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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의 신화 25부 대공세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05.02.02|조회수173 목록 댓글 0
[1200년도의 제국은 전쟁없는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그러나 제국의 최고 지도자는

전란을 원했다.] - 중세유럽사-


14000의 병력....여러개의 전선....여러개의 적.....황제는 볼고강에서 살기를 품은 상태에서 수천

여명의 병력을 보유한채 대기 하고 있었다.38세의 대머리 황제는 지도를 펴냈다.곧 지도에는 수

많은 장난감들이 배치 되었고 황제는 장난감들을 모두 남쪽으로 이동시켰다.황제는 모든 장군들

에게 편지를 썻다.


[짐은 모든 적과 싸우겠다.] -신성로마제국황제 루드비히 4세-



그리고...황제는 중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공세를 실행했다.때는 1200년 이었다.


프로방스와 아퀴탱에 배치된 제국군 3700여명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을 공격 했다.세르비

아 북부에서 제국군 1000여명과 교황령에 주둔하던 병력 700여명이 세르비아의 이탈리아 공국

을 공격 했다.키예프에 1300여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던 황제의 동생인 칼로원저 경은 키예프

서쪽 비잔틴 경계를 넘었다.이탈리아 남부와 샤르데냐 섬에 배치된 병력 1800여명은 반란군이

점령한 그리스 반도를 침공 하였다.제국군 1000여명이 비잔틴령 불가리아를 침공했다.황제가 이

끄는 1400여명의 병력은 그루지야로 향하고 있었다.황제는 스위스와 스위스 인근 4개주에 군사

2200여명.프랑스에 2000여명.이탈리아 반도에 2800여명을 배치 했다.그외에 제국의 모든 주에

60~100여명의 치안 병력을 배치 했다.


1200년 스페인에서 2개 지역을 장악하고 스페인군 1200여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그리고

5000플로린을 약탈하고 16개의 공공시설을 파괴하거나 약탈 했다.스페인군이 도주한 성들은 포

위되었다.스페인의 중장기병은 제국군에게 위협적 이었으나 제국군의 창진에 궤멸 되었고 스페

인 국왕의 아들이 전사 했다.포로들은 몸값을 받고 스페인에 넘겼다.제국군의 피해는 320여명

이었다.

세르비아를 침공한 제국군은 이탈리아군을 격퇴하고 성을 포위 했다.이 전투에서 쌍방 1000여명

이 전사 했다.이탈리아군은 잘 조련되어 있었고 질 좋은 군장을 갖추고 있었다.병법에 유능한 이

탈리아 총독은 제국군 보병에 포위된 이탈리아 패잔병들을 인솔하여 성으로 도주 했다.공공기

관 3개를 약탈하거나 파괴하고 900플로린을 약탈했다.

키예프 서쪽에서 제국군이 승리 했으나 불가리아에서 제국군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키예프

에서 병력을 인솔하고 있던 제국군 사령관은 황제의 동생인 칼로원저 경 이었다.그는 중세시대

때 제국에서 제일 가는 명장 이었다.그의 지휘는 간단명료하고 정확했고 강력했다.그는 비잔틴

보병들을 친위대의 쐐기 대형으로 분쇄해 버렸다.경무장 기병들은 도주하는 비잔틴 보병들을 사

냥했고 보병대는 적의 좌우익을 허물어뜨리다가 편안히 구경만 했다.비잔틴군 100여명이 전사

하고 300여명을 주포 했으며 성을 포위했다.제국군의 피해는 매우 경미했다.

그러나 불가리아에서 제국군은 비잔틴 최정예 군단과 싸워야 했다.비잔틴군 사령관은 비잔틴 황

제의 아들인 콘스탄틴과 로마노프 베겔리우스 였다.그들은 지휘력과 학식과 신앙심이 뛰어났다.

그런 적을 상대로 제국군은 적진에 가까운 언덕에 진을 치고있었다.비잔틴군은 지형의 불리함

을 알고 있었지만 공격을 감행했다.제국군은 화살을 쏘고 보병들을 돌격시켰다.하지만 비잔틴

군 중앙을 뚫리지 않았고 좌우측의 비잔틴군 중장기병이 궁수들과 창병들을 궤멸시키고 후면을

위협했다.제국군은 무너졌고 지원부대도 지형적 측면을 고려하여 전투에 임했지만 캐터프랙터

기병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퇴각해야 했다.제국군 840여명이 전사하고 120여명이 생포 되었

다.제국군 사령관과 패잔병들은 겨우 도망칠수 있었다.비잔틴군 전사자는 600여명 이었다.비잔

틴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리스에서 제국군은 반군을 섬멸하고 그리스 반도를 장악했다.반군은 농부 집단 이었다.그들

이 가여워 보였다고 제국군 사령관이 보고 했다.제국군은 중장기병을 중심으로 중앙을 쐐기 대

형으로 분쇄했고 농민들을 모두 도주했다.전투가 아니라 사냥에 가까웠다.사로잡힌 반란군 1900

여명은 모두 석방 되었다.반군의 지도자는 친위대의 말발굽에 짓밟혀 죽었다.반군 470여명이 전

사했다.제국군은 70여명이 전사 했다.

황제가 이끄는 제국군은 볼가강 이남 지역을 무혈점령 했다.이제 터키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하지만 황제는 터키와 공존할 생각이 없었다.황제는 적의 반격을 각오 하고 있었다.황제는 서유

럽 지역의 영주들에게 병력을 끊임없이 징병하도록 명령했다.그렇게 1200년이 지나갔다.


스페인과 알모하드가 손을 잡는 웃지못할 정보가 황제에게 입수 되었다.비잔틴 해군이 흑해의

제국군 바크선 1척을 격침 시켰다.이탈리아 해군은 아드리아 연안의 조선소에서 진수된지 얼마

안된 바크선을 또 격침 시켰다.5년동안 이탈리아 해군은 아드리아해에서 생산되는 제국군 함선

을 공격 하여 격침 시켰다.재해권은 무역에 있어서 필수 였고 무역을 통한 이익은 제국이 전쟁

을 수행하게끔 하는 원동력 이었다.하지만 황제는 제해권을 걱정하지 않았다.영국과 아퀴탱에

서 생산한 캐러블 10척이 지중해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황제는 매년마다 적의 스파이나 암살자를 잡아 처형했다는 보고를 받았다.지난 100년 동안 제국

이 잡아 죽인 각국의 스파이.암살자들의 수는 300여명 정도 되었다.올해에도 어김없이 보고가

날아 들어왔다.1201년에는 황제가 머물고 있던 지역에서 적의 암살자가 생포 되었다.암살자가

황제를 죽이려고 했는지 다른 장수를 죽이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황제는 기록에 그를 죽

였다고 기록케하고 암살자의 성기와 고환을 3등분 하여 암살자의 가슴에 바늘로 박았다.그리고

손을 자르고 눈을 빼서 비잔틴 황제에게 보냈다.그 암살자를 보낸 사람이 비잔틴 황제라고 암살

자가 말했다.황제는 암살자의 옷에 편지를 붙여서 보냈다.


[동로마제국 황제여.서두르지 말라.짐이 곧 그곳에 직접 행차할 것이니라.그때 그대를 이꼴로 만

들어 줄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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