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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신화 5부 도박과 운명.2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4.08.16|조회수283 목록 댓글 5
로렌은 프랑스군에게 유린 당했다.제국 공공 기관 3개가 파괴 되었고 700플로린을 약탈 당했다.

그러나 제국의 뒤늦은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제국군은 급히 정규군 200여명을 로렌에 파견 했으

며 황제가 친히 프리슬란드로 가서 부대를 통솔 했다.이제 결전만 남은 상태 였다.


한편 로마의 교황은 노발대발 하였다.여태까지 신성로마제국을 금지옥엽 했으므로 실망감이 컷

으리라.1109년 약 40여년만에 교황은 황제를 파문 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신성로마제국 황

제는 파문 당했다.이제 황제를 죽여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태 였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 안에서 아무도 황제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제국군의 일원으로 싸우려고

자진해서 징병 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황제의 20여년에 가까운 선정은 제국의 모

든 사람들을 황제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린것이다.모든 이들이 황제의 이상에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다.


1109년 로렌은 탈환 되었다.프랑스 국왕이 일 드 프랑스로 잠시 돌아간 사이 200여명의 제국군

이 로렌을 침공 했고 로렌에 남아 있던 20여명의 프랑스 왕실 기사단이 대항 했다....그리고 그들

은 프랑스 왕실 기사단 답게 전원 전사 했다.아군은 50여명이 전사하는 손실을 입었으나 목적은

달성 했다.2개의 공공시설을 약탈하고 500플로린을 약탈 했다.


이제 양국의 관계는 돌이킬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1110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드 2세는 약

800여명의 병력을 인솔하여 일 드 프랑스를 침공 했다.단번에 프랑스의 심장부를 겨냥 한 것이

다.그러나 프랑스 국왕 필리프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당장 플랑드르에서 병력을 착출해 일 드

프랑스에 집결 시켰다.수는 약 1900명....프랑스의 주력이 집결한 것이 틀림 없었다.


마침내 파리 외각의 평지에서 양군이 대치 하게 되었고 이 전투는 신성로마제국사에 상세히 기

록되게 된다....


[....고지와 숲이 없는 평원에 양측군은 대치 하고 있었다.수적으로 제국군이 적군에 비해 열세

였다.황제는 적군이 아군 진영으로 쳐들어 오기를 기다리며 대기 하였으나 이틀이 지나도 적이

공격 하지 않자 황제는 계략을 세웠다.황제는 술을 들판에 최대한 많이 뿌리게 하였다.그리고 진

영에 불을 피우게 하였다.그러자 그날밤 적군은 들판에서 나는 술 냄새와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제국군의 진영을 보고 한바탕 술잔치가 벌어진것으로 착오를 했다.결국 프랑스 국왕이 약 1000

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새벽에 아군 진영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까지 진격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황제의 함정 이었다.황제는 전군을 모두 이끌고 프랑스군에 총공격을 했다.삽시

간에 프랑스군은 대오가 무너졌고 프랑스 국왕은 한때 위기에 봉착 했다.순식간에 프랑스 군

800여명 사살 되었다.황제는 프랑스 국왕을 놓치지 않으려고 친위대를 이끌고 도주 하는 적군

을 추격 했다.그러나 적군 900여명이 프랑스 왕을 증원 하였다.전세는 순식간에 역전 되어 오히

려 황제의 친위대와 제국군 전원 프랑스 군에 포위 당했다.새벽에 벌어진 전투가 정오에 이르

고 있었다.황제는 친위대와 제국군을 격려 하며 필사적으로 싸웠다.그러나 황제의 친위대 주위

에는 약 200여명의 프랑스 군이 포위하고 있었다.오후 4시경.황제를 제외한 황제의 친위대는 용

명을 떨치고 전멸 했다.황제는 새벽부터 해질때까지 적군 37명을 쓰러뜨리며 분전 했으나 오후

4시 44분 경 프랑스 궁수들의 집중 사격으로 화살 7대를 맞고 창에 27군데를 찔렸다.황제는 말에

서 쓰러졌지만 아직 숨이 끊어 지지 않았고 프랑스 군은 황제가 쓰러진 후에도 제국군을 상대하

느라 황제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오후 5시경 황제가 전사한것으로 생각한 제국군은 무너지기

시작 했다.바이킹 30여명만이 황제 주변에서 싸우고 있었으며 나머지 부대는 패퇴하고 있었다.

오후 5시 5분 경 황제가 시체 사이에서 맥주를 발견 하고 그것을 마셔 조금 정신을 차렸다.아마

황제는 무너지고 있는 제국군을 보았으리라.황제는 주변에 있는 황실 친위대의 깃발을 들었다.

독수리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황제는 외쳤다.[보아라!독수리는 꺽기지 않는다!!]황제는 깃발로

적병 3명을 사살 했다.피로와 공포에 지친 제국군의 가슴에 황제의 소중한 이상이 전해져 승화

되었던 것일까?패퇴하던 제국군은 각성했다!도주를 하다가 갑자기 돌격을 감행한 것이다!!

병법의 기초만 아는자가 보아도 무모 하다고 까지 느낄만큼의 돌격 이었다.심지어 화살이 떨어

진 궁수들도 단검을 들고 돌격 했다.제국군의 부대장들도 모두 병사들과 뒤섞여 적진으로 돌격

을 감행했다.대반전에 프랑스군이 다시 무너졌다.프랑스 국왕 필리프는 순식간에 적이 자기네

진영에 쇄도하자 전의를 상실하고 맨 먼저 성으로 도주해 버렸고 나머지 적들도 도주를 했다.제

국군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까지 적군을 추격 했다.해가 완전히 진 오후 7시 30분에 전투는 종료

되었다.이 전투에서 프랑스군 1200여명을 사살하고 247명의 포로를 사로 잡았다.제국군은 400

여명이 전사하고 24명이 행방불명 되었다. 복수심에 불탄 제국군은 공공시설 5곳을 불태우고

1200플로린을 약탈했다.그리고 사로잡힌 포로들을 모두 참살하여 파리성에 보이는 곳에 목을 효

수 했다.그러나 그 복수심은 단순히 제국군이 큰 피해를 입고 자존심이 상해서 불타는 복수심이

아니었다.가장 소중한것을 잃어 생긴 복수심 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드 2세는 21년 동안 제국을 통치 했다.그는 제국이 유럽을 제패할수 있

도록 모든 기반을 마련했다.그가 살아있던 동안 유럽의 모든 국가들이 제국을 두려워 했으며 어

느나라도 제국의 국력을 따라잡지 못했다.술주정뱅이 였으나 유능하고 용감한 황제 였던 콘라드

2세는 1110년 파리 근교 전투에서 전사했다.그의 사망 추정 시간은 5시 30분에서 6시 30분 사이

로 추정 되지만 난전 중이었고 그나마 황제 주변에 있었던 바이킹 부대도 퇴각 하고 있었기 때문

에 황제의 최후를 본 사람은 적군중에서도 아군중에서도 한명도 없다.그러나 황제의 시신은 적

에게 전혀 손상 당하지 않았고 전신에 무려 57군데의 상처로 보아 그는 용사답게 황제답게 죽었

음에 틀림 없다.제국의 모든 군민들은 황제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황제의 파문은 황제가 전사함

과 동시에 무효가 되었다.


제국군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포위 했다.술주정뱅이 황제의 뒤를 이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는 프랑스와의 어떠한 타협을 거부하고 프랑스를 멸망시킬것을 수많은 군민들과 가신들이 보는

앞에서 맹세했다.새 황제는 파문을 각오 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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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08.16 오오! 정말 멋있는 전투 묘사입니다^^
  • 작성자Krauser-Domini | 작성시간 04.08.16 콘드라 황제 만세~ -_-//(아쉬운건 황제의 전사장면이 빠져있는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 작성자오예스! | 작성시간 04.08.16 콘라드2세 만쉐이~
  • 작성자저스티니안™ | 작성시간 04.08.16 훗.. 예전에 제가올린 로다이르황제폐하의 업적을 모르시는모양이군!! 부활하는 교황군을 5번격파하신 황제였단말이오!!!(치트썼잖아;;;)
  • 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8.17 훗... 예전에 제가 올린 헤로빙거 로마 영주의 활약을 모르시는 모양이군!!부활하는 최정예 교황군 5000을 경무장 기병과 보병 1200여명으로 전멸시킨 영주 였단 말이오!!(지형의 잇점을 이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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