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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알모하드 왕의 꿈 12 - Genocide

작성자흑풍|작성시간05.10.15|조회수252 목록 댓글 0

 북아프리카에서 시작해서 중동과 이베리아 반도를 석권한 후, 20년 동안의 재정비를 마친 알모하드는 다시 정복 활동을 시작했다. 알모하드는 한번의 용트림으로 프랑스와 영국까지 정복했고, 그것으로는 양이 차지 않은지 그 다음 해에 이탈리아와 로마를 동시에 침략했다. 이미 이탈리아 반도의 전 해역이 알모하드의 배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로마와 이탈리아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탈리아는 이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2년만에 멸망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함께 공격을 받은 로마도 역시 3년만에 멸망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하나의 끔찍하기 이를테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결코 드문 일은 아니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고 절대로 익숙해져서도 안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로마에서 일어났다. 훗날 "로마 최후의 날"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알모하드가 이탈리아를 공격하기로 결정한 공식적인 이유는 안전한 항로의 확보였다. 알모하드는 지중해 이남과 북유럽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무리 없이 통치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통한 통신과 교통의 원활한 소통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의 해역를 통한 하나의 항로만으로 그것을 지탱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했다. 그래서 알모하드는 이탈리아 해역을 지나는 또 하나의 항로를 확보하기를 원했다. 물론 이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미 선점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협력을 얻어야 했는데 그것은 불가능했다. 알모하드와 이탈리아는 과거 이탈리아 해군이 선공을 가한 이래로 30년 동안 전쟁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모하드는 20년에 걸쳐서 종전제의를 했지만 이탈리아는 그것을 번번히 거절하고 있었다. 결국 무력을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것이 알모하드의 입장이었다.

 

 또한 알모하드가 로마를 공격하기로 결정한 공식적인 이유는 십자군을 일으킨 책임을 묻기 위함이었다. 물론 알모하드는 교황청에 사신을 보내 십자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아랍인들에게 정중히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교황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십자군이 광신과 욕망으로 점철된 기독교 역사의 오점이라고 발표하는 것은 교황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알모하드는 과거에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단죄하고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칼을 들었다.

 

 이것이 알모하드 대변관이 전한 알모하드의 공식입장이었다.

 

 진짜 이유가 어찌됐던, 이렇게 해서 전쟁은 시작됐다. 로마를 공격하는 부대에게 전달된 작전명은 "로마 자유 작전"이었다. 왜곡된 신앙과 그것으로 인한 광신으로부터 로마를 해방시킨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었다.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으로 전 부대의 배치가 완료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로마의 한 평야에서 맞은 어느날 아침, 알모하드 최고의 장군인 알리바바는 각 부대의 전령들이 보내온 부대배치 완료 보고를 들었다. 알리바바는 가벼운 몸풀기로 밤새 굳어진 몸을 풀고 나서, 말에 올랐다. 단숨에 말에 오른 알리바바는 느긋한 어조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학익진을 유지한 상태로 보병부대는 천천히 전진할 것. 양 날개의 궁기병대는 적의 후방에 돌아가 정탐과 신경전을 병행할 것. 이번 전투의 목적은 적의 주력을 섬멸하는 것에 있으니, 모든 부대는 체력 안배에 주의할 것. 이상이다."

 

 "예!"

 

 뿔뿔이 흩어지는 전령들과 역시 느긋한 표정을 하고 있는 참모들을 보는둥 마는둥하면서 알리는 생각했다. 3천 대 1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승리는 낙점이다. 이번 전쟁을 최대한 빠르고 깔끔하게 끝낸다. 그래서 알모하드의 위엄을 만방에 과시한는 이 계획은 특별한 변수가 나타나지 않는 한 아무 문제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한 알리바바는 손을 들어 양볼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본대의 이동속도에 맞춰 천천히 말을 몰면서 앞서 나간 궁기병 2개 부대를 주시했다. 그들은 지금 로마군의 좌, 우측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이쪽에서는 흐릇한 윤곽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로마군의 병력과 그 배치가 또렷이 보일 것이다. 적 궁병이 측면에 배치되어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측면을 포기하고 후면으로 돌아갈 것이다. 적 기병이 요격을 위해 뛰쳐나올까? 그렇다면 그들은 뒤로 물러나면서 적 기병을 전장 밖으로 유인할 것이다.

 

 궁기병대에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지는 알리바바의 이러한 상념은 그 어느 것도 적중하지 않았다. 로마군이 보유한 1문의 대포에서 발사된 2발의 포탄이 궁기병 2개 부대 모두를 직격해 버린 것이다.

 

 패닉에 빠진 채 정신없이 전장을 이탈하는 두 기병대를 보면서 알리바바는 기가 막혔다. 오합지졸을 모아놓은 농민병도 아닌데 저 정도의 타격에 지휘체계가 붕괴되다니, 지휘관이 전사하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저 부대가 이번 전투에서는 무용지물이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음부터 일이 잘 풀려나가지 않자 기분이 상한 알리바바는 인상을 있는대로 찌뿌렸다. 그러면서도 알리바바는 머릿속의 전력배치도에서 두 기병대를 재빨리 치워버렸다. 그리고 새로 그려진 그림에 따라 명령을 내렸다.

 

 "전 기병대의 전진배치. 적의 후면으로 돌아가도록 하라. 중앙의 전 보병대는 각각 3열종대로 바꾸고 부대 간격을 50m로 늘리도록 하라. 그리고 적과의 거리 200미터 지점에 도달하면 구보로 전진하기 시작한다. 이상."

 

 알리바바의 명령은 즉각 전달되고 실행되었다. 그리고 알모하드군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부드럽게 진형을 바꿈으로써 자신들이 정예군임을 입증했다. 적이 계속해서 대포를 쏘아댔지만, 알모하드군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기가 막힌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 또한 그것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것이었다.

 

 로마군이 쏘아댄 6번째 포탄이 알리바바에게 명중된 것이다. 자신의 몸통만한 돌덩이에 직격당한 알리바바의 육체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생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지고 뭉개져버렸다.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알리바바는 그렇게 죽음을 맞았다.

 

 지휘관을 잃은 알모하드군의 혼란은 참모들로부터 시작해서 일반병사들에 이르기까지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영어 공부를 한번도 한 적이 없는 한 참모가 "Our General is slayed!" 이라고 외치는가 하면, "ㅌ ㅌ ㅌ" 라는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치는 하급장교도 있었다. 최정예군단이 오합지졸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마치 눈사태가 일어나듯이 알모하드군은 꼴사나운 모습을 잔뜩 보이면서 전장을 이탈했다.

 

 이날 전투의 사상자는 17명. 모두 알모하드군에서 나왔고 특히 9성장군이 전사한 것은 알모하드로서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하지만 더욱 더 심각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계속되는 연승행진에 제동이 걸려버렸다. 하필이면 정치적, 종교적으로 민감하기 그지 없는 로마에서 말이다. 게다가 알모하드에서 유일하게 원로대신으로 대접받고 있는 9성장군이 본래의 형체도 못 남기고 처참하게 살해 당해 버렸다. 하필이면 로마에서 말이다. 또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알모하드군이 꼬리에 불붙은 토끼 마냥 꼴사납게 적전도주하여 그 이미지를 구겨버렸다. 하필이면 그 로마군 앞에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알모하드군은 장렬하게 싸우다가 패한 것이 아니었다. 눈 먼 돌덩이에 지휘관이 맞아 죽는, 정말 재수 더럽게 없는 꼴을 당해서 진 것이다. 하필이면 이! 교! 도!의 땅에서 말이다.

 

 장엄하고 깔끔하게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려 했던 알모하드의 권력자들은, 이 네 가지 때문에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성을 초월한 무엇인가가 개입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술김에 농담처럼 말했고 다른 사람들이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던 것에서 시작됐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았다. 어쨋든 그것이 처음에는 농담이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복제와 증식을 거듭하여 알모하드 전역에 퍼졌을 때, 그것은 더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었다.

 

 알모하드의 힘을 당할 길이 없어서 교황이 악마와 계약하여 그 힘을 빌었다는 소문은, 그것들 사이에서는 가벼운 축에 속했다. 알리바바를 살해한 그 포병대는 사실은 교황이 소환한 악마들이고 그들이 전설의 "마탄의 사수들"라는 소문이 나돈 것 또한 그것들 사이에서는 봐줄만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농담에 속했다.

 

 하지만 로마시장이 로마를 사탄에게 "봉헌"하여 지금 로마가 악마의 소굴로 변해버렸다는 소문은 농담의 영역을 살짝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로마를 시작으로 악마들의 세계정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악마들의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로마를 쳐야한다는 식으로 발전한 이후로, 그것은 농담이 아닌 굉장히 심각한 상황으로 변했다.

 

 괴담은 그렇게 가지를 치고 살을 붙여나갔다.

 

 

 

 요즘들어 알리는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갑자기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심각한 표정으로 궁시렁 대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여기저기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까지 그 징조는 다양했다. 로마에서의 패배가 준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자, 알리의 머리속에는 '알모하드의 내란, 분열, 붕괴'라는 단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가 그 원인을 알게 되자 미칠 지경이 되었다.

 

 알리는 꿀물을 마시면서 엄지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리고 피로가 가시지 않은 눈을 들어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알리는 보고서를 들어 대신들의 얼굴에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과인에게 이 말을 믿으라는 것이오?"

 

 대신들의 대표가 대답했다.

 

 "믿을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하지만, 네이버 여론조사 결과 백성들의 약 70%가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합니다."
 
 알리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보고서를 소리내어 읽었다.

 

 "교황청에는 사탄의 아들인 "마몬"이 봉인되어 있었는데, 로마가 위기에 처하자 교황이 그 봉인을 풀고 마몬과 계약했다? 봉인을 해제하는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묻은 "롱기누스의 창"이고? 마몬이 소환한 악마들 중에서 마법사는 개나 소나 9서클에, 데스나이트는 내공 10갑자가 기본이라는.... 이런 썅!!"

 

 결국 폭발한 알리는 보고서를 집어던졌다. 사방에 흩뿌려지는 종이들 사이로 알리는 손바닥으로 탁자를 탕 치고는 분노를 터트렸다.

 

 "한 장군이 눈 먼 돌덩이에 맞아 죽은 사건이 이런 말도 안되는 판타지가 됐다는 것을 나더러 믿으란 말야? 응? 물론~ 나도 이번 경우는 정말 재수가 없었다는 것은 인정해. 하지만 초딩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지성과 교양을 갖추었다는 대신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입에서 "결계", "봉인", "마나", "디아블로", "WOW" 등등의 단어들이 튀어나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열받아서 씩씩대는 알리의 모습에 거의 모든 대신들이 찍 소리도 못낼 정도로 기가 죽었다. 하지만 대신들의 대표는 늙은 생강이 맵다는 속담을 증명하듯이 유연하게 대처했다.

 

 "군중심리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뭉치면 바보가 된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어쨋든 전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의 사실여부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민심이 동요하고 있고, 그것을 빠른 시일내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결방법? 시민단체들의 성명대로 지하드를 선포하자고?"

 

 "그렇습니다. 그것도 대대적으로 해야합니다."

 

 "지금 우리 알모하드의 군대규모가 포화상태인 것을 알고는 있지? 지금은 괜찮더라도 나중의 재정악화는 어떻게 수습할래?"

 

 "로마를 친 여세를 몰아서 비잔틴을 먹고, 몽골을 카자흐까지 밀어버리는 것이 어떤지요? 전하께서는 평소에 콘스탄티노플을 탐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몽골도 한번 손봐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요즘 너무 크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알리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세를 바로하고는 그 계획에 따른 손익을 계산했다. 충분히 이득이 남는다는 결과가 나오자 알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좋소. 그럼, 로마의 처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흥분이 가라앉으니 말투부터가 달라졌다. 왕의 달라진 말투 때문인지 앞으로 나올 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대신은 약간의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간단히 끝낼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공략은 쉬워도 수성은 힘든 곳입니다. 아예 박살을 내야지 않겠습니까?"

 

 그로부터 한달 후, 알리는 지하드를 선포했고 로마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다. 이때 모인 병력은 최정예 3개 군단을 포함한 2만, 로마를 그냥 공략만 하기에는 지나치게 넘치는 규모였다. 작전명은 "충격과 공포". 로마를 향한 알모하드 국민의 심경을 반영한 작전명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로마에서 맞은 어느날 아침, 알-무슈림은 한잔의 술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사방에서 진동하는 피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밤을 세워 로마인 2천명을 갈아버렸었다.

 

 한달 전에 로마군 주력부대를 격파했었다. 대부분을 포로로 잡았고 그들 전원을 처형해 시체를 들판에 널어 놓았었다. 그 이후 알모하드군의 행보를 막는 자들은 없었다. 그래서 알-무슈림의 부대는 마을을 만나면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잡아죽이는 일을 반복하면서, 교황이 있는 곳을 향해 똑바로 진격했다. 로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20개의 군단들도 마찬가지의 일을 하고 있었다.

 

 알-무슈림은 진지를 철거하고 행군준비를 하고 있는 병사들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주변을 순찰했다. 별다른 문제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진지 주변을 멀리 돌면서 이상징후는 없는지 확인했다. 역시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좋아! 오전 순찰 끝! 어서 이곳을 뜨자!"

 

 알-무슈림은 억지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고삐를 돌렸다. 그러자 호위병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군님, 아직 남은 포로들을 점검하지 않으셨습니다."

 

 알-무슈림은 희득거리는 눈으로 그 병사를 노려보았다.

 

 "그럼, 네가 점검하고 와서 나한테 보고할래?"

 

 그 병사는 질색이라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닙니다. 그쪽 보고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포로들의 관리와 처형을 맡고 있는 하시신 부대장 자피르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알-무슈림을 찾았다.

 

 "장군님, 기뻐하십시요. 이곳의 영주가 모든 것을 자백했습니다. 또한 가족들의 목숨을 보장해 주기만 하면 길잡이 역할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오오! 그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단 말이오? 그런데 왜 그자와 함께 오지 않았소? 내가 직접 들어봐야 하지 않겠소?"
 
 여기서 자피르는 조금 머뭇거렸다.

 

 "그게 저... 지금 심적으로 많이 피곤한 상태이기 때문에 데려올 수 없었습니다. 오늘 저녁 쯤에는 꼭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알-무슈림은 그 심적으로 피곤한 상태라는 것이 반쯤 미쳐버렸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무리도 아닐 것이다. 눈앞에서 2천명의 사람들이 그 기계 속에서 "갈아져" 버렸으니까. 그것을 본 자신도 그만 토해버렸는데, 관계자는 오죽했을까.

 

 알-무슈림은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흔들며 자피르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날 알-무슈림은 병사들을 다그쳐서 약속지점을 향해 강행군을 시작했다.

 

 

 

 다시 한달 후, 주력이 괴멸당한 성은 알모하드의 2만대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됐다. 알모하드군은 목책을 2중으로 설치하여 성을 완전히 감아버리고는 그대로 세월을 보냈다.

 

 "어쩔 수 없잖아. 저들이 결사적인 수성전을 대비하고 있는데, 공연히 쳐들어가면 출혈만 있을 뿐인걸. 그건 그렇고, 특수부대는 침투할 준비됐소?"

 

 "예! 오늘 밤에 실행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1년 후에 끝날 전쟁을 한 달만에 끝낼 수 있소. 반드시 성공해야 하오."

 

 알-무슈림의 말에 자피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그런데..."

 

 말을 흘리면서 알-무슈림은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초점을 잃은 눈을 하고 있는 초췌한 모습의 남자였다. 알-무슈림은 그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어조로 자피르에게 말했다.

 

 "상태가 많이 나빠 보이는데, 길잡이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겠소?"

 

 "염려 마십시요. 어젯밤에 처형 장면을 보여줬고 작전이 실패하면 가족들이 저렇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으니, 죽을 각오로 작전에 임할 것입니다!"

 

 알-무슈림은 그 처형 장면이 머리속에 저절로 떠오르자 욕지기를 느꼈다. 그는 고개를 세게 흔들어 그 생각을 지우고는 빨리 회의를 끝냈다.

 

 "좋소. 오늘 밤에 따로 보고할 필요없이 바로 출발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한달 후, 하시신 부대가 성에 잠입하여 군량을 불태우는데 성공한 이래로 성의 식량사정은 극도로 나빠졌다. 원래부터 성에 상주하고 있던 인구도 많은 편이었는데 학살을 피해 들어온 난민들이 포함된 이후로는 성이 미어터질 지경이 되었다. 그 상황에서 식량이 불타버렸으니 말 다한 것이다.

 

 성내의 모든 동물들이 일차로 씨가 말랐다. 쥐까지 포함해서 먹을 수 있는 모든 동식물이 사라지자, 그 다음에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참극이 벌어졌다. 결국 참다 못한 사람들 일부가 성을 탈출해 항복했지만, 알모하드군은 성벽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공개처형했다. 자피르가 심혈을 기울여 발명한 그 처형기계로 연출한 그 처형장면은 아마도 역사에 남을 것이 확실했다. 비현실적으로 잔혹했으니까.

 

 공포와 오열속에 휩싸인 사람들에게 알-무슈림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십자군의 전범들인 교황과 주교들 전원을 이렇게 처형하지 않는 한 이 참혹함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어서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으면 누구든지 교황과 주교들을 잡아서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마침내 교황청은 결단을 내렸다. 자신들이 희생하여 시민들을 살린다는 것은 아니었다. 바닥난 식량과 신성한 권위로도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민심이라는 악재를 해결하기 위해 성을 열고 총공격에 나선 것이다.

 

 

 

 알모하드군은 까맣게 밀려온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간은 기가 죽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에 대해 미리부터 단단히 교육을 받은터라 겁을 먹지는 않았다.

 

 게다가 하급장교들은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면서 병사들을 격려했다.

 

 "그대들이 설치한 목책을 믿어라! 그동안 괜히 피땀 흘려 세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저들을 봐라! 제대로 된 무기를 든 자가 보이는가? 맨손으로 오는 자도 부지기수다. 저들의 며칠 굶은 듯한 얼굴을 봐라! 이러고도 우리가 질 것 같은가?"

 

 "아닙니다!!!"

 

 "좋다! 궁병대는 적들이 100미터 이내로 들어오는 즉시 사격을 개시하고, 적이 1차 목책에 도달한 즉시 2차 목책 뒤로 후퇴하여 사격을 재개한다. 창병대는 궁병대 뒤에 대기하고 있다가 적들이 목책에 달라붙는 즉시 2번 돌격하고 물러난다. 2차 목책까지 물러나면서 반드시 밀집대형을 유지해야 한다. 알았나!!"

 

 "예!!"

 

 "준비하라! 발사!"

 

 수 천발의 화살이 하늘을 까맣게 뒤덮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이 파래졌을 때, 비명과 함께 수 천의 사람들이 땅에 굴렀다. 쓰러지는 사람이 뒤에 있는 사람의 발에 밟히고 앞사람을 밟고 넘어진 사람이 그 뒷사람에게 밟히는 참극이 연출됐다. 하지만 그들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수 천발의 화살이 날아와 그런 그들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적들이 목책에 달라붙었다!"

 

 "창병대 돌진!!"

 

 "돌진!!"

 

 알모하드군의 창병대가 함성과 함께 앞으로 돌격했다. 길이 약 3미터의 창을 각각 0에서 45도의 각도로 치켜 올리고, 그들은 목책을 기어오르고 있는 사람들의 몸을 사정없이 찔러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시속 70km의 속도로 달리던 말이 그대로 사람을 받아버리는 것과 같았다.

 

 "푸카칵!!"

 "으아악!!"

 "꺄악!!"

 

 죽음의 소리와 비명이 끔찍한 합창을 이루며 사방을 진동시켰다. 수천개의 창날이 목책의 틈새를 지나서, 목책에 달라붙어 있는 수 천명의 사람과 그 뒤에 붙어 있는 세 배 많은 사람들의 몸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창에 찔린 사람들은 마치 나무에 못박힌 돼지처럼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한동안 버둥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를 밟으며 사람들이 목책을 타 넘었다. 목책 위에 얹혀진 시체 위에서 뛰어내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창병대의 두번째 돌격이었다.

 

 "퍼퍼퍽!!"

 "어억!!"

 "엄마야~~ "

 "살려줘!!"

 

 다시 만 단위의 사람들이 줄줄이 창에 꽂히면서 목책과 하나가 됐다. 그리고 알모하드의 창병대는 뒤에서 건네준 새로운 창을 건네받으면서 외쳤다.

 

 "창병대 밀집대형!!"

 

 "방패를 들어라!!"

 

 "전우들과 열을 맞춰라! 옆의 전우는 바로 너희들의 생명이다!"

 

 "구호와 함께 뒤로 물러난다! 구호가 없으면 후퇴도 없다!!"

 

 "보급대는 대기하라! 대기하라!"

 

 "북을 쳐라!!"

 

 하급장교들의 호통과 함께 창병대는 전방을 향해 창을 뻗으며 함성을 질렀다.

 

 "두둥둥 둥 둥!!"

 "알~ 모 하 드!!"

 

 "두둥둥 둥 둥!!"

 "알~ 모 하 드!!"

 

 알모하드군의 병사들이 통일된 구호를 외치면서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그것을 본 사람들을 압도시켰다. 그리고 그것에 앞도당한 사람들은 눈앞에 존재하는 확실한 죽음와 뒤에서 마구 떠밀고 있는 이웃들에 의해서 공포에 빠져버렸다. 떠밀린 사람들은 함성 또는 비명을 지르며 알모하드군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창끝과 만났다.

 

 "으허엉~~"

 "어머니~~"

 "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악!!!!"

 

 알모하드군은 제자리에 굳건히 서서 창자루를 옆구리에 끼어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다. 그리고 빽빽이 몰려있는 사람들은 자기 앞의 사람들을 있는 힘을 다해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면 창끝과 이동하는 사람의 벽 사이에 끼인 사람들의 운명은? 추석 때 흔히 느낄 수 있는, 이쑤시개에 문어다리를 끼울 때의 느낌이 딱 그것과 같을 것이다.

 

 창날이 가슴팍을 서서히 파고드는 감촉을 느끼며, 사람이 뒤로 물러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친다. 하지만 등뒤에서부터 가해지는 힘은 불가항력이라서, 창끝이 몇 cm씩 서서히 파고 들어오게 된다.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공포 때문에 울음을 터트리지만 누구하나 들어주는 이는 없고, 입에서는 이내 소리 대신 피가 뿜어져 나와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창에 심장을 찔린 행운을 놓친 사람들은 그것이 등을 뚫고 나온 이후에도 살아남아 계속 고통을 당하면서 버둥거린다. 그리고 마침내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 생명의 불은 꺼지고 몸이 축 늘어진다.

 

 한 사람이 이렇게 죽어가는 동안, 그 뒤에서는 다른 사람이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같은 방식으로 죽어갔다. 그리고 또 그 뒤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곧 그렇게 될 줄도 모르고 앞 사람을 밀어붙였다.

 

 

 

 "장군님, 전 지역의 창병대가 2차 목책까지 물러났습니다! 다음 명령을 내려주십시요!"

 

 "좋다! 전 부대에게 전한다! "금지된 불장난" 실시!!"

 

 "알겠습니다! 작전명 "금지된 불장난"을 전달하겠습니다!"

 

 알-무슈림의 명령이 전령들을 통해 전 부대에 전달되자 알모하드군의 움직임이 변화를 보였다. 전방에 위치한 창병대는 밀집대형을 강화하면서 수비를 단단히 굳히기 시작했고, 후방에 위치한 포병대와 궁병대는 각각 기름통과 불화살을 준비했다.

 

 잠시 후, 불타는 기름통과 기름주머니를 매단 불화살이 하늘을 갈랐다. 그리고 땅에서 떨어진 그것들은 굉장한 소리와 함께 1차 목책을 중심으로 불의 띠를 형성하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태우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면서 불춤을 추는 산 사람들과 끔찍한 폭발음을 내며 들썩거리는 죽은 사람들 위로, 죽음의 연료는 끊임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불길은 바위라도 녹일 기세로 타 올랐다.

 

 그 기세는 실로 대단해서 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불의 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꽤애애애액!!!"

 "뷁!!!!!!!!!"

 "사람 살려!!!!!"

 "이 악마들아!!!!!!!!"

 "와아아아!!!!"

 "알모하드 만세!!!!"

 

 불타는 사람들이 비명과 저주를 담아 단말마를 질렀다. 알모하드의 병사들이 저 멀리 앞에 있는 죽음의 불꽃에 환호하며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이 죽음의 불꽃을 뒤돌아보며 공포와 증오와 슬픔의 감정을 질렀다.

 

 온갖 감정들이 한데 섞여 폭발하는 이곳은 전장이다.

 

 

 

 "적들의 기세가 꺾였다!"

 

 "지금이다! 전군 돌격!! 북을 쳐라! 함성을!!"

 

 "두둥둥 둥 둥!"

 "알~ 모 하 드!!!"

 "알~ 모 하 드!!!"

 "알~ 모 하 드!!!"

 "와아아아아!!!!"

 

 환희와 열정이 폭발한 알모하드 병사들이 미친듯이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마주치는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알모하드군의 화공이 성공한 시점에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앞으로 달리던 맹렬한 기세는 뒤에서 발생한 거대한 화재에 의해 그 흐름이 끊겼고, 퇴로가 끊겼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이내 공포에 사로잡혔다. 머릿속이 "죽음"이라는 단어로 삽시간에 들어차 버린 그들은 마침내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런 그들의 등뒤로 창칼이 마구 떨어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하지만 그들의 앞은 성날 대로 성난 불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는 피에 취한 병사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어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세를 전쟁 초반에 이미 써버린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발악은 무리였다. 그들은 발악적인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상황은 혼란의 극치로 치달아, 창칼과 불을 피해 헤메다가 서로 서로 부딪치는 일이 속출했다.

 

 알모하드의 병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눈에 걸리는 대로 창으로 찌르고 칼로 베고 군화발로 걷어찼고 밟아 뭉갰다. 그리고 불 속에 밀어넣었다. 이 순간 이 병사들에게 이 사람들이 무엇으로 보였을까? 피부색이 조금 다른 사람?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동물? 그것도 아니면 그냥 아군이 아닌 어떤 것?

 

 어쨋든 병사들은 정말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사람들을 죽여댔다. 그 손길을 피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마저 있었으니 오죽 했겠는가. 그리고 불 속에 뛰어든 사람들은 목책과 시체들로 이루어진 산을 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전투가 끝난 것은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1차 목책을 넘어선 사람들 중에서 성으로 돌아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추정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알모하드군은 이 시체들을 모아 이제는 시체의 산이 된 1차 목책에 던져넣고 기름과 장작을 부어가며 전부 태웠는데, 1주일 지난 후에야 그 불이 꺼졌다.

 

 그 1주일 후, 로마의 성에는 백기가 올랐고 사람들이 교황과 주교들과 기타 관료들을 묶어서 성 밖으로 나왔다.

 

 "항복합니다! 그 뜻으로 1급 전범인 저들을 붙잡아 왔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요!"

 

 시민들의 대표가 나와서 알-무슈림 앞에 엎드리면서 외쳤다.

 

 알-무슈림은 손짓으로 부하들이 시민들의 대표를 일으키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울먹이고 있는 그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고생하셨소. 악독한 상전을 만나서 이 무슨 고생을 한 것이란 말이오. 저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죄를 빌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을."

 

 그리고 굴비처럼 묶여있는 교황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노한 어조로 소리쳤다.

 

 "이 나쁜 놈들아! 저기의 잿더미와 뼛조각을 봐라! 너희들의 무모한 공격으로 얼마나 많은 로마 시민들이 죽어갔느냐! 노인과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전장으로 내몰은 너희들의 악독함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자피르!!"

 

 하시시 부대장이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냉큼 앞에 나섰다.

 

 "예, 장군!"

 

 "저들을 "인육분쇄기"로 처형하라!"

 

 자피르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알-무슈림에게 되물었다.

 

 "인육분쇄기가 뭡니까?"

 

 모처럼 만든 근엄한 분위기에 딴죽이 들어오자, 알-무슈림이 짜증스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거 말야. 그대가 만든 처형기계."

 

 "예? 그것의 이름은 "홀리 머신"인데요?"

 

 "병사들이 그렇게 부른다네. Holy machine 이라고 하면 누구도 못 알아들어. 그냥 인육분쇄기로 이름을 통일하게."

 

 "하지만 발명품의 이름을 짓는 것은 발명자 고유의 권한이 아닙니까?"

 

 얘기가 이상하게 흐르자 더욱 짜증이 난 알-무슈림은 기어코 짜증을 부렸다.

 

 "발명품에 발명자의 이름이 붙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 저 기계 이름을 "자피르"라고 부를까? 내가 공식 보고서에 그렇게 쓰기를 원해? 응?"

 

 "아닙니다. 그냥 인육분쇄기로 부르겠습니다."

 

 자피르는 내심 투덜댔지만 순순히 알-무슈림의 말에 따랐다.

 

 자피르의 지시에 따라 하시시 부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명이 8필의 말을 몰아서 물레방아를 돌리자, 그것을 동력원으로 마차 5대 분량의 넓이를 차지하는 기계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기계의 삼면에는 휘장이 쳐져있어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못보게 했다. 교황을 포함한 로마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리고 4명의 병사들이 발버둥치는 포로 한 명을 끌고 기계 안으로 집어 넣었다.

 

 한 사람이 기계 안에 들어가자 그 안에서 공기를 찢는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소름이 절로 돋는 기묘한 소리들이 울러펴졌다. 살을 가르고 찢는 소리, 뼈를 꺾고 부러뜨리는 소리, 멧돌이 돌아가는 소리, 생피를 뽑아내는 소리 등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끔찍한 소리들이 약 10초 동안 사람들을 전율시켰다. 그리고 깊은 구덩이에 뼈를 뱉어내는 듯한 소리와 배수로를 통해 걸쭉한 물을 빼는 듯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처형은 끝났다. 그리고 교황을 비롯한 포로들과 로마의 시민대표들은 그들을 위해 젖혀진 휘장을 통해 그 과정을 여과없이 보게 되었다.

 

 꽉 억눌린 듯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사람의 비명이 터진 것을 시작으로 교황 이하 포로들이 광란을 떨면서 몸부림쳤다.

 

 알-무슈림은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잠시 동안 귀를 막았다. 그는 충분히 저들의 광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그것을 처음 본 순간 마구 토하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저런 말도 안되는 것을 고안한 자피르를 저주했다.

 

 '자피르 그 개새끼. 뭐? 저런 악마들은 뼈야 살을 완전히 분리해야 부활하지 않는다고? 교리 공부를 판타지로 했냐? 코란과 성경 어디에 그런 말도 안되는 괴물들이 나온다고 그래? 하지만 처형하는데 필요한 인력이 3~4명 밖에 되지 않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야. 기계 옆에 구덩이 하나만 파면 뒷처리까지 깔끔해지는 것도 괜찮고. 하지만 너무 잔혹해. 뭐, 이번 전쟁 이후에는 쓸 일이 없겠지?'

 

 공포의 광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알-무슈림은 교황과 예하들을 비롯한 몇 명을 골라내었다. 그리고 참으로 상큼하기 이를데 없는, 분위기가 분위기이기 때문에 더욱 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저곳에 들어가 훗날 이 땅에서 피어 오를 생명들을 위한 밑거름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알제리아로 가서 전하와 대면하시겠습니까? 선택하십시요."

 

 그들은 질려버린 얼굴로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제리아로 가겠네! 한시라도 빨리!!"

 

 

 

 성내에 들어선 알-무슈림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로마의 참혹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곳곳에 굶어 죽은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은 예상했던 것이기에 놀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염병이 로마를 휩쓸어 버린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지금 로마의 성내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 어쩌다가...."

 

 알-무슈림의 탄식에 시민들의 대표는 슬픔에 찬, 그러면서도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식량입니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식량배급을 실시해 주십시요."

 

 알-무슈림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물론 식량배급을 하려고 했소. 하지만 이렇게까지 참혹하게 변해 버렸다니.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조차 없을 줄이야. 이러면 기껏 준비한 그것을 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알-무슈림의 말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시민들의 대표가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당장 식량배급을 해 주신다는 겁니까?"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소. 식량배급을 통한 독극물 투입 계획이 무산됐는데 무슨 얼어죽을 식량배급이란 말이오?"

 

 "!!"

 

 "얘들아!"

 

 "예, 장군!!"

 

 "급히 전하라! "때깔 좋은 귀신" 작전을 취소한다! "알라 천국 불신 지옥" 작전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얘네들은 이만 치워라."

 

 "예, 장군!!"

 

 "이보시오! 이게 무슨.. 억!!"

 

 순식간에 시민 대표들을 쳐죽인 병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30분 후 광기에 찬 시간이 시작됐다.

 

 "알라 천국! 불신 지옥!"

 "알라 천국! 불신 지옥!"
 "알라 천국! 불신 지옥!"

 "불신자는 지옥으로!!!"

 

 그날부터 로마는 보름 동안 불탔다. 그리고 로마의 인구는 0 이 되었다.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알리의 외침이 대청을 쩌렁쩌렁 울렸다. 만조백관과 백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알리는 교황을 문초했다. 그 모습은 마치 악마를 단죄하는 천사같이 위엄이 있었다.

 

 "내가 지은 죄가 뭐요? 한번 들어나 봅시다."

 

 "좋다! 사욕에 눈이 멀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죄가 그 첫번째다! 그로 인해 두 종교간에 메울 수 없는 금이 갔고 민족간에 씻을 수 없는 증오를 품게 되었노라! 두 번째는 마녀사냥이다. 정적을 제거하려면 정당하게는 못하더라도 손에 피를 묻힐 각오는 해야하는 법. 그런데 너는 신의 이름을 팔았고 온 백성들을 광기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세 번째, 너는 면죄부를 팔았다! 오직 주께서만 가지고 있는 죄 사함의 권능을 너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이 무슨 오만인가! 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너를 처단하고 세상에 정의를 우뚝 세울 것이다!"

 

 알리의 열변에 사람들이 동감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에 동의하는 듯이 교황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을 피부로 느낀 알리는 속으로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저 교황이 울고 불면서 역대 교황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교황을 교수형에 처한 후 미리 장만해 둔 명언 한 마디만 하면, 이 로마전의 대단원의 막이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이 전쟁을 "성마전쟁"으로 부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알리는 가볍게 전율했다. 그리고 다시 교황에게 시선을 주었다.

 

 교황은 로마가 함락된 이후로 몸집이 두 배로 불어나 있었고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반면에 눈빛은 완전히 죽어 있었다. 이것은 전 하시시 부대장인 자피르의 작품이었다. 알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많이 미친 놈이지만 사람을 붕괴시키는 재주가 참으로 뛰어난 놈이다.

 

 "하아..."

 

 교황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가 할 말을 듣기 위해서다. 그리고 교황의 눈에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

 

 알리의 가슴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교황의 눈빛은 오랫동안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당한 끝에 무너져버린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알리는 급히 눈동자를 굴려 자피르를 바라보았다. 자피르의 자신에 찬 모습에서 그는 약간의 안도를 얻었다. 하지만 점점 강렬해지는 교황의 눈빛은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제 교황의 눈빛은 샛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치 죽음속에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오랫동안의 정련끝에 세상에 나온 강철처럼, 그는 굳건히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들어 알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너나 잘 하세요~~~"

 

 알모하드의 왕궁의 대청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알리의 표정은 똥을 씹은 사람의 그것으로 변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경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찬 바람이 불었다. 이 분위기를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날 알리는 교황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사형이 언도된 날부터 사형이 집행되기까지의 일주일 동안 교황은 독방에서 지냈다. 그 속에서 그는 지난 비극 속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고 자신을 비롯해서 죄지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모습에 감화된 간수들은 그를 "친절한 교황님"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추신 : 자피르가 발명한 희대의 발명품인 "인육분쇄기(= Holy machine)"는 그 잔혹함과 비인간성 때문에 훗날 폐기된다. 그리고 발명자인 자피르는 아이러니하게도 인육분쇄기에 의해 처형된 마지막 사람이 된다. 그것에 대해서 알-무슈림은 "그 꼴통, 언젠가 사고칠 줄 알았다니까." 라고 말했다고 한다.

 

 

 

ps1. 거의 4개월 만입니다. 연제 속도가 너무 늦네요. (벌써 몇 번째 이 말을 하는거냐, 나는. -_-;;)

 

ps2. 이번 편은 무지 잔인합니다. 임산부 & 노약자 & 어린이는 뒤로 돌아가 주세요. (이미 늦었지 아마.)

 

ps3. 이번 이야기는 제가 로마를 점령한 후, 연속되는 반란을 예방하고자 모든 건물을 철거한 것에서 기인합니다. 그냥 철거하면 왠지 이야기가 안되니까, 이런저런 핑계들을 갖다 붙인 것입니다. 말이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리플 달아주세요. (그런다고 싹쓸이 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말이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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