했다. 영국도 거기에 가세하여 당당히 가톨릭 국가임을 내세우며 아프리카에 작은 땅이라도 하나 얻기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알모하드가 멸망할 때까지 1평의 땅조차 얻을 수 없었고 나의 십자군은 결과적으로 스페인의 영토를 엄청나게 확장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농민반란을 틈타 베니스 지역의 땅까지 진출하였다. 알모하드의 세력이 너무 커져서 유럽 가톨릭 세계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여 스페인을 지원하였지만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괴물을 만들어버렸다. 동부에서는 비잔틴이 터키와 이집트와 전쟁을 하면서 영토를 엄청나게 확장시켜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노브고로브 또한 반란을 진압하면서 동북부 유럽을 평정해 나가고 있었다. 여기에 시달리는 것은 폴란드와 헝가리, 폴란드는 내가 눈치채지도 못하게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영국이 최대 최강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가톨릭주교들이 동방으로 견학을 갔다온 후에 알려준 그들의 과학지식과 자본, 경제 성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시기 프랑스와 독일은 잦은 반란으로 힘겨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그들의 우방국가임을 자처하며 그들의 지역을 결코 넘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반란군 세력으로 변해버린 이 지역을 노리는 자가 있었으니 엄청나게 커져버린 괴물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은 바로 십자군을 편성하여 이 지역에 파견하였고 영국은 스페인의 엄청난 확장을 이대로 지켜볼 수 많은 없었다. 스페인의 십자군이 프랑스 지역의 영국영토를 지나갈때 십자군이 지나갈 수 없도록 막았다.
광분한 십자군 광신도들은 영국 영토를 박살 내려했고 영국의 병사들은 이들 물리쳤다. 교황은 십자군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국을 가톨릭세계에서 파면시켜버렸다. 그와 동시에 모든 동맹국가들이 등을 돌렸다. 무역경제는 적자로 돌아섰고 적자는 군비 감축을 의미 한다.
스페인과 전쟁이 벌어진 마당에 군비감축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된 김에 주위의 모든 국가들에게 전면전을 선포했다. 동맹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단지 혼자였다. 그동안 구축해온 무역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발달된 수송기술은 모든 병력을 북유럽 어디에든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동안 축적해 온 자본력을 바탕으로 모든 산업시설을 전시체제로 바꾸었다. 모든 도시에서 끊임없는 기술개발, 건설, 군대 편성을 통해 수송기술을 이용, 프랑스전역을 흡수하고 독일 서부, 헝가리와 노브로고브의 사이를 꽤둟는 길다란 지역을 흡수하였다. 초반에 엄청난 화력을 퍼부어 확장한 도시들은 또다시 건설 작업에 착수 하였다.
훗날 이 전도시 건설화는 무리한 확장이었고 재정에 커다란 피해를 주고, 적국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주게 되는 오판이 되고 말았다.
스페인과 드디어 국경을 부딪히게 되었다. 최초 접전 지역은 툴루즈.
프랑스는 완전 소멸된지 오래이고 독일과 헝가리만이 조그마한 잔존 세력이 남아있었다. 엄청난 전격전으로 전선이 크게 넓어져서 이들 잔존세력을 제거할만한 파워는 남아있지 못했다. 겨우 국경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는데 파문의 영향인지 신하들의 충성심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각 도시에서 반란의 조짐이 보였다. 반란이 일어날 것 같은 지역에는 병력을 급파하여 초기에 진화하여 큰피해는 없었지만 재정이 바닥을 보인지는 오래, 더군다나 충성심은 점점 곤두박질 쳐 내려 갔고 나중에는 주둔 군대만으로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서쪽은 스페인의 잦은 침입으로 툴루즈를 빼앗겨 버리고 노르망디까지 밀리고 다시 앙주를 되찾는 치열한 파괴 행위가 계속 되었고(이때 도시건설에 투자한 모든 자본을 스페인에게 고스란히 다 빼앗기게 되었다..크윽.) 동쪽은 러시아의 공격으로 모든 건물이 파괴되고 겨우겨우 영토만 유지 할 수 있는 정도 였다. 중간 대륙은 독일과 헝가리의 잔존 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어 함부로 군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조금씩 반란을 일으키는 세력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충성심 낮은 장군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장미의 전쟁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이에 왕은 고심한 끝에 800의 병력을 이끌고 노브고로브와의 국경지역 핀란드로 가서 (이때 핀란드 국경에는 적의 병력이 많이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모스크바까지 밀어 버리면서 약탈을 하여 국가에 돈을 헌납한후 모스크바 한 복판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왕이 교체되면서 파면으로 인한 불이익은 사라졌으며 각 도시의 수입이 늘어나고 안정적이 되었다. 전쟁의 횟수도 조금씩 줄어 들었지만 스페인은 여전히 영국을 침범하였고 교황에게 스페인을 파면할 것을 물었지만 스페인은 파면 당하지 않았다. 오랫만에 돌아선 흑자 재정에 또한번 파면 당할 것을 두려워해 스페인에게 땅을 내주면서 까지 방어에만 치중한채 좀 처럼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스페인과 맞먹는 영토와 기술, 전 장수의 능력이 별 8개 이상인 초강력 국가 비잔틴이 노스고로브, 헝가리를 위협하면서 영토를 넓이는 도중에 이탈리아 북부 베니스에서 스페인과 마주쳤다. 그러면서 비잔틴으로 부터 영국에 밀사가 와서 군사동맹을 맺자고 제의를 하는데...
이에 영국은 동의하게 되고...
역사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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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www15940 | 작성시간 04.06.14 오옷.. 기대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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