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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신화 8부 삶과 죽음의 엇갈림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4.08.25|조회수209 목록 댓글 2
오토 3세가 2차 노르웨이 진군을 명했을때 부대장들은 황제를 스웨덴에서 용병부대를 기다리게

하고 자기네들이 노르웨이로 진격하려고 했으나 황제가 고집을 부려 친정을 하게 되었다.그리

고 결전이 눈앞에 둘 무렵 부대장들은 황제에게 후방에서 관전케 하고 자기네들이 전방에서 싸

우려고 했으나 황제는 전방에서 싸울것을 고집 했다.


부대장들은 황제에 대해 나쁜 감정으로 건의 한것이 아니었다.황제가 겁쟁이라는 것은 토포군

사기에 큰 영향을 줄수 있었다.더욱이 황후가 임신을 하고 있었다.올해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이

런 이유로 혹시 모를 불상사로 황제가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건의 한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앞으로 이 전투에서 짐에게 왈가왈부 하는 자는 용서치 않겠소!]라고 말하며 부

대장들의 건의를 일축 시켰다.황제로서는 이번 전투에서 자존심을 회복 하고 싶었다.황제는 전

장을 시찰하고 계략을 짜냈다.그리고 다음날 새벽 황제는 전군 이동을 지시 했고 이동지역에 진

지를 구축 한지 얼마 안되어 바이킹들이 진지를 공격 했다.


신성로마제국사 전략집에 이 전투의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120년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노르웨이의 어느 이름 없는 산악지대에서 황제가 이끄는 토

포군 400여명은 바이킹을 토벌하기 위해 침엽수림에 진영을 설치하고 매복 했다.그날 새벽 안개

를 틈타 바이킹 부대장들은 제국군 진지에 화공을 시도 했으나 비와 습기로 불이 번지지 않았다.

화공에 실패하자 바이킹 부대장들이 서로 회의를 하되 우두머리가 이번에 확실히 바이킹들의 두

려움을 깨닫게 만들자라고 하여 바이킹들은 이 전투에서도 돌격을 감행하였다.아마도 황제의 계

략을 간파 했을 지도 모르리라.그들은 북쪽과 동쪽 방향으로 쳐들어 왔다.처음 북쪽으로 쳐들어

오던 바이킹 주력 부대는 황제의 친위대와 토포군 주력부대와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고 양측의

전사자의 시체와 피가 숲을 더럽혔다.일진일퇴의 전투가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을때 동쪽으로 바

이킹 특공대 60여명이 동족으로 돌격 했다.동쪽에는 제국군 궁수부대와 경무장 보병대가 있었

다.처음 궁수들이 활을 쏘아 몇명을 쏴 죽였으나 접근전이 벌어지자 많은 수가 죽고 패퇴 하였

다.경무장 보병대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동족이 무너지자 북쪽의 제국군 주력도 불안해지기 시

작 했다.오전 10 35분 경 황제의 친위대가 전멸 했으며 11시경에는 토포군 주력이 북쪽과 동쪽에

서 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다.오전 11시 40분 경 제국군은 퇴각 나팔을 불며 도주 하여 스웨

덴으로 도망 치되 그 전투에서 제국군 298명이 전사하고 23명이 행방불명 되었으며 황제와 부대

장 4명이 전사 했다.바이킹들은 145명이 죽었다.]


1120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3세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노르웨이 주에서 바이킹을 토포하다

가 전사 했다.그의 나이 45세.그의 치세 초기에는 프랑스와 덴마크를 멸망시키고 산업을 계속 육

성 시켜 제국을 튼실히 하였으나 치세말 바이킹 토포의 참패로 겁쟁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고

결국 오명을 씻으려고 하다가 스칸디나비아 침엽수림의 차갑고 맹렬한 전장에서 명을 다했다.


많은 사람들이 황제의 죽음을 슬퍼했으나 황제의 죽음에 대해서는 소문이 무성 했다.오토 3세의

최후에 대해서는 황제의 사후 30년 동안 여러가지 설이 나돌았지만 후에 제국 황실에서의 조사

와 그 당시 참전 했던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황제의 최후 순간에 대한 진실이 밝혀 지게 되었다.


그 후 12세기 말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 소설가 스노리는 사신의 저서인 [엣다]에 이렇게 기록

했다.


[....황제(오토 3세)는 적과 싸웠다.눈앞에 보이는 바이킹 뿐만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적과도 싸

웠다.두려움...공포....황제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 이었다.황제는 자신의 친위대가 전멸

한것을 알고 있었고 포위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는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라는 부대장들

과 병사들의 요청을 무시하고 이렇게 말했다.[그대들은 선제때 부터 제국에 봉사를 해온 충성스

러운 병사들이요.선제와 나의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이 자리에 있는 나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나의 형제요.짐은 형제들의 우두머리로서 나의 형제들을 사수 할 것이다!]그리고 황제는 부대장

에게 부상병들과 더 이상 싸울수 없는 자들을 이끌고 빠져나갈 것을 명령하고 나머지 병사들에

게 위치 사수를 명령 했다.전투가 치열해져 황제의 애마가 죽었다.황제는 말이 죽자 말에서 내

려 끝까지 싸웠고 마침내 칼이 부서지자 육탄으로 맞서 싸우다가 도끼와 메이스에 피투성이가

되어 나무에 의지 한채 숨을 거두었다.그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살아 온 날들을 반성하면서 눈물

을 뿌리며 죽어갔다.그때 위치 사수를 하던 자들 모두 그 전투에서 모두 장렬히 싸우고 죽었다.

단 한명,황제를 위해서.]


황궁에서는 오토3세의 아들이 태어나던 무렵 황제의 비보을 듣고 울지 않았던 인물이 대관식을

올리고 있었다.그는 황제의 동생 되는 사람 이었다.그의 나이 30세 였다.그는 전 제국에 교지를

내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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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08.24 신성로마제국 전략집 보다는 "신성로마제국 연대기"가 더 좋지 않을까요?
  • 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8.24 신성로마제국사 전략집은 [신성로마제국사]의 부분에 불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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