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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신화 4부 도박과 운명.1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4.08.14|조회수256 목록 댓글 3
[1110년 황제(콘라드 2세)께서 손수 친위대와 보병 800여명을 이끌고 프랑스의 일 드 프랑스

를 공격하매 프랑스의 국왕이 플랑드르에서 병력을 착출하여 1900여명의 병력으로 손수 맞서 싸

우더라........(중략)....황제는 친위대를 이끌고 적군을 격파 했으나 적의 지원군에 포위 되어 ....

(중략).....제국군이 분발하여 적군을 무찌르매 그 날 그 곳에서 죽은 자가 양측 도합 1600이 넘더

라. -신성로마제국사 전략편 1110년도 중- ]



신성로마제국 서쪽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있었다.물론 이 두 국가는 신성로마제국과 동맹을 맺어

둔 상태 였다.특히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사이는 매우 각별 했다.그도 그럴것이 프랑스와 신

성로마제국은 원래 프랑크 왕국의 태자들이 각각 세운 국가 였기 때문 이었다.따라서 황제가 대

프랑스 전을 선포 했을때 유럽의 모든 사람들이 경악 했다.그 누구 생각을 못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제는 덴마크와의 전쟁도 준비하고 있었다.물론 국력상으로 신성로마제국이 월등 했고

전쟁 준비도 황제의 명령 덕분에 기본적인 군사양성기관이 갖추어진 주에서 병력이 징집 되어

국경지대로 파견 되고 있기는 했었지만 대 프랑스 전을 선포한 이 시점에서 무리하게 적을 더 만

들 필요는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 했었다.


그러나 황제는 산천도 놀랄 이런 일들을 눈 하나 깜짝 않하고 실행에 옮겼다.사람들은 그가 술

에 취해서 그런 명령을 내렸을 거라고 믿으며 일주일 동안 기다려 봤으나 황제가 자신의 명령 진

행 속도가 늦다고 분개하자 황제의 정신이 말짱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황제의 명령을 하나하나

실현하기 시작 했다.


이리하여 1107년 제국군 500여명이 플랑드르 지방을 기습 공격 하는 것으로 대 프랑스 전이 시

작 되었다.물론 전쟁과 동시에 선전포고를 알리는 서신도 프랑스 왕궁에 보냈다.


그러나 플랑드르에는 무려 1700여명의 프랑스 군이 배치 되어 있었다.비록 프랑스군 보다 제국

군의 전력이 높지만 가벼이 볼수 없는 숫자 였기 때문에 후퇴를 하였다.프랑스의 반격은 다음해

에 시작 되었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가 이끄는 프랑스 왕실기사단 200여명이 로렌을 공격 했다.불행히 로렌에는

시민군 100여명만 배치 되어 있었다.플랑드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방비에는 신경을 쓰지 않

은 것 이었다.


결과는 제국군의 참패 였다.시민군 부대장 슈나이더(가명)가 숲속에 매복을 하고 기사단을 숲으

로 끌여들여 섬멸하려고 했으나 적은 얕은 수에 넘어가지 않았다.지형에 구애 받지 않고 돌격하

는 기사단의 돌격에 시민군은 삽시간에 무너져 버렸고 슈나이더는 분전 하다가 전사 했다.적군

의 피해는 단 한명도 없는 반면,아군은 100여명 모두 죽거나 달아나 버렸다.이로서 로렌의 운명

도 결정 되었다.로렌이 프랑스에게 함락 당한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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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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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저스티니안™ | 작성시간 04.08.14 신성모국방장관의 저유명한 괴담을 여기에 붙여볼까합니다. [제국의 재상 빌헬름경은 황제에게 나아가 이렇게말했다고한다. "걱정마십시요 폐하. 아침은 로렌! 점심은 파리! 저녁은 아끼텐에서 하게될것입니다"]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08.15 ㅋㅋㅋㅋㅋ 멋있습니다.
  • 작성자Krauser-Domini | 작성시간 04.08.15 그래도 슈나이더는 도망치진 않았군요^^(나중에 북망산에서 점심이나 같이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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