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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야기 12 (집시여자 2)

작성자securitad|작성시간05.02.24|조회수105 목록 댓글 3

집시 여자가 마굿간이라 불렀던 통나무집은 산 중에 있는 집치고는 여느 농가와 다름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외딴 곳에 있었지만 사람이 많이 드나든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뛰었다. 빨랫줄에 널래널래 걸려있는 옷가지들, 그리고 한바탕 모여 고기를 먹은 듯한 흔적......더이상 불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집시 여자를 완전히 믿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혼자 설마 나를 어쩐단 말인가?

 

"카산드라.....그대의 호의를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 호의를 갚게 되는 날이 생길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 그냥 젊고 잘생긴 수도사님에게 친절을 배풀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에요, 게다가 유랑하는 집시따위가 무슨 수로 보답을 바라겠어요? 자 어서 이쪽으로 오셔서, 젊고 강한 말들 중에 마음에 드는 말을 하나 골라보세요" 

 

집시 여자가 마굿간 쪽으로 데리고 갔다. 마굿간에는 꽤빠를 듯한 건장한 말들이 서너 마리 매여 있었는데.....주인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장은 어디에 계시나요? 실례지만 목적지로 가기 위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아서요"

 

"아....... 주인장은 밖에 있을 거에요, 아마 일이 끝나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있겠지요. 제가 주인장과 흥정을 끝 마친 다음에 이리로 다시 오지요,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을거에요 계곡이 바로 이 앞이거든요. 여기서 잠시 앉아 기다리세요."

 

집시 여자는 대뜸 말하더니 마굿간의 문을 닫고 가버렸다. 마굿간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꼬를 찔러, 밖에 잠시 나가 주위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집시 여자가 돌아와서 내가 없는 것을 보고는 날 찾으러 다닐 것 같아서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어쨌든 간에 말을 얻었으니 플랑드르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군'

 

나는 집시 여자의 호의에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주위의 짚단을 끌어와 몸을 기대 누웠다. 그런데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먼거리는 아니였지만 여긴 분명히 낮선 곳이었다. 게다가 산을 등정하다보니 피로감이 밀려왔다. 차츰차츰 눈거풀이 감겨왔으나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는 의지로 잠을 물리치고 있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그런데 마굿간을 나간 집시 여자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기다리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대책없이 더욱더 흘러갔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직접 밖에 나가서 집시 여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문쪽으로 걸어가 문을 잡아당기는데.......

 

"아뿔사! 내가 속았군!"

 

문은 이미 육중한 자물쇠로 잠겨있는 듯 했다. 문의 구조가 안에서 잠구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잠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힘을 써봐도 발악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갑자기 아까 그 털복숭이 남자가 생각이 났다. 그녀를 믿지 말라고 했던 그 남자가 말이다.

 

"제길......내가 속다니, 여기서 도둑들에게 죽는 것인가? 오 신이시여"

 

그런데 문 밖에서 여러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사내들의 목소리였다.

 

'이번엔 수도승이군! 그런데 수도승이 여기엔 무슨 일이지? 재수도 무진장 없구나. 하필 이런 곳에 오다니...... 그런데 반 거지 수도승에게 무엇을 뺏어 먹을 수 있을까?

 

'혀를 뽑아 벙어리로 만들고, 눈을 뽑아 장님을 만들어버리자. 그 후엔 시장에서 노예로 팔아버리는 거야'

 

'그렇게 하는 것이 본전은 뽑겠구만, 들어가서 조심하자고, 한동안 용을 쓰며 바둥거릴테니깐 말이야'

 

나는 기가 막혔다. 그리고 그 가증스러운 계집을 저주했다.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반드시 죽이리라.......

 

이윽고 문이 열렸다. 대충 수를 보니 열명이 조금넘는 사내들이었는데 기분이 그래서 그런지 하나같이 더러운 무지렁뱅이처럼 보였다. 나는 웨일스산 단검을 꺼내들고 그들에게 맞섰다.

 

"나에게 손을 대는 놈은 어떤 놈이든 죽일 것이다! 부디 먼저 죽고 싶은 놈부터 나오라"

 

호기롭게 소리는 질렀지만 사실 무모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절망적이었다. 난 혼자고 저쪽은 지금있는 녀석들만 합쳐도 열명이 조금 넘지 않는가? 만약 패거리들을 더 불러 온다면 그 수는 배가 될 수 있는 형국이었다.

 

"얼래? 수도승주제에 칼을 빼고 설치네 그려? 그래 그 용기하나만은 높게 쳐주마. 자 어서 놈을 붙잡아 밧줄에 꽁꽁 묶어라. 노예로 팔 수 있게 죽이진 말아야 한다.'

 

두목인 듯한 녀석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졸개들에게 지시했다. 녀석들은 원을 그리며 나를 애워쌌다. 나는 녀석들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느 누구라도 접근할 태세가 보이기만 하면 바로 검을 휘두를 작정이었다. 드디어 한 녀석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나는 그 몽둥이를 가까스로 피한 후 그 녀석의 우람한 등판에 있는 힘껏 칼을 꽂아 넣었다.

 

"억! 이 애송이가 날.........."

 

그 녀석이 땅바닥에 쓰러지자, 몇놈인지 모르는 녀석들이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들의 몽둥이세례를 가까스로 피하며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역시 중과부적이었다.

 

녀석들의 몽둥이에 한번 맞기 시작하자, 그것은 겉잡을 수 없이 가중되어 갔다. 체력은 이미 한계를 들어냈고 주위에는 내 검에 맞아 쓰러진 녀석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두목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비웃으며 말했다.

 

"수도사라 얕봤지만, 자네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만, 하지만 이젠 어쩌려고 하나? 보아하니 자네의 체력은 이미 떨어질때로 떨어진 것 같은데 말일세...."

 

"결국 힘이 다해서 네놈들에게 붙잡힐 몸이지만..... 한 가지만 묻자? 그 가증할 계집과 네놈과는 무슨 관계인가?"

 

"그 계집? 그 계집이 누군데? ㅎㅎㅎ"

 

"나를 여기로 데려온 그 계집말이다.! 보아하니 네놈들이랑 사전에 이야기 된 것 같던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너도 봐서 알겠지만 여긴 모두 남자들밖에 없어, 이 외딴곳에 무슨 여자가 있단 말이냐? 힘이 부쳐 실성을 한 것인가? 이놈들아 뭐하고 있냐? 서둘러 저놈을 붙잡지 않고!"

 

나는 한동안 저항했지만 녀석들의 수와 계속되는 몽둥이 세례에 못이겨 차츰차츰 쓰러져가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몸은 둔해지고 정신은 몽롱해졌다. 나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짖궂게도 두목은 쓰러진 내 가슴을 발로 누르며 조롱하는 말했다..

 

"혼자 잘난체 다하더만 자네 꼴이 말이 아니군.....자네 눈과 입은 우리의 앞날을 생각해서 내가 잠시 보관하도록 하겠네. 나도 어쩔수 없으이......"

 

이윽고 나는 밧줄에 묶인 신세가 되었다. 여기서 죽는 것인가? 무도한 자들에게 나는 처참히 조롱을 당하고 있었다. 졸개들은 나에게 다가와 더러운 침을 뱉어댔으며 찢겨진 상처에 일부로 불을 가져와 지져댔다. 나에게 죽은 동료들의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나는 비명을 질렀으나 이런 첩첩산중에 누가 내 비명을 들으리오......

 

"행동하는 것은 사내였는데, 비명소리는 마치 계집같구만 그려"

 

두목은 나를 보고 뭐가 우스운지 낄낄댔다. 졸개들도 두목의 웃음소리를 듣자 지들끼리 켈켈거렸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노획한 사냥꾼에게 볼 수 있는 안도감이자 포만감이었다. 이윽고 두목은 졸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봐 너희 셋! 저 친구를 지하실에 가두어 놔라, 저 친구의 눈과 입은 오늘저녁에 가지러 갈테니깐 잠시 눈 좀 붙히고 있으라고 해! 그리고 너희들! 감시 소홀하게 하다간 죽을 줄 알아!"

 

졸개 셋이 만신창이가 된 나를 일으켜 세워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것 같았다. 지하실은 마구간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마굿간을 나서자, 이미 저녁이었다. 밤하늘엔 이미 휘황찬란한 달과 별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원통하다! 이런곳에서 붙잡혀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니...그런데 갑자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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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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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치또 | 작성시간 05.02.24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올라왔군요. 더 흥미진진해지군요.
  • 작성자securita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2.25 시덥잖은 찌라시에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Berserk_Chang | 작성시간 05.02.26 ㅋㅋㅋ 소심하시게....^_^ 열심히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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