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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Forum

붉은휘장 2장(章) 승전파티

작성자폼카|작성시간06.09.16|조회수119 목록 댓글 0


(2)

 

스페린의 왕성 '백합궁'의 동측 별관 4층에 위치한 대연회장 '리델'에는 눈부신 빛과 흥겨운

무도회곡으로 가득차 있었다.

 

8미터가 넘는 높이의 천장은 '양초소년'이라고도 불리는 시종들이 쉴새없이 움직이며 불을 붙이며

다니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이라는 뜻 외에, 양초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태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일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높은 테라스에서 떨어져 죽는 이도 있었고, 온몸에 화상을 입는 일도 다반사였다. 화려한 연회의 불빛은, 그들의 목숨을 대가로 타고 있는 것이었다.

 

"죽겠군."

 

프리드리안 페네쥬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밝고 경쾌한 무도회곡에 맞추어 젊은 남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프리드리안은 알모렌 1170년산 포도주가 든 크리스털 와인잔을 손에 들고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는 자신의 찡그린 얼굴을 컨트롤 하기 위해 잠시 얼굴을 숙였다.

마음을 다스리며 바닥을 바라보는 그의 앞에 화사한 녹색 드레스를 입은 두명의 젊은 귀족여자들이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드레스자락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남작가의 아이들인가.

 

왼손에 든 와인을 든 채 그들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가슴에 가져가며 목을 끄덕였다.
스페린의 제3왕자의 위를 가지고 있는 이인 그가 예를 차릴만한 신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당한 겸손은
이 단순하디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일면을 가지고 있는 사교계에서 손해가 될 일은 아닐 것이었다.

 

스페린에서 보기 힘든 밝은 백금발을 길게 기른 프리드리안은 과거 그 이름을 떨쳤던 로메니아제국의
후신인 비레티움의 공주였던 프리시아의 아들이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닮아

있었다.

 

적당히 소탈하면서, 적당히 권위를 취하는 모습은 제 3 왕자로서 적합한 몸가짐이었다.
프리드리안은 옷깃이 높은 예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옷은 그의 얼굴과 제법 잘 어우러졌다.
자신에게 쏠리는 여자들의 시선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여자들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너무나도 겉으로 들어나는 반응을 보였다. 계속해서 한숨만 나올 수 밖에 없다.

 

머리 빈 것들과 어울리는 것도 수행의 일부이겠지.

 

프리드리안은 누군가 다가서는 느낌을 받고 고개를 돌렸다. 프리드리안의 비서관 셀터 비옌백작은 백작가문을 의미하는 푸른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오, 몇년만이군 백작."

 

처리할 일이 있어 30분 정도 자리를 비운 백작을 비꼬는 말이었다. 백작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드시지 않으시는겝니까."

 

"저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다."

 

백작은 프리드리안이 지목한 곳을 바라보았다.

국왕전용 담화실 앞은 국왕의 개인 기사단인 스페리딘의 기사 2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예복을 착용하고 있었고, 은도금된 예식용 롱소드로 무장하고 있었다.

 

확실히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복장은 실용성 또한 감안하여 만들어진 옷이다. 당장 실전을 벌여도 문제가 없을 터였다. 예식용 롱소드 또한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다.

 

스페라딘 기사들은 각 출입구마다 배치되어 미동도 하지않은 채 조각상처럼 서있었고, 고급 장교들은 각자 가문에 맞은 예복을 입은채 파티에 참여하면서 위장근무를 하고 있었다.

 

만의하나 누군가 이런 파티의 소란함을 틈타 국왕에 대한 암살을 기도한다면 삽시간에 파티 군중들 틈사이에 뒤섞여서 근무중인 고급 장교들에게 저지 당할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일반귀족들로서는 누가 근무중인 고급 장교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또한, 외곽경계는 스페라딘에 뒤지지 않는 악명을 가진 왕실근위대가 맡고 있었다.

 

"그다지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만....."

 

"왕실근위대가 제1궁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경호를 선다는 것 자체가 낭비야. 프레이네스크의 반란군이 진압되었으면 진압된거지, 이런 연회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관습입니다."

 

"망할놈의 관습이로군. 이번 연회에 들어간 돈이 도대체 얼마야?"

 

"보통입니다. 일단, 담화실로 가시지요."

 

프리드리안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보통은 무슨 보통. 평소의 6배는 더 될 것 같은데."

 

담화실의 문을 닫으며 쉘터 비옌이 대답했다.

 

"아라곤의 공주가 방문했기에 더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프리드리안은 셀터 비옌백작에게 귓속말을 했다.

 

"왜, 그 공주의 엉덩이가 무지 탱탱한가보지? 국왕전하께서 반해도 정말 단단히 반하셨
나 보군."

 

"휠테른 태자님의 후궁이 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아 그건 비극이구만. 그 허약한 인간이 제대로 방사라도 하겠어? 처녀막 파열후 평생 독수공방이나 안하면 다행이지. 방사하다 뒈지면 재수 없는거고. 그래, 소문대로 그 미모가 미의 여신 아리아스 저리가라 할 정도인가?"

 

"그건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 나라 최고의 미인이라는 소문은 있습니다."

 

"흥, 공주중에서 가장 반반하면 그 나라 최고의 미인이구만."

 

"아라곤을 대표하는 특사들에 대한 마땅한 예의입니다. 설마 우리 스페린의 사
절단이 아라곤을 방문했을 때 귀리죽만 먹다가 오기를 원하시지는 않겠지요?"

 

프리드리안은 코웃음을 치며 반문했다.

 

"그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놈들이 감히 그러려고."

 

"그곳은 전략적 요지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스페린과 오랜기간 전쟁을 벌여온 페세넨제국이 스페린을 침공할 수 있는 루트는 세개였다. 하나는 협곡에서 평야로 이어지는 플레인평야였고, 두번째는 천해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에케해로, 세번째는 오랜기간 공을 들여 쌓아 거의 철벽에 가깝다는 요새 비타셀고. 그 중 하나인 플레인 평야가 아라곤의 영토인 것이었다. 스페린은 그 통로를 틀어막기 위해 오랜기간 아라곤을 지원해 왔다.

 

"산발적인 반란이 일어나는 걸 잡으러 다니면서 아라곤에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있겠나. 그들을 돕는 건 이런 장대한 파티가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야."

 

"남방군에서 차출해서 북으로 병력을 돌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반란이 완전히 끝이 난 건 아니잖나. 야만족들의 생산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나 그 수는

만만치 않아. 장졸들의 유지비며 왕실유지비, 정책을 베푸는데 드는 돈을 그들의 세입이 정상일 때로

상정한 상황에서 지출을 줄이기는 커녕 더 늘려?

 

게다가, 반란상태가 지속되면 뭐가 좋은 일이 있다지? 세금이 걷히겠나? 진압때 죽은 놈들의 노동력은 어디서 채우지? 베레닌에 가서 노예를 사오리?

 

말이야 말이지, 그 넓은 북부를 카를로스 놈 혼자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해 온 것만해도

거의 기적일이란 말이야, 그적은 병력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그 넓은 곳을 지키다니."

 

"그가 잘 막아주면 좋은 것이지요."

 

"그게 아니야, 그 천한 겔드족의 자식이 뒈지고 나면 남방전력을 빼야된다고. 빈틈을 보였다간

아예서 북쪽의 야만족들이 밀고 내려올 수도 있는 상황이야. 

 

아끼고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어설픈 권력다툼으로 천한놈이긴하나 왕자 꼬리표를 달고 있는

장군 하나를 엿 먹이려 드는 놈이나, 멍청하게 먹고 마시는데 국고를 낭비하는 놈들이나 친히 목을

쳐주고 싶을 정도라고. 반란군을 잡은게 문제가 아니라 반란이 왜 일어났는가를 생각해야 해 봐.
북방에서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나는 이유가 대체 뭐겠어? 이 멍청한 짓거리를 계속하는
바람에 눈 때문에 작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곳에 세금을 과중하게 부과하기 때문 아니냐
이 말이야."

 

"....."

 

"내 말은 이런 파티가 굳이 필요하냐는 말이야. 이건 명백한 국고 낭비.
페세넨이 밀고 들어오면 왈츠를 춰서 막아낼건가? 아니면 감동적인 연주를 해서? 설마 페세넨의

빌어먹을 흑기사단이 와인을 대접한다고 회군할거라는 생각은 아니겠지?"

 

"오늘따라 유난히 화를 내십니다."

 

셀터 비옌은 여전히 평온한 말투로 대꾸했다.
프리드리안은 무언가 부셔버릴 것이 없냐는 눈초리로 두리번 거렷지만 이 방에는 검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에 프리드리안은 초조한 발걸음으로 방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제기랄,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연회를 금지시켜 버릴까? 아, 지금 병상 중이시지. 아, 섭정인 형님을

구슬리면 되겠구만."

 

"불가능합니다. 고급귀족들이 반감을 품을 겁니다. 아마도 왕께서 자신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한거라고 생각할겁니다. 귀족들이 불평할 꼬투리를 줘서는 곤란합니다. 게다가 문제는 레티온 후작쪽도 주의를 해야 합니다.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뭐? 레티온? 그 망령난 늙은이는 또 뭐야? 정말로 돌아버린 건가? 능력이 없어서 폐태자가 된 주제에 다시 동생의 왕위를 빼앗겠다고? 오 아버지,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니, 이제 곧 돌아가실 듯 한데, 골골하니."

 

"문제는 레티온 후작을 등에 업고있는 자들입니다.
본래 받았을 왕위를 돌려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등의 유혹을 받았을 겁니다."

 

셀터 비옌의 말에 프리드리안은 혀를 빼문채 입을 벌렸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표정도 프리드리안의
조각처럼 잘생긴 얼굴을 망가뜨리지는 못했다.

 

"교수형을 시켜버려야겠어."

 

"레티온후작은 그에 해당하는 죄가 없습니다."

 

"반역을 꾀하고 있잖아. 충분하지 않나?"

 

"증거가 없습니다."

 

"없으면 만들어."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어수선한 때에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귀족들의 신경이 개에게 쫓긴 고양이처럼 바싹 올라 있습니다."

 

"망할 살쾡이 새끼들!"

 

프리드리안은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며 가구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셀터는 가만히 눈살을 찌푸리며 아까 연회장에서 프리드리안이 술을 마시지 못하게 제지하지 않았던것을 후회했다.

프리드리안은 술에 강했지만, 술에 취해서도 평소의 자제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셀터는 조금 씁쓸한 기분으로 준비했던 다음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말은 프리드리안을 비
틀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만약 카스트로 1세가 승하하신다면....."

 

"오,젠장."

 

"지금 상황에서 카스트로 왕께서 승하 하신다면 레티온 후작이 왕권을 승계받을 겁니다. 아니, 그렇게 그 배후가 만들겠지요. 아마 4명의 공작들이라고 생각되지만......무능하다는 이유로 아마 태자께서는 왕위를 받지 못하겠지요.그렇게 되면 3왕자 프리드리안님꼐서 그 대항의 중심점이 될......"

 

"난 국왕따윈 되고싶지 않아! 오 신이시여! 빌어먹을! 그 슬라임 같은 녀석이 국왕이 되면 스페린은 끝이다! 아무한테나 왕권을 넘겨줘도 그 녀석만은 곤란해!"

 

프리드리안은 얼굴을 붉히며 의자를 걷어찼고, 의자는 벽까지 날아가서 요란한 소리를 내
면서 부셔졌다.셀터 백작은 조용히 박수를 쳤고, 프리드리안은 씩씩거리며 돌아보았다.

 

"상당한 가격의 왕실재산이 사라졌군요."

 

"내 재산에서 까!"

 

셀터는 쓰러진 가구를 하나하나 세우며 씩씩대는 프리드리안에게 말했다.

 

".......어쨌든, 카를로스 전하께서 오실 겁니다."

 

"북방 막는다고 바쁜놈은 왜 불러?"

 

"왕께서 부르셨습니다. 태자님의 약혼식으로-"

 

"또 망할 파티를 열겠군. 이런 제기랄."

 

프리드리안은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누르며 부서진 가구들을 주으며 셀터백작에게

말했다.

 

"뭘해? 좀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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