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ROME: Forum

Historie: Romani. Book 1. Chapter 2.

작성자ROK_Agrianoi|작성시간06.09.30|조회수290 목록 댓글 8

2

 

여름, 모든 농부들은 여름 내로 수확을 다 끝내야 하고 전투에는 적합한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계절. 이 때에 캄파냐 지방에서는 삼니움 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미 예전에 로마에게 패배하고 복종을 맹세한 바 있지만, 로마 군대의 감시가 느슨해지자마자 모두들 과거를 후회하고 예전에 로마를 무찌른 적이 있으니 이번에도 역시 그럴 것이라 하며 다시 자신들의 땅을 찾고 더 나아가서 로마인 남자들을 도륙하고 여자들을 끌고 가며 도시를 불태우고 부를 빼앗자고 한 것이다.

 

원로원은 국가 계엄령을 내리기로 결의하고 현재 원정 중에 있는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와 제 1 군단을 불러 삼니움족의 전사들을 도륙하여 복종의 맹세를 어긴 대가를 알려주고 또한 다시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게끔 하려고 하였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듯, 온화한 기후를 갖고 있는 지중해의 여름은 따가운 햇볕과 함께 푹푹 찌고 있었다. 전투에 적합한 계절이지만 갑옷을 두르고 뛰어다니기에는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는 계절이다. 하지만 타렌툼을 포위하고 있는 로마 병사들은 이곳 태생이기 때문인지 땀을 흘리면서도 별거 아니라는 듯, 공성병기 건설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에페이로스 인들은 곧 로마인들이 짓쳐들어오고 자신들을 죽인 후에 이 도시의 모든 것이 다 파괴될 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든 공성준비가 마무리 되고 에페이로스 인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며 코타가 에페이로스 인들에게 이틀의 시간을 더 주었을 때-하지만 병사들은 곧 에페이로스 인들의 상황을 알고 전투의 의욕이 충만해 있었으며, 군단장은 코타에게 붉은 깃발을 내걸을 것을 거듭 촉구하고 있었다-전령이 도착했다. 필히 로마에서부터 밤낮으로 달려왔을 전령은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에게 삼니움인들의 봉기와 더불어 제 1 군단으로 위협받는 로마의 성문을 그들에게로부터 지키라는 소식을 전했다.

 

원로원의 결정에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과, 아직 젊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조국이 위협받고 있다는데 분개하여 코타는 진영을 그날로 걷어치우고 공성병기를 그자리에 버려둔 채 1군단을 이끌고 귀환하였다. 병사들은 앞으로 닥쳐올 용맹으로 그 이름높은 삼니움 전사들과의 전투를 두려워하였다. 그것은 코타가 병사들에게서 신뢰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카푸아 근처에서 제 1 군단과 삼니움인들은 조우했다. 로마인들은 곧 사각형의 튼튼한 캠프를 짓기 시작했으며, 삼니움족은 그들의 수레와 짐들로 얕은 벽을 쌓고 보초병들이 로마 군을 감시했다.

 

다음날, 1 군단은 진영을 조금 앞으로 옮겼다. 그 다음날도 조금 더 삼니움족의 진영과 가깝도록 옮겼다. 그렇게 5일이 지나자 삼니움 수뇌부는 로마군의 압박에 양쪽 파로 갈렸다. 하나는 로마군에게 항복하고 자비를 구걸하자는 것이었고, 하나는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부와 명예를 위해 싸우자는 쪽이었다. 물론, 로마군 총사령관인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아직 젊고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런 정보를 모으지도 않았고,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진형을 조금씩 앞으로 옮기며 압박을 준 것도 군단장의 의견에 의한 것이었다.

 

6일째 밤, 전투회의 끝에 -코타는 영향력이 거의 없었고 또한 그 영향력을 되찾으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아침 붉은 기를 내걸기로 결의하고 병사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배불리 먹였다. 이미 6일 낮밤을 쉬었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보았다.

 

7일째 아침, 로마군은 짐과 숙영지를 지킬 조금의 인원을 남기고 삼니움족과 로마군 진영 사이 평원에서 진영을 짜고 붉은 기를 내걸었다. 이에 마지못하여 삼니움족은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휘하는 장군 세르빌리우스 ?그는 로마에서 5년을 살았었다.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으며 이름도 로마식으로 바꾸었다- 는 강경파였기 때문에 자이스톤 ?그리스식 기병용 장창. 어깨에 걸치고 있다가 돌격할 때 뒤집어 잡고 엄청난 파괴력으로 찌른다. 웬만한 방패는 뚫릴 수도 있다- 을 쓰는 막강한 기병을 데리고 나왔다. 곧 삼니움족도 붉은 기를 내걸고, 전투는 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삼니움족은 로마군보다 상당한 고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거기에서 그들은 서로 방패를 붙이고 굉장한 밀도로 서서 방어적인 진영을 짰다.

 

삼니움족은 다음과 같은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삼니움 중보병 3200. 삼니움 창병 3200. 그리스식 무장을 한 기병이 500. 그 중 삼니움 중보병 1600명은 전체 진형의 뒤에서 받치고 있는 형식이었다.

 

로마군은 아직 카밀리우스가 개혁한 군대편성을 따르고 있었다. , 트리알리는 아직도 에트루리아인과 싸우며 물려받은 팔랑스 진형으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군은 다음과 같은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스탈리 1600, 프린키페스 1600, 트리알리 1600, 기병 1400, 경무장보병 3200. 로라리아이(트리알리와 경무장 보병 사이에서 존재하며, 전투중 언제든지 라인에 빈틈이 생기면 그곳을 매꾸는 역할이다. 중무장 보병처럼 전체 라인을 유지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2400.

 






전투는 좌익에 기병 400기와 함께하던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의 진군명령과 함께 시작되었다. 곧 전통적인 카밀리안 로마군의 전술로, 경무장 보병들이 하스탈리 앞까지 뛰어나간 뒤에 투창들을 던졌다. 그 사이에 로마군은 점점 다가가갔다.

 

한참 정신없이 투창들을 막아야만 했던 삼니움 병사들은 이미 수뇌부의 대립으로 전투의욕이 떨어졌었는데, 시작부터 본대가 적 경무장 보병에게 얻어맞으면서 전투의욕을 거의 상실했다. 하지만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다는 그들의 상황이 더더욱 삼니움족을 절박하게 만들었으며 끝까지 땅을 디디고 서있도록 만들었다.

 

로마군은 삼니움족의 처절한 결의에 의해 마지막 한명까지 싸울것이라는 두려움에, 자신들의 투창이 다 떨어질때까지 던져대었다. 그렇게 한참 팽팽한 긴장이 지속됐다. 태양이 조금 움직였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을 때, 하스탈리와 프린키페스가 적군의 제 1 열으로 용맹스럽게 돌격하였다. 아직 타렌툼에 있을 때 속국의 의무로 들어온 삼니움 창병들은 끝까지 로마에 충성을 맹세한 후, 자신들의 충성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왕성한 전투의욕을 보이며 돌격해 들어갔다.

 

그 후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눈을 들어서 보니 상대방 기병 500기가 그 길이도 긴 장창을 꼬나쥐고 자신에게 돌격하고 있었다. 젊은 혈기에 코타는 자신 420기의 기병을 데리고 희망 없는 돌격을 해 들어갔다. 코타를 뒤따르는 기병은 로마 부유층의 자제들도 섞여있었다. 그들은 불명예스럽게 죽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에 자이스톤에 이백여 명의 전우들이 꿰뚫렸어도 동요하지 않고 긴 창을 더 이상 쓰지 못하는 상대의 투구 사이로 자신의 창들을 찔러들어갔다. 여기에 서로 막대한 사상자를 내었다.



우익의 기병 1000기는 군단장이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예정된 대로 삼니움족의 라인 뒤로 기병대를 이끌고 갔다. 계속에서 금속들이 부?H히는 소리와 함성소리, 비명소리 및 엄청난 소음이 전투지역에서 들려왔다. 군단장은 기병들을 재정렬시키며 적의 뒤로 돌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그가 오른쪽을 보니 자신의 장군이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1000기의 기병과 함께 한참 분투하던 아우렐리우스 코타를 구해내었다. 뒤에서 엄청난 숫자의 기병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세르비우스와 그 기병들은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내면서도 분투하였지만 곧 30기의 기병만 남았을 때 자신들의 운명을 깨닫고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중앙에서는 로마군이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삼니움족의 맹공격으로부터 밀려나고 있었다. 로마군이 뒷걸음질을 치면 칠수록 삼니움의 전사들은 더더욱 용맹스러워졌고 강해졌다. 게다가 그들이 자신의 총사령관이 도망가는 모습까지 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절박해 져서 무용에 모든 것을 걸고 로마군을 도륙하고 있었다.

 

이에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세르빌리우스를 쫓아가서 죽이려고 하던 것을 그만두고 남은 기병들을 끌고 본대를 구원하러 달려갔다. 뒤에서 뜻밖의 공격을 받은 삼니움족은 혼란에 빠지고 도주하였다. 그들은 모두 추적되어 사살되었다.

 

이렇게 전투가 끝나고 삼니움족은 전멸하였다. 하지만 주모자인 세르빌리우스가 도망갔으므로 인하여 원로원은 걱정을 표하였다. 하지만 5일 뒤, 카푸아에서 발각된 세르빌리우스는 잡힌 후, 공개처형 당하였다.

 

포로로 잡힌 50여명 남짓한 삼니움인의 말에 의하면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삼니움 인들은 예전에, 자신의 조상들이 로마에 복종을 맹세한 것을 후회하며 때를 노리고 있었다. 이 때, 에페이로스 인들이 지원해 주겠다고 말하였고, 그로 인해서 500기의 기병은 그리스식 장비를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에페이로스 인들도 그 후 소식이 끊기었고, 타렌툼이 공격당하였다. 하지만 아직 그것을 모르는 삼니움인들은 제 1 군단이 사라진 지금, 로마를 점령하고 그들을 자신들의 발 밑으로 둘 수 있다는 생각에 첫 목표인 카푸아로 행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로마군이 나타났다. 로마군이 나타난 뒤 며칠 동안 에페이로스 인들의 병사들을 기다렸으나 결국 그들이 오지 않을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모두들 자신의 운명과 선택을 후회하고 비관했으며 로마군에 항복하자고, 그들은 자비로우니 우리의 목숨을 살려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자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해명을 하려고 전령을 보내려던 7일째 아침, 로마군은 붉은 기를 내걸고 있었고, 삼니움족은 매우 비참해진 나머지 무용에 모든 것을 걸고 전투에 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총사령관에게서도 버림받고 동료들은 철저히 도륙당한 것이었다.

 

로마 원로원은 그 50명의 포로들이 동료들에게 로마군의 무용담을 얘기하도록 하여 추가적인 삼니움족의 반란저지를 꾀하고자,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하지만 그 중 20명은 돌아갔을 때 불명예스럽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로마에 귀속되었다.

 

삼니움족과의 전투가 끝난 후, 코타는 병사들에게서 신뢰도 얻었고 제 1 군단의 전투의욕도 매우 왕성해졌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몇일간 휴식을 취하고 사망자들을 매장한 후에 타렌툼으로 돌아가 다시 공성준비를 하였다.

 

로마에서는 5일 감사제가 진행되었다.

북부 전선은 아직 조용했고, 레기움의 오만한 용병들도 이 소식을 듣고 그 위세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아직 로마에 항복 사절단은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가을이 되어갔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르타고멍멍이 | 작성시간 06.09.30 유로파 역시 재미있죠.^^
  • 작성자jet30 | 작성시간 06.09.30 ㅎㅎ 줄리안님 이후로 간만에 잼있는 소설? & 삽화?를 보는군요.^^ 줄리안님은 요즘 많이 바쁘신건가요?? eb 모드 간만에 해볼까나...
  • 작성자Zinna-Ravi | 작성시간 06.10.01 유로파가 1.2패치기반이라니.....(털썩!) 이젠 TE로 삽질이나 해야겠다ㅡㅜ;;
  • 작성자카이사르씨 | 작성시간 06.10.02 ㅎㅎ 아그리아노이 님이 컴패니언 사마의 동생분 이시라는군요^^
  • 작성자라피돌 | 작성시간 06.10.05 음 전.. 이게 자꾸 화면이깨져보여서 관둠.. 0.74패치를 안해서 그런건지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