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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신성로마제국의 신화 10부 전격전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4.09.10|조회수201 목록 댓글 3
1140년 황제 오토 4세는 5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모스크바 공국의 성에 입성 했다.황제는 지도

를 펼치고 보았다.1130년 [북유럽 안정]을 선포한후 10년....그 동안 제국은 1130년의 영토의 2

배가 되었다.동유럽은 신성로마제국의 독수리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1130년에서 1133년 사이 제국군은 북유럽 해안의 반군과 러시아군을 격파 했다.3년간의 전쟁에

서 반군 1700여명과 러시아군 600여명을 사살 했다.그리고 북유럽 해안의 3개주를 점령했다.제

국군의 피해는 800여명 정도 였다.


1134년 제국군은 러시아 내륙으로 진출 하기 시작 했고 2년 뒤인 1136년 비잔틴 제국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2개주를 접수하고 러시아군 500여명을 사살 했다.


1137년 제국의 세력은 폴란드와 헝가리를 포위한 형국이 되었고 오토4세는 헝가리와 폴란드와

의 외교 단절을 선언하고 4방면에서 동시 기습을 명령했다.그 결과 1137년 폴란드군 700여명.헝

가리왕을 포함하여 헝가리군 600여명을 사살 하고 폴란드와 헝가리 전 국토를 유린 했다.


1139년 폴란드와 헝가리의 4개의 성이 함락 되었고 헝가리와 폴란드는 제국에 흡수 되었다.그

동안 해안지역에 배치 되었었던 제국군은 황제의 통솔아래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 공국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1140년 러시아군은 제국군의 공세에 대항을 하지 않고 퇴각해 버렸고 지금 황제가 이렇

게 입성하고 있다....황제는 다시 지도를 펼쳤다.일 드 프랑스 주에서 모스크바까지 무려 3400KM

나 되는 거리 였다.그리고 1130년때의 제국의 최동쪽 전선에서 무려 2200KM이나 진격한 것이

다!!많은 장군들이 자신들의 역사적인 업적에 흥분하였다.제국내에서는 이 전설적인 정복에 동

참하기 위해 앞다투어 군에 자원 하고 있었다,북유럽 해안은 안정 되었으며 약 10척;의 함대로

항로를 개척하여 연간 2000플로린(북유럽 해안도시의 무역이익을 합친것)의 수입을 올리고 있

었으며 서쪽은 문화.산업.농업이 발달하여 풍요로웠다.


황제는 비록 낙후된 동유럽이지만 상업적이나 농업적이나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황제는 10년간의 전쟁으로 무너진 성을 보수하고 공공시설을 다시 세우고 황무지를 개간

하도록 명을 내렸다.그리고 1150년까지 제국은 더 이상의 대외 팽창을 하지 않고 동유럽 개발에

전념 했다.


한편 유럽의 다른나라들은 10년간의 제국의 발빠른 진격속도에 놀랐다.비잔틴에서는 오토4세

를 [알렉산드로 대왕의 부활]이라고 격찬 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제국군의 전쟁을 [전격전]이

라고 불렀다.그러나 칭찬만 한것은 아니였다.교황은 헝가리와 폴란드를 기습 점령 한 오토 4세

를 [아랍상인보다 악랄한 상인]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칭찬에도 비난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어차피 다음번에 칼을 맞

부딫쳐야 하는 상대는 바로 그들 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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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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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09.05 교황을 손봐주자!
  • 작성자마스터 | 작성시간 04.09.05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 작성자저스티니안™ | 작성시간 04.09.05 이탈리아반도를 장악하시오-_- 진정한 신성로마제국 부활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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