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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신화 3부 술과 도박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4.08.14|조회수285 목록 댓글 4
1100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드 2세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랐다.백성들은 황제의 정치에 만족

을 하였다.도둑들은 제국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빈민들도 수가 격감 했다.황제가 특별 빈민

구제법을 마련 했기 때문이다.토지를 갖지 못한 농민들에게 황무지와 늪지를 주어 개척을 하게

하였고 그중에서 쓸만한 사람들은 시민군으로 징발 하여 치안 유지에 힘쓰게 하였다.황제는 각

주에 최소한 한개 이상의 부대를 남겨 치안 유지를 하도록 명령을 하였기 때문에 황제의 빈민

구제 정책은 제국 전체에 실행 되었고 약 2000여명의 시민군이 징발 되어 제국의 치안을 안정 시

켰으니 당연히 도둑이나 반란이 나타나지 않았고 빈민들의 수는 격감 했다.


더욱이 시민군 부대장들 중에서 영주로 임명 되는 자도 있었다.이른바 재야 인물도 찾아낼수 있

는 효과가 있었다.황실의 사료에는 영주로 임명 된 평민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기록 했기 때문에

실제로 누가 영주로 임명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1100년 당시 제국 내의 20여명의 시민군 부

대장 중 2명이 영주로 임명이 되었으며 그 중 프릿츠라는 자가 제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영주로 기록 되었다.


현재 제국의 각 주는 농경지 개발과 공공시설 건립.성의 증축 등으로 분주 했으며 따라서 제국의

산업과 문화가 발달 했다.제국은 평온해 보였다.그러나.....


제국 밖은 전혀 평온치 않았다.황제 콘라드 2세는 바이킹 부대와 포메라이나에서 합류한 다음

토포군을 결성 했다.황제가 친히 토포군 400여명을 이끌고 포메라이나에서 도주 했던 반군이 점

령한 프로이센을 공격 했다.반군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생각한 모양인지 요격을 했다.


반군 토벌 전투에서 황제의 친위대는 큰 활약을 했다.단순히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찬 농노

들로 구성된 반군은 평생 군사 훈련을 받으며 오로지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정신 무장을

한 친위대를 당해 내지 못했다.바이킹들의 돌격에 반군은 무너졌고 친위대는 패주하는 농노들

을 사냥 했다.


사냥이 끝났을 무렵 전장에는 반군의 시체가 가득 했다.이 전투에서 독일군은 40여명이 전사 했

고 반군은 90여명이 전사 했으며 반군 지도자를 포함한 50여명이 사로 잡혔다.만약 황제가 추격

도중 잠시 허기를 채우려고 마신 맥주에 취해 잠시 방향 감각을 잃고 해매지만 않았었다면 더 많

은 반군을 잡았을 것이다.황제는 지도자만 처형 시키고 나머지는 다 풀어 주었다.


이로서 프로이센도 제국의 영토로 편입이 되었다.황제는 그곳에서 2년동안 머물렀다.그는 머무

는 동안 프로이센의 국경까지 가서 폴란드의 드넓은 평원을 구경 하기도 했다.그는 폴란드의 드

넓은 평원을 보며 무슨 생각은 한 것일까?황제는 브란덴부르크의 임시 궁정으로 돌아갔다.반군

토벌로 점령한 영토에 각각 1부대씩 배치한 다음 황제는 브란덴부르크로 나머지 주력부대는 프

리슬란드로 이동 시켰다.


황제는 브란덴부르크로 가면서 12살 된 왕자에게 앞으로의 전략을 약간 설명해 주었다.구체적으

로 기록 되지는 않았으나 확실히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술과 도박은 같은 것이다.한번 맛을 들

이면 도저히 끊을수가 없어...짐도 그러한 모양이로다.]


때는 1105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드2세 재위 16년 되던 해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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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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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오예스! | 작성시간 04.08.14 ㅎㅎ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
  • 작성자저스티니안™ | 작성시간 04.08.14 님;;; 옛날에 제가쓴거는 군사단위가 미디블은 너무 적어서 0을 하나 더붙이는데 그러시는것도 좋을거같아요;;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08.15 제 경우에는 군사단위를 00을 더 붙였습니다. 그래서 900명은 9만명으로 계산했죠. 그래야 좀더 웅장한 맛이 나기에 ^^
  • 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8.15 앞으로 몇백대 몇백에서 몇천대 몇천의 전투가 수두룩 하게 나올 겁니다.(실제 플레이로 체험중...)솔직히 중세 유럽에서는 몇만대 몇만의 전투는 거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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