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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제국의점심-3- 대전의 시작

작성자저스티니안™|작성시간04.08.25|조회수144 목록 댓글 1


1092년 헝가리왕 사무엘1세의 대군이 불가리아를 침공했다. 수비대장 로마누스의

6000여 수비군은 보호령으로 달려나가 헝가리군을 닥치는데로베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원정군총사령관 사무엘왕의 대군은 로마누스장군의 군대를 완전격파하고 불가리아를

약탈하기시작했으니 그소식은 2주만에 콘스탄티노플황궁으로 들어왔으니 불가리아 보호령

이 얼마나 늦게 대응했는지 알수있다.

제국의 대신 니세포리스경이 말하길 "저들 군세가 강하고 수도코앞인 불가리아를 유린

하고있으니 콘스탄티노플수비군 6000명을 내려보내야합니다."


그러나 대신들은 일제 반발하기 시작했다. 황궁을 수비하는 바랑기안들은 야전군과

뒤엉켜 싸운적도 없거니와 수도를 떠난적도없었다. 그러나 황제 알렉시우스1세가

아나톨리아로 가있는이상. 근위대장 니세포리스경의 요구에 대신들은 마지못해 응해주는

것같았다. 6천의 수도방위부대가 콘스탄티노플 성문을 나선것이 10월이었으니 전쟁

두달만의 대책이었다. 참으로 어이없기 그지없었다.


한편.

아나톨리아의 황궁에선 급보를 전해받은 황제는 소아르메니아주둔군 1만중에 5천여명을

급히 콘스탄티노플로 회군시키려했지만 돌발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집트군 2만여명이

소아르메니아로 새벽에 야습해 들어온것이었다.


이때의 전투기록을보면 제국군이 얼마나 불시에 습격을 받았는지 알수있다.


"모두가 잠든밤에 언덕에서 끊임없이 그림자들이 쏟아져내려오니 대책없이 사령관막사

로 적이 들이닥쳤다. 잠에서 깬 병사들은 저마다 무기를 갖춰들었지만 저들 사라센인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맥없이 쓰러져갈뿐이었다. 장군께서 적이 이곳까지오는동안 아군의 전진

기지들은 무얼하고있었는가를 외쳐대셨지만 이미 때가늦었고 제대로된 전투도채 하기전에

아군은 무기와 갑옷도 집어던진채 도망가기 바빴다. 어렷풋이 보였지만 언덕에 휘날리는

깃발은 샤바장군의 깃발이었다."


아나톨리아로 살아돌아온 병사들은 2천.. 황제의 격노속에 거지차림으로 도착한 2천여명은

처음엔 성에도 들어오지못했다. 그러나 굶어죽는자들이 발생하자 황제는 군복과 무기

그리고 군량미를 즉각 지원하시고 다시 방어태세를 갖추라하시니 2천여명의 패잔병은

다시 소아르메니아 진격작전을 외쳐댔다. 그러나 수도앞까지 진격해온 헝가리군을

해결하는게 급선무였으니 황제는 헝가리측에 사절단을 파견하는한편 1000명의 정예병들을

골라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도록하고 자신도 뒤따라가겠노라고 교서를 내렸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황제에게 미소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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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08.25 실제로 비잔티움 제국은 항상 양면전을 해야 했죠. 발칸반도의 야만족과 아나톨리아 방면의 이슬람 국가들이 양쪽에서 쳐들어오니...... 군사력을 한 쪽으로 집중시키는게 불가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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