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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알모하드 왕의 꿈3

작성자흑풍|작성시간04.07.19|조회수279 목록 댓글 7
"이제 슬슬 혈통관리를 해야겠어."
왕의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알모하드 궁정에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현재 알모하드왕의 나이는 거의 60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하자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고, 슬슬 후계자를 정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전통에 따라 장자에게 물려주면 그만이겠지만, 왕은 자신의 뒤를 이어 세계정복을 할 수 있는 재목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왕은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당장 왕자들의 견적을 뽑아와."
"어느 선까지 조사할까요?"
"사생활까지 전부. 스파이들을 있는대로 투입해."
"일주일 정도 걸리겠습니다."

일주일 후, 왕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세장의 서류를 바라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왜 세장밖에 안돼?"
"왕자님들이 모두 세분이라서 그렇습니다."
"뭐?! 말도 안돼! 내가 그동안 하렘에서 들인 공이 얼마인데!"
"저... 태어나신 분들은 많습니다. 단지 성인이 될때까지 살아남으신 분들이 세분밖에 안됩니다. 외척들간의 암투가 조금 심한 것이 그 원인입니다."
"......"
"치국평천하도 좋지만 수신제가도 좀 하심이..."
"됐다. 됐어. 본론으로 넘어가자."

"어디보자. 첫째는.... 횡령자."
"용병 모집 과정에 개입한 혐의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있습니다."
눈앞에 내밀어진 두툼한 책 한권을 왕은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읽던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 다음은.... 향락가."
"횡령한 돈으로 구입한 별장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에 있습니다만, 진시황의 아방궁에 비유될 정도로 꾸며놨습니다."
"..... 다음은... 대식가."
"처음 듣는 것들도 많아서 리스트 뽑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 이 책에..."
"그리고 도착자."
"네기마 클럽과 지크로리에 가입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자세한 활동내역은..."
"됐어. 더 이상 볼것도 없어. 이런 G.R.Y.B.... 아! 첫째에게 소속된 굴람호위병들 있지? 모두 해산하고 이 책에 나온 인간들로 채워. 그리고 모레까지 내 앞으로 집합시켜. 그 어떤 향략보다도 더 아드레날린 팍팍 솟아오르는 일을 경험시켜 주지."

"어디보자. 둘째는.... 광기, 예술품 감정가, 천성적인 철학자, 사교가."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합니다."
"실력은?"
"솔직히 별로입니다. 본인은 열정이 가득한데, 주변여건이 너무 나쁩니다. 모친이나 외가 쪽에서 제왕학만 가르치려고 하지, 본인의 적성은 완전히 무시하면서 키웠습니다. "
"그래도 첫째가 없으면 이 아이에게 왕위가 돌아갈 가능성이 생기겠지."
"아주 큽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요."
"외척들을 쓸어버리면?"
"명분이 없습니다. 그리고 외척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왕위 계승권자라는 이유만으로 달려들 날파리는 셀 수 없습니다."
"조금 생각해 봐야겠군. 아.... 둘째도 모레까지 굴람호위병들과 함께 나오라고 해."

"어디보자, 셋째는.... 오오! 중립지도자, 위대한 전사, 설득가, 잘 교육받은 자!"
"두가지를 빠뜨리셨습니다. 별이 기본으로 4개이고, 깃털은 5개입니다."
"Oh, good! 이건 말이 필요없군. 얘를 중심으로 스파이와 암살자들을 배치해 놓게. 이 아이에게 가해지는 어떠한 유언비어와 암살시도도 용납치 않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셋째 왕자님에 대한 정보책자는 읽지 않으시겠습니까?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특히 지하격투장의 도깨비등 얘기가 그 백미인데..."
"됐네. 오늘 밤에 내 읽어 보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셋째에게는 모레 나올 필요가 없다고 전하게."
"예."

이틀 후, 알모하드의 늙은 왕은 젊은 두 왕자를 향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화랑 관창을 아느냐?"
"화랑.... 관장.... 말입니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얼굴이 빨개지는 첫째를 노려보다가, 왕은 둘째에게 시선을 돌렸다.
"..... 둘째 네가 말해보거라."
"죄송하오나 아바마마, 화랑 관창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화랑 관창은 동방의 한 나라에 있었던 전설적인 무장이다."
"예..."
"그는 단기필마로 적군 5천 사이에 두번이나 뛰어드는 용기를 가진 용사였다. 그 결과 그는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죽음은 나라의 흥망이 걸린 전쟁의 향방을 바꿨고, 그 일로 그는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느냐? 짐은 우리 알모하드에 그런 영웅이 없다는 것이 언제나 한으로 남아 있단다."
왕의 한탄을 들으며 두 왕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용사'라는 말과 거리가 아주 먼 이들에게는 왕의 이 말이 참으로 뚱딴지같은 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나라는 흥망의 기로에 서 있다. 동으로는 이집트가 이슬람연맹을 외치면서도 우리를 향해 칼을 갈고 있고, 북으로는 스페인의 잔당들이 막강한 군대와 함께 둥지를 틀고 있다. 그리고 더 북으로 가면 철이 나오는 이베리아 반도를 먹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영국과 이탈리아를 볼 수 있다. 이럴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냐? 말해보거라."
마치 호랑이 눈처럼 변한 왕의 눈동자에 두 왕자는 목을 자라처럼 움츠리면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에서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
"...... 잘 모르겠습니다."
두 왕자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왕은 한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
"하루 빨리 스페인의 옛 영토를 우리가 차지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 이 일을 얼마나 빨리 하느냐에 따라 우리 알모하드의 미래가 걸려있느니라. 알겠느냐?"
"예!"
"예!!"
"그러나 전쟁은 쉽지 않다. 우선 명분이 약하다. 스페인의 잔당을 치고 영토를 확장한다는 명분으로는 저 엉덩이 무거운 대신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저들은 아직 우리 알모하드 군이 충분히 정예화되지 못했고 대군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것만 알고 있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는 못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움직여야 하는데도! 그럼, 이 대신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말해보거라."
"..... 모르겠는데요."
"....."
"그냥 명분으로는 안된다. 내 뒤를 이을 두 왕자가 지금 상황의 중대성을 외치면서 적지에 뛰어들다 전사하는 정도의 명분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 예?"
"..... 하하하! 아바마마의 농담이 참 멋집니다."
"....."
"....."
"하하하하하............. !!!............"
둘째 왕자의 낭랑한 웃음소리는 숨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이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대로 한참동안을 무지막지한 정적 속에서 보낸 왕은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효심은 지극하기 이를데 없고, 앞을 보는 식견 또한 탁월하기 그지없구나. 인의예지용을 갖춘데다 이 나라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위해 그 한몸을 기꺼이 희생하니, 이 아비는 너무 가슴이 벅차구나."
"아바마마!"
"아바마마, 설마 그 말씀.... 저희들 묘비명입니까?"
"얘들아, 뭣들하느냐! 알모하드의 용사들을 기립박수로 보내줘라! 너희들의 그 마음을 절대 잊지 않으마!"
"아바마마!"
"아바마마!"

"왕자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벌써?"
"예, 둘째 왕자님은 전사하셨고, 첫째 왕자님과 휘하의 굴람호위병들만 돌아왔습니다."
"의외군. 첫째의 굴람호위병은 전부 허접들이 아닌가. 둘째는 정예들이고."
"둘째 왕자님은 끝까지 싸우다가 명을 달리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첫째 왕자님은 적과 마주치자마자 도주를 홀로 하셨다고 합니다. 현재 병졸들 사이에서 '굿러너'로 통하고 있습니다."
"가지가지한다. 그 놈 불러와."
"예."

"아바마마!"
"네 어미를 비롯한 외가 친척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자고 맹새했던 친구들과 동지들을 모두 버리고 도망쳤다고?"
"아바마마!"
"너.... 엔돌핀이 나올 때까지 맞고 다시 갈래, 물 한잔 마시고 다시 갈래?"
"아바마마!"
"어이, 쳐라!"
"잠깐! ..................."
"뭐하냐!"
"퍽퍽! 퍽퍽퍽! 퍼퍼퍼퍽! 퍽퍽!"
"잠깐!!! ........ 물 좀 주세요. 흑흑흑..."

"적진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첫째 왕자님의 몸값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거절해. 아니지. 임팩트를 주려면 사자의 목을 치는 것이 낫겠군. 사자의 목을 잘라서 돌려보내."
"...... 그런 메뉴는 없습니다만..."
"...... 그럼, 거절해."
"예."
"그리고 셋째를, 아니 태자를 불러라. 두 형의 원한을 동생이 나서서 갚겠다고 나서면 좋겠지?"
"예."

새로운 태자가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였다. 그리고 이베리아 통일을 본 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을 떠나고, 새로이 알모하드의 왕으로 등극한 무하히드는 영국과의 국경경비를 강화하고 내실다지기에 주력한다.


사족1. 처음으로 이름이 등장하네요. 앞으로는 작명을 해서라도 어지간하면 이름을 넣을 생각입니다.

사족2. 연재속도는 굉장히 느릴 것 같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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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월영공 | 작성시간 04.07.24 오옷.....
  • 작성자고어핀드 | 작성시간 04.07.24 맙소사. 이건 거의 역사 시트콤이잖아 -_ㅜ
  • 작성자Hotpocket | 작성시간 04.07.24 잘봤어여~ 왕자들이 다 정리당하셨네
  • 작성자^(지온)^ | 작성시간 04.07.26 G.R.Y.B 에서 웃었습니다. 관창애기는 정말 기발합니다.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08.14 멋있네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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