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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야기 11(낯선 집시 여자)

작성자securitad|작성시간05.02.21|조회수79 목록 댓글 0

"이봐 수도사 양반! 가증된 계집에게서 당장 물러서게! 그 잔을 조금이라도 입에 되게 된다면 자넨 여기서 죽을 것이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왠 덥수룩한 콧수염을 기른 사내였다. 이쪽으로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는데 두손에는 가지가 긴 양날 도끼를 들고 있었다. 잠시 체면에 걸린듯이 집시 여자의 술잔을 거부하지 않고 받은 나였지만, 콧수염의 사내가 하는 말을 듣자 갑자기 정신이 바짝들었다. 그러나 집시여자는 사내의 말에 개의치 말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술을 권했다.

 

"젊고 잘생긴 수도사님! 저 사기꾼이 하는 말을 믿지 마세요, 저 못생긴 불한당은 항상 나를 못살게 굴지요, 개의치 마시고 어서 이잔을! 이 한잔으로 걱정과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질거에요"

 

"카찬드라 이 가증한 계집이여!, 너로 인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오늘에서야 너를 잡을 수 있겠구나, 거기 섯거라!"

 

콧수염의 사내는 살기등등하게 양날도끼를 휘두르며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콧수염의 사내가 가까워지자 남자 집시들은 그 기세에 질린듯 뮤트마저 버리고 달아나버렸다. 지금 여기는 오직 나와 그 집시여자, 콧수염뿐이다.

 

"저 몽펠리에 산의 곰처럼 못 생기고 추한 양반아! 왜 나를 못살게 구는거죠? 도대체 내게 왜 그러는 거에요?"

 

집시여자가 요염한 춤 덕분에 헝클어진 옷을 바로 입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콧수염의 사내는 힘껏 위로 들어 양날도끼를 땅에 쳐밖은 후 그 집시여자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카찬드라, 너의 독버섯같은 아름다움때문에 죽은 남자들이 한 둘이 아니지, 자 네가 한번을 그 잔을 마셔봐라, 만약 독이 안 들었다면 네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겠지!"

 

"마시라고 하면 누가 못 마실 줄 알고? 마셔서 독이 아니면 어쩔거야? 이 미련곰탱이같은 양반아"

 

영문을 모르는 나는,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릴 수 없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아직도 모르기 때문에.....

 

"어서 마셔! 너 역시 너에게 죽은 원혼들과 함께 지옥으로 가는거야 어서!"

 

그러자 집시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후엔 술잔을 아예 다 비워버렸다. 그리고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비웃는듯, 콧수염의 사내를 향해 술잔을 던지며 빈정거렸다.

 

"이래도 네 말대로 독이야? 멍청한 양반, 제발 날 귀찮게 좀 하지 말라고......."

 

콧수염의 사내는 상심이 매우 큰 듯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아무래도 둘 사이엔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연이 무엇이던간에 나에겐 그것을 알아야 할 의무도 없었으며 또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제가 보기에도 확실히 이 여자분은 저를 해칠 의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례지만 전 갈길이 멀고 바쁘니, 이 자리를 그만 떠날까합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서려고 했다. 그러자 카찬드라인가 하는 집시 여자가 내 손을 잡는다.

 

"이런.....먼 길을 떠나신다면서. 말도 아직 못 구하셨나봐요, 제가 아는 마굿간이 있는데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요. 말 값은 제가 주인에게 잘 말해서 받지 않는것으로 하겠어요, 젊고 잘생긴 수도사님에게 이 정도의 호의는 당연히 베풀어야지요...."

 

어차피 근처에서 빌려 탈 말을 찾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집시 여자의 알지 못할 호의가 마음에 끌렸다. 하지만 콧수염 남자가 신경질적인 소리로 투덜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정도는 경계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일단 집시 여자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이봐! 젊은이! 부디 저 가증한 여자의 말에 속지 말게, 그대를 도둑의 소굴로 데리고 가, 모든 것을 빼앗고 지하방에 넣어 굶겨죽일 것이네."

 

"보세요 저 사기꾼은 항상 이런식이라니까요? 저 남자가 한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아까도 판명이 났자나요, 여기서 꾸물거리지 말고 절 따라오세요"

 

난 결국 콧수염 남자를 내버려두고 집시 여자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왔던 큰 길과는 달리 나무가 많은 숲쪽에 나 있는 오솔길로 들어가는데, 점점 주위가 어두워졌다. 낮선 새들의 지저귐, 포퓰라 나무가지 위에서 꿀을 찾는 곤충들을 지나치며, 나는 숲속으로,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이젠 길조차도 구분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당황하고 있는데...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집시 여자가 말했다.

 

"저기 위에 둥근 언덕이 보이죠? 저 언덕만 넘으면 바로 내가 아는 마굿간이에요, 조금만 더 힘내자구요"

 

집시 여자의 말에 용기를 얻은 나는 힘을 내어 걷기 시작했다. 빼곡히 난 풀 사이를 어렵게 헤집고 나아가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그것은 사람의 비명소리였다.

 

"저 소리 혹시 못 들었습니까? 분명 사람의 비명소리 같았는데?"

 

"무슨 소리요? 난 아무것도 못들었는데요, 아마도 산짐승이 내는 소리였을 거에요 이 곳엔 산짐승들이 많거든요"

 

"제가 듣기로는 분명히 사람의 비명소리였는데......죄송하지만 전 여기서 그냥 원래의 길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길을 함부로 갈수는 없지요."

 

"수도사님! 이제보니 순 겁쟁이로군요, 저 같은 여자도 가고 있는데......사내가 되가지고.....짐승소리따위가 뭐가 그렇게 무서워요??"

 

집시 여자는 내 걱정을 묵살해버린 후 계속 걷기만 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난 점점 불안감에 휩싸였다. 허리춤의 웨일스산 단검으로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던간에 확실한 대비가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집시 여자는 내 기분과 행동을 아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앞장을 섰다.

 

"아름답네~~ 아름답네! 동산의 수풀이여! 반가운 손님 오신다니, 너도 치장을 했구나~~"

 

집시 여자의 당당한 모습에 웬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경계심도 풀렸다. 나를 설마 어쩌진 못하겠지.....이런 생각을 하면서 언덕에 올라서니 정말로 통나무집 한채가 보였다. 콧수염 사나이의 말과는 달리 어디서도 도둑 소굴같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나의 기우였을 뿐이리라....

 

"바로 저기에요! 여기까지 오느라고 정말 수고했어요"

 

집시 여자는 내 볼에 입 맞춤을 한 후 흥얼거리면서, 깡총깡총 뛰면서 내려갔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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