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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기사이야기 9 (현명한 노인)

작성자securitad|작성시간05.02.17|조회수58 목록 댓글 0

평범한 인생에 있어서 행복한 날이란 사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대개의 인생이란 탐욕과 오욕, 질투와 허영 고통과 침묵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라는 삶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인생의 이러한 굴곡들을 무사히 넘기를 바란다. 굴곡의 연속인 인생.........

 

그러나 결국에는 이것을 넘는다해도 똑같은 고통의 골짜기가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는가? 다만 인생의 행복이라는 찰나의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이러한 것들은 당연히 통과해야 할 의례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쨋든 어떤 이야기속의 불쌍한 한 젊은이 역시 훗날 행복의 추구를 위해서, 보이지 않는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서 오욕으로 점철된 이 세상과 타협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아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서럽지만 긴 밤이 물러가고 찬란한 아침이 밝았다. 부시시한 눈으로 창밖을 보니 새들은 나무에 앉아 지저귀고 들판에는 농노들이 아침부터 나와 이삭을 줍고 있다. 이러한 풍경들은 사실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것을 바라보아도 아무런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하인이 아침식사로 빵두 조각과 우유 한병을 가져다 준다. 그것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도련님 일어나셨습니까? 영주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집사인 보들랭 아저씨의 목소리다. 나는 급히 옷을 갈아 입고 옷매무새를 다듬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무슨 소리를 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되는 일이다. 그러나 아저씨가 무슨 소리를 하던간에 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쯤은 확실하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아저씨......."

 

이윽고 방문이 열리고 키가 크고 수염이 긴 한 중년사내가 들어온다. 삐적마른 몸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아저씨는 나이는 못속이는 듯 얼굴에는 주름살이 성기성기 모여있다. 나에겐 엄한 검술스승이자 아버지가 믿는 유일한 수족.......바로 그 였다.

 

"저도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며 영주님을 설득해봤지만 영주님의 뜻이 매우 완강하신지라..... 오늘 아침에 당장 플랑드르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사는 필요없다고 하시더군요"

 

이미 예상했던 바라 그리 놀라진 않았다. 다만 그 내막이 궁금했다. 도대체 아버지가 그 능구렁이같은 신부라는 작자의 농간에 넘어가 나를 두고 무슨 계약을 맺었는지도 궁금했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 역시 궁금했다.

 

"아버지께서 그것말고는 다른 이야기를 하시진 않았나요? 아저씨?"

 

보들랭아저씨는 이런 나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꼈는지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자세한 바는 더 이상 모릅니다. 다만 이 문서를 플랑드르의 대성당에 도착한 직 후, 거기에 주둔하고 있는 성전기사단장인 오도닐경에게 전해주란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보들랭아저씨가 품속에서 그 문서를 꺼내 나에게 전해주었다. 문서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경애하는 오도닐 경께

 

성지에서의 귀하의 활약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교황성하 역시 귀하에게 높은 신임을 보내고 계시며 여러주교들 앞에서도 항상 입이 마르도록 귀하를 칭찬하시고 계십니다.  참, 그리고 저번에 귀하가 세운 공을 치하하는 차원에서 교황성하께서 귀하의 영지를 지금의 두배로 넓히는 것을 허락하셨고, 200에이커의 토지와 30명의 농노를 추가로 하사하셨습니다. 아무쪼록 교회의 영광과 위신을 계속해서 널리 떨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수고한 만큼의 보상은 앞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지금 그리고 주님의 헌신적인 종인 자크 수도사를 편지와 함께 귀하의 휘하로 보냅니다. 비록 경험과 역량은 아직까지는 미숙한 것이 사실이지만 신앙심과 이교도에 대한 적의에 있어서는 그 누구못지 않는 의로움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부디 중히 쓰시어 귀하의 개인적인 명예와 더불어 교회의 영광을 온 천하에 높히시길 바랍니다."

 

  교회수호를 위한 사제들의 모임, 주임신부 던컨'

 

"아! 내가 언제부터 수도사가 됐단 말인가? 아저씨!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아버지가 심히 원망스럽습니다. 가문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라면 자식까지도 희생시킬 분이지요....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 나는.......아저씨 뭐라고 말좀 해주세요"

 

나는 흥분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어린 아들이라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라면 한번쯤은 자신과도 상의해 볼만한 문제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리도 비정하시다.

 

"도련님께서는 영주님만 너무 원망하지 마십시오, 다 영주님께서 깊은 뜻이 있어서 저러시는 것이 아닐런지요"

 

나의 죽고싶은 심정과는 사뭇 다르게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보들랭 아저씨가 갑자기 원망스러웠다.

 

"깊은 뜻이요?! 하나뿐인 아들을 명예에 눈이 멀어 팔아넘긴다? 던컨신부에게 듣자니 성전기사단원이 되면 수많은 부와 명예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하더군요....단지 아버지는 그런 신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뿐이지요.....이 협잡질은 아버지의 유일한 소망인 가문의 위신회복과 신부 나름대로의 이익에 대한 추구가 함께 맞아 떨어진 더러운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이런 판국에, 제가 어떤 방식으로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신부의 혓바닥에 놀아난 아버지가 이순간 만큼은, 아니 앞으로도 계속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보들랭 아저씨는 나의 계속되는 한풀이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는 마치 아둔한 나를 일깨워 주려는 듯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혹시 도련님께서는 탈무드에서 나오는 노인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유태인들의 전승? 지금 이와중에 그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의 비뚤어진 푸념을 듣자 보들랭아저씨는 갑자기 엄한 얼굴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저는 도련님이 강포에 쌓일 무렵부터 도련님을 지켜봐 왔습니다. 어떨 때는 엄한스승으로 어떨때는 자애로운 삼촌으로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 도련님이 비뚤어진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서 제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제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으시던지 아니면 볼기를 맞을 준비를 하시던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나는 아저씨의 엄한 눈초리에 결국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아버지와 아저씨는 형제만큼이나 가까웠고 아버지가 아저씨를 신임하는 것처럼 아저씨 역시 아버지를 마음으로써 따르고 있었다. 따라서 충성스러운 아저씨 입장에서 보건데 아무리 아들이라도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하는 것을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엄한 눈초리를 풀면서 다시 차분하지만 따뜻한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노인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죠, 아들은 멀리 장사를 하러 갔고 노인의 집엔 노예하나만 있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공교롭게도 노인의 건강은 악화되었고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유서를 작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인은 유서를 작성한 후 노예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죠. '나의 모든 재산은 앞으로 너의 소유가 될것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만은 내 아들을 위해 남겨두겠다. 그것은 내 재산 중에 가장 가지고 싶은 한가지를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다. 너는 당장 이곳을 떠나 아들에게 이 유서를 전달하도록 해라"

 

노인이 죽은 후 노예는 너무나도 기뻐 싱글벙글 거리며 먼곳에 있는 아들에게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서 받은 유서를 아들에게 보여주었죠 아버지의 유서를 본 아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인 자신에게는 단 한가지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만을 남겨두고 온 재산을 노예에게 물려줘버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던 것이지요........

 

노예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주인님의 뜻입니다. 도련님께서는 주인님의 재산 중에 단 한가지만을 고를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유서에 명시된대로 다 내 소유지요. 어서 빨리 고르시지요"

 

그러자 노인의 아들은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들었는지 처음의 원망스러운 태도에서 갑자기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현명한 아버지에게 감사하게 생각했죠. 이윽고 아들은 노예에게 말했습니다.

 

'단 한가지라면 네놈을 가져야겠다"

 

결국 아들은 노예를 선택함으로써 그 재산 역시 모두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노예의 재산은 곧 주인의 재산이거든요. 노인은 현명했습니다. 만일에 모든 소유를 아들에게 남기게 되면 그 노예가 아들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유산을 가지고 달아날 수도 있을것이니까요 어쨋든 제가 하고 싶은 예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보들랭 아저씨의 이야기가 끝났다. 아저씨가 이야기를 통해 하려고 했던 말은 아마도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믿어보라는 것인 듯 싶었다. 그래 아버지는 불쌍할 뿐이야.....나쁜 자는 그 신부일 뿐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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