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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신화 14부 영광의 절정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4.10.07|조회수326 목록 댓글 4
1166년 헤르만 3세는 2500의 병력을 이끌고 당당하게 로마에 입성 했다.1164년 요격전에서 이

태리의 왕을 포함하여 1600여명을 죽이고 400여명의 포로를 잡았다.잔적들은 로마성으로 후퇴

하여 2년가까이 버텼으나 결국 1166년 성을 내주고 말았다.성을 끝까지 지키려고 한 자들은 모

두...목을 베고 팔다리를 잘라 이태리 곳곳에 효수 시켰다.이태리인들이 독립은 꿈도 못꾸도록

하려고 한것 이었다.


476년....그러니까 정확히 690년전에 게르만 출신인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를 죽이

고 서로마를 멸망시켰다.....그리고 690년뒤인 역시 게르만의 황제인 헤르만 3세가 로마에 입성

한 것이다.


황제는 용병들과 용병 부대장들을 모두 포로 로마노에 집결시키고 다음과 같이 연설 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이룩했던 업적을 우리는 다시 재현 했다.이것은 역사이며 그대들의 무용담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그러나 잔적들은 아직 남아 있고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

와 제국의 명예를 훼손시킨 간교한 무리(교황)가 버티고 있다.나는 그 간교한 무리를 진멸시켜

나와 제국의 명예를 회복코자 한다.그러나 이일에 동참하다가 그대들도 파문 당할수 있다.나는

그대들의 명예와 목숨까지 맞바꿔 가면서 나의 명예를 지키고 싶지는 않다.비록 나와 그대들은

돈으로 맺어진 관계지만 돈도 못숨이 있어야 쓸모 있는 법이고 명예가 없으면 산 목숨이 아니다.

따라서 그대들에게 로마 방위를 맞기고 나는 친위대를 이끌고 교황령으로 침공 하겠다.]

그러자 용병들 중 한명이 이렇게 말했다.

[폐하.저는 칼을 잡아본 이후 한번도 목숨과 명예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또 한명의 용병 부대장이 말했다.

[폐하.저는 목숨과 명예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고용된 이상 제국군의 일원 입니다.폐하

를 위해 죽겠습니다,]

포로 로마노는 곧 용병들의 충성맹세로 시끄러워 졌다.황제는 말을 이었다.

[알겠다.그대들은 충성스러운 제국군의 일원이다!모두의 무운과 건투를 빈다.그리고 절대 죽지

마라.그대들이 살아 있어야 영광이 더 커지게 될테니까.]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우리는 로마를 점령했다.진정한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이다!제국의 모든 제국군은 용병이

든 정규군이든 친위대든 제국의 광영을 누리게 될것이다!!]

그리고 포로 로마노는 함성과 만세 소리에 파묻혔다.


[수도사 마리오의 수기의 로마 점령 직후의 내용]


황제는 이제 교황청을 가만 두지 않기로 결정 했다.콘라드 2세때의 제국과 헤르만 3세의 제국의

사정은 달려져 있었다.헤르만 3세의 제국은 문화와 교육이 발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

고 있었다.교황과 등을 돌리게 되면 국내에 많은 적이 생기는 것은 자명 했다.그것을 최대한 막

기 위해서는 교황세력을 황제의 수중에 두는것이 중요 했다.


1168년 황제는 교황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교황령을 총공격 했다.승리는 제국의 것 이었다.1200

여명을 사살하고 700여명을 사로잡았지만 모두 참수 했다.그리고 교황청을 포위 했다.


1169년 교황청을 무력진입하여 점거 하였다.교황 이노센트 2세를 주포하였다.그의 나이 72세 였

다.헤르만3세는 그를 로마로 압송시키게 하였다.(그 당시 헤르만 3세는 정규군을 이끌고 로마에

주둔 했으며 용병대로 하여그 교황령을 공격케 하였다.)교황의 부인도 데려 오게 하였다.그녀는

헤르만 3세의 여동생 이었다.(신성로마제국의 신화 에서 오토대제때의 기록을 보시면 알 것입니

다.)


황제는 교황과 여동생을 바라 보았다.교황은 자신이 순교자가 될것이고 자신이 죽으면 신의 징

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황제는 이렇게 대꾸 했다.

[착각하지마라.니가 하느님이 아니지 않느냐.그 더러운 입으로 하느님의 징벌을 논하지 마라. 네

놈이 하느님을 운운해 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매도 하여 죽인줄 몰랐단 말이냐?]

황제는 늙은 교황을 발길질 하였다.교황은 힘겹게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는것

은 옳은 일이냐고 물었다.그리고 교황은 신과 인간을 잇는 대리인 이라고 역설 했다.그러나 황제

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옳다고는 할수 없다.그러나 최소한 전쟁이 죄가 되지는 않는다.나는 유럽을 통합하여 전

란을 종식기켜야 하고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면 그렇게 할것이다.내가 그 죄로 죽어야 한다면 죽

을 것이고 내가 죽어도 나의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이 뜻을 계승해 나갈것이다.그리고 신의 대리

인이라는 너의 주장을 나는 동의 하지 않는다.신의 대리인이라는 자가 인간과 관계를 맺어 아이

를 낳고 땅을 가져 호의호식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매도하고 죽이게 만드는짓이 과연 신의 대리

란 말인가?]


그리고 황제는 교황을 끌어 내리고 친히 칼로 목을 베었다.그 다음 황제는 교황의 부인을 바라

보았다.

[아버님(오토대제)을 나는 항상 존경해 왔다.그러나 오늘은 원망스럽구나.]

그리고 말을 이었다.

[고통 없이 보내주마.]

칼이 허공을 가르고 피가 뿜어 졌다.황제는 두명의 시체를 바라 보며 칼을 떨어뜨렸다.그의 눈에

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어쩌면 황제는 옛날 여동생과의 추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르리라.교

황 이노센트 2세와 교황의 부인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여동생 이었던 루이나는 1168년 목숨

을 잃었다.

[신성로마제국사 정략집 중]


헤르만 3세에 의해 등극한 교황은 교황의 주요 권력을 헤르만 3세에게 부여 했고 파문을 취소 시

켰다.그러나 교황의 잔존세력들이 도망하여 새로이 교황을 옹립시켰다.그들은 비밀 결사이고

은밀히 다른나라 왕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위치 파악이 불가능 했다.


하지만 헤르만 3세는 교황의 세력을 누른 황제 였다.이것은 1070년 [카노사의 굴욕]을 말끔

히 씻은 사건 이었다.역사는 1168년 교황의 참살사건을 [로마 교황 참수 사건]이라고 명명 했다.


한편 코르시카에 파견된 제국군은 지형적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이태리군을 격파하고 코르시카

성을 포위 하고 있었다.


그 후 2년 동안 제국은 안정을 누릴수 있었다.제국의 지도자인 황제의 권한을 꺽을 사람은 이 세

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고 제국을 이길수 있는 나라도 이 세상에 없는것 같았다.제국군은 어

디를 가든 연전연승을 했다.


마침내 1170년이 되었다.제국내에 백색 태풍이 뒤덮기 시작 했다.어쩌면 이노센트 2세가 말한

신의 징벌의 시작일수도 있었다.모진 태풍은 동유럽에서 몰아치기 시작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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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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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G-VIRUS | 작성시간 04.09.29 다음 화에는 몽고군이 나오는건가요? 기대하겠습니다.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09.29 신의 대리인... 시오노 나나미 아줌마의 책 가운데 그런 제목의 책이 있었죠^^
  • 작성자바투칸 | 작성시간 04.10.02 황색 폭풍이 몽골인데.... 백색이면 노브고르트나 루시(러시아)겠군요..
  • 작성자저스티니안™ | 작성시간 04.10.03 네오교황청이 아닐런지요-_-;; 압도적인 물량 압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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