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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신화 21부 황제와 적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5.01.11|조회수1,079 목록 댓글 1
1190년....동부 유럽과 브리튼 섬에서는 제국과 제국의 적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으나 전황

은 제국이 유리 했다.영국의 수도 런던은 마침내 제국군에 굴복하고야 말았다.8년간의 기나긴 농

성끝에 런던의 식량이 떨어져 항복한 것 이었다.궁전을 점령 했을때 생포 했던 영국왕 에드워드

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8년 동안 런던 시민의 태반이 굶어서, 병에 걸려서, 포위한 제국군에 의

해서 죽임을 당했다.런던을 수비하던 수비병들도 마찬가지 였다.다만 수비병들은 모두 죽었고

영국왕과 런던시민들만 살아 남아 있었을 뿐 이었다.런던도 반군이 점령 했던 동부 처럼 건질게

없는 그런 도시 였다.런던을 포위 하는 동안 제국군 측면을 공격 할 줄 알았던 웨일즈의 영국군

1500명은 런던을 지원 하지 않았다.스코틀랜드와 런던은 육로가 막혀 있었다.바다는 제국 해군

이 봉쇄하고 있었다.아일랜드는 영국을 반대하는 반군이 장악 하고 있었다.제국은 아일랜드의

반군을 몰래 지원 하고 있었다.

런던을 포위 했던 제국군 군단장 오토는 황제가 왜 8년간 런던을 농성 했는지는 이해 하지는 못

했지만 황제의 지령에 따라 영국왕 에드워드를 영국 왕실로부터 10000플로린을 받고 스코틀랜

드의 임시 영국 왕실 정부로 보냈다.


동부에서는 항상 아군보다 훨씬 많은 반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루어야 했다.반군은 1170년때 추

정 했던 수보다 훨씬 많은듯 했다.1170년 이래, 수도 없이 많은 반군을 잡고 목베고 불태우고 찟

어 죽였지만 제국군이 진격하는 곳 어디든 수천이 넘는 반군이 덤벼들었다.물론 그때마다 제국

군은 승리 했다.1190년 동부에서 반군 3000여명이 전사하거나 생포되어 처참한 고문 끝에 죽었

다.반군들을 고문하고 밀사들을 동부에 잠입 시키고 점령지 주민들을 다그치고 진격을 계속한

결과로 모스크바.노브고르트 지역에서 슬라브 인들이 국가를 세워 군대를 조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1170년에 제국의 계산 보다 훨씬 많은 수의 반군들이 봉기 했다는 사실도 입

수 되었다.

그때 황제는 반군을 밀어붙이던 진압군 대열에서 1개 군단을 빼내어 발트 해 연안의 항구에서 병

력을 수송 하고 있었다.병사들을 모두 배에 태우고 황제 자신도 승선 했다.황제는 1개군단,680명

으로 슬라브인들이 점령한 2개 지역,약 4800의 적군을 격멸 하고자 하였다.라잔을 구출 하는 임

무는 이미 동부 토벌군 군단장들 중 한명인 만프레드에게 맡긴 상태 였다.만프레드는 789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고 중무장한 다수의 친위대와 기병대.용병출신의 이태리 창병.중무장 보병

들과 궁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그의 군단은 라잔에 가장 가까운 지역에 있었고 그의 진격방향

도 라잔 이었다.황제는 만프레드에게 [라잔에서 칼을 맞댄 적은 모두 섬멸 할 것]을 상기 시켰

다.


황제는 적에게 향하는 배위에서 라잔을 생각 했다.라잔은 1168년,그러니까 반군이 봉기 하기 2

년전에 스페인에서 제국으로 돌아선 지역 이었다.선제는 밀정을 동원하여 라잔의 영주를 매수

하였고 라잔 영주는 1년후 제국에 귀순 했다.황제는 그때 어렸다.따라서 황제는 [신성로마제국

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그러나 라잔이 제국으로 돌아선 것은 중대한 사건 이었다.그 당시 스페

인은 제국의 동맹국 이었다.그 당시 제국의 팽창에 유럽 각국들은 불안해 하면서 싫어했지만 제

국과의 우호는 유지 하고 있었다.그러나 이 사건으로 유럽 각국의 불안과 불만이 분출 되었다.스

페인은 물론이요,영국.비잔틴제국.알모하드 왕조와의 동맹관계도 단절되어 제국은 국제적으로

고립 되었고 각국은 제국의 침공에 대비해 제국 국경에 대규모의 병력을 배치 했고 제국도 각국

의 군사행동에 대비 하여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 하였다.이것은 1170년 반군의 봉기때 초기

진압을 할 수 없었던 결정적 요인 이었다.

제국은 1169년 이후 각국에 사신들을 지속적으로 파견하여 외교의 정상화를 꾀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다만 비잔틴 제국만 제국과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그러나 그것은 결코 이득이 아니

었다.비잔틴 제국은 발칸반도 남부에 약 3000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로 인해 발

칸 지역의 제국군 2000여명을 반군 토벌에 투입 시킬 수 없었다.중립국이나 적국이나 아직은 잠

재적인 존재 였다.그들은 경계를 게을리 할 수는 없지만 아직 상대 할 수 없는 적 이었다.


황제의 생각은 선제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선제로 인해 문제는 겉잡을수 없을 만큼 커졌다.황

제가 통치하고 있는 제국은 황제의 유년시절 꿈꿔왔던 이상적인 제국과는 거리가 멀었다.황제

는 궁정에 머무르는 날이 드물었다.황제는 항상 움직였고 전장을 누벼야 했다.이 모든것이 반군

의 봉기에 의한 것이고 그 원인은 선제가 제공한 것 이었다.그리고 반군 진압의 어려움도 선제

가 제공한 것 이었다.외교적 고립도 선제에 의한 것 이었다.황제에게 있어 선제는 누구보다도

먼저 죽여야 할 원수 였다.그러나 선제는 죽은 사람이다.선제가 죽었기 때문에 황제가 황제가

될 수 있었다.선제는 이제 벨수도 없었고,으깰수도 없었고,불태울수도 없었고,찟겨 버릴

수도 없었다.그런 선제가 황제의 적 이었다.

황제는 술을 들이켰다.그에게 적은 분명 했지만 상대할 방법은 분명하지 않았다.


황제는 갑자기 이탈리아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최근에 이태리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황제는

근처의 가까운 항구에 전서구를 띄워 이탈리아의 근황을 알아보게 하였다.그러고 나서 황제는

각 지역의 영주들이 보낸 공문서와의 싸움을 시작 했다.


[그무렵 제국의 국민들 사이에서 황제의 머리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화제 였다.아직 젊은 나이

였던 황제의 머리는 대머리 였다.사람들은 그것을 황제가 너무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머리가 자

라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중세 유럽사]-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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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저스티니안™ | 작성시간 05.01.10 영국-_- 무슨 시에라리온 내전을 보는듯한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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