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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줄리어스가문 통치기(1대 루시우스 줄리어스 지음)

작성자맨타트|작성시간05.08.07|조회수493 목록 댓글 3

 

투컴이 생겨서 RTW플레이 하면서 느낀 점들을 카이사르의 갈리아원정기 비스무리하게 써봤습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루시우스 줄리어스

-통치기1-(bc270~255)


나이47


bc270

여름

군솔

원로원은 만장일치로 본국의 북단 서쪽끝에 있는 작은 소도시 세게스타의 공략을 요구했다.일정한 세력에 소속되지 않은 야만족 반란군이 점거하고 있는 이 도시는 주변의 상단을 약탈하면서 아렌티움과 내륙을 오고가는 상인들을 약탈했다. 나는 아렌티움 서북쪽의 도로를 수비하고 있던 나의 막내아들인 비비어스의 군대와 아렌티움의 수비대를 동원하여 세게스타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규합된 나의 군세는 나와 나의 아들 비비어스의 창기병 100여명 6개의 헤스타이 분대(검보병)와 1개의 트리얼라이(창보병) 보병대를 중심으로 보조부대로 각 1부대씩의 벨리테스(투창보병)와 로마궁사대를 동원하여 도합 13개 분대 2000명을 이끌고 급히 세게스타를 포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세게스타의 반란군의 저항은 극도로 미약했다. 그들은 목책과 같은 최소한의 방어시설도 없었다. 발사병기로 적을 혼란에 빠트린 후 기병대와 트리얼라이 로 사방을 포위하고 6개의 헤스타이부대를 난입시켜 적을 제압했다. 반란군을 섬멸하고 비비어스와 수비대 300명과 남겨두고 관청을 세울 것을 명한 후 급히 북쪽으로 군대를 이동시켰다.

정사

출전에 앞서 아렌티움에서는 쥬피터신전과 아르미니움에는 항구를 새롭게 건설하도록 명하였다.

겨울

군솔

처음으로 갈리아-이하 골족이라 칭한다- 야만족 군대와 조우했다. 나는 즉시 그들을 공격했다. 적들은 진영을 갖추고 우리를 마지 했으나 우리가 진열을 가다듬고 매섭게 진격하자 그들은 급히 군대를 물리고 전장에서 철수하여 매디오니움으로 도주했다.

정사

아렌티움에 쥬피터신전이 완공되었다. 매디오니움과 인접한 또다른 골족의 도시 파타비움을 견재하기 위해 아렌티움에서 헤스타이 4개 부대의 모병을 지시했다.

bc269

여름

군솔

매디오니움을 포위했다. 파타비움의 족장이 군대를 매디오니움 근방으로 이동시켰다. 급히 매디오니움을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적들은 서로 규합하여 우리군대를 압박할 것이다. 급히 사신을 파견하여 족장의 의도를 살펴보도록 지시하는 한편 첩자를 매디오니움에 침투시켜 적의 동태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유사시 매디오니움에서 회군하여 파타비움 골족을 협공할 수 있도록 아르미니움에서 내 아들 퀸투스에게 새롭게 모병한 아렌티움의 헤스타이2개 부대를 주어 북부가로를 수비하면서 파타비움의 군대를 저지하도록 지시했다. 매디오니움에는 젊고 용맹한 골족의 장군 에포레도릭스와 골족 전투보병대 3개 부대와 골족 기병 1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정사

윈로원과 대가문은 만장일치로 골족과의 동맹에 동의하였다.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로마를 위협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한다.

원로원은 나에게 카르타그가 지배중인 카라티스를 공격하도록 명했다.

매디오니움과 파타비움의 골족을 효과적으로 저지한다면 카라티스를 공략할 생각이다.

우선은 골족을 제압해야 한다. 매디오니움과 파타비움을 공략하여 북이탈리아의 절대 방어선을 굳건히 한 뒤에 카라티스를 공략하여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겨울

아르미니움과 세게스타에 쥬피터 신전이 완공되었다.

아렌티움에 새로운 농지가 건설되었다.

bc268

여름

군솔

그해 여름 매디오니움을 공격했다. 동원된 병력은 주력으로 나의 친위기병대와  헤스타이 6개 보병대와 보조부대로 세게스타에서 차출한 로마궁사대와 투창대 각 1부대 총 1300여명의 군세였다. 한편 적장 에포레도릭스는 전투보병대와 골족경기병 중무장기병등 900명의 수비대가 거느리고 있었다. 헤스타이 결사대 1대를 뽑아 공성병기인 “램”으로 적의 출입문을 공격했다. 적들이 방어를 위해 출입문 주위로 모여들기를 기다려 결사대 양 측면에 배치한 궁사들과 투창병들은 목책너머로 적을 향해 발사병기를 쏘아보냈다. 무수이 많은 적들이 화살과 투창에 맞아 죽었다. 적들은 부대를 더 이상 출입문 부근으로 집결시키지 못하고 산개하여 발사병기의 사정거리 밖으로 후퇴했다. 그러는 사이 헤스타이 결사대가 출입문으로 난입했다. 그러나 적장 에포레도릭스는 침착하게 휘하의 중무장기병대로 우군 결사대를 향해 돌진했다. 결사대에게 방어를 명하였으나 얼마못가서 결사대는 적의 기병돌격에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그러는 사이 준비해둔 5개의 헤스타이 보병대를 난입시켰다. 곳이여 적보병대 들이 몰려들었고 출입문을 두고 일대 치열한 육박전이 전개되었다. 에포레도릭스는 수백명의 우군 보병대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맹하게 우리의 헤스타이 보병대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결국 몇 차례 출입문주변에서 우군은 진격과 후퇴를 거듭했다. 하지만 적은 우군의 발사병기에 대한 대비책이 전무하였다. 적 보병대가 방어를 위해 출입문에 모여들수록 그들은 우군의 발사병기의 표적이 되어 쓰러져갔다. 오래지 않아 적의 보병대는 와해되기 시작하였고 보병대의 지원이 느슨해 질 무렵 적장 에포레도릭스는 우군 헤스타이 보병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적장이 살해되자 적보병대와 기병은 앞다투어 마을 광장으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 기회를 노려 나의 친위대와 함께 기병돌격을 감행하였다. 도주하는 무수히 많은 적 보병대의 진열을 뚫고 광장을 향해 급히 돌격하였으나 적의 중무장보병대가 잔류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응전을 해왔다. 급히 기병대를 돌려 후퇴하여 보병대로 적을 공격하였다. 적들은 최후의 일인까지 용감하게 싸웠으나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 전투로 적은 모두 전멸하였고 우군은 200여명의 병사를 잃었다.  

정사

세게스타의 도로가 보강되었다. 운송이 보다 원활해졌다.

겨울

스파이를 파타비움에 잠입시켜 적의 동태를 파악하게 하였다. 파티비움은 골족의 귀족출신 장군인 루고토릭스와 1800명의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군대의 숫자로서는 우군보다 2/3가량의 병력적 우세에 있었다. 하지만 수비대장은 행정가로서는 유능했지만 군무경험이 전무한 자였다, 내 아들 퀸투스의 군대를 합친다면 능히 파티비움을 공략 할 수 있을것이다.

bc267

여름

북부 산맥을 우회하여 골족의 신임 사령관 빈딕스가 소규모지원부대를 이끌고 매디오니움 남부도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파이의 정탐결과 군무경험에 풍부한 유망한 장군이었다. 그를 제거 하지 못하면 그가 파타비움 수비대와 연합하여 역공을 펼칠 가능성이 다분했다. 다행이도 그는 소수의 호위대만을 거느리고 있었다.

겨울

군솔

매디오니움 남부평원에서 빈딕스의 부대를 공격했다. 내 아들 퀸투스의 군대와 양동을 펼쳐 적을 포위섬멸을 눈앞에 둔 순간 빈딕스는 급히 후퇴하였다. 그의 기병대는 손실없이 전장을 벗어났으나 도주하던 적 보병대는 우군 기병대에게 모두 도륙되었다. 전투에서는 승리하였으나 빈딕스가 무사히 파타비움으로 피신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전황은 우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군은 장군다운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다운 군대와 가문의 흥망을 건 결전을 벌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행만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나의 둘째 아들 퀸투스의 아들 아물리어스가 장성하여 부자가 나란히 우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아물리어스는 퀸투스를 닮에 군무에 소질이 있었다. 퀸투스부자에게 매디오니움의 수비를 맞기고 군대를 규합하여 도합 1700여명으로 파타비움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정사

아르미니움에 시장과 세게스타에 농장을 새롭게 조성하도록 지시했다.

bc266

여름

군솔

무운은 전쟁에 있어서 장군의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점이다. 무운이 강했다고 생각했던 빈딕스는 남부평원 포위전이후 그 운이 다하여 결국 참혹한 결말을 맞이했다. 보병대의 호위없이 휘하기병대만 거느리고 매디오니움 부근을 정찰하던 빈딕스는 주변 야만족의 밀고로 매디오니움 수비대장인 퀸투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매디오니움 총독 퀸투스는 빈딕스를 추격했다. 이번에는 행운의 여신이 빈딕스에게 미소를 보내지 안핬다.  결국 빈딕스는 매디오니움의 남부숲지대에서 퀸투스의 기병대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의 자만심과 지나친 경계심이 결국 그의 무운을 다하게 만든 셈이었다.

정사

내 아들 비비어스의 아들 마니우스 쥴리어스가 어느덧 장성하여 우군에 종군하게 되었다.

본국 전체의 수비대를 주어 기동군단으로 본국을 수비하도록 지시했다.

빈딕스를 처단한 공로를 인정받아 나는 원로원의 승인으로 재무관에 임명되었다. 나의 영향력은 보다 넓어졌다.

겨울

그 해 겨울 파타비움을 공략했다. 첩자를 난입시켜 민심을 동요시키고 도시를 포위한후 “램”으로 출입문을 부수고 7대의 헤스타이 보병대가 난입하여 적을 도륙하였다. 적의 기병대는 용감하게 몇차례 돌격을 하였으나 빈딕스의 부재는 골족 수비대에게 치명적이었다. 오래지 않아 적의 저항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적 보병대는 하나둘 광장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나는 호위기병과 함께 간헐적으로 돌격해 오는 적 기병대는 격퇴하고 광장으로 통하는 좌측면으로 우회하여 진열을 세우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러는 동안 우군 궁사대는 마지막 화살을 모두 쏘아내며 적을 동요시켰다. 헤스타이 보병대가 광장에 당도하자 적보병대와 기병들은 용감하게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난전이 벌어지는 동안 비어있는 적의 좌측을 향해 기병돌격을 감행했다. 적 보병대의 좌측면은 나의 중무장기병대에 의해 완전히 와해되었고 수백에 달하는 적들이 우군기병의 창검에 찔리고 말발굽에 밟혀죽고 말았다. 좌측진열이 무너지자 적 보병대의 방어선은 순식간에 와해되기 시작했다. 결국 적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 전투로 적군1900여명이 전사하고 우군은 300여명이 손실을 입었다. 파티비움의 함락으로 이제 북이탈리아의 모든 골족 약탈자들은 괴멸당하고 말았다. 이제 어떠한 야만족도 감히 북이탈리아를 넘보지는 못할 것이다.

카라리스의 공략이 늦어지자 원로원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그들은 마치 우리를 그들의 수하 마냥 생각하는 듯 하다.

그리스의 테메에 함대를 파견하여 항구를 봉쇄하라는 원로원의 결의가 전달되었다.

정사

손자 아물루스에게 북부산맥 곳곳에 감시탑을 세우도록 지시했다.


사신을 파견하여 골족과 화해하고 무역체결에 성공했다.

아랜티움에서 헤스타이 보병대의 모병에 박차를 가하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조만간 카라리스를 정복할 수 있을것이다.

겨울

내 아들 루시어스의 사위인 “흉터” 해리어스에게 아렌티움의 헤스타이 6개 보병중대를 주어 카라리스를 공략하도록 지시했다.

군솔

파타비움에 헤스타이 2개중대를 남겨두고 즉시 서쪽해안도시 세게스티카로 원정을 떠났다. 들리는 소문에는 스피키오일문은 그리스 전역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을 견재하고 세게스티카를 점거하여 그리스와의 통상무역을 강화하고 지역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필요성이 있었다. 원정하는 병사들의 수는 이전에 파타비움 전투이후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사기가 충만했으며 몇차례의 전투로 용맹스러운 로마군인이 거듭나 있었다. 겨울의 막바지 무렵 세게스티카를 포위하고 램을 공성을 준비했다.

정사

파타비움에 농지건설을 지시했다.

아르미니움에 하수도건설을 지시했다.

3명의 사신을 각각 서부 골족영지, 북부 게르마니아영지, 동부지대로 파견하여 지형지물을 알아내고 무역조약을 채결할 것을 지시하였다.

bc265

여름

군솔

해리어스는 2척의 함선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카라리스에 상륙 도시를 포위하고 공성준비를 개시하였다.

골족 스파이가 파타비움에 잠입하였다고 도주하였다.

세게스티카를 포위하고 공성준비에 들어갔다.

정사

아렌티움에 하수도건설을 지시했다.

매디오니움에 농지 건설을 지시했다.

세게스타에 목책을 강화했다.

겨울

군솔

세게스티카를 함락시켰다. 반란군과 그들이 고용한 일리리안용병대의 저항이 있었으나 쉽게 진압할 수 있었다. 소규모 수비대를 남겨두고 세게스타카의 요소요소에 감사탑을 세우고 주변에 대한 경계를 엄중히 하였다.

정사

세게스티카주변에 국경을 마주한 데시아족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무역 및 동맹을 체결하였다. 그들은 골족과 달리 자신들의 영지만 수비할 뿐 우군에는 적대적인 위협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스페인족과 게르만족과의 무역체결에 성공하였다.

bc264

여름

군솔

마니우스 줄리어스가 새롭게 아군에 종군하게 되었다. 나와 사위가 세게스티카와 카라리스를 공략하는 동안 본국 북이탈리아를 수비하도록 지시하였다.

손녀사위인 해리어스가 카라리스를 함락시켰다. 적의 수비군은 민병대와 농민들뿐이어서 적은 쉽게 해리어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성공적인 카라리스 공략으로 해리어스는 로마본국에서 시민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정사

세게스티카 파타비움 매디오라니움 전역에 감사탑을 세롭게 세웠다.

매디오니움에 농지

파타비움에 쥬피터신전

세게스타에 도로 

아렌티움에 하수도

가 새롭게 증축되었다. 

bc264~261여름

군솔

별다른 군사행동은 없었다. 세게스티카의 반란군을 격퇴하고 세게스티카주변에 감사탑을 더욱 보강하여 설치에 경계를 강화하고 동남쪽의 마케도니아와 새롭게 무역을 체결하고 지리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카르타그 본국을 공략을 필요성을 느꼈다. 원정군을 편성하기 위해  새롭게 아렌티움에 헤스타이8개 부대를 모병하도록 예산을 승인하였고 카라리스의 총독 “흉터” 해리우스로 하여금 카라리스 주변의 용병대를 모집하고 카라리스에 방위군을 수립하는 즉시 아렌티움의 신병과 함께 카르타그를 공략하도록 지시했다.

정사

지배중인 대부분의 도시를 발전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예산을 농지를 개량하고 시장을 육성하고 도로를 새롭게 정비하는데 사용하였다. 쥬피터 신전에도 많은 기부를 하여 시민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고 지배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미덕을 배우도록 하였다. 아렌티움 매디오니움 파티비움 세게스티카에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4도시들은 그동안 도시발전을 위한 저세금리정책과 노예유입으로 인해 지나치게 인구가 증대되었기 때문이었다. 세수입의 증대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는 2년 뒤 262년 여름 그해 연수입은 264년 대비 120%가까이 증대되어 6400디나르의 수입이 걷는 결실을 가져왔다.

원로원에서는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대한 공로를 치하하여 나를 로마제국 조영관-옛 로마의 공공 건물․도로․공중 위생 등을 관장-에 임명하였다. 가문의 명성이 더욱 드높여 졌다.

겨울

군솔

카르타그로 원정을 위해 북이탈리아 수비대장인 마니우스 줄리어스에게 휘하 장병을 이끌고 아렌티움 항구로 집결하도록 명하고 새로운 본국 수비대장으로 내 맞아들 루시우스의 차남인 손자 데시우스 줄리어스를 임명하였다. 그에게 아렌티움에서 새롭게 모병한 헤스타이보병대 2대를 주고 아렌티움에서 보병대를 모병할 수 있도록 예산을 승인하여주었다. 본국인 북이탈리아를 수비토록 지시하였다.

원정준비로 인해 군대가 재배치되는 혼란한 때를 틈타서 본국인 북이탈리아에서는 몇차례의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군은 대게 나에게 불만이 많았던 분가한 일족의 수장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도시들을 하나도 점거하지 못했다. 거병하는 족족 마니우스의 수비대가 데시우스군대와 함께 적을 격퇴하였기 때문이었다. 적은 오히려 마니우스의 명성만을 더해주었다.


bc260

여름

군솔

마니우스 줄리어스는 헤스타이5개 보병대를 거느리고 3척의 전함의 호휘를 받으로 카라리스로 향하였다. 마니우스는 만일 대비하여 1척의 전함을 전위대로 삼아 상륙할 카르타그 해안의 수비대와 적의 함정들을 탐색하도록 지시하였다. 그 즈음 카르타그군은 카라리스를 수복하기 위해 일단의 보병대를 카라리스로 상륙시켰다. 카라리스 총독인 “흉터” 해리어스는 카라리스 곳곳에 감시탑을 세우고 적을 경계하고 있던중 적의 상륙소식을 접하고 급히 군대를 돌려 카라리스 수비대와 합류한후 카르타그 상륙부대를 격퇴하였다. 적은 총독과 수비대의 군세에 눌려 감히 응전하지 못하고 카르타그 내륙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겨울

군솔

카라리스 총독인 “흉터” 해리어스는 카르타그 상륙부대를 맹렬히 추격하여 적들을 분쇄시켰다. 적의 상륙정은 카르타그 본국으로 퇴각하였음으로 적은 더 이상은 도주하지 못하고 와해되었다.

마니우스 줄리어스가 해리어스와 조우하여 카라리스 남쪽해안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카르타고로의 원정준비를 맞췄다. 원정군의 총병력은 총사령관 마니우스 줄리어스와 칼라리스총독의 호위기병 100명 헤스타이 보병대 11개 중대와 용병대로 시칠리아에서 모집한 그리스홉나이트 1부대 방패투창병 2부대 총 2000여명의 대군이었다. 

우군 정찰함의 보고에 의하면  카르타고 수도경비대 전체가  그들의 식민지인 니베리움을 침공한 부르투스 군을 격퇴하기 위해 지원군으로 파견되었다는 것이었다. 해안에도 적의 전함은 한척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상륙하여 수도를 점거하는 일만 남았다.

메디오니움과 파타비움에서 감사탑 세우는 일을 맡았던 나의 손자 아물루스 줄리어스를 내곁으로 불러들였다. 요즘들어 나의 기력을 쇠약해지고 정신력도 많이 나약해졌음을 느꼈다. 이제는 본국으로 돌아가 마지막 여생을 안온하게 보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세게스티카는 북이탈리아를 방비하기 위한 중요한 방어선이었고 풍부한 자원을 가진 소중한 영지였다. 내곁에는 손자 아물루스가 있었지만 아직은 군무경험이 부족하여 혼자서 세게스티카의 수비를 맡기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나의 죽음을 예감하고 나는 나의 수행원들을 내 손자 아물루스에게 주어 새롭게 그를 보필할 것을 지시하였다. 아물루스는 비록 작은 명성도 없는 풋내기 젊은이에 불과했지만 올바른 정신을 가졌고 군무에 재능이 있었다. 내 손자와 나는 세게스티카에 총 8개의 감시탑을 세우고 세게스티카 남동쪽 도로부근에 새롭게 군단이 주둔할수 있는 군단요새를 만들고 국경을 경계하였다. 

bc259

여름

카르타고 정벌군이 드디어 카르타고의 수도해안에 무사히 상륙했다. 근방에는 적의 함정도 육군도 보이지 않았다. 마니우스의 원정군 2000명은 즉시 수도를 포위하고 인근의 용병대를 모집하여 새롭게 리비아투창대2개부대와 용맹하다고 잘 알려진 누미디아기병 1부대를 더 확보하여 총병력 2400여명을 이끌고 수도를 봉쇄하고 공성전을 준비했다.

겨울

마니우스원정군은 그해 겨울 수도 카르타고를 점령했다. 도시의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갔고 막대한 양의 전리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주변에 인접한 누미디아족은 의혹의 시선으로 우리를 경계하며 소규모 군대를 수도 카르타고 주변으로 보냈다. “흉터”해리우스를 수도 카르타그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원정군용병대전체를 주어 수비토록했다. 불신분자와 군인포로등을 대부분의 원주민을 노예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 카르타그는 역시 한 제국의 수도답게 무려 7000명의 사람들이 상주해 있는 거대도시였다. 이전의 소도시점령과는 다른 정책을 펼쳐야만했다. 비록 전쟁에서 지고 식민지로 전락한 카르타그 주민들이었지만 그들을 만족시켜 불온한 행동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성이 있었다. 저세금리정책을 우선하면 한편 로마중장보병대인 프린시플 5개중대를 모병하도록 했고 주변의 카르타그 함대를 경계하기 위해 아군 최신의 전함 트리메급 전함 6척 새롭게 진수하도록 했다.  마누우스에게는 서쪽에 누미디어 영지부근에 무력시위를 펼칠 것을 지시했다. 누비디아군은 감히 마니우스원정군을 공격하지 못하고 지켜만 볼 따름이었다. 누미디아족에게 충분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고 원로원의 결의방식으로 누비디아영지에서 철군했다.

bc258~257

여름

마니우스에게 지방 용병대를 모병하여 남동쪽에 위치한 카르타그 도시인 투랍수스를 공략하도록 지시했다. 투랍수스에는 준군단급의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남지중해로 군사력을 집중하는 동안 골족은 서유럽전역에서 강성하게 세력을 넓히고 있어서 이베리아의 태반이 골족의 수중에 들어갔고 호전적이던 스페인족도 골족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신을 보내 우리와의 동맹을 제안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지리정보도 추가로 제공했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동맹의 대가로 그들에게 20분기에 걸쳐 매회 2000디나르의 상납금을 받치도록 요구했다. 그 대가로 골족의 이베리아남하를 저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골족을 정벌하여 로마의 북쪽을 안정케 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노쇠한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골족을 모조리 정벌하기 전에는 나는 죽을 수 없었다.  

정사

대부분의 도시에 걸쳐 그간의 고율의 세금을 낮춰주었다.

수도 카르타그에 항구를 새롭게 증설시키고 하수시설을 정비하였다.  

매디오니움에 새롭게 대장간을 설치하고 군사도시로 육성할 방침을 새웠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주민 통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겨울

본국 방어사령관 데시우스 줄리어스에게 아렌티움에서 모은 수비대 700을 주어 골족을 정벌하도록 명하였다. 이동하는 동안 충분한 숫자의 용병대를 고용할 수 있도록 군사비지출의 우선권을 주었다. 골족의 강성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많은 없는 일이었다. 매디오니움의 남부도로를 떠나 데시우스원정군을 남부산맥의 긴 협곡을 따라 이동시켰다. 원정목표는 북이탈리아 남부산맥너머의 도시 마실리아를 공략하여 골족본토를 공격하는 교두보로 삼고 마실리아서 정서쪽에 위치한 광물자원이 풍부한 도시 나보-마티어스를 공략하여 이베리아골족과 서유럽골족의 군사행동을 양분하는 계책이었다. 나보-마티어스를 공략한다면 이베리아골족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이베리아 전역에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bc256

여름~겨울

나의 장남 루시어스 줄리어스의 삼남인 마르쿠스 줄리어스가 어느덧 장성하여 우군에 종군하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 데시우스 대신에 본국 북이탈리아 수비대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데시우스의 원정으로 빠져나간 수비군을 충원하기 위해 아렌티움에서 새롭게 헤스타이 9개 보병중대를 모병토록 지시하였다.

마니우스군에게 트랍수스 공략을 위한 용병대 모병과 카르타그총독인 해리우스으로 하여금 프린시플 3개중대를 지원해 주도록 명했다. 마니우스는 소수의 헤스타이 보병대를 투랍수스 영지부근으로 파견하여 적을 유인하도록 지시하였다.

bc255

여름

남지중해 마니우스원정군은 처음으로 트랍수스부근에서 카르타그 수비대와 조우했다. 카라타그 수비대는 곧 트랍수스로 퇴각하여 수비태세에 임했다. 적을 유인하기 위해 헤스타이 보병대를 파견하여 적을 트랍수스 밖으로 유인하였다. 유인부대를 불러들이고 트랍수스 북부평원에서 적과 대치하였다...

(통치기2부에서 계속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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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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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콘라드II세 | 작성시간 05.08.06 역사전기 같아요 +_+ 멋져요 乃
  • 작성자吳仁鎬 | 작성시간 05.08.10 잼있어요~~잘쓰셧네요~~담편도 ㄱㄱ부탁해용
  • 작성자가르마 | 작성시간 05.08.17 재밌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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