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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신화 12부 실화는 신화가 되다.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4.09.13|조회수225 목록 댓글 4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동시에 많은 것을 결정 했다.도버해에 있는 3척의 제국 해군으로 영국 해

군을 공격케 하는 한편 프랑스의 전 영토에 징집령을 내리는 한편 프리슬란드와 경계를 이루는 4

개주에 징병과 인근 주에서 예비군을 이동시키게 하였다.다음해인 1155년경 프리슬란드는 약

2000여명의 제국군에게 포위된 형국이 되었다.뒤에는 바다 였고 제국 해군이 영국 해군의 전함

1척을 격침시켜 퇴로를 없앤 상태였다.1156년 공격이 감행되었으며 영국왕 존을 생포하고 왕실

기사단을 전원 생포하거나 사살 했다.존은 막대한 몸값을 지불하고 겨우 풀려 났다.


그 동안 프랑스에 배치된 제국군은 급증하고 있었다.특히 일 드 프랑스는 군단급 규모의 황실 친

위대가 배치 되어 있었다.그리고 툴루즈는 예전에 항복했던 프랑스군 출신의 고참병들로 이루어

진 군단이 배치 되어 있었다.그 결과 1155년과 1156년에 영국이 2차례로 툴루즈를 공격 했으나

제국군은 요격을 하여 영국군을 격퇴 할수가 있었다.그 결과 영국군은 400여명을 잃었고 제국군

은 150여명이 전사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전과는 뭐니뭐니 해도 이태리 전쟁 에서 였다..제국군의 대공세에 이태리

의 알프스 방어선은 여지 없이 무너졌다.1155년 밀라노에서 600여명.제노바에서 1000여명의 이

태리군이 죽었다.밀라노를 수비하던 이태리 왕은 겨우 목숨만 건질수 있었다.그러나 이듬해에

는 제노바와 밀라노가 완전히 공략되었고 이태리 왕 안토니오 2세는 참살 되었다.물론 제국군의

피해도 다소 있었지만 이태리군의 피해에 비해 많지 않았다.그 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오토 4세

도 밀라노에 있었고 이태리 왕이 참수 되는 것도 지켜보았다.그때 황제는 이태리 왕이 왕답게 죽

을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주었다.그러나 죽는 당사자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드리지 못했지

만.


1157년 황제는 더 이상 제국군에게 진격을 명령하지 않았다.지금 밀라노에서 황제가 친히 지휘

하는 병력만 900여명이었고 토스카나를 침공하는데 2700의 병력을 동원할수도 있었다.그 정도

면 토스카나는 물론,로마까지 진격할수도 있으리라.그러나 황제는 더 이상의 군사행동을 취하

지 않았다.그리고 밀라노에서 약 1개 군단을 빼내 프로방스를 통해 툴루즈로 이동시켰다.프랑스

전선의 병력이 증강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 했기 때문 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마침 제노바에 있는 황녀 루이나에게 밀사를 보냈고 황녀는 교황령으로 이동했

다.그리고 다음해 교황 우르반 2세와 결혼을 했다.그녀의 나이 27세.교황의 나이 60세 였다.


황제는 외교적으로 교황과 화해를 도모하여 교황과의 긴장감을 완화시킨 한편 이태리 전선을 대

치 상태로 두고 프랑스 전선에 병력을 증강시켜 영국에 압박을 가하는 전략을 사용했다.그리고

아일랜드의 반란군과 연락을 취해 영국을 양면으로 협공하려고 했었다.


황제는 점령지의 산업을 다시 일으키는데 전념 했다.특히 제노바와 밀라노는 유명한 상업도시이

면서 곡창지역 이었다.황제는 점령지의 세금을 낮춰 민심을 안정시키고 항구와 농토를 개척하였

다.


1158년 가을 황제가 병으로 쓰러졌다.황제의 나이는 60을 바라보는 58세 였다.황제는 이제 다시

는 못 일어날것을 직감하였다.황제는 밀라노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장들을 모두 불러 하나 하나

위로 했고 각지에 있는 황실 출신의 장군들과 제국 각지를 통치하고 지키는 영주들과 관료들에

게 그 동안의 충성을 치하하는 편지를 배포하였다.


그리고 그해 겨울....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4세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유언은 [지도자로서 이렇게 사치스러운 곳에서 죽는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였다.그때 황

제의 임종때 있었던 황자는 막내 뿐 이었다.나머지 황자들은 프랑스 전선과 동유럽 전선에 장군

으로 배치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오토 4세는 재위 28년 동안 국내의 상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항로를 개척하고 해군을 증강시

키는 한편 선제들의 키워놓은 체제와 국력을 바탕으로 동쪽으로 진출하여 무려 수천KM나 진출

하였다.그는 중세 최고의 정복군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그는 정복지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개

발하여 그의 생전에 정복지에서 반란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위대한 정복자는 갔지만 그의 행적은 [신성로마제국사]는 물론이요.각국의 역사가들과 문

학가들에게 기록되어 살아있는 신화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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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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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저스티니안™ | 작성시간 04.09.10 ;;;;;;;;;;;;;;;;;;;;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09.10 오토 대제 만세!!!
  • 작성자하양개비 | 작성시간 04.09.12 내전 내전!!! 쿠데타! ㅋ1ㅋ1 동족상잔...
  • 작성자농노출신병사 | 작성시간 05.01.20 엥 교황도 결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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