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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신화 16부 휘몰아치는 비바람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4.10.23|조회수277 목록 댓글 5
-1173년...비가 쏟아지던 동부 유럽 하늘의 구름이 잠시 물러나고 해가 다시 떳다.들판은 시체들

로 가득했다.제국의 반격은 성공 이었다.적은 수천의 전사자와 포로를 내고 패주 했다.장군은 전

장을 묵묵히 바라 보았다.나는 장군에게 말했다.[장군,우리의 대승 입니다.적은 거의 궤멸되었습

니다.축하드립니다.]장군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자네,모스크바에 가봤나?]나는 대답했다.

[가 본적은 없지만 장군께서는 반군을 진압하고 모스크바에 입성하시게 될것 입니다.그때가 되

면 저도 모스크바를 구경할수 있겠죠.]장군이 말했다.[모스크바 사람들은 수렵과 술을 좋아한다

네.사내 다운 사람들이지.]나는 장군을 보았다.장군은 시무룩해 보였다.[좋은 사람들 이었는

데.....]-


-프레드릭 볼프강 장군 소속 부관 크레취만의 종군 일기중-



1173년 분명 제국의 반격은 성공적 이었다.그러나 이 전투에 동원된 제국군의 40%가 소모 되었

다.즉 프레드릭 볼프강 군단은 보충을 받기 전까지 전투를 하기 힘든 상황인 것 이었다.프레드릭

은 점령지에서 철군을 해야만 했고 다음해 그곳은 반군에게 다시 점령되었다.


1174년이 되자 황제는 이탈리아에서 출동시킨 진압군을 동부전선에 파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

다.황제는 반발하는 장군들에게 [지금 프랑스와 본토에서 병력을 징집하고 있으니 방어에 중점

하라.]라고 전했다.그리고 진압군을 발칸반도쪽으로 보냈다.실제로 프랑스와 본토에서는 병력

이 징집되었고 그대로 동부전선으로 이동되고 있었다.


1175년 황제는 세율을 조정하여 프랑스와 제국 본토를 제외한 나머지 점령지의 세율을 낮췄다.

세금이 9000플로린 감소 되었다.그때 제국의 재정은 70000플로린 이었다.한때 210000플로린을

보유하여 [유럽최고의 부국]의 명성을 자랑하던 제국의 면모를 찾아볼수 없었다.제국의 재정은

군비가 확장됨에 따라 계속 감소 했다.그러나 세율 조정은 그동안 황제에 대한 불만이 있던 국민

들의 감정을 어느 정도 식히는 효과가 있었다.무엇보다도 이 반란의 원인중 하나는 세금 이었다.

제국은 재건이 미처 안 된 점령지에 까지 황제가 정한 일정량의 세금을 바쳐야만 했던 것이다.황

제는 세율조정으로 반란이 다소 진정되기를 바랬던것 같았다.하지만 정세는 황제의 뜻대로 되

지 않았다.


1176년 세율조정이 시행된 다음해에 이탈리아의 제국군 점령지에서 일제히 봉기가 시작 되었다.

로마에서 교황청,제노바와 밀라노에서 약 8000여명의 반군이 출현했다.황제는 인근 지역과 이탈

리아에 배치된 병력을 총동원하여 반군에 대항하게 하는 한편 프랑스에 있는 군단장들에게 지령

을 내렸다.


1177년 프랑스에서 영국에 수세적 이었던 제국군이 공세적으로 돌변했다.유럽대륙에 있는 영국

의 점령지는 아퀴탱을 제외하고 모두 제국군이 침공했다.그 무렵 프랑스 전선의 제국군은 제국

전체에서 최정예부대 였다.친위대로만 구성된 군단이 2개나 있었다.전체 병력도 3000이 넘었다.

황제는 동부로 이동 예정이었던 프랑스 출신 부대까지 영국 침공에 동원 했다.결국 이해에 동부

에 이동시킨 부대는 제국 본토 출신 부대 였다.

그 무렵 이탈리아에서의 반군 진압은 완료 되었다.반군 5300여명을 사살하고 2700여명을 사로

잡았다.반군의 지도자들은 모두 잔인한 방법으로 사형 되었고 시신들은 토막이 되어 제국 전체

에 흩어져 사람들이 보게 하였다.2700여명의 포로들도 마찬가지 였다.모두 참살 되었다.이탈리

아에서의 반란은 진압 되었다.


1178년 드디어 동부전선의 제국군 증강이 이루어 졌다.당장 프레드릭 볼프강 군대의 병력보충

이 이루어졌다.당시 프레드릭 볼프강은 폴란드에 있었다.대신 폴란드에 배치된 병력이 우크라이

나에 배치 되어 있었다.프레드릭의 군대는 다시 700여명으로 증강 되었다.1178년의 동부전선의

제국군의 수는 3000 정도 되었다.반군은 약 20000 정도 였다.

그리고 서부의 프랑스에서는 대륙안의 영국점령지에서의 전투에서 제국군이 승리하여 점령지

를 유린하고 있었다.1000여명의 영국군이 전사하거나 사로잡혔다.사로잡힌자들은 모두 참수 되

었다.

한편 동남부 유럽에서는 제국군이 비잔틴 국경까지 진출했다.하지만 5000여명의 반군이 봉기를

하여 제국군과 전투끝에 제국군을 격퇴시켰다.제국군은 800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후퇴해야 했

다.


1179년 폴란드에서 봉기가 일어났다.그러나 그것은 농민봉기와는 차원이 달랐다.폴란드의 반군

은 폴란드 왕조를 부흥시키려는 부흥군 이었다.훈련도 정규군 못지 않았고 무장상태는 일반 제

국군의 무장을 능가 했다.폴란드 부흥군 진압에는 프레드릭 볼프강에게 맡겨졌다.프레드릭 볼프

강은 7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폴란드 군을 공격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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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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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현수 | 작성시간 04.10.16 여지까지 꾸준하게 봤는데 정말 재미있네요~.ㅋ
  • 작성자creios | 작성시간 04.10.16 멋있습니다^^
  • 작성자바투칸 | 작성시간 04.10.17 이 위기를 넘기면 로마는 더욱 부강해질듯...
  • 작성자저스티니안™ | 작성시간 04.10.17 오..새로뜨는영웅 프레드릭경..
  • 작성자겨울달 | 작성시간 04.10.18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요. 정말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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