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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The Last Jihad

작성자권희중|작성시간04.09.07|조회수92 목록 댓글 0
1217년 가을의 어느 날 콘스탄티노플의 임시궁전에는 불길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대 투르크제국의 술탄 셀림1세의 병세가 심각히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역대의 투르크의 술탄들이 이슬람승려들을 적극적으로 육성 그리고 비밀리에 과거 비잔틴 제국

의 영토는 물론이려니와 저 멀리 이베리아 반도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스웨덴 지역까지 파견했다.

그리고 안으로부터의 정책... 일단 국가를 튼튼히 안정시켰다. 그리하여 술탄 바예지드 1세 때..

국제정세는 투르크의 적국인 비잔틴제국과 이집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비잔틴제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같은 종교국가인 이집트는 투르크를 자신들의 속국마냥 취급을 했다.

그래서 투르의 신민들은 모두들 이 2나라들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물며 왕족들은 어떻겠는가...

당시 비잔틴 제국은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시칠리아 이렇게 4국 동맹의 공격으로 인해

국경을 지키기에도 힘겨웠다. 그래서 평소부터 얕잡아보았던 투르크와의 국경에는 병력을 빼고

이 4나라와의 국경에 전부 배치했다.

투르크가 약한 나랴였다면 별 문제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당시 투르크는 이미 내실을 다져놓았고 병사들의 사기도 하늘을 찌를듯 높았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은 이미 안으로 황실에서부터 부패했었고 잦은 전쟁으로 모든 사람들이 지쳐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니 않은 투르크의 술탄 바예지드 1세는 조지아, 트레비존드, 레저 아르메니아

그리고 니케아 이렇게 4개의 영지를 차례차례 점령했다.

콘스탄티노플까지 진격을 하는 중에 콘스탄티노플이 시칠리아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들

은 술탄 바예지드 1세는 시칠리아와의 전쟁은 아직 시기가 아니다며 눈물을 흘리며 철군을 했다

고 한다.

그 후 술탄은 이집트와의 전쟁 준비를 시작하면서 새로이 투르크 해군을 창설했다.

이 때는 물론 별볼일 없는 해군이었지만 장래를 생각해서 서둘러 준비를 한 것이다.

이 해군이 나중에는 유럽 제일의 해군이 될지 누가 알았으랴...

그리고 몇십년이 흘러 술탄 셀림 1세가 즉위를 했고...

왕자 시절부터 게으르다는 평을 들은 술탄의 즉위를 반가워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술탄의 카리스마... 정치적인 능력은 역대 어느 술탄보다 뛰어났고...

비록 군사적인 면에는 그리 뛰어나지 못해 친정을 할 때마다 큰 피해를 보았지만...

적재적소에 인재들을 기용.. 그리하여 이집트를 완전히 병합하고 이름뿐인 제국이 된 비잔틴 제국.. 이때에는 크레타, 키프러스 그리고 로데스 이렇게 3개의 섬나라가 된 비잔틴을 완전히 병합했다.

비록 군비확장에 치중하고 경제를 너무 급속히 확장하기 위해 많은 신민들이 희생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신민들은 술탄 덕분에 오히려 당시 어느 때보다 유복히 잘 살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모자란 것도 없었다. 더욱이 제일 중요한 사실은 국가기강이 확실히 잡혀서

타국의 스파이나 암살자들은 얼씬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민들이 일 한 만큼 대가가

나왔기 때문에 그 누구도 술탄에게 불만이 없었다.

불만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에 신민들을 등쳐먹고 살던 부패한 관료들과 종교관련인사들 뿐..

하지만 술탄은 이런 쓸모없는 불평분자들을 단호히 처벌하고 시칠리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많은 피를 본 후에 셀림 1세는 친히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고 많은 피해를 보았으나 결국에는

점령했다. 그뒤로 그리스, 세르비아 그리고 불가리아까지 파죽지세의 공격으로 발칸반도에 있던 시칠리아의 식민지는 모두 투르크제국의 손에 들어오고 시칠리아는 다시 조그마한 섬나라로 전락했다.

이 당시의 국제정세를 살펴보자면 알 모하메드는 이미 스페인 왕국을 멸망시켰고 프랑스와 영국의 일부를 점령 신성로마제국과 이탈리아 그리고 교황령과의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동쪽으로 눈을 돌려 폴란드왕국은 신성로마제국과 대등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헝가리 제국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경우는 제일 쉽게 세력을 확장시킨 경우인데... 주변의 불모지들을 차례차례 점령하고 서서히 병력을 증가시키기 시작했다.

어느덧 러시아는 투르크를 압박할 정도로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흑해의 교역권을 배앗기 위해 해군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투르크의 전쟁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이런 중요한 때에 셀림 1세의 병세가 악화된 것이다.

술탄의 병세가 심하다는 소식을 들은 콘스탄티노플의 신민들 대다수는 모스크에 혹은 교회당에 가서 술탄의 쾌차를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술탄과는 달리 종교탄압을 하지 않은 술탄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아무튼 대다수의 신민들의 희망을 저버리고 하늘은 셀림 1세를 저세상으로 보내었다.

셀림 1세의 임종시 이런 말을 했다고 투르크 전기 제 3권 셀림 1세 편 에서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비록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고 강압정책을 폈지만 그 것들이 내 사리사욕을 위해 해왔다면

다음 술탄이 아무리 정치를 잘 해도 이 나라는 50년안에 망할 것이니라.

하지만 나라를 위해 내가 이리 했다면 다음 술탄이 아무리 엉망으로 해도 50년은 거뜬히 버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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